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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 sati(사띠, 念)에 대한 해석에서 논란이 있네요.
‘낑수까 나무 비유 경(S35:245)’입니다.
"dovāriko’ti kho, bhikkhu, satiyā etaṃ adhivacanaṃ. -
비구여, ●문지기란 sati를 두고 한 말이다."
라는 이 경문이
부처님께서 sati를 직접 정의하신 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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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 sati(마음챙김, 새김)에 대한 바른 해석. "볼 때는 단지 바라보기만 하라." <바히야경>의 이 유명한 말씀은 눈眼과 의意의 두개의 감관의 단속을 잘해서 찰나 반복하는 법(집법즉멸법)들로서 잘 기억하라는 말씀이지요.
안이비설신의로부터 연유해서 생겨난 감관 혹은 감각장소(門)들의 중요성을 잘 단속하라는 말씀이지요!
‘‘Yāni sotāni lokasmiṃ, [ajitāti bhagavā]
●Sati tesaṃ nivāraṇaṃ;
Sotānaṃ saṃvaraṃ brūmi, paññāyete pidhīyare’’ti.
(아지따여,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세계에서의 흐름들, ●사띠가 그것을 제어한다."
즉, 세상사에 빠져들지않고 세계를 일어나고 사라지는 법으로 지켜보는 성문의 문지기 역할이 사띠입니다.
육신의 감각기능(根, indriya)에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 , 몸으로 접촉하고, 의意로 법法을 헤아리고 등등
법을 따라가며 계속 기억해서 문지기 sati를 확립(念處)하는 등,
육근의 감각기능根에 의해서 마음을 통제하듯이
문지기 역할의 sati에 의해서 법으로 기억하는 것이 사띠의 기능(sati-indriya)입니다.
citta 마음을 통제하는 여섯 안이비설신의들의 근(六根, indriya)처럼 sati도 통제하는 기능을 가지는데 그 이름이 'sati indriya' 입니다.
즉, 여섯 감관(안이비설신의)과 그 감관으로 citta를 통제하는 기능의 六根(indriya)을 구분해서 알듯이,
설마 안이비설신의가 곧 citta이라고 아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 안이비설신의 감관으로부터 집법즉멸법의 dhamna법을 인식해서 citta를 통제합니다. 찰나 찰나 법들이 없으면 그것은 단지 상념이나 망상입니다.
육근과 육근의 기능(indriya)처럼 sati와 sati의 기능indriya도 이처럼 구별해야 합니다.
“satiṁ upaṭṭhapetvā… pajahati dukkhaṁ”
“문지기 사띠를 확립한 이는 고통을 버리느니라.”
(Majjhima Nikāya 10, Satipaṭṭhāna Sutta)
사띠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집법즉멸법이라는 법을 관찰하게 되는데, 이 수관을 통해서 오개五蓋의 오염원들을 점차 점차 벗어나 드디어 오염원들에서 마음(心.意.識)이 청정해지게 됩니다.
사마타 삼매의 경험이 부족하면 사띠sati의 대상이라는 법의 작용을 놓치게 됩니다.
그러면 법에 대한 문지기 억할의 sati는 무엇을 대상으로 기억sara할까요. 그것은 집법즉멸법("일어나는 법은 그 무엇이든 반드시 그친다."<초전법륜경 S56:11> )이라는 문지기의 특징을 기억sara합니다. 이게 사띠의 기능 (satindriya)입니다.
설마 사전(디션너리)에서의 단어 뜻[세속]이나 혹은 삿된 개념[망상]으로서 단순히 '기억'한다는 말은 설마 아니겠지요...
부처님 가르침의 사성제는 연기와 연기된 법에 대한 수행(사마타와 위빠사나)이지 않습니까?
사띠의 기능에 대한 경문입니다.
(S48:9, 분석경1)
‘‘ Katamañca, bhikkhave, satindriyaṃ? Idha, bhikkhave, ariyasāvako satimā hoti paramena satinepakkena samannāgato cirakatampi cirabhāsitampi saritā anussaritā – idaṃ vuccati, bhikkhave, satindriyaṃ.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sati의 기능(satindriya)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sati의 문지기를 가진(satimā) 성스러운 제자는, 점차적으로(anu-) 최상의(paramena) sati와 최상의 안목(nepakka)을 겸비하게(saṃ-) 되고, 그래서 오래전에 행해졌던 것도(cirakatampi) 기억하고(saritā) 따라가며 기억하고(anussaritā), 오래전에 말해졌던 것도(cirabhāsitampi) 기억하고 따라가며 기억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문지기 sati의 기능으로 불리어진다."
