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스님의 가시를 거두세요<9> 아무리 노력해도 돈이 모이질 않아요
사진=5조(條)가사를 처음 수하고 온전한 스님으로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작은 몸가짐조차 허투루 할 수 없다. 우리는 매 순간 부처님 제자로서 자신의 말과 행동을 돌아보지 않으면 안된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부처님께서는 욕심 없고 집착 없는 청정한 삶을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현대 사회를 살다보면 돈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돈이란 게 참 희한하고 신기합니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고, 진짜 없어서 무지 고생하기도 하고, 피땀 흘려 노력한다고 꼭 돈이 모이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어디선가 술술 새어나갑니다. 그래서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이라는 노래 가사도 있습니다.
“돈은 돌고 돌아서 돈이지만 너무 잘 돌아서 머리가 돌겠다”라는 우습고도 서글픈 신세한탄이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고 상담을 하다 보니, 아무리 노력해도 돈이 줄줄 새어나가는 분이 있습니다. 별 노력 없이도 또는 노력의 땀방울에 비해서 돈이 척척 쌓여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돈줄은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재물복을 타고 태어난다’는 어른들 말씀도 있습니다. 재물복이 많다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하루 세끼 밥 먹고 등 따습고 구멍 안 난 옷을 입을 정도면 재물복이 있는 것이다”라고 했더니 어떤 분은 격렬히 동감하고, 어떤 분에게는 ‘세상 물정 참 모르는 스님’이라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부처님 말씀을 살펴보면 여러 경전에서 늘 말씀하십니다. “보시 공덕을 많이 쌓으면 풍요로운 복을 받게 되고, 인색하고 욕심내면 가난한 업보를 받게 된다.”
선업을 짓고 있는가
복을 까먹고 있는가
항상 자기 성찰하며
인과법 철저히 믿어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에 아주 큰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좋은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게 됩니다. 아들이 태어날 때부터 한쪽 주먹을 쥐고 태어났는데 며칠이 지나도 그 주먹을 풀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는 큰 근심에 휩싸입니다. 혹시라도 손에 큰 장애가 생겼는가 걱정을 합니다. 부모는 억지로 아이의 주먹을 열어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동전 두 닢이 있는 것입니다.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동전 두 닢을 쥐고 태어난 겁니다. 아이의 부모는 ‘별일이 다 있구나.’ 생각하면서 동전 두 닢을 빼버립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보니 아이가 또 주먹을 꾹 쥐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또 펴봤더니 동전 두 닢이 있는 것입니다. ‘희한한 일이 다 있구나’ 싶어서 혀를 차며 아이의 손에 있는 동전 두 닢을 치워버립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또 아이의 손이 쥐어져 있습니다. 혹시나 하고 아이의 손을 열어보니 역시나 동전 두 닢이 있는 것입니다.
아이 손에 동전 두 닢이 또 생기고, 또 생기니까 나오는 대로 창고에다가 차곡차곡 쌓아놨다고 합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니 모이고 모인 동전이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큰 재산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들의 별명을 ‘금재’라고 짓습니다. 황금 금(金)자에 재물 재(財)자를 써서 금재라고 부른 것입니다.
금재는 청년이 되어 부모님께 인사를 올리고 출가를 하겠다고 밝힙니다.
“부모님, 저는 부처님 제자가 되어 출가 수행자의 길을 걷겠습니다.”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금재는 출가를 합니다.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제일 먼저 부처님께 예배를 올립니다. 그리고 자신보다 먼저 출가한 선배 스님들에게 인사를 올립니다. 예법대로 선배 스님들에게 차례로 절을 올리고 인사하는데 이상한 일이 펼쳐집니다.
스님들께 절을 올리고 바닥에 손을 댄 곳마다 그 자리에 동전 두 닢이 딱 놓여있는 것입니다. 선배 스님들도 영문을 모르고 다들 ‘이게 뭐지?’ 하더랍니다. 금재스님이 절을 올리면 손을 댄 그 자리에 동전 두 닢이 저절로 생기니 스님들도 어안이 벙벙합니다. 어쨌거나 금재 스님은 부처님 아래에서 부지런히 수행 정진하여 큰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부처님의 시자였던 아난스님이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거룩하신 세존이시여, 금재 비구는 항상 주먹을 쥐었다가 펴면 동전 두 닢이 저절로 나타납니다. 금재 비구는 전생에 어떤 인연이 있었기에 동전 두 닢이 저절로 나타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좋은 질문이구나. 이 모든 것은 자기가 지은 업을 자기가 받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인과의 업보이다. 그대들에게 자세히 말해주겠으니 잘 듣도록 하여라.”
