음악의 힘, 찬송의 힘(히13:15-16)
2018.10.21 김상수목사(안흥교회)
1. 음악의 힘
현재 전 세계를 강타하는 한류문화의 최선봉에 방탄소년단(BTS)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모(某) 경제연구소의 분석에 의하면 방탄소년단의 경제가치는 1조 원 이상이라고 한다. 방탄소년단은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빌보드 200 1위에 연속으로 두 번이나 올랐고, 지난달에는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는 등 세계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10월22일자 타임(TIME)에도 방단소년단에 대한 기사가 1면을 장식했다.
그런가하면 몇 일전 H.O.T라는 그룹이 잠실종합운동장에서 17년 만에 콘서트를 열었는데, 무려 10만여 명의 30-40대 팬들이 몰려서 환호했다. 그런데 이런 장면들은 이들 뿐만이 아니다. 조용필씨나 나훈아씨 이미자씨 등이 공연을 하면 50-60세대 70-80세대들이 역시 만원을 이루면서 열광한다. 나이 지긋한 중년의 아줌마 아저씨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격해 하는 장면이 이해가 되는가? 이것이 바로 음악의 힘이다.
음악에는 힘이 있다. 어느 나라든지 지역과 시대를 초월해서 군가는 전투에 임하는 군인들에게 전진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심지어 각종 시위를 할 때도 어김없이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그래서 유명해진 노래들 중의 하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그런가하면 음악은 민족이나 사회나 그 시대 사람들의 정서와 마음을 대변한다. 그래서 어느 지역에 사는 해외 동포든지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고향의 봄”과 “아리랑”을 부르면 눈물을 흘린다. 이런 노래들은 한국인의 정서 중에서도 가장 깊은 밑바닥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음이 완고한 사람도 좋은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풀어지고, 상처가 있는 사람도 음악을 들으면서 치유와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그러면 왜 이렇게 음악에 힘이 있을까? 그것은 본래부터 음악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성경의 처음에서 끝까지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성품 중에 뺄 수 없는 것이 바로 하나님은 음악을 좋아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성품에 따라 사람의 마음에 음악성을 넣어주셨다. 그리고 음악을 사람들의 마음을 직접 만지시는 중요한 도구로 사용하셨다. 그렇기에 음악이라는 것은 본래부터가 그 이미 영적인 요소를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음악에는 또 다른 양면성도 함께 있다. 음악에는 영적인 힘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변질되면 영혼파괴 무기로 악용될 수 있다. 본래 사단 루시퍼는 음악을 담당하던 천사장이었다. 그래서 사단은 다른 어떤 보다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기로 음악과 문화를 애용해 왔다. 우리들이 우상을 숭배하거나 영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 이상한 음악들을 계속 들으면 머리가 아프고 힘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기에 음악을 이용한 사단의 공격에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2. 찬송생활(讚頌生活)을 시작하자
일반적인 음악에도 이처럼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고 한다면, 하물며 찬송은 어떻겠는가? 찬송에는 단순한 마음의 카타르시스 정도가 아니라,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능력이 있다. 찬송을 부르면 우리를 살리는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이 우리 안에 들어온다. 그래서 다른 어떤 음악보다도 특히 찬송을 부를 때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고, 마음에 참된 평안이 오고, 기적이 일어나고, 마귀 사단이 떠나간다.
