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2부 장강의 영웅들 (228)
제9권 장강은 흐른다
제 30장 도망자 오자서(伍子胥) (4)
동고공(東杲公)이 소관을 통과할 방도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자
오자서(伍子胥)는 초조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여 또 호소했다.
"저는 원수를 갚아야 할 몸입니다. 일각이 1년처럼 여겨집니다.
그런데 며칠째 이러고만 있으니 마음이 어지러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선생의 높으신 뜻으로 이 몸에게 살길을 열어주십시오."
그제야 동고공(東杲公)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노부에게 한 가지 계책이 서 있긴 하나, 기다리는 사람이 아직 오질 않는구려.“
그 말에 오자서(伍子胥)는 버럭 의심이 일었다.
"기다리는 사람이라니요?“
"그런 사람이 있소. 그 사람이 와야만 능히 소관(昭關)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동고공은 그렇게만 말하고 모옥을 떠났다.
오자서(伍子胥)는 더욱 의심을 버릴 수가 없었다.
'혹시 기다리는 사람이 초나라 장수 원월(薳越)은 아닐까?‘
밤이 깊었으나 잠이 오질 않았다.
의심과 불안과 두려움이 자꾸 솟아났다.
그러고 보니 의심되는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차라리 동고공(東杲公)이라는 노인을 죽이고 도망칠까?'
하지만 그 후가 자신이 없었다.
그의 혼자 힘으로는 소관(昭關)을 통과할 성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 머물러 있자니 당장에라도 원월(薳越)이 군사를 거느리고 쳐들어올 것 같았다.
밤바람이 대나무숲에 몰아칠 때마다 오자서(伍子胥)는 깜짝깜짝 놀랐다.
이리 돌아눕고 저리 돌아누웠다.
이를 전전반측(輾轉反側)이라고 하던가.
오자서(伍子胥)는 침상에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을 미친 듯이 왔다갔다했다.
입술이 타고 눈이 벌겋게 충혈되었다.
그러는 사이 동창이 밝아왔다.
밤을 꼬박 지새운 것이었다.
문이 열리며 동고공(東杲公)이 들어왔다.
그는 오자서의 얼굴을 보는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웬일이오?“
오자서(伍子胥)는 무슨 일인지 몰라 되물었다.
"무엇을 말씀하시는지요?“
"어제 저녁까지도 멀쩡했는데, 그대의 수염과 머리카락이 온통 하얗게 변했으니 말이오.“
"그럴 리가?“
오자서(伍子胥)는 동고공의 말을 믿을 수 없어 얼른 동경(銅鏡)을 꺼내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아아, 이 무슨 조화인가.
과연 하룻밤 사이에 자신의 머리털과 수염이 온통 백발(白髮)로 변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랬다.
후세에 남겨진 기록 중에 이런 글이 있다.
- 오자서, 하룻밤 사이에 검은 머리카락과 수염이 서리를 맞은 듯 하얗게 변하다.
얼마나 노심초사(勞心焦思)했으면 그렇게 되었을까.
도망자 오자서의 갈등과 번민과 고통이 어느정도였는가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대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자서(伍子胥)는 구리거울을 방바닥에 내던지며 통곡했다.
"아아, 한 가지도 이루어놓은 것이 없는데 이처럼 머리가 세어버렸단 말인가. 하늘이여, 하늘이여!“
동고공(東杲公)이 그런 오자서를 일으키며 위로했다.
"호걸은 너무 슬퍼하지 마오. 머리가 센 것이 호걸에게는 오히려 좋은 징조인가 하오.“
오자서(伍子胥)가 눈물을 씻고 물었다.
"좋은 징조라니요?"
"호걸(豪傑)의 얼굴은 워낙 비범하고 빼어나서 누구나 금방 알아보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제 머리와 수염이 하얗게 세어버렸으니, 지인이라도 잘 알아보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마침 기다리고 기다리던 친구가 왔으니, 이제 호걸께서는 무사히 소관을 통과할 수가 있을 것이오.“
"선생의 친구분이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제야 동고공(東杲公)은 그 동안 자신이 추진해온 계책을 들려주었다.
