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 바닷가로
여행을 간 한 남성이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그는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갯벌 가까이에
무엇인가 있었습니다.
가서 자세히 보니
밤새 낚시꾼이 낚시를 했는지,
물고기 세 마리를 잡아
뭍에 올려 두고는
그대로 돌아간 모습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세 마리 모두
죽은 줄만 알았습니다.
“누가 이렇게 잡아 놓고
놓아 주지도 않고
그냥 죽게 했지?”
그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한 마리가 숨을 몰아쉬며
지느러미를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어? 한 마리는 살아 있구나!”
그 한 마리를 살려 주려고 보니,
다른 한 마리도 살아서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한 마리는
잡힌 지 오래되었는지,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이 두 마리는 꼭 살려야겠다.’
그런데 바다를 보니
썰물이었습니다.
물은 저 멀리 빠져나가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들고 뛰어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습니다.
그래도 남성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신발을 신은 채 그대로
갯벌로 내려갔습니다.
발이 푹푹 빠졌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맨손으로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습니다.
파고, 또 팠습니다.
그러자 구덩이에
바닷물이 조금씩
고이기 시작했습니다.
남성은 급히
물고기 두 마리를
그 물에 넣어 주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물고기들은 바닷물을
들이마시며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그는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그래, 살았다! 살았어!”
남성은 구덩이가
무너지지 않도록
손으로 벽을 받쳐 주고,
물고기가 더 편히 있도록
조심조심 물이 흐려지지 않도록
더 넓고 깊게 파 주었습니다.
해는 점점 뜨거워졌습니다.
허리도 아팠습니다.
그러나 그는 물고기 옆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참아라.
곧 바닷물이 밀려 올 거야.”
그는 그렇게 밀물이 들어올 때까지
오랫동안 물고기 곁을 지켰습니다.
마침내…
오랜 기다림 끝에
바닷물이 밀려왔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는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바다로 돌아갔습니다.
남성은 한참 동안
물고기들이 바다로 돌아간 모습을 보며
숙소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그의 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뻘투성이였습니다.
마치 머드 축제에
다녀온 사람과 같았습니다.
그의 발걸음 하나하나에는
뻘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숙소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목사님!... 무슨 일 있으셨어요?”
그렇습니다.
그는 목사였습니다.
물고기 한 마리도
귀하게 여기고,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작은 생명도 살려 내는
그런 참 목자였던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1절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사랑하는
주님의 일꾼인 여러분!
우리는 죽음을
각오한 사람들입니다.
신학교에 입학하며
우리는 다짐했을 것입니다.
한 영혼을 살리는 일이라면
예수님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죽기까지 순종하며
충성하겠노라고!
지금도 그렇게 다짐하며
십자가의 길을 가고 계십니까?
생명이 죽어 가고 있는데도
뻘이 자신에게 튈까 봐
망설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밀물이 올 때까지 뙤약볕에서
온몸이! 엉망진창이 되어도!
한 영혼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충성을 다하고 계십니까?
또… 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 농부에게는
커다란 트랙터가
한 대 있었습니다.
그 트랙터는 세상의
다른 트랙터와 달랐습니다.
엄청난 크기에
여러 기능을 갖춘
무척 특별한 트랙터였습니다.
그러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신기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우와, 이게 뭐야?”
구경을 하던 한 사람이
타 보고 싶었는지,
트랙터에 올라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당연히 열쇠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신기해하며
입으로 소리를 냈습니다.
“부릉부릉~ 부르릉!”
운전대를 이리저리 돌리며
어린아이처럼 움직이는 시늉만 하고
흉내만 낼 뿐이었습니다.
만약 열쇠가 있었어도
그는 트랙터의 사용법을 모르니
시동도 걸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잠시 후,
트랙터의 주인인
농부가 찾아왔습니다.
농부는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낯선 사람에게 소리쳤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누군데 운전대를
함부로 잡는 거요?”
“앗! 죄, 죄송합니다…
그냥 궁금해서…
한번 타 봤습니다.”
참주인이 나타나자
그는 부끄러워하며
트랙터에서 내려왔습니다.
참 농부가
트랙터에 올랐습니다.
자신이 가진 열쇠를 꺼내어 꽂고
시동을 걸었습니다.
그러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트랙터가 움직였습니다.
농부는 일하기 위해
넓은 밭으로
트랙터를 몰고 들어갔습니다.
히브리서 5장 4절입니다.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운전대는 잡았지만
시늉만 하고
흉내만 내던 그 사람은
참 농부가 아니듯이
참 목자가 아니었습니다.
목사인 척,
목회자인 척하는
거짓 목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의 일꾼인 여러분!
여러분은 진정
하나님으로부터
일꾼의 열쇠를
받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부르시지도 않으셨고
열쇠를 맡기지도 않으셨는데,
남의 트랙터에 올라
“부릉부릉” 흉내만 내듯이
목사인 척 흉내만 내는
거짓 목자의 모습은 아닙니까?
열쇠는 자신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부르신 하나님께서
맡겨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쇠를 받은 일꾼은
운전석에 앉아 자랑하지 않습니다.
일하기 위해 밭으로 들어갈 뿐입니다.
그리고 심고 가꾸며 열매 맺기 위함입니다.
또한 죽어 가는 생명을 위해서라면
온몸이 더러워지고 고생을 하더라도
그 갯벌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내가 맡긴 양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일꾼 여러분!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가장 좋은 차를 몰며,
가장 좋은 집에서 살면서,
그날에 주님 앞에 서시겠습니까?
아니면 내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며,
나는 아파서 병원에 가지 못하고
좋은 약을 사 먹지 못해도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십자가의 길을 가며
살려 낸 영혼들과 함께 서시겠습니까?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열쇠를 맡겨 주신
참 일꾼이라면…
흉내만 내는 목자가 아니라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
갯벌이라도 무릎을 꿇고
샘물을 파내는 참 목자로 살다가,
마지막 날 사랑하는 주님께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을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