이처럼 문지기sati를 가진 자(satimā)이기에,
문지기sati를 가졌기(satimā) 때문에, 오래전에 행해졌던 것도, 오래전에 말해졌던 것도 상세히 기억sara한다는 말이죠.
감관 기능의 몸과 깨끗한 마음으로 법을 헤아리는 마노意로부터 닦아야 할 관련 경문들입니다.
[ imesaṃ kho, brāhmaṇa, pañcannaṃ indriyānaṃ nānāvisayānaṃ nānāgocarānaṃ
na aññamaññassa gocaravisayaṃ paccanubhontānaṃ mano paṭisaraṇaṃ,
manova nesaṃ gocaravisayaṃ paccanubhotī”ti.
바라문이여, 이처럼 다섯 가지 감각기능은 각각 다른 대상과 각각 다른 영역을 가져서
서로 다른 대상과 영역을 경험하지 않는다.
이들 다섯 가지 ★감각기능은 마노[意]를 의지한다. 마노[意]가 그들의 대상과 영역을 경험한다.
“manassa pana, bho gotama, kiṃ paṭisaraṇan”ti?
“manassa kho, brāhmaṇa, sati paṭisaraṇan”ti.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마노는 무엇을 의지합니까?”
“바라문이여, ★마노[意]는 문지기sati(마음챙김, 새김)을 의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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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vāriko’ti kho, bhikkhu, satiyā etaṃ adhivacanaṃ. -‘낑수까 나무 비유 경(S35:245)’-
비구여, ●'문지기'이란 sati를 두고 한 말이다.
(이것이 ★sati에 관한, 부처님께서 직접 정의를 내리신 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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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smiṃ samaye, bhikkhave, bhikkhu tathā vūpakaṭṭho viharanto
taṃ dhammaṃ anussarati anuvitakketi,
satisambojjhaṅgo tasmiṃ samaye bhikkhuno āraddho hoti;
satisambojjhaṅgaṃ tasmiṃ samaye bhikkhu bhāveti;
satisambojjhaṅgo tasmiṃ samaye bhikkhuno bhāvanāpāripūriṃ gacchati.
비구여, 비구가 이처럼 멀리 떠남을 갖추어 머물면서 그 법을 계속 기억하고 계속 ★'일으켜 생각하면 비구에게는 염각지'가 자리 잡기 시작한다.
그래서 비구는 염각지를 수행한다. 그 염각지는 이러한 닦음에서 성취된다.
(*sati의 기능은 법을 따라가며 계속 기억하는 것(dhammam anussarati)이다.
S48:9에서 §6 satindriya(사띠의 기능)을 '기억'에 정의한다.)
so tathā sato viharanto taṃ dhammaṃ paññāya pavicinati pavicarati parivīmaṃsamāpajjati
그는 이처럼 문지기 하는 자[사토]로 머무는 것이 '법'을 통찰지로 조사하고 고찰하고 철저하게 검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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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도論에서는 제★3禪에 나타나는 [sato sampajāno]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85. Idāni sato ca sampajānoti
ettha saratīti sato. Sampajānātīti sampajāno.
Puggalena sati ca sampajaññañca vuttaṃ.
Tattha ★saraṇalakkhaṇā sati, asammussanarasā, ārakkhapaccupaṭṭhānā.
Asammohalakkhaṇaṃ sampajaññaṃ, tīraṇarasaṃ, pavicayapaccupaṭṭhānaṃ.
175. 문지기하는 자[사토]이고 알아차리는 자이며 :
('★집법즉멸법<일어나는 법은 반드시 그친다>'이라는 법을) 기억하기 때문에 문지기하는 자[사토]이고, 분명히 알아차리(체험하)기 때문에 알아차리는 자[삼프쟈노]이다.
여기서 문지기와 알아차림은 사람에 속하는 것으로 설해졌다.
여기서 문지기(sati)는 ★기억하는 특징을 가진다. (문지기는) 잊어버리지 않는 역할을 한다. 보호함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알아차림은 미혹하지 않는 특징을 가진다. 조사하는 역할을 한다. 탐구함으로 나타난다.