"여기서 서남쪽으로 70여 리를 가면 용동산(龍洞山)이 있습니다.“
그 근처 작은 마을에 동고공(東杲公)이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는 황보눌(皇甫訥)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다.
그런데 그 황보눌은 키가 9척이고 눈썹과 눈썹 사이가 8촌이나 되었다.
한마디로 오자서의 용모와 매우 흡사했다.
동고공(東杲公)은 바로 이 점에 착안했다.
바로 황보눌(皇甫訥)을 오자서로 변장시키고, 오자서(伍子胥)는 황보눌의 시종으로 가장하여 소관을 통과하려는 것이었다.
"물론 황보눌(皇甫訥)은 소관 파수병에게 붙잡히겠지요. 옥신각신 소란이 일어날 겁니다.
그 틈을 이용해 호걸께서는 재빨리 소관을 통과해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공연히 우물쭈물거려서는 안 됩니다."
과연 기발한 책략이었다.
하지만 오자서(伍子胥)로서는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하나 있었다.
"그 계책이 좋기는 합니다만, 친구 되시는 분께서 제 대신 갖은 곤욕을 치를 것이 아닙니까? 소생은 그것이 염려됩니다.“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노부는 그를 구할 계책을 이미 마련해 그 친구에게 일러두었소.
그 친구도 원래 의기가 있는 사람이라 이번 일에 쾌히 승낙했소."
동고공(東杲公)은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황보눌(皇甫訥)을 데리고 흙방으로 들어왔다.
과연 그는 몸집이 장대하고 기상이 씩씩해서 오자서를 빼어닮았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오자서보다 나이가 약간 많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오자서(伍子胥)는 마음속으로 여간 기쁘지 않았다.
둘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오자서는 황보눌을 향해 읍(揖)했다.
"생면부지의 소생을 위해 이처럼 애써주시니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황보눌(皇甫訥)은 시원한 웃음을 터뜨리며 호탕하게 대답했다.
"하하하, 남의 간난(艱難)을 덜어주는 것을 '인(仁)'이라 하고, 남을 곤란에서 구해주는 것을 '용(勇)'이라 부른다고 들었습니다.
그대는 초나라에서도 소문난 영웅이요, 충신 가문의 후예입니다.
그런 호걸을 돕는 일인데 무엇을 아끼고 두려워하겠습니까."
두 사람은 이내 막역한 사이가 되어 흉허물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 사이 동고공(東杲公)은 이상한 탕약을 끓여와 오자서의 얼굴에 발라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자서의 깨끗한 얼굴빛이 까맣게 변했다.
점심때가 되었다.
오자서(伍子胥)는 자신의 옷을 벗어 황보눌에게 입히고, 자신은 다 떨어진 옷을 입어 종자로 분장했다.
공자 승(勝)은 촌 아이처럼 가장했다.
누가 보아도 주인과 머슴의 관계가 분명했다.
이윽고 떠날 시간이 되었다.
오자서(伍子胥)는 공자 승(勝)과 함께 동고공에게 정중히 절을 올렸다.
"이 몸이 죽지 않고 성공하면 반드시 이 은혜를 갚겠습니다.“
"노부는 호걸의 억울한 원한을 알기 때문에 돕는 것뿐이오. 어찌 보답을 바라고 이 일을 하겠소?"
오자서(伍子胥)와 공자 승(勝)은 황보눌을 따라 그곳을 떠났다.
하루를 꼬박 걸어 밤이 되어서야 소관에 당도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첫댓글 이제 곧 다가올 시월에도
류재훈 선생님의 글은 계속될 것입니다. ^^
저는
이곳 저곳 다니느라
맨날 결석을 합니다.
죄송합니다.
폰으로는 <좋은 글>과 <건강을 위하여> 밖에 올릴 줄을 모릅니다. ㅋㅋㅋ
선생님, 날마다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