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주왕산을 찾아간다.
이곳은 유네스코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기암괴석이 많고 협곡이 멋있어서 정상에 오르는 산객뿐만 아니라 여러 개의 폭포가 있는 용추협곡을 찾는 관광객 또한 많은 곳이기도 하다.
오늘은 대전사에서 정상을 오른 후 후리메기로 해서 1, 2, 3폭을 모두 감상하고 다시 대전사로 내려오는 일정을 잡았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의외로 주차된 차들이 많지 않았다.
주차요금은 5,000원, 조금 비싼 편이었다.
도로 따라 늘어선 상가를 지나,
대전사에 도착하니 보광전 뒤로 우람한 기암이 위용을 떨치고...
대전사는 신라 문무왕 12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신라불교의 전통 사찰이다. 대전사의 이름은 주왕의 설화에서 주왕의 아들인 대전도군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본래 매우 큰 절이었으나 여러 차례의 화재로 많이 소실되었다. 지금은 보광전을 중심으로 관음전, 명부전, 응진전, 산령각, 요사채 등이 있으며 여기저기 들어나 있는 주춧돌들이 과거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부속암자로 백련암과 주왕암이 있다. 조선 현종13년에 임진왜란 때 불탄 보광전을 중창하였으며, 1995년 이후 명부전과 산령각, 탐진당 등을 이전. 신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소원탑에는 많은 사람들의 소망이 소복히 담겨 있다.
등산로 입구 좌측에는 기암의 모형을 조각해 놓았다.
초장부터 제법 가파른 계단이 기다리고...
전망대에 올라서니 정면에 기암이 보인다.
비가 내린 탓에 땅이 질펀하게 젖어있고,
돌판을 깔아놓은 곳도 있다.
두 번째 전망대에 오르니 기암을 비롯한 주왕산의 암봉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좌측의 혈암과 장군봉, 그리고 마치 설악의 노적봉처럼 보이는 기암.
우측으로는 연화봉과 병풍바위 그리고 급수대도 보인다.
좌측에 조망처가 나타나고 여기에는 양탄자도 깔려 있었다.
예전에는 없었던 계단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다시 조그마한 전망대.
역시 조망이 좋다.
우측으로는 가메봉도 보이고...
정상으로 오르는 마지막 계단은 꽤 길었다.
정상에 올랐지만 사방이 가로막혀 조망은 전혀 없다. 주왕산국립공원은 설악산, 월출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암산 중의 하나이며 특히 주왕계곡은 기암괴석과 다양한 식생이 분포되어 있어 봄에는 신록이,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다운 영남 제1의 명산이다.
한동안 쉰 후 후리메기 방향으로 향한다.
앞서 가던 친구가 화들짝 놀라며 옆으로 후다닥 비켜선다.
나뭇가지인줄 알았는데 살모사 한 마리가 바위에 올라 몸을 말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녀석은 급하지도 않은 모양인지 유유작작 도망도 가지 않고 잠시 멈춰 있었다.
가메봉 갈림길을 지나 계속 내려서며 올려다 본 가메봉.
이 침목 계단은 예전 그대로였다.
경사가 제법 급하기는 하지만 쉬엄쉬엄 내려선다.
계곡에 도착했다.
비가 내린 뒤라 계곡 수량이 제법 많다.
계곡을 따라가며 여러 개의 다리를 건너 왔다리 갔다리...
후리메기삼거리에 도착했다.
여기서 가메봉으로 올라갈 수 있으나 이미 여러 번 가 본 터라 그냥 패스, 용추폭포 방면으로 향한다.
이 다리를 건너가면 후리메기 입구로 등로가 이어진다.
후리메기 입구.
우측으로 올라가면 3폭포가 나타나고, 2폭포는 좌측 대전사 방향으로 내려가야 한다.
폭포를 구경하러 오는 관광객들이 제법 보이기 시작하고...
3폭포인 용연폭포로 올라간다.
올라가다가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본 3폭.
3폭 입구는 공사 중이라고 막아놓았다.
하지만 이곳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 있나!
용연폭포(지질명소).