ㅡㅡ밀린다팡하ㅡㅡ
문지기 사띠의 특징에 대한 질문 (Satilakkhaṇapañha, Mil 3.1.13)
Satilakkhaṇapañha (Mil 3.1.13)
rājā āha “bhante nāgasena, kiṃlakkhaṇā satī”ti? “apilāpanalakkhaṇā, mahārāja, sati, upaggaṇhanalakkhaṇā cā”ti. “kathaṃ, bhante, apilāpanalakkhaṇā satī”ti? “sati, mahārāja, uppajjamānā kusalākusalasāvajjānavajjahīnappaṇītakaṇhasukkasappaṭibhāgadhamme apilāpeti ‘ime cattāro satipaṭṭhānā, ime cattāro sammappadhānā, ime cattāro iddhipādā, imāni pañcindriyāni, imāni pañca balāni, ime satta bojjhaṅgā, ayaṃ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ayaṃ samatho, ayaṃ vipassanā, ayaṃ vijjā, ayaṃ vimuttī’ti.
tato yogāvacaro sevitabbe dhamme sevati, asevitabbe dhamme na sevati. bhajitabbe dhamme bhajati abhajittabbe dhamme na bhajati. evaṃ kho, mahārāja, apilāpanalakkhaṇā satī”ti.
“opammaṃ karohī”ti. “yathā, mahārāja, rañño cakkavattissa bhaṇḍāgāriko rājānaṃ cakkavattiṃ sāyaṃ pātaṃ yasaṃ sarāpeti ‘ettakā, deva, te hatthī, ettakā assā, ettakā rathā, ettakā pattī, ettakaṃ hiraññaṃ, ettakaṃ suvaṇṇaṃ, ettakaṃ sāpateyyaṃ, taṃ devo saratū’ti rañño sāpateyyaṃ apilāpeti. evameva kho, mahārāja, sati uppajjamānā kusalākusalasāvajjānavajjahīnappaṇītakaṇhasukkasappaṭibhāgadhamme apilāpeti ‘ime cattāro satipaṭṭhānā, ime cattāro sammappadhānā, ime cattāro iddhipādā, imāni pañcindriyāni, imāni pañca balāni, ime satta bojjhaṅgā, ayaṃ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ayaṃ samatho, ayaṃ vipassanā, ayaṃ vijjā, ayaṃ vimuttī’ti. tato yogāvacaro sevitabbe dhamme sevati, asevitabbe dhamme na sevati. bhajitabbe dhamme bhajati, abhajitabbe dhamme na bhajati. evaṃ kho, mahārāja, apilāpanalakkhaṇā satī”ti.
“kathaṃ, bhante, upaggaṇhanalakkhaṇā satī”ti? “sati, mahārāja, uppajjamānā hitāhitānaṃ dhammānaṃ gatiyo samanveti ‘ime dhammā hitā, ime dhammā ahitā. ime dhammā upakārā, ime dhammā anupakārā’ti. tato yogāvacaro ahite dhamme apanudeti, hite dhamme upaggaṇhāti. anupakāre dhamme apanudeti, upakāre dhamme upaggaṇhāti. evaṃ kho, mahārāja, upaggaṇhanalakkhaṇā satī”ti.
“opammaṃ karohī”ti. “yathā, mahārāja, rañño cakkavattissa pariṇāyakaratanaṃ rañño hitāhite jānāti ‘ime rañño hitā, ime ahitā. ime upakārā, ime anupakārā’ti. tato ahite apanudeti, hite upaggaṇhāti. anupakāre apanudeti, upakāre upaggaṇhāti. evameva kho, mahārāja, sati uppajjamānā hitāhitānaṃ dhammānaṃ gatiyo samanveti ‘ime dhammā hitā, ime dhammā ahitā. ime dhammā upakārā, ime dhammā anupakārā’ti. tato yogāvacaro ahite dhamme apanudeti, hite dhamme upaggaṇhā’ti. anupakāre dhamme apanudeti, upakāre damme upaggaṇhāti. evaṃ kho, mahārāja, upaggaṇhanalakkhaṇā sati. bhāsitampetaṃ, mahārāja, bhagavatā — ‘satiñca khvāhaṃ, bhikkhave, sabbatthikaṃ vadāmī’”ti.
