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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이사야(32)/주권
제목 :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인정하라!
성경 : 사 17:12~18:7
찬송 : 263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출처 : 20220803 낙양교회 수요예배
사 17:12 슬프다 많은 민족이 소동하였으되 바다 파도가 치는 소리 같이 그들이 소동하였고 열방이 충돌하였으되 큰 물이 몰려옴 같이 그들도 충돌하였도다
사 17:13 열방이 충돌하기를 많은 물이 몰려옴과 같이 하나 주께서 그들을 꾸짖으시리니 그들이 멀리 도망함이 산에서 겨가 바람 앞에 흩어짐 같겠고 폭풍 앞에 떠도는 티끌 같을 것이라
사 17:14 보라 저녁에 두려움을 당하고 아침이 오기 전에 그들이 없어졌나니 이는 우리를 노략한 자들의 몫이요 우리를 강탈한 자들의 보응이니라
사 18:1 슬프다 구스의 강 건너편 날개 치는 소리 나는 땅이여
사 18:2 갈대 배를 물에 띄우고 그 사자를 수로로 보내며 이르기를 민첩한 사절들아 너희는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로 가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로 가라 하는도다
사 18:3 세상의 모든 거민, 지상에 사는 너희여 산들 위에 기치를 세우거든 너희는 보고 나팔을 불거든 너희는 들을지니라
사 18: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가 나의 처소에서 조용히 감찰함이 쬐이는 일광 같고 가을 더위에 운무 같도다
사 18:5 추수하기 전에 꽃이 떨어지고 포도가 맺혀 익어갈 때에 내가 낫으로 그 연한 가지를 베며 퍼진 가지를 찍어 버려서
사 18:6 산의 독수리들과 땅의 들짐승들에게 던져 주리니 산의 독수리들이 그것으로 여름을 지내며 땅의 들짐승들이 다 그것으로 겨울을 지내리라 하셨음이라
사 18:7 그 때에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이 만군의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 시온 산에 이르리라
지난 시간에는 다메섹(아람)과 이스라엘 백성의 심판을 생각해보았습니다(17:1-11).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 백성을 위한 예언은 심판으로 끝나지 않고 심판 이후에 있을 구원과 회복의 약속으로 이어집니다. 오늘 본문 17:12~18:7절이 바로 그 구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슬프다’라는 탄식의 소리로 시작되는 두 개의 예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탄식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협하는 이방 민족들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이방 민족들을 진노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물론 이방 민족들이 하나님의 뜻을 의식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스스로의 교만과 야욕으로 쳐들어와 하나님의 백성을 노략하고 강탈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가 되면 언약 백성을 괴롭힌 대적들을 물리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두 번째 탄식의 대상은 이스라엘 백성이 의지하고자 하는 강한 나라들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 이방 민족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우상숭배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시대에 구스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동맹을 제안하며 원조를 약속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경계해야 할 유혹이기 때문에 선지자는 탄식합니다. 앗수르를 무너뜨리는 것은 구스를 중심으로 한 반 앗수르 동맹이 아니라, 적절한 때에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자 하나님(17:12~14)
이제 하나님은 이 강한 자들 사이에서 유다를 지켜주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사실은 유다도 지금 강해지려고 하고 있었고, 이스라엘이나 아람을 따라 가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를 지키는 것은 왕도 군인들도 앗수르 군대도 아니었고, 바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이셨습니다.
사 17:12 슬프다 많은 민족이 소동하였으되 바다 파도가 치는 소리 같이 그들이 소동하였고 열방이 충돌하였으되 큰 물이 몰려옴 같이 그들도 충돌하였도다
‘슬프다’는 단어 ‘호이’는 슬픔 혹은 분노를 표현하는 감탄사로, 탄식시에서는 ‘슬프다’, 저주시에서는 ‘화로다’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여기에서는 선지자가 이방 민족들이 쳐들어오는 상황에 탄식하는 표현입니다. 많은 민족이 소동하였는데 선지자는 그것을 뭘로 표현합니까? ‘바다 파도가 치는 소리 같이 그들이 소동하였고’, ‘큰 물이 몰려옴 같이’ 충돌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 근동 문화에서 혼돈과 파괴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자주 사용된 것입니다.
시 46:3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시 93:3 여호와여 큰 물이 소리를 높였고 큰 물이 그 소리를 높였으니 큰 물이 그 물결을 높이나이다
사 17:13 열방이 충돌하기를 많은 물이 몰려옴과 같이 하나 주께서 그들을 꾸짖으시리니 그들이 멀리 도망함이 산에서 겨가 바람 앞에 흩어짐 같겠고 폭풍 앞에 떠도는 티끌 같을 것이라
앗수르 대군은 단일 민족이 아니고 여러 민족을 합쳐 놓은 군대였습니다. 그러한 앗수르 군대는 거대한 물결이 되어 예루살렘을 향하여 큰 소리를 내면서 밀려 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주께서 그들을 꾸짖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약에서도 이런 장면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실 때 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이 사력을 다해 보았으나 바람과 파도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막 4: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마찬가지로 성난 파도 같은 앗수르 군대가 다메섹과 사마리아를 멸망시키고 예루살렘까지 진격해 왔을 때, 하나님께서 이 파도를 꾸짖으시니까 그들이 멀리 도망갔습니다. 그 모습을 선지자는 어떻게 표현합니까? ‘산에서 겨가 바람 앞에 흩어짐 같겠고 폭풍 앞에 떠도는 티끌 같을 것이라.’