용연폭포는 2단 폭포로 구성되며, 주왕산의 폭포 중 가장 크고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이 폭포는 두 줄기의 낙수현상으로 인해 쌍용추폭포라고도 불린다. 1단 폭포의 양쪽 벽면에서는 각각 3개씩의 하식동굴을 관찰할 수 있다. 폭포가 형성되고 발달하면서 침식에 의해 폭포 면이 차츰 뒤로 물러나게 된다. 지금의 폭포 면에서 가장 먼 곳의 하식동이 가장 먼저 만들어졌고 폭포가 점차적으로 후퇴하면서 두 번째 세 번째 하식동굴이 만들어 졌다.
하식동굴 : 폭호나 하천의 침식작용으로 생겨난 동굴
비가 내린 덕에 수량이 굉장하다.
내려다 본 용연폭포의 하단.
하단에서 바라본 용연 쌍폭.
용연폭포는 두줄기의 낙수현상으로 쌍폭 또는 용폭이라고 하며, 주왕산 지역 폭포 중에서 최대의 크기와 웅장미를 나타내주고 있다. 2단 폭포인 용연폭포는 1단 폭포에 의한 침식 현상과 폭호가 존재하고, 전체적인 낙수차는 10m 내외로 형성되어 있으며, 유량에 따라 폭포의 웅장함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용연폭포를 구경하고 나서 2폭인 절구폭포로 향한다.
절구폭포는 등로에서 좌측으로 조금 들어간 곳에 있어 들렀다가 되돌아나와야 한다.
2폭 절구폭포.
주왕산 응회암에 발달한 세로 방향의 틈에 의해 생긴 폭포이며, 2단 폭포로 이루어져 있다. 1단 폭포 아래에는 선녀탕이라 불리는 돌개구멍이 있으며, 2단 폭포 아래에는 폭호가 발달되어 있다. 절구폭포는 협곡 내부에 위치하고 있어 습도가 높고 폭포 주변 바위에는 이끼류가 자라고 있다. 마치 조각가가 공을 들인 작품처럼 오묘하고 아름다운 폭포이다.
시원하게 머리도 감으며 한동안 쉬었다가 간다.
봄에 피는 이 계곡과 절골의 수달래(철쭉)는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다.
용추협곡의 시작.
용추란 용이 하늘로 승천한 웅덩이를 뜻하고, 협곡은 급경사를 이루며 암석이 양쪽으로 높이 서 있는 좁고 깊은 골짜기를 말한다. 주왕산의 용추 협곡은 백악기 후기(1억 년~6,500만 년전) 화산 폭발로 분출된 화산재가 두껍게 쌓이고 굳어져서 만들어진 응회암이 오랜 시간동안 풍화. 침식되어 만들어졌다.
1폭 용추폭포.
수량이 많은 탓에 1단과 2단이 구분되지 않는다.
용추폭포는 용이 승천한 폭포라는 뜻이며 총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1단과 2단 폭포 아래에는 각각 선녀탕, 구룡소라고 불리는 돌개구멍이 있고, 3단 폭포 아래에는 폭호가 있다. 폭포 주변의 주왕산 응회암 절벽에서는 피아메에 의한 용결엽리를 관찰할 수 있다.
특히 이곳은 예로부터 청학동이라 불리며 선비들이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협곡 입구에 들어서면 마치 신선세계에 발을 딛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응회암에 발달하는 수직절리를 따라 침식작용이 일어나면서 첩첩산중의 보배를 만들게 되었다. 돌개구멍은 암석의 깨어진 틈을 따라 자갈과 모래가 갇혀 물과 함께 소용돌이치면서 생긴 원통형의 구멍이다. 폭호는 폭포의 아래에서 떨어지는 물에 의해 만들어진 웅덩이이다. 즉, 물이 흐르면서 생긴 것이 돌개구멍, 물이 떨어져 만들어진 것이 폭호이다.
어마어마한 협곡 사이로 설치해 놓은 나무다리.
절벽 중간에 커다란 말벌집이 있어 당겨보았다.
용추폭포 3단.
문자 그대로 환상적이다!
학소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절벽 위에는 청학과 백학 한 쌍이 둥지를 짓고 살았다 하여 학소대로 불린다. 어느 옛날 백학이 사냥꾼에게 잡혀 짝을 잃은 청학은 날마다 슬피 울면서 바위 주변을 배회하다가 자취를 감추었다는 슬픈 사연이 전해오고 있다. 지금 학은 간데 없고 그들의 보금자리 터만 절벽 위에 남아 옛 주인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시루봉.