“kallosi, bhante nāgasenā”ti.
[밀린다 왕] “존자 나가세나여, 문지기 사띠는 무엇을 특징으로 합니까?”
[나가세나 존자] “대왕이여, 문지기 사띠는 계속 반복함*[apilāpanalakkhaṇā]을 특징으로 하고 명상의 유지함[upaggaṇhanalakkhaṇā]**을 특징으로 합니다.”
[밀린다 왕] “존자여, 문지기 사띠는 어떻게 계속 반복함[apilāpanalakkhaṇā]을 특징으로 합니까?”
[나가세나 존자] “대왕이여, 문지기 사띠는 생겨날 때, 착하거나 악한 것, 허물과 허물없음, 어두운 것과 밝은 것, 대조적인 것들에 관하여 ‘이것들이 네 가지 문지기 사띠의 토대이다. 이것들이 네 가지 올바른 노력?이다. 이것들이 네 가지 신통의 기초이다. 이것들이 다섯 가지 능력이다. 이것들이 다섯 가지 힘이다. 이것들이 일곱 가지 깨달음의 고리이다. 이것들이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이다. 이것이 멈춤이다. 이것이 통찰이다.§ 이것이 명지이다.§§ 이것이 해탈이다.’라고 문지기합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섬겨야 할 원리를 섬기고 섬기지 말아야 할 원리를 섬기지 않고, 돌보아야 할 원리를 돌보고 돌보지 말아야 할 원리를 돌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대왕이여, 문지기 사띠는 문지기를 특징으로 합니다.”
[밀린다 왕]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나가세나 존자] “대왕이여, 전륜왕의 재정관이 전륜왕에게 아침저녁으로 ‘대왕이여, 폐하께는 코끼리가 이 정도이고, 말이 이 정도이고, 전차가 이 정도이고, 보병이 이 정도이고, 황금이 이 정도이고, 금화가 이 정도입니다. 재보는 이 정도입니다. 폐하께서는 기억하십시오.’라고 영광을 상기시키며, 왕의 재산에 관하여 기억합니다. 대왕이여, 새김이 생겨날 때, 착하거나 악한 것, 허물과 허물없음, 어두운 것과 밝은 것, 대조적인 것들에 관하여 ‘이것들이 네 가지 새김의 토대이다. 이것들이 네 가지 올바른 노력이다. 이것들이 네 가지 신통의 기초이다. 이것들이 다섯 가지 능력이다. 이것들이 다섯 가지 힘이다. 이것들이 일곱 가지 깨달음의 고리이다. 이것들이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이다. 이것이 멈춤이다. 이것이 통찰이다. 이것이 명지이다. 이것이 해탈이다.’라고 문지기합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섬겨야 할 원리를 섬기고 섬기지 말아야 할 원리를 섬기지 않고, 돌보아야 할 원리를 돌보고 돌보지 말아야 할 원리를 돌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사띠는 계속 반복함을 특징으로 합니다.”
[밀린다 왕] “존자여, 문지기 사띠는 어떻게 명상의 유지함을 특징으로 합니까?”
[나가세나 존자] “대왕이여, 문지기 사띠가 생겨날 때, 유익하고 유익하지 않은 상태의 성질에 대하여 ‘이것들은 유익하다. 이것들은 무익하다. 이것들은 도움이 된다. 이것들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조사합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유익하지 않은 것들을 제거하고, 유익한 것들을 유지합니다.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제거하고 도움이 되는 것들을 유지합니다. 이와 같이 문지기 사띠는 명상의 유지함을 특징으로 합니다.”
[밀린다 왕] “비유를 들어 주십시오.”
[나가세나 존자] “대왕이여, 전륜왕의 ‘장군의 보물’이 왕을 위한 유익과 불익을 알고 ‘왕에게 이러한 것들은 유익하고 이러한 것들은 유익하지 않고, 이러한 것들은 도움이 되고 이러한 것들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압니다. 그래서 유익하지 않은 것을 제거하고 유익한 것을 유지하고,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제거하고, 도움이 되는 것을 유지합니다. 이와 같이 대왕이여, 문지기 사띠가 생겨나면, ‘이러한 것들이 유익하고 이러한 것들이 유익하지 않고, 이러한 것들이 도움이 되고 이러한 것들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유익한 것과 유익하지 않은 상태의 성질을 살펴봅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유익하지 않은 것들을 제거하고, 유익한 것들을 유지합니다.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제거하고 도움이 되는 것들을 유지합니다. 이와 같이 사띠는 유지함을 특징으로 합니다.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수행승들이여, 사띠는 어떤 경우에도 유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밀린다 왕] “존자 나가세나여, 현명하십니다.
