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 7,2-4.9-14; 1요한 3,1-3; 마태 5,1-12ㄴ
+ 찬미 예수님
오늘은 모든 성인 대축일입니다. 특히 전례력에 축일이 별도로 지정되지 않은 성인들을 더 많이 기억하고 기리는 날입니다. 그런 성인이 몇 분 정도 될까요? 1독서는 인장을 받은 이가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말합니다.
십사만 사천은 12 × 12 × 1,000인데요, 열둘은 열두 지파가 상징하듯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 전체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하느님 백성의 시작의 상징으로 열두 제자를 뽑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열둘 곱하기 열둘은 하느님 백성의 충만함을 나타냅니다. 한편 1,000은 완전한 수인 10의 세 제곱으로, 많은 수를 의미합니다. 또한 이스라엘 군대에서 한 지휘자 아래에 있을 수 있는 가장 큰 단위의 수(민수 31,14. 48. 52. 54)가 1,000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십사만 사천은 사이비 종교들이 말하듯 구원받을 숫자가 제한되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반대로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의 보증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작년에 대전교구 천주교 신자 수가 34만 명이었는데, 예수님께서 인류 역사를 통틀어 14만 4천 명밖에 구원하지 못하셨다면, 예수님의 구원 사업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이겠지요?
1독서는 이어서 아무도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는데 희고 긴 겉옷을 입었다고 말합니다. 원로 가운데 하나가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라고 말합니다. 피로 빨았는데 어떻게 희게 될까요?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특정한 희생의 피는 사람과 물건들을 정화하는 제의적 기능을 수행(레위 8,15; 14,14. 52)하는데요, 이 정화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히브 9,11-14)로 완성됩니다. 이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으며 그분의 수난에 참여함으로써 자기들의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습니다. 흰색은 승리와 부활을 상징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상 교회와 성인들께서 계신 천상 교회의 연대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교황님께서는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에서 ‘옆집의 성인들’에 대해서도 말씀하시는데요,
“세계 역사의 결정적 사건들은 본래, 역사책에도 언급된 적이 없는 영혼들의 영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시며, 사랑으로 자녀를 키우는 부모, 가족을 부양하고자 일하는 사람들, 병자들, 미소 짓는 노수녀님들의 거룩함을 말씀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도록 독려하고 있는 증인들로 우리 어머니, 할머니, 또는 친지들이 있을 수 있다고 하시며 말씀하십니다. “그분들의 삶이 늘 완전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불완전함과 넘어짐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갔고,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린 분들입니다.”
최양업 신부님조차 시성되기가 이처럼 까다로운 걸 보면, 교회에서 ‘시성’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교회가 미처 시성하지 못한 성인들이 참으로 많으시리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그러한 성인들 덕에 하느님을 믿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자매님이 제게 이런 질문을 해 온 적이 있습니다. “제 딸이 유아세례를 받게 되었는데요, 세례명을 무엇으로 해야 하나 고민입니다. 딸의 삶이 주보 성인의 삶을 따라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순교자 같은 분들 말고… 한평생 고생이나 큰 어려움 없이 좀 편안하게 살다 가신 그런 성인 안 계실까요?” 이 질문을 받고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습니다. 어떤 성인이 그런 분일까요?
교황님의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에 대해서 어떤 분은 “제목만 들어도 너무 가슴이 뛰고 신이 난다”고 하셨습니다. 너무나 신나 하셔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앞에 어떤 말씀이 있는지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바로 오늘의 복음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우리 마음 한켠에 십자가 없는 부활을, 고통 없는 편안함을 추구하고 싶은 마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길은 없습니다. 오히려 놀라운 것은, “나 때문에 모욕과 박해를 당하게 해서 미안하게 됐구나.”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당당함입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기보다는, 슬퍼하고 통탄할 일들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슬퍼하는 사람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의로움 때문에 박해받는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황님의 권고 마지막 항을 인용해 드리겠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거룩한 이가 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부어 주시도록 기도하고, 우리도 서로 격려하며 이를 위해 노력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