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여전사 박차정 의사 '쓸쓸한 100주년'
부산 금정구 금정문화회관에 자리한 박차정 의사의 동상.
사진제공=금정구청
"박차정 의사를 기억하십니까?"
부산 출신의 여성 항일독립운동가 박차정 의사 탄생 100주년 기념일이 별다른 추모행사도 없이 쓸쓸하게 지나가 아쉬움을 낳고 있다.
박차정 의사는 유관순 열사에 이어 두번째로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은 여성독립운동가. 짧지만 불꽃 같았던 그의 삶은 해방의 꽃을 피운 크나큰 밑거름이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박 의사는 1910년 5월 8일 부산 동래구 복천동에서 태어났다. 3남 2녀 중 넷째였던 그는 동래여고의 전신인 동래일신여학교에 다니던 1927년 전국 규모의 여성운동단체인 근우회 활동에 참가한다.
이어 1929년 서울지역 여학생 시위운동을 주동한 혐의 등으로 일제에 검거됐다가 병으로 가석방된 직후 중국으로 망명한다.
1931년에는 의열단장을 지낸 김원봉 선생과 결혼, 조선혁명간부학교를 함께 설립해 교관으로 활약한데 이어 남경조선부인회를 조직하는 등 적극적인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1939년에는 중국 강서성 곤륜산 전투에 참가했다가 어깨의 총상을 입으면서 건강이 급속하게 악화됐다. 결국 해방을 1년 남긴 1944년 5월 27일 34세의 나이로 순국하고 만다. 해방 이후 그녀의 유골은 남편의 고향인 경남 밀양시 감전동 뒷산으로 이장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지난 8일은 박 의사 탄생 100주년을 맞는 의미깊은 날이었다. 하지만 이 날 부산지역에서는 박 의사를 기리는 대대적인 추모행사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그녀의 고향인 부산시도, 지난 2005년 박차정 의사 생가를 복원한 동래구도, 기념동상이 자리한 금정구 등 부산지역 행정기관들은 조국을 위해 젊음을 희생한 여성운동가의 탄생 100주년을 아무런 기념식도 갖지 않은 채 흘려보냈다.
다만 동래여고 총동창회 임원들만이 생가와 동상을 돌아보며 선배의 애국적인 삶을 추모하는데 그쳤다.
이 날 박 의사의 조카 등 유가족들은 그녀의 유골이 봉안된 밀양시를 찾아 가족들끼리만 간단한 추모행사를 가져야 했다.
사단법인 박차정의사숭모회 측은 "당초 박 의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계획했으나 시나 관련 구청들이 관심을 갖지 않다 보니 예산 문제 등으로 인해 결국 포기했다"며 아쉬움을 털어놨다.
숭모회 측은 현재 서거 추모일인 오는 27일과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박 의사 추모식과 기념 세미나 등을 개최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와 관련, 동래구가 지난 해부터 추진 중인 박차정 의사 기념관 건립공사도 7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마련하지 못해 흐지부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박 의사의 유가족 대표인 경성대 교목 박의영 씨는 "고모인 박차정 의사는 조국 광복을 위해 자신의 행복보다는 거친 들꽃과 같은 삶을 선택한 여전사였다"며 "탄생 100주년이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 한 채 쓸쓸하게 지나가 무척 안타깝다"고 말했다.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입력시간: 2010-05-14 [10: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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