* apilāpana: 떠도는 것(浮游)의 여읨, 잊지 않음, 망각의 여읨, 열거(列擧) 등의 뜻을 지니지만, 어느 하나로 확정하기 힘들다. 어원적으로 보면 √plu일 경우, 부유(浮游)의 여읨, √lap일 경우는 열거(列擧)를 의미한다. MQ.I.50에서는 불안정의 여읨(not-wobbing), MKQ.I.92에서는 열거(列擧)라고 번역하고 있다.
** upaggaṇhana: MQ.I.50에서는 집지(taking up), MKQ.I.92에서는 주시(注視)라고 번역하고 있다.
§ ayaṁ samatho, ayaṁ vipassanā: 멈춤(Samatha)과 통찰(vipassanā)에 대하여 한역에는 지관(止觀)이라고 번역한다. 중요한 술어이므로 사마타(奢摩他)와 비바사나(毘婆舍那)라고 음역하기도 한다. 멈춤은 √saṁ (그치다, 고요해지다)에서 파생된 남성명사로서 의미는 ‘고요, 평정, 평온’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그러한 의미의 다른 불교술어들과 혼동될 여지가 있다. 통찰은 비(vi, 나눔) – 예를 들어 사과를 칼로 자르면, 그것을 나누고 꿰뚫는다. – 와 빳싸나(passanā, 봄)의 합성으로 이루어진 단어로 ‘분석적으로 꿰뚫어 봄’, 즉 ‘통찰’을 의미한다. AN.I.61의 경전상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명지로 이끄는 두 가지 원리가 있다. 두 가지란 어떤 것인가? 멈춤과 통찰이다. 수행승들이여, 멈춤이 닦여지면 어떤 목표가 성취되는가? 마음이 닦여진다. 마음이 닦여지면 어떤 목표가 성취되는가? 탐욕이 있다면, 그것이 끊어져 버린다. 수행승들이여, 통찰이 닦여지면 어떤 목표가 성취되는가? 지혜가 닦여진다. 지혜가 닦여지면 어떤 목표가 성취되는가? 무명이 있다면 그것이 끊어져 버린다. 수행승들이여, 탐욕에 물들면 마음은 해탈되지 못한다. 무명에 물들면, 지혜가 닦여지지 못한다. 수행승들이여, 탐욕이 사라지면, 마음에 의한 해탈이 이루어지고 무명이 사라지면 지혜에 의한 해탈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주석서의 정의를 살펴보자. Mrp.II.119에 따르면, 멈춤은 마음의 통일(cittekaggatā)을 의미하고 통찰은 ‘조건지어진 것들, 즉 형성된 것들을 파악하는 앎(saṅkhāra-pariggāhikañāṇa)을 의미한다. Smv.983에 따르면, ‘멈춤은 집중(三昧)이고, 통찰은 지혜이다.(samatho samādhi vipassanā paññā)’
§§ ayaṁ vijjā: 명지(明知)는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에 대한 앎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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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i를 단속하는 역할의 문지기에 설명하신 경전입니다.
여섯 동물 비유 경(S35:247) Chappāṇakopama-sutta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어떤 비구가 마을에 가거나 숲에 간다.
거기서 그는 '이 존자는 이렇게 행동하고 이렇게 처신한다.
그러니 그는 마을 사람들을 [찌르는] 가시와 같은 청정하지 못한 자이다.'라고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을 만난다.
그러면 자기 자신이 가시인 줄 안 뒤에 단속과 단속하지 못함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단속하지 못하는가?
여기 비구는 눈으로 형색을 보고
사랑스러운 형색에는 열중하고 사랑스럽지 않는 형색은 혐오한다.
그는 sati을 확립하지 못한 채 머물고 마음은 제한되어 있다.
