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삶에 대하여
李正林
우리의 삶은 날마다 새로운 일과의 만남이 아니라 익숙하고 친숙한 일상적인 것들과의 반복으로 이어진다. 일상적이라는 것은 너무도 낯익어서 특별하게 우리의 의식을 자극하지 않는다. 낯익은 것은 그저 평범하게만 보이니, 우리의 삶 또한 그런 평범의 연속일 뿐이다. 그러나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것이 행복임을 알게 되는 평범한 삶은 그 평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위험한 욕구와 모험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평범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시도, 그 다양한 선택 앞에서 우리는 수필을 택했다. 왜냐하면 수필은 그 평범한 일상에 새로운 의미의 옷을 입히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수필로 하여금 그 단조로운 일상은 평범을 벗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일년 열두 달 현관에 놓여 있던 딸의 신발에서 어느 날 갑자기 그 아이가 숙녀가 되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도, 또 그 신을 신고 자기의 세계를 찾아갈 미래를 상상해 보게 되는 것도 수필의 눈이 가르쳐 준 새로운 발견이다. 시어머니의 처진 어깨에서 젊은 날 짊어져야 했던 가장으로서의 짐이 얼마나 무거웠던가를 연민 어린 고마움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도 수필의 마음이 일깨워 준 아름다운 성숙이다. 얼룩동사리라는 부성애(父性愛)가 강한 민물고기 하나를 보면서도 삶의 전장(戰場)에서 사력을 다하는 오늘의 힘겨운 아버지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수필이 가르쳐 준 천착(穿鑿)의 자세다.
수필의 눈으로 우리네 일상을 바라보면, 조금도 신기할 게 없어 보이던 것들이 실은 더 없이 귀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김열규(金烈圭)는 "수필은 일상성에 대한 사랑이다."라고 말한다. 일상이 없으면 수필은 존재할 수 없다. 수필은 곧 생활이요 생활은 곧 수필이 될 때, 우리는 우리의 그 평범한 삶이 문예화되는 변신을 경이로움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너무도 평범하여 때로는 탈출을 꿈꾸기도 했던 일상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권태로운 삶을 일약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수필―그래서 김동석(金東錫)은 "수필은 생활과 예술의 샛길이다."라는 신선한 표현을 썼고, T. N. 와일더(미국의 소설가·극작가)는 "문학이란 평범한 일들의 관현악 편곡이다."라고 일찍이 정의를 내렸다. 그리고 윤오영(尹五榮)은 "수필에는 버려야 할 평범이 없다. 평범이 그대로 수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필은 그런 평범한 일상사들을 소재로 하여 글을 쓰는 체험의 문학이다. 소설은 상상 속에서 그 체험을 창조해 내지만, 수필은 우리의 실제 생활이 곧 체험이다. 작자 자신이 직접 겪고 느낀 직접적인 체험이나 또는 다른 사람의 체험을 통하여 자신을 사유케 하는 간접적인 체험, 이런 체험들은 모두 수필의 소재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소재가 없어 글을 쓰지 못한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 소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소재를 잡는 눈이 무디어져 있는 것이다. 수필의 눈은 부단히 갈고 닦아야 빛이 난다. 수필의 눈은 곤충의 더듬이와도 같이 소재를 향해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관심의 더듬이, 문제의식의 거미줄, 그것이 얼마나 넓게 촘촘히 쳐져 있는가에 따라 작품의 세계는 다양하게 펼쳐지게 된다.
그러나 체험이라 해서 모두 글감(소재)이 되는 것은 아니다. 광부들이 사금(砂金)을 골라내듯 체험에서 글감을 찾아내야 한다. 단순한 잡담에 그치는 체험은 수필의 소재가 될 수 없다. 잡담거리에 지나지 않는 체험을 소재로 하여 글을 쓰면 신변잡기에 그치고 만다. 신변잡기는 수필이 아니다. 그 체험에서 작게라도 인생에 대한 철학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재, 즉 독자에게 사유(思惟)의 여운을 던져 줄 수 있는 주제를 유도해 낼 수 있는 체험만이 수필의 소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피천득(皮千得)은 "문학은 금싸라기를 고르듯이 선택된 생활 경험의 표현이다."라고 말했다. "선택된 생활 경험", 그것은 숱한 경험 속에서 선택된 하나의 소재가 될 것이며,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작가 의식의 우열이 판가름되기도 한다.