왜 이렇게 될까요? 아직 하나님이 유다의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해 본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홍해를 육지를 건너듯 건넜습니다. 물이 그들을 침몰시키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앗수르 군대가 마치 바닷물이 넘치듯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밀려와도 결코 예루살렘을 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다 백성은 무엇을 두려워해야 할까요?
바닷물처럼 밀려오는 앗수르 군대입니까? 아니면 성전에 조용히 계시는 하나님이십니까?
사 17:14 보라 저녁에 두려움을 당하고 아침이 오기 전에 그들이 없어졌나니 이는 우리를 노략한 자들의 몫이요 우리를 강탈한 자들의 보응이니라
하나님은 이들을 물리치시는 데 어떤 어려움도 없고, 시간도 걸리지 않습니다. 단숨에 해 내십니다. ‘보라 저녁에 두려움을 당하고’ 밤이 시작될 때(하루의 시작될 때), 그들은 공포의 존재였지만, 아침이 오기 전에 그들이 없어져 버려 이제 더 이상 위협 요소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산헤립의 18만 5천의 군대를 하나님은 하룻밤에 전멸시켜 버리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음성 앞에 천지가 진동하고 거대한 혼란이 잠잠케 됩니다. 하나님 앞에 열방의 세력은 바람에 나는 겨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생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그 어떠한 파도도 잠잠케 하십니다. 우리는 종종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칠흑 같은 공포와 재난에 갇혀 고통스러워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아침 안개가 사라지게 하는 것처럼 사라지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구원자이십니다.
주권자 하나님(18:1~3)
사 18:1 슬프다 구스의 강 건너편 날개 치는 소리 나는 땅이여
사 18:2 갈대 배를 물에 띄우고 그 사자를 수로로 보내며 이르기를 민첩한 사절들아 너희는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로 가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로 가라 하는도다
사 18:3 세상의 모든 거민, 지상에 사는 너희여 산들 위에 기치를 세우거든 너희는 보고 나팔을 불거든 너희는 들을지니라
이 본문도 역시 “슬프다”(호이)로 시작합니다. 지난주일 오후에 말씀드렸던 ‘에티오피아’가 바로 구스입니다. 구스는 나일강 상류 쪽에 위치했으며 이스라엘에게는 남쪽 “땅 끝”을 상징하는 나라였습니다. 우리가 지도를 보면 이집트가 북쪽에 있고 구스가 남쪽에 있으니까 위에서 아래로 물이 흐른다고 생각하는데 이집트는 나일강 하류에 속합니다. 예를 들어 섬진강 상류는 우리 고향 임실 쪽입니다. 하류는 하동포구 쪽입니다. 이집트는 하동포구 쪽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므로 구스에 대한 이 예언은 메시지가 “땅 끝까지” 전달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구스의 피안키는 주전 721년에 이집트의 남쪽에 영향력을 행사하다가, 드디어 715년에 이집트를 정복해서 이집트의 25대 왕조를 시작하였으며 국제적인 세력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의 사절단은 국제무대에서 이집트의 경쟁자라 할 수 있는 앗수르를 견제하고 반 앗수르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팔레스타인에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요즘 미국과 중국이 패권경쟁을 벌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왕하 17:4 그가 애굽의 왕 소에게 사자들을 보내고 해마다 하던 대로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드리지 아니하매 앗수르 왕이 호세아가 배반함을 보고 그를 옥에 감금하여 두고
아마도 이 예언이 선포된 때에도 이집트의 사절단이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날개 치는 소리 나는 땅’
우리말 성경은 “에티오피아 강 너머 날벌레들이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땅에 재앙이 있을 것이다.”라고 번역했습니다.
‘날개 치는 소리 나는 땅’은 학자들 사이에 세 가지로 해석됩니다.
1)구스는 옛적부터 벌레가 많은 지역으로 알려졌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날개 치는 소리는 벌레들이 웅웅거리는 소리라는 것입니다.