그리고 그는 이미 일어난 삿되고 해로운 법들이 남김없이 소멸되어버리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귀로 소리를 듣고 … 코로 냄새를 맡고 … 혀로 맛을 보고 …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
마노로 법을 지각하고 사랑스러운 법에는 열중하고 사랑스럽지 않는 법은 혐오한다.
그는 sati을 확립하지 못한 채 머물고 마음은 제한되어 있다.
그리고 그는 이미 일어난 삿되고 해로운 법들이 남김없이 소멸되어버리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각각 다른 삶의 분야와 각각 다른 먹이의 영역을 가진
여섯 마리의 동물을 튼튼한 밧줄로 묶었다 하자.
그는 뱀을 잡아 튼튼한 밧줄로 묶고 악어를 잡아 튼튼한 밧줄로 묶고 새를 잡아 튼튼한 밧줄로 묶고
개를 잡아 튼튼한 밧줄로[199] 묶고 자칼을 잡아 튼튼한 밧줄로 묶고
원숭이를 잡아 튼튼한 밧줄로 묶은 뒤 이 밧줄들을 모두 가운데로 모아 매듭으로 묶어 두었다하자.
비구들이여, 그러면 각각 다른 삶의 분야와 각각 다른 먹이의 영역을 가진 여섯 마리의 동물들은
모두 자기 자신의 먹이의 영역과 삶의 분야로 가려고 할 것이다.
뱀은 개미집으로 들어가려 할 것이고 악어는 물로 들어가려 할 것이고,
새는 허공으로 날아가려 할 것이고 개는 마을로 들어가려 할 것이고
자칼은 공동묘지로 가려 할 것이고 원숭이는 숲으로 가려 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다가 이들 여섯 동물들이 지치고 피곤해지면
그들은 그 가운데서 더 힘이 센 놈 가까이로 갈 것이고 그를 따를 것이고 그에게 복종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어떤 비구든 몸에 대한 문지기 sati을 닦지 않고 많이 [공부]짓지 않으면
●눈은 그를 마음에 드는 형색들로 끌고 갈 것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형색들에 대해서는 혐오하게 할 것이다.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노는 그를 마음에 드는 법들로 끌고 갈 것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법들에 대해서는 혐오하게 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는 이와 같이 단속하지 못한다.”
6.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단속하는가?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는 ●눈으로 형색을 보고
사랑스러운 형색에도 홀리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는 형색도 혐오하지 않는다.
그는 문지기 sati을 확립하여 머물고 마음은 제한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그는 이미 일어난 삿되고 해로운 법들이 남김없이 소멸되어버리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귀로 소리를 듣고 … 코로 냄새를 맡고 … 혀로 맛을 보고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
마노로 법을 지각하고,
사랑스러운 법에도 홀리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는 법도 혐오하지 않는다.
그는 문지기 sati을 확립하여 머물고 마음은 제한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그는 이미 일어난 삿되고 해로운 법들이 남김없이 소멸되어버리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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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각각 다른 삶의 분야와 각각 다른 먹이의 영역을 가진
여섯 마리의 동물을 튼튼한 밧줄로 묶었다 하자.
그는 뱀을 잡아 튼튼한 밧줄로 묶고 악어를 잡아 튼튼한 밧줄로 묶고 새를 잡아 튼튼한 밧줄로 묶고
개를 잡아 튼튼한 밧줄로 묶고 자칼을 잡아 튼튼한 밧줄로 묶고
원숭이를 잡아 튼튼한 밧줄로 묶은 뒤 이 밧줄들을 모두 튼튼한 말뚝이나 기둥에 묶어 두었다 하자.
비구들이여, 그러면 각각 다른 삶의 분야와 각각 다른 먹이의 영역을 가진 여섯 마리의 동물들은
모두 자기 자신의 먹이의 영역과 삶의 분야로 가려고 할 것이다.
●뱀은 개미집으로 들어가려 할 것이고 악어는 물로 들어가려 할 것이고
새는 허공으로 날아가려 할 것이고 개는 마을로 들어가려 할 것이고
자칼은 공동묘지로 가려 할 것이고 원숭이는 숲으로 가려 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다가 이들 여섯 동물들이 지치고 피곤해지면
그들은 그 말뚝이나 기둥 가까이에 설 것이고 거기에 앉을 것이고 거기에 누울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어떤 비구든 몸에 대한 sati을 닦고 많이 [공부] 지으면
눈은 그를 마음에 드는 형색들로 끌고 가지 못할 것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형색들에 대해서 혐오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노는 그를 마음에 드는 법들로 끌고 가지 못할 것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법들에 대해서는 혐오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는 이와 같이 단속한다.”
