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24] 이소담(李小淡) - 내 인생 외길에 걸고 4. 제1차 하계 전도 경험 - 1 1 1957년 7월, 제1차 하계 40일 전도를 70개 도시에 2명씩 파송하게 되었다. 나는 임지가 전북 순창으로 정해졌다. 선생님께서는 대원들을 모집하고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주셨으나 나는 혼자 나가도 좋다고 하시며 혼자 나가게 되었다. 2 예수님의 행적 중 70문도를 세우고 전도를 내어보낸 것 같이 마치 양 떼를 이리 가운데 보내시는 심정으로 심각한 말씀을 하시며 의복도 두 벌 이상 가지고 가지 말고, 돈을 가지고 가지도 말고 식사도 얻어먹으라고 하셨다.
3 이때 나는 “선생님, 밥을 얻어먹으며 어떻게 전도를 합니까” 하고 속으로 다른 고생은 하더라도 위신이 있지 밥을 어떻게 얻어먹어요? 했다. 선생님 말씀이 “여자들은 쉽지, 부엌에 들어가 설거지도 해주고 애들 코도 닦아주고……” 하시며 웃으신다. 4 그렇지만 처음부터 어떻게 얻어먹어? 하늘의 체면이 있지 생각하며 나의 전 재산 만 원을 가지고 떠나는데 갑자기 머리가 아프고 열이 나기 시작한다. 약을 사서 먹고서도 차 안에서 끙끙 앓으면서 정읍까지 가서 차를 갈아타야 되는데 도저히 더 갈 수가 없어 정읍교회를 찾아갔다. 정 전도사가 무척 반갑게 맞아준다. 5 음식을 차려 내어오는데 깡조밥이다. 전도사가 너무 불쌍해서 쌀을 사다가 밥을 짓게 하고 교통비 정도만 남기고 약도 사고 모두 써버렸다. 선생님의 말씀을 안 듣고 체면을 생각한 것이 이렇게 잘못된 것임을 생각하고 회개의 기도를 올렸다.
6 그 후 임지인 순창을 찾아가게 됐는데 그곳에서 처음 인연 된 사람은 임윤화 청년이다. 그는 3대 독자이며 그 고장의 자유당 간부이자 동아일보사 지국장이다. 모친과 두 여동생이 있었는데 그들도 원불교를 20년간 믿어 왔지만 그 어머니도 아들이 통일교를 믿는다면 따르겠다고 한다.
7 임씨는 “이 선생님을 사랑방에 모시고 세탁 일체를 동생 네가 해드려라” 하고 명령을 한다. 그러면서 전도는 자기가 해올 테니 말씀만 해 주라는 것이다. 극진한 식사 대접을 받고 모기장까지 마련해 주었다.
8 다음날 내가 전도를 나가겠다고 했더니 같이 나가자고 한다. 그는 자유당 간부 부인회, 유지 등을 찾아다니면서 나를 소개하고 말씀을 들어보라고 권한다. 내가 그들이 모인 자리에서 강의를 할 때도 돗자리 위에 방석을 깔고 나를 앉게 하는 등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밤새 강의 준비를 해가지고 강의를 했다. 9 오후에는 혼자 가만히 기성교 목사를 찾아갔다. 목사는 말마다 화를 내고 싸울 것 같다. 나는 흥분된 마음을 가다듬고 “목사님! 왜 화를 내세요. 안 믿는 사람들이 보면 흉보겠어요! 기도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반드시 답을 주실 것입니다” 하고 권고했다. 10 많은 사람에게 귀한 말씀을 전했으나 정작 함께 힘을 모아야 될 기독교인은 한 사람도 찾아오지 않았고 임씨의 조카(대학생)가 방학이 되어 서울에서 내려왔다. 11 그 조카가 전도되고 집안이 복귀되려는 때에 사탄 역사가 시작됐다. 임씨 집이 종갓집이라 친척들이 모여와 제사를 지내야 된다며 3일만 여관에 가서 있으라고 한다.
12 나는 다른 곳에서 3일간 기도를 하고 돌아왔다. 다시 3일 금식을 하려고 하니 못하게 말리면서 같이 하자고 한다. 그래서 조카까지 하루씩 조건을 세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