2)날개보다는 ‘그림자’로 해석하여 이 땅은 그림자가 둘로 나타나는(적도 선상에 있는 땅에서는 이런 현상이 종종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역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3)구스의 상선들이 분주하게 강을 오르내리는 것을 마치 벌레들이 날아다니는 것으로 묘사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것이 전통적인 해석이며, 가장 설득력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본문이 에티오피아에 대한 긍정적인 묘사로 시작되는 정황에 가장 잘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구스의 상선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1절)과 “민첩한 사절들”,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들”,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들” 등은 인간이 드러낼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들은 갈대배를 타고 왕래합니다. ‘갈대’는 파피루스를 뜻하는 말입니다. 고대 사람들은 파피루스를 엮어 배를 만들어 먼 길을 다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누가 누구에게 사절단을 보냅니까? 2절 상 반절을 보면 에티오피아가 유다에게, 2절 하 반절을 보면 유다가 답례로 에티오피아에게 사절단을 보냅니다.
우리는 급하면 보이는 것에 급급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마음으로 세상의 힘을 구합니다. 앗수르의 거침없는 세력 앞에 구스(에티오피아)는 주변의 힘을 규합하려 정신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구스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사 18:3 세상의 모든 거민, 지상에 사는 너희여 산들 위에 기치를 세우거든 너희는 보고 나팔을 불거든 너희는 들을지니라
지금 보기에 앗수르는 막강한 제국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힘이 전부가 아닙니다. 거침없이 막강해 보이는 앗수르의 힘보다 더 큰 힘이 있습니다. 대제국 앗수르도 저녁에 두려움을 당하고 아침이 오기 전에 사라져 버립니다. 보이는 세상의 힘은 한 순간입니다.
선지자는 유다가 구스와 동맹할 이유가 없음을 밝힙니다. 이들이 비록 강하고 용맹한 민족이지만 앗수르는 구스의 힘으로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산 위에 기를 세우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팔을 불게 해 군대를 소집하실 것이고, 앗수르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앗수르를 멸하실 것입니다. 열국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주권아래 놓여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힘들고 어려울수록 먼저 하나님을 찾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마음에는 수많은 세상의 소리들이 들립니다. 여기에 길이 있다, 저기에 답이 있다고 합니다. 흔들립니다. 그러나 힘들고 어려울수록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귀를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구스 백성들에게 들으라고 하십니다. 상황이 위급할수록, 해답이 보이지 않고 갈등이 깊어질수록 더욱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당장 보이는 세상의 힘이 전부가 아닙니다.
영광 받으실 하나님(4~7절)
사 18: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가 나의 처소에서 조용히 감찰함이 쬐이는 일광 같고 가을 더위에 운무 같도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자로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하신 말씀을 세상에 전달합니다. 하나님은 마치 때를 기다리는 농부처럼 때를 따라 세상의 역사를 진행하십니다. ‘쬐이는 일광’과 ‘가을 더위에 운무’는 각각 여름과 가을을 대표합니다. 그렇게 계절이 지나는 동안 농부가 심은 나무들이 자라게 됩니다. 하나님은 지혜로운 농부처럼 시기를 보며 감찰하십니다.
사 18:5 추수하기 전에 꽃이 떨어지고 포도가 맺혀 익어갈 때에 내가 낫으로 그 연한 가지를 베며 퍼진 가지를 찍어 버려서
사 18:6 산의 독수리들과 땅의 들짐승들에게 던져 주리니 산의 독수리들이 그것으로 여름을 지내며 땅의 들짐승들이 다 그것으로 겨울을 지내리라 하셨음이라
꽃이 피고 진 후 열매가 무르익을 때 농부가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부실한 가지들을 쳐내듯이, 하나님은 심판하실 대상을 치실 것입니다. 쳐낸 가지들은 산의 독수리와 들짐승의 먹이로 던져 그들로 그것을 먹고 겨울을 지내게 하듯이, 멸망한 나라는 세상에서 짓밟힐 것입니다. 누가 이 심판의 대상입니까? 그것은 바로 앞 단락에 등장하는 ‘소동하는 큰 물’, 곧 하나님의 백성을 위협하며 쳐들어오는 열방을 말합니다.
사 18:7 그 때에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이 만군의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 시온 산에 이르리라
‘그 때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진 후를 말합니다. 2절에서 언급되었던 구스 곧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이 다시 등장합니다. 2절에서 그들의 세상 나라의 사절단들이 모여드는 중추 세력의 자리에 서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7절에서는 오히려 그 나라조차 만군의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고 시온 산으로 나아올 것을 예언합니다. 즉 하나님의 통치가 시온 산에서 이루어지고, 온 세상이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 나라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순복하며 시온 산으로 나아오는 모습에 대해서는 이사야 선지자가 이미 앞에서 여러 번 선포했습니다(2:2~4; 11:10; 16:1). 그렇기 때문에 유다는 구스 사자의 말을 듣고 그곳으로 사절단을 보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구스는 하나님의 역사를 목도하고 비로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진정한 주권자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물을 들고 시온을 찾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많은 군대가 일어나고 환난이 일어나도 하나님은 그들을 단번에 멈추게 하십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와 때를 이해하지 못할 뿐입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댓글 아멘 입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