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8장 끝맺음이 중요하다
1. 막바지에 전쟁에 참여한 에브라임 지파가 왜 처음부터 자기들을 부르지 않았냐고 불만을 터뜨렸다(1).
므낫세 지파인 기드온은 자신의 겸손으로 이 불만을 잠재웠다. “내가 이제 행한 일이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2). 겸손보다 강한 힘은 없다.
2. 기드온과 300 용사는 패주하는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계속 추격한다.
피곤하고 지쳐서 숙곳에 이르러 먹을 것을 구하나, 숙곳 방백들은 기드온과 300 용사가 무슨 힘이 있어서 세바와 살문나를 잡겠는가 하는 식으로 그들을 박대하였다. 브누엘에서도 같은 박대를 받았다. 300명은 하나님의 눈 앞에는 최고의 숫자였지만, 사람의 눈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사람을 언제나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패주하는 왕들일지라도 그들은 일만 오천명의 군대였으니(10) 기드온과 300명의 용사가 당할 수 없다고 보았던 숙곳이나 브누엘 사람들의 판단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것이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이 왜 신앙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없었지를 잘 보여준다.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어야 했는데, 신앙의 결핍은 그들을 이기적 동기로 행하게 만들었고 이스라엘의 분열을 초래했다. 이들의 생각과 달리 기드온과 300 용사는 패주하는 미디안의 두 왕과 군대를 쳐서 파하고 두 왕을 사로잡는데 성공하였다. 믿음의 눈을 열어 보지 못하는 자들은 자기 판단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다. 기드온은 두 왕을 그들이 살아 생전에 했던 잔인한 방식대로 처형하였다.
3. 기드온의 행적은 너무나 놀라왔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를 왕으로 삼고 싶어 했다(22).
하지만 기드온은 지혜롭게 이 일을 피하였다.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23).” 그러나 그의 생애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치지 못하게 한 두 가지 요소가 있었다. 기드온은 전리품 중에서 귀고리를 달라고 청했다. 그는 이 금을 모아서 에봇을 만들어 자기 성읍 오브라에 두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영웅의 에봇을 음란하게 섬김으로써 이것이 결국 기드온과 그 온 집에 올무가 되었다(27). 이것은 그가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면서 그들의 낙타 목에 장식된 초승달 형상의 장식을 취했다는 데서 예견된 일이었다(21). 에봇은 제사장의 거룩한 옷으로서 아무나 자기를 위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나 아마 기드온은 놀라운 승리에 취하여 자신의 지도력을 과신하고 특별하게 여겼던 것 같다. 더 이상 기드온은 ‘제일 작은 자’(삿 6:15)가 아니었다. 그는 여기서 틀어지기 시작했다. 둘째로 그의 좋은 끝맺음에 허물이 된 일은 많은 아내를 둔 일이다(30). 이 아내들로부터 낳은 아들들이 많아서 이것은 후일 참극을 빚게 하였다(9:56).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사 그의 생애 40년 동안 태평을 누리게 하셨다(28). 기드온이 죽자 이스라엘은 다시 바알과 다른 신들을 섬기기 시작했다(33). 그들은 그들의 구원의 하나님을 잊었고 물론 기드온도 잊었다(34~35).
4. 슬픈 것은 기드온이 그토록 놀랍게 하나님의 쓰임을 받았으나 인생 마지막까지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끝까지 겸손하게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것보다 좋은 삶은 없다.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중심에 와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람은 범죄하기 시작한다. 기드온은 자기가 왕은 되지 않을지라도 금 에봇 정도는 만들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작은 것일지라도 자기 권리로 여기는 것은 위험하고 은혜를 잊어버리는 행위다. 겸손 보다 더 강한 것은 없다. 문제와 다툼을 해결할 뿐 아니라 자신을 지켜 자리를 벗어나지 않게 하고 좋은 끝맺음을 하게 하는 것은 겸손이다.
5. “하나님 아버지, 저희 인생을 끝까지 믿음으로 잘 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마지막까지 신실하게 저희가 누구인지 알아 겸손하게 하시고 하나님 한 분만을 영화롭게 하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개혁주의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