왜 이처럼 찬송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까? 그 이유는 하나님이 찬송 중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시 22:3)
성경에는 수 없이 찬송의 능력과 관계된 기록들이 있다. 성경에 기록된 찬송의 능력과 기적들은 지금 이 시대도 얼마든지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날 수 있는 찬송의 힘이다. 소년 다윗이 사울왕 앞에서 악기를 연주할 때 사울 왕에게서 악신이 떠나갔다(삼상16:23). 또 역대하 20장에 보면 여호사밧왕은 모압과 암몬 연합군과 싸우기 위해서 성가대를 앞세우고 전쟁터로 출정할 때, 성가대가 찬송을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 적군을 물리치셨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사도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기도와 찬송을 부를 때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고 옥문이 열리고 묶여있던 사슬들이 다 풀렸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에서 순교를 당하는 순간에도 찬송을 불렀고, 시편 42편 5절에 보면 고자자손은 마음에 낙심이 왔을 때,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찬송할 때 신앙이 회복되었다. 심지어 예전에 사역하던 교회에서는 우울증에 걸렸던 50대 성도님이 성가대에 들어가면서부터 우울증이 치료되는 것도 보았다. 질병이 치유된 것이다. 왜 찬송을 부를 때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찬송 중에 계시기 때문이다
지난 주중에 우리교회 가을소풍을 갔다. 참으로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그런데 중간에 마이크를 돌리면서 찬송을 한 곡씩 부를 때, 찬송 가사를 기억하지 못해서 중간에 애를 먹는 모습을 여럿 보았다. 그러면서 느껴지는 것이 ‘아… 우리가 너무 찬송 가사를 기억하지 못하는구나’라는 것이었다. 물론 나이가 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신기한 것은 나이 들어도 일반가요는 잘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오늘부터 우리들은 찬송생활을 하자. 찬송생활이란 글자 그대로 찬송이 생활이 되는 것을 말한다. 단순히 어쩌다가 생각나면 한 두번 또는 예배시간에만 찬송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찬송생활을 해야 한다. 또 자신이 안보고도 부를 수 있는 애창찬송들도 몇 곡 정해서 익숙하게 하자. 이러한 찬송생활을 히브리서 13장 15절에서는 “찬송의 제사”,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라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13:15)
3. 생활찬송(生活讚頌)으로 이어가자
그런데 우리들이 찬송과 관련해서 한 가지 더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찬송생활은 반드시 생활찬송으로 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생활찬송이란 생활이 곧 찬송(예배)이 되는 것을 말한다. 히브리서 13장 16절에 보면 찬송의 제사와 함께 또 하나의 제사를 말하는데, 그것이 바로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는 제사다. 이것을 나눔과 섬김의 제사라고 표현하고 싶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히 13:16)
나눔과 섬김은 그 자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다. 사실 찬송생활을 잘하면 생활찬송은 상당부분도 저절로 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찬송을 많이 부르면 마음이 순화되고, 성령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자연히 언행이 절제되고 다듬어진 모습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생활찬송이 곧 빛과 소금의 생활이다.
생활찬송은 성도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교회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우리교회는 나눔과 섬김 위원회를 조직해서 섬김에 힘써왔고, 또 빛과 소금 봉사단을 창설해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영정사진도 찍어드리고 얼마 전부터 플롯학교도 개강했다. 우리교회의 섬김 사역은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있다. 앞으로 한글학교도 다시 시도하고, 복지센터를 건축해서 성도들과 주민들을 위한 각종 좋은 세미나도 열고, 영화도 상영하고, 노인주간복지센터 등 더 다양한 방법들을 연구하고 개발해서 성도들과 지역을 섬길 생각이다.
그래서 우리교회가 이 지역에서 영혼구원 뿐만 아니라 문화, 복지, 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번에 열리는 “제1회 이웃과 함께하는 가을열린음악회”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우리들이 늘 추구해야할 중요한 것은 ‘큰 교회’가 아니라, 성경적인 ‘참 교회’가 되는 것이고, ‘큰 종’이 되려고 힘쓰기 전에 5달란트 2달란트 맡았던 종처럼 ‘참 종’, ‘참 성도’가 되기를 힘써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좋은 음악, 생명을 살리는 음악을 우리는 늘 접해야 한다. 찬송은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생명의 음악이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늘 찬송생활을 하기로 결심하자. 더 나아가 찬송생활이 생활찬송으로 까지 이어지게 하자. 그래서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의 삶에서는 하나님의 능력과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자.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