“daḷhe khīle vā thambhe vā’ti kho, bhikkhave, kāyagatāya satiyā etaṃ adhivacanaṃ.
8. 비구들이여, 여기서 튼튼한 말뚝이나 기둥이라는 것은 몸에 대한 sati의 문지기를 두고 한 말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참으로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우리는 몸에 대한 sati의 문지기를 닦고 많이 [공부]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정진하리라.'라고 그대들은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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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53(A7:63)
18. “비구들이여, 마치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에
모르는 자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아는 자들이 들어오는 것은 허락하여
내부의 사람들을 잘 수호하고 외부의 적들을 격퇴하기 위하여
현명하고 명석하고 슬기로운 수문장이 있듯이,
성스러운 제자는 문지기 sati을 한다.
그는 최상의 마음 챙김과 슬기로움을 구족하여
오래 전에 행하고 오래 전에 말한 것일지라도 모두 기억하고 챙긴다.
Satidovāriko, bhikkhave, ariyasāvako akusalaṃ pajahati, kusalaṃ bhāveti;
비구들이여, 문지기 sati의 수문장을 가진 성스러운 제자는
해로운 법[不善法]을 버리고 유익한 법[善法]을 개발하고,
비난받을 만한 일을 버린다. 비난받을 일이 없는 일을 개발하고, 자신을 청정하게 유지한다. 그는 이러한 여섯 번째 좋은 법을 구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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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ālandasuttaṃ (SN 47.12, 날란다의 경)
8. 세존이시여, 예를 들어 왕의 변방에 있는 도성이 견고한 진지를 구축하고
견고한 성벽과 성문을 갖추었으나 유일한 성문을 갖고 있다고 합시다.
tatrassa dovāriko paṇḍito byatto medhāvī
거기에 슬기롭고 유능하고 지혜로운 수문장이
모르는 자는 막고 아는 자만 들여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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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sati가 행하는 기능을 설명한 경문입니다.
Saranti tāya, sayaṃ vā sarati, saraṇamattameva vā esā ti sati.
Sā apilāpana lakkhaṇā, asammoharasā,
ārakkhapaccupaṭṭhānā, visayabhimukhabhāva paccupaṭṭhānā vā,
thirasaññāpadaṭṭhānā, kāyādi-satipaṭṭhāpadaṭṭhānā vā,
ārammaṇe daḷhapatiṭṭhitattā pana esikā viya cakkhudvārādirakkhaṇato dovāriko viya ca daṭṭhabbā.
"이것 때문에 기억(Saranti), 혹은 이것은 그 스스로 기억하고, 혹은 단지 기억하기 때문에 sati이라 한다.
[대상에] 깊이 들어가는 것(apilāpana)을 특징으로 한다. 잊지 않는 것(asammosa)을 역할로 한다. 보호하는 것(ārakkha)으로 나타난다.
혹은 대상과 직면함(visayabhimukhabhāva)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기억하는 것을 문지기하는 sati는 1.대상에 깊이 들어감 2. 잊지않음 3. 보호. 4. 대상에 직면함 등으로 나타남. sati는)
강한 인식(thirasaññā)이 가까운 원인이다. 혹은 몸에 대해서 문지기(상호의존관계)를 확립함[念處, satipaṭṭhā]이 가까운 원인이다.
이것은 기둥처럼 대상에 든든하게 서 있기 때문에(patiṭṭhitattā),
혹은 눈 등의 문을 지키기 때문에(rakkhaṇato) "문지기(dovāriko)"처럼 보아야 한다." [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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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sati이라는 dovāriko은 여섯 감각장소(āyatana, 處)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지키는 역할입니다.
M10 [念處경, satipaṭṭhāsutta]에서
"안으로 안이비설신의를 분명히 알고, 밖으로 ,색성향미촉법을 분명히 알고,두변을 조건으로 결박을 알고...." 에서의 감각장소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꿰뚫어 아는 즉, 눈眼과 마노意의 오문과 의문 전향에서 아는 것이라는 "아비담마"에서의 마음의 길인 심로心路 즉, 인식과정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