비바시 부처님 때의 이야기
과거 전생에 ‘비바시 부처님’ 때의 이야기이다. 하루는 비바시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성 안에 들어가 탁발을 하셨다. 부처님과 제자들이 탁발을 하러 들어가면 항상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복을 짓기 위해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렸다.
그 때 한 나무꾼이 있었다. 나무꾼도 부처님과 스님들께 늘 공양을 올리고 싶었지만 도저히 공양 올릴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나마 자기가 가지고 있는 거친 음식이라도 공양을 올리려고 하면 옆에 있는 왕족이나 귀족 등이 보고 비웃을까봐 창피해서 차마 공양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무꾼은 하루 종일 나무를 베서 품삯으로 동전 두 닢을 얻게 되었다. 동전 두 닢을 쥐고서 집으로 가다가 저 멀리 부처님과 스님들이 성 밖을 벗어나와 사원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순간 나무꾼은 고민에 빠진다.
‘부처님과 스님들께서 사원으로 돌아가시는구나. 지금 부처님 옆에는 다른 신도들이 없으니 지금이야말로 내가 아무 눈치 없이 공양을 올릴 수 있는 기회구나. 그런데 지금 공양을 올릴 만한 것이 전혀 없으니 어찌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자기 손에 쥐고 있는 동전 두 닢을 보게 된다. 그리고 다시 고민에 빠졌다.
‘내가 이 동전 두 닢을 공양 올리면 나는 하루를 굶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것은 전생에 지어놓은 복이 없어서 그렇다. 그런데 이번 생에도 내가 복을 짓지 않는다면 다음 생에 또 가난하게 태어날 것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를 희생하고 차라리 이것을 공양 올리자.’
나무꾼은 부처님 앞으로 가서 무릎 꿇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가진 것이 동전 두 닢밖에 없습니다. 너무나 보잘 것이 없어서 감히 부처님과 스님들께 올리기가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동전 두 닢을 정성으로 올리오니 이것을 받아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미소를 지으며 나무꾼에게 말씀하셨다.
“정성이 담긴 공양은 콩 한 쪽조차도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그대 정성이 담긴 동전 두 닢의 공양으로 그대는 세세생생 태어날 때마다 큰 복을 얻을 것이다. 이것은 모두 그대가 지은 선업의 힘이다.”
나무꾼은 비바시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쁨이 차올랐다. 이 공덕으로 나무꾼은 태어날 때마다 하상 줄지 않는 큰 재복을 얻었으며, 인간과 하늘 세계를 돌며 큰 기쁨을 누리며 살아간다. 그리고 석가모니 부처님 시대에 동전 두 닢을 쥐고 태어나게 된다. 그가 바로 금재이다.
금재스님의 동전 두 닢 이야기는 <현우경>에 나오는 부처님 말씀입니다. ‘다 자기 복대로 살아간다’라는 법문이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일이 잘 풀리고 좋은 일이 자꾸 생긴다면 그것은 자기가 지은 선업의 결과입니다. 살아가면서 일이 잘 안 풀리고 장애가 자꾸 생긴다면 그것도 자기가 지은 악업의 결과입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자기가 지은 업의 인연입니다.
부처님 법을 공부하는 첫걸음은 인과법을 철저히 믿는 것입니다. 인과의 법칙은 정확합니다. 그러니 우리 불자들은 이 순간 내가 어떤 업을 짓고 있는지 항상 고민하고 반성해야합니다. 선업을 많이 짓고 있는가, 박복하게 살며 복을 까먹고 있는가, 항상 성찰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부처님 경전에 다 나와 있습니다.
단명할 행동을 하면 단명해지고
오래 살 행동을 하면 오래 살게 된다.
천한 행동을 하면 천해지고
귀한 행동을 하면 귀해진다.
가난할 행동을 하면 가난해 지고
부유할 행동을 하면 부유해 진다.
<앵무경> 중에서
광우스님 해인총림 해인사 상임포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