시루봉은 그 생김새가 떡을 찌는 시루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측면에서 바라보면 마치 사람의 옆모습 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루봉에는 옛날 어느 겨울에 한 도사가 이 바위 위에서 도를 닦고 있을 때 신선이 와서 불을 지펴 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으며 바위 밑에서 불을 피우면 그 연기가 바위 전체를 감싸면서 봉우리 위로 치솟는다고 한다.
주왕굴 입구도 막혀 있고...
쪽빛을 띤 계곡수를 감상하며 느긋하게 지나간다.
시리도록 맑고 푸른 하늘을 등에 이고 지나가는 탐방객들을 내려다보는 듯한 시루봉의 위용.
이쪽에서 보면 영락없이 사람의 얼굴 모습을 하고 있다.
나를 쳐다보는 것 같기도 하고...
급수대의 주상절리.
주왕산 국립공원을 이루고 있는 대표 암석은 응회암이다. 응회암은 화산폭발 때 뿜어져 나온 화산재가 굳어져 만들어진 암석이다. 주상절리는 주로 빠르게 식는 암석에서 형성되어 기둥 모양의 틈이 생긴 것을 말한다. 급수대는 이러한 주상절리를 잘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급수대.
신라 37대왕인 선덕왕이 후손이 없어 무열왕의 6대 손인 김주원을 38대 왕으로 추대하였으나 때마침 그가 왕도인 경주에서 200리나 떨어진 곳에 있었고, 홍수로 알천이 범람하여 건너올 수 없게 되자 대신들이 이는 하늘의 뜻이라 하여 상대등 김경신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그리하여 김주원은 왕위를 양보하고 이곳 주왕산으로 피신하여 대궐을 건립하였는데 당시 산 위에는 샘이 없어 계곡의 물을 퍼올려 식수로 사용하였으므로 그 후로 이곳을 급수대라 이름하였다.
구암(龜巖) 각자(刻字) 해석
이곳 구암 상단에서 세로로 주방동천(周房洞川) 문림천석(文林泉石) 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빼어난 산수의 주왕산과 물과 돌은 문림랑의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문림은 고려시대 '문림랑위위시승' 벼슬을 지낸 청송심씨 시조 심홍부를 칭하는 것으로 청송심씨 봉토 '완문표석'이다. 암벽 글씨 아래 끼워 넣은 사각의 표석은 상단 암벽에 새겨진 큰 글씨에 대한 유래를 설멍한 것으로, 청송심씨 종유사 심호창과 심호택이 주방천 자연석에 새긴 주방동천(周房洞川) 문림천석(文林泉石)의 원석이 파손되어 1990년 5월에 당시 종유사 심완택, 심상일이 이 바위에 옮겨 새겼다는 기록이 있다.
연화굴 갈림길을 지난다.
주왕산성터.
당과의 전쟁에서 패한 주왕이 주왕산으로 숨어 들어온 후 당의 요청을 받은 신라 군사를 막기 위해 대전사 동편 주왕암 입구에서 나한봉에 걸쳐 쌓은 돌담으로 길이가 약 12km에 달하였었다고 한다. 자하성은 주왕굴을 중심으로 사방을 방어할 수 있는 요새로 돌문과 창고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성의 형체는 거의 사라지고 성터의 자취만 남아있다. 그러나 주왕산성은 축조시기에 따라 주왕 전설과 관련하여 삼국시대에 축조되었다고 보는 의견과 고려시대 이후로 보는 의견이 있으며 현재까지 연구 중이라고 하네.
아들바위.
주왕계곡 입구에서 100여m 위쪽에 위치해 있으며, 바위를 등지고 다리가랑이 사이로 돌을 던져 바위에 올리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기암교로 돌아왔다.
주왕산국립공원의 깃대종인 천연기념물 제324호 ‘솔부엉이’
깃대종이란 특정 지역의 생태계를 대표할 수 있는 주요 동·식물을 뜻한다 우측의 작은 모형이 실제 크기이다...
대전사를 둘러보고 주차장에 도착하며 산행을 마감한다.
GPS상 거리 13.2km.
시원한 막걸리로 산행의 여운을 즐기며 귀로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