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에게
정석현
아슴아슴하지 않은 날에
너로부터 어쩜 광맥의 빛이 보일지 몰랐다
풀 국새가 울고 잠자리가 날아드는
긴 생지 장의 여백에서
어쩜 넌 지금의 흩어 버린 사연이 아니었을까?
단발머리 나부끼며 사색에 잠겼던 섬진강둑
소라껍데기 되고 싶었던 바닷가에서
찬연한 도색의 옆에서
봄의 새싹처럼 피어나려던
너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날려 보낸 사연이 엉뚱한 반신에
어쩜 너의 운명이라도
수많은 별 가운데 자기별을 찾으려는
그리워도 아쉬움은 남느니
나같이 오늘의 연연은 없었을까?
보그르르 의 합창곡
미움은 사랑의 여백이 아닐까만
어쩜 넌 흘러가는 하늘빛 기류같이
맑고 푸른 먼 그날 속에서 다시 남길 수 없는
내 광명의 빛이 보일지도 몰랐다
너에게도 도덕의 미풍이 무너져 버린 건 알 수 없지만
자기를 알아 달라는 것처럼 밉지는 않다
예쁘장한 여고생에게
외출을 통제하는 건
사제 간의 윤리를 떠나버린 이성의 질투
올바르게 보는 0 주위의 새빨간 혀를 가진
틀림없는 그 사람들일 것이다
기다림이 없다면
어쩜 그것이 최고의 생활일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일이지만 남의 일같이
지겹고 권태롭고 인내심을 가져야 하는 날들이 아니었을까?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겠더라만
그러기에 우리에게
나에게도 기다림 이란 게 있다
어쩜 넌 거기에서
난 새로운 나를 발견 했는지도 모른다.
얄팍한 감정이 요동치기 쉬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진실은 어디까지나 숨어다니는 것이기에
어쩜 너에게도 그것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안타깝게 수집의 취미로 봐야 했던 건
취미로 부쳐야 했던 것만은
열차의 바퀴가 더 닳은 후에야
남행 열차와 북행 열차의 교차점에서
어느 차에든지 올라타 가야만 할것이다
어디로 갈 것인가?
아직은 모른다.
그러기에 0 에게
0은 무이기에
없는 것에서부터 우리들의 창조는 시작되지 않을까?
한쪽 마음만 둬야 할 텐데
두 쪽다 집착되어 있어 모호할지 모르나?
어쩜 넌 나로부터 낙엽을 훗 날려 버릴 회오리바람같이
냉갈령이 지속될지도 모른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던 날
넌 긴 성을 쌓아갔고
긴 사연도 어쩜 영원히 읽지 못할 것이 되어버렸는지도
그러기에 시가 나오고
애착심이 존속하는 것은 아닐까만
어쩜 0 은 나와 가장 가까운 거인지도
어쩜 0 은 나와 가장 먼 것인지도 모른다.
진지한 피력은 진정 사라지고 말았는지
형 각의 얽매임에 미움만이 여운일까?
애수의 집시여 관동팔경을 헤매 도는
0 이 무었이길래 이토록 긴 이별 앞에
서성거리느냐고 아무도 묻지 말아 주었으면
흑백은 아직 멀어 마음 아플 텐데
제2 금강산의 맛을 풍기는
너무나도 자연에 도취하고 싶어 발걸음이 무거웠다.
산새들의 지저귐 알뜰한 산림의 연속
두 처녀를 삼킨 비룡폭포는 말이 없구나
아!~~자연이 좋아
나 여기 설악산 속에서도 미움을 그리워했노라.
신흥사의 주지가 세속을 떠난지 몇년
오늘도 비구니의 마음은
아리따운 이성의 그림자를 훔쳐본다.
암담한 석굴에서 애승이 스님의 잿빛이
젊음의 향기를 훗 날려 버리고
계조암 불상 앞에 청춘은 살고 있다
나의 삶이 여기에서 나무아미타불
새벽닭이 울기 전
속초 시민들 자기들마다 떠들어대는 소리
강원여객 차장 신호에 동해 물결 위로 사라져 가고
붉은 해님이 시원스럽게 다가왔다.
피곤한 즐거움
여행의 위대함을 가져다주는 신비한 광경을
뽀얀 먼지와 함께 어느 버스는 달린다.
대낮의 어둠이여 제발 낮잠을 깨워 주었으면
옷 주머니를 여닫은 때가 무려 열두 번
혹시나 불안감에 다리를 오므렸다 폈던 건
뚝섬 강변에서 먼지를 털고
벽돌과 죽은 나무가 무성한 시가지에 들어서니
인간이 낳은 구르는 쇳덩이도 많구나
옛말로 시골 촌놈이
시가지 변두리는 자꾸 뻗어나가고
아침나절의 긴 행렬이 시발점에서부터 승강구 앞에 줄지어 서 있다
옛 성터에서 보는 서쪽호수가
안성의 소녀는 너무 어렸다.
호남선 군 객이 도착하는 곳
연산에서의 부여길
오늘도 백마강은 흐르는데 옛 인걸들은 찾아볼 길 없네
뱃사공이 노를 젓는 물 위엔 성터가 실루엣으로 변하고
나그네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건
삼천 궁녀들이여 그대들은 백제의 여성이었느니라
비틀 거리는 자세로 다시 더듬는 건
은진 기슭에 미륵불은 변함이 없구나
거기서 의자왕과 막걸리 한잔 나누고 싶었는데
땅과 하늘은 또 하나로 만드는 시간이기에
또 날이 새면 삶의 할동 은 계속되는 것
인간 끼리끼리 보이지 않는 애
열차는 시발점에서부터 종착역으로 달리는데
어린이가 놓쳐 버린 풍선은 하늘로 솟아 갔다
아늑히 꿈 같은 밤엔 머리가 어지러워
몸부림치다 잠들어 버린 나와 오월의 명상
대기실 잠자리와 같았지만 달리는 것은 있었다.
잠결에 들리는
오메 어쩔 것이여
내가 밟고 들어본 첫날 밤
지도책을 폈다 접었다가 몇번 이였던가
어두운 땅덩이 위에서
목포행 완행열차는 미끄러져 간다.
유달산 기슭에 해가 기울기 전
태극호는 달린다 여기는 광주랑 께
춘향이의 초심이 안타까운
지금은 이도령도 없는 남원은 다음으로
제3 도로에 깔린 가벼운 것들
나의 두 굴속으로 쳐들어 와
새끼손가락으로 후벼보니 검게 변해 버렸네
땅과 하늘은
또 하나로 묶여 졌는데
초승달만 살며시 웃는구나!
1966년 오월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