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디아스포라의 역사적 실존과 숭고한 비극
홍혜문은 현대인의 내밀한 상처를 향한 시선을 역사적 공간으로 투시한다. 그 서사적 결과물이 「대암의 하늘」이다.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에 의사醫師이면서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실존 인물 대암大岩 이태준을 다룬다. 이 소설은 식민지 현실의 민족적 상처를 치유하고자 했던 이태준의 삶을 통해서 개인의 실존적 고뇌와 역사적 대의大義를 위한 숭고한 결단과 희생의 가치를 조명한다.
이태준은 1883년 경남 함안 출신으로 세브란스의학교를 졸업한 후 안창호 선생이 만든 ‘청년학우회’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시작한 인물이다. 1912년에 중국 남경으로 망명하여 ‘기독회의원’의 의사로 일하다가 처사촌 애국지사 김규식의 권유로 1914년 몽골 후레로 가서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개설하여 인술(仁術)을 실천한다.
‘화류병’이라 불리며 몽골 전역을 휩쓸던 매독 퇴치에 큰 공을 세웠고 몽골 마지막 황제의 주치의가 되기도 했으며, 1919년에는 황제로부터 ‘오르데니-인 오치르’(‘귀중한 금강석’이라는 뜻)라는 최고 훈장을 수여하기도 한다. 그는 의사로서 활동하는 동시에, 모스크바의 자금을 상해임시정부로 전달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한 독립투사였다. 하지만 그는 1921년 2월 일본과 긴밀한 협력 관계에 있는 러시아 백위군 운게른 부대에 의해 피살 당하여 38세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대암 이태준 기념사업회’ 홈페이지 참조).
소설 속 이태준은 의사라는 직업적 소명을 넘어 독립운동가라는 숭고한 민족적 과제를 치열하게 수행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태준은 몽골의 수도 고륜(울란바토르)에서 ‘동의의국’을 운영
하며 몽골인들에게 ‘신의神醫’로 추앙받으면서도, 독립자금을 운송하고 의열단 활동을 지원하는 위험한 임무를 수행한다. 홍혜문의 소설은 이태준의 내면을 묘사하면서 영웅적 면모보다는 인간적 고뇌에 주목한다. 혹독한 추위와 모래폭풍 속에서 고비사막을 건너는 여정은 그의 내면적 투쟁을 시각화한 것이다.
조국을 상실한 암울한 현실 속에서 이태준은 정주민이 아니라 디아스포라의 형상일 수밖에 없다. “살아 있는 사람의 위치는 늘 불확실했고 소식은 모래처럼 손에서 빠져나갔다. 준은 더는 피하지 않기로 했다. 조신의 미래를 열려면, 결국 자신의 몸을 내놓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홍혜문의 이와 같은 서술은 조국을 잃은 당대의 독립투사들의 내면을 적확하게 드러낸다. 경성, 상해, 울란바토로, 모스크바까지 포괄하는 이들의 숨가쁜 여정은 조국을 상실한 디아스포라의 역사적 실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소설에는 독립운동가 김규식, 안창호, 김원봉, 김필순, 이극로 등의 이름이 거명된다. 이들은 모두 조국을 떠나 해외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는데, 1907년 신민회 105인사건의 여파 때문이다. 특히 김규식은 105인사건 이후 일본으로부터 끊임없는 회유와 협박에 시달린 끝에 1913년 몽골로 망명한다.
이태준이 몽골에 ‘동의의국’을 설립한 것도 김규식의 영향이다. 몽골에 비밀군관학교 설립을 위해서 김규식, 서왈보와 함께 몽골 울란바토르로 갔으나 고국으로부터 자금이 오지 않아 궁리 끝에 설립한 것이 ‘동의의국’이었다.
이태준의 삶은 인간의 생명에 대한 사랑을 근간으로 하되 조국의 해방을 궁극적 사명으로 삼고 있었다. 제국의 폭력 속에서 신음하는 조국의 독립과 민중의 해방이 그의 역사적 사명이었다. 그것이 의사라는 직업적 소명의식을 넘어서서 역사적 투쟁의 한가운데 몸을 던지는 독립투사로사의 면모를 추동하는 동력이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는 이태준기념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몽골정부가 이태준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증좌라 하겠다. 이 소설에서도 몽골 유목민들이 이태준의 옷
깃에 박힌 ‘에르데니-인 오치르’ 훈장 표식을 보고 이태준에 대한 적대감을 해소하고 극진히 대접하는 장면이 두 번 나온다. “조선에서 온 뛰어난 의사가 있다는 소문”이 몽골 전역을 뒤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태준에 대한 몽골인들의 신뢰와 존경은 이태준을 보호할 수 있는 방패막이로 작용했으나, 오히려 역설적으로 이태준이 일본군과 러시아 백위파 운게른 부대의 중요한 표적이 될 수밖에 없는 조건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일본 경찰 요시다는 집요하게 이태준을 추적했고, 요시다가 입수한 정보는 러시아 백위파 운게른 부대에도 넘어간다. 그들에게 이태준은 불량한 사회주의자 조선인에 지나지 않았다. 몽골에서의 이태준은 죽음에 진작 가까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태를 미리 감지한 중국군 사령관 가오시린은 이태준에게 탈출을 종용한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영영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라는 가오시린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이태준은 “나는 여기에 남겠소”라고 답한다. 가오시린은 이태준이 운게른 부대에게 잔인하게 학살당하는 것을 놔둘 수 없다고 말하며 이태준을 강하게 설득하지만, 이태준은 결심을 꺾지 않는다.
이태준의 신념과 의지를 온전히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환자들,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자신의 아이, 독립투쟁자금의 전달에 대한 책무감, 그리고 몽골 민중을 떠날
수 없다는 박애심의 발로 때문이리라는 정도로 가늠할 수밖에 없다. 그는 생존보다 책임을 선택함으로써 숭고한 비극의 문을 열고 만 것이다. 비장미의 정점은 이태준의 처형 장면이다.
홍혜문은 죽음을 앞둔 이태준의 내면을 다음과 같이 형상화한다. “썩게 하소서! 가슴에 남은 모든 것들이 썩고 썩어서 미세한 먼지로 남게 하소서! 조선의 독립을 향한 굳건한 마음이 모여 돌이 되고 바위가 되어 비바람에도 변하지 않는 진리처럼 강하고 달처럼 환한 바위가 되게 하소서. 그 그늘에 헐벗은 아이와 순박한 사람들이 평화롭게 노닐고, 편히 쉴 수 있는 큰 바위가 되게 하소서!”
이태준의 호가 대암大岩이다. 그의 호가 지니는 의미에 걸맞은 내면의 외침이 아닐 수 없다. “1921년 2월초, 이태준은 러시아 백위파 대장 운게른 스테른베르그에 의해 학살당했다. 그의 나이 38세였다.” 이 마지막 문장과 함께, 이태준은 디아스포라로 떠돌던 독립투사의 표상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남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