한 편의 소설을 읽고 느끼는 감동과 한 편의 수필을 읽고 느끼는 감동은 같지 않다. 그 다름의 원인은 소설은 허구요 수필은 사실이라는 데 있다. 소설은 허구를 통하여 진실을 말하지만 수필은 우리의 실제 체험 속에서 진실을 캐낸다. 생생한 삶 속에서 건져 올린 소재에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부여하는 수필이 친근감을 자아낼 수밖에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볼테르(프랑스의 소설가·극작가·사상가)는 "문학은 육성(肉聲)의 그림이다. 육성에 닮아 있을수록 그 문학은 우수한 것이다." 라고 말했다. 소설은 소설가 자신이 만들어 낸 작중인물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삼인칭 문학인데 반해, 수필은 수필가 자신이 자신의 목소리로 독자와 대화하는 일인칭 문학이다. 그러므로 수필 속에는 수필가 자신의 진솔한 삶과 철학이 용해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보다 더한 "육성의 그림"이 또 어디 있으랴.
수필을 일러 "관조(觀照)의 문학"이라 한다. '관조'는 한 걸음 물러서서 넓게 생각하는 자세이다. 자기 자신까지도 객관적으로 응시하게 만드는 수필이기에 수필은 생래적으로 참여문학이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하여 방관자의 문학은 더더욱 아니다. 한 걸음 물러나 사물을 생각한다는 것은 삶을 진지하게 사유(思惟)코자 하는 철학적인 자세다. 수필을 쓰려면 나무 한 그루에 집착하지 말고 숲을 바라보아야 한다. 나무 한 그루에서 벗어나 숲을 바라보게 될 때, 그제야말로 인생을 논할 수 있는 정신적인 토양이 마련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수필이 노년의 문학은 아니다. 수필이 요구하는 것, 즉 원숙(圓熟)한 사고와 안으로 다져진 품위는 사람으로 하여금 진지한 자세를 갖도록 할 뿐이다.
사람의 인성(人性)을 순화시켜 주는 것은 비단 종교뿐만이 아니다. 나는 수필 문장을 다루면서 종교성을 느낄 때가 많다. 소설의 문장은 소설가가 만들어 낸 인물의 인격을 반영하는 데 반해, 수필의 문장은 수필가 자신의 인격을 반영하게 됨으로 다듬고 또 다듬어야 하기 때문이다. 언어 구사에 소설만큼 자유롭지 못한 수필은 자연 품위 있는 문장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므로 저속한 낱말을 가려내고, 과도한 감정의 표현을 여과시켜야 한다. 또한 겉멋에 치우친 미문과 자랑으로 빠지는 속기(俗氣)를 걷어 내다보면 문장의 수련과 인격의 수련이 하나로 닿아 있음을 알게 된다. 수필만큼 글과 사람이 하나이기를 요구하는 문학 장르도 없을 것이다.
수필은 관조를 통하여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터득하게 하는 매우 철학적인 문학이다. 한 발 물러서서 크게 깊이 볼 수 있는 눈을 길러 주고, 평범한 일상에서 값진 의미를 발견케 하는 마음을 심어 준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덕(德)을 키워 주지는 않지만 덕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을 심어 준다."는 L. A. 세네카(로마의 철학자·극작가)의 말은 매우 설득력을 지닌다. 윤오영은 이렇게 말했다. "수필가가 된 뒤에 비로소 수필이 써지는 것이 아니고, 수필을 연마하고 연마해서 수필가를 형성해 나가며, 각고(刻苦)의 공을 쌓고 쌓아서 수필이 써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수필과 인생은 생활의 연마 속에서 함께 형성되어 가는 것이다."
수필의 정의를 한마디로 내린다면, 수필은 '삶을 생각하는 문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며 그 소중함을 찾아내게 하고, 우리의 삶을 생각하며 진지한 자세를 갖도록 이끌어 주는 수필―그 수필은 결코 기술적으로 터득할 수 있는 장인(匠人)의 글이 아니다. 삶이 곧 수필이 될 때, 비로소 수필과 자신은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2001. 12)
● 필자 소개 : 이정림(李正林)
『수필문예』로 등단(1974)
한국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1976)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강사(2002∼2003)
계간『에세이 21』 발행인 겸 편집인
한겨레문화센터 수필 강좌 출강
마포평생학습관 수필 강좌 출강
수필집 『당신은 타인이어라』(1986, 범우사)
『산길이 보이는 창』(1991, 범우사)
『숨어 있는 나무』(2000, 범우사)
수필선집 『하얀 진달래』(1999, 선우미디어)
4인수필집 『시간의 대장장이』(2006, 선우미디어)
평론집 『한국수필평론』(1998, 범우사)
『한국수필평론』개정판(2002, 범우사)
이론서 『인생의 재발견-수필 쓰기』(2007. 랜덤하우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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