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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와 인과 법 스크랩 윤회의 비밀(11)
자비심 추천 0 조회 31 13.10.17 08:2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윤회의 비밀(11)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 건전한 첫걸음은 말할 것도 없이 본인의 재능목록 -재능이 다양하든 아니든- 을 만들고, 그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이 심리학자들이 말해주는 아주 현명한 대답이다. 그들은 인간의 재능을 측정하는 정확한 저울을 고안해 냈다. 케이시 리딩은 이런 점에 대해서는 별로 세밀한 설명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떤 직업을 딱히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나 또는 특별히 조언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경우에는 리딩이 말해주는 조언의 기초, 곧 직업선택의 기본적 철학은 아주 명확하다. 이 철학의 중심개념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당신의 이상(理想)과 당신의 내적인 인생목표를 정하시오. 그리고 그것을 성취하도록 노력하시오”이다.


이상을 세운다는 것은 케이시의 ‘적응의 철학’에 있어서는 절대로 필요한 구성요소이다. 더구나 그것은 직업적인 자기 훈련에는 특히 필요하다. 리딩은 사람이 자기의 이상을 분명히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종이 한 장에다 영적·정신적·물질적이라는 세 가지 항목의 난을 만들고, 그 각 항목의 난에 자신이 동경하는 가장 높은 목표를 써 넣으라고 리딩은 자주 권고하고 있다. 여기에 그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어본다.


“당신의 문제나 당신의 이상을 분석할 때 그저 마음속에서 생각만 하지 말고 종이에 써 보시오. ‘영적, 정신적, 물질적’이라고 쓰고 그 옆에 그것들의 이상을 써 보십시오. 먼저 ‘영적’부터 시작하여 -왜냐하면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은 먼저 영적 개념에서 오기 때문에- 당신의 영적 이상을 써 넣으시오. 그것이 그리스도인지 불타인지, 마음인지 물질인지 신인지 그 밖의 무엇이든 당신에게 영적 이상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써 넣으시오. 다음으로 ‘정신적’이라는 항목 란에 당신 자신의 일이나 당신의 가정·친구·이웃·적·물건·상태 등에 대하여 당신의 영적 개념에서 나오는 이상의 정신적 태도를 써 넣으시오. 그 다음에 당신의 물질적인 이상은 무엇인지 써 넣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자신을 분석해 나갑니다. 그리고는 그렇게 해서 얻은 지식을 즉시 응용해 나가시오. 먼저 무엇보다도 당신의 이상을 정해야 합니다. 다음에는 마음먹고 그림을 그려보는 것입니다. 당신은 상당히 훌륭한 기술자이니 그림을 잘 그릴수가 있습니다. 당신은 전에 자화상을 그려본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자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상에서 얼마만큼 멀리 떨어져 있나요? 또한 남들이 그렇게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이상적 이미지에서 얼마만큼 떨어져 있나요? 당신의 정신적 이상은 무엇인가요? 물질계에서는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결국 리딩은, 인간의 이상은 필연적으로 다양하지 않을 수 없지만 동시에 인격의 참된 완성과 참된 자기 훈련은 명확한 목적의 확립을 거쳐서만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직업은 이와 같은 기본적 개념 위에서 선택해야 한다.


직업선택에 관한 케이시 철학의 두 번째 개념은 “남들을 위해 봉사하도록 노력하라”이다. 무엇을 하면 인류에 봉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결국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 모든 사람들을 지도하는 원리이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끝내는 자기 자신을 인류라는 육체의 세포로 보게 되어있다. 서로 싸우는 국가의 세포가 아니라 인류 그것의 세포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웃에 대한 봉사는 신에 대한 최고의 봉사이다.”라는 말은 리딩이 거듭 강조하는 말이다. “당신들 중에 가장 큰 사람이 되려고 바라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시오.”라는 말도 리딩이 자주 되풀이하는 말이다.


우리들 모두가 이것을 이 세계에서의 이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리딩의 견해임이 다음과 같은 말 속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인생에는 오직 하나의 이상이 있다. 그것은 우주의 창조적 에너지를 당신의 이상으로 삼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육체·마음·영혼을 그 에너지와 당신의 동포에게 봉사하기 위한 도구로 삼는 것이다.” 이 원리에서 나오는 필연적인 결과는 경제의 안정이라든가 명성이라든가 세속적인 성공 따위가 봉사라는 목표에 대해서는 제2차적인 것으로 돌려진다는 것, 그리고 그런 것들은 수레가 소를 따라오듯이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는 것이다.


매우 다방면의 재능을 지녔기 때문에 어느 것을 골라야할지 망설이고 있는 13세의 소년이 케이시에게 “제가 어른이 되어 경제적으로 가장 성공하려면 저의 어떤 소질을 따라야 할까요?” 하고 물었다. 대답은 이러했다. “경제적인 것은 잊어버리고, 오히려 이 세계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려면 무엇이 가장 도움이 될까를 생각하라. 단지 보수를 목적으로 하는 일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 금전상의 이익은 그 사람이 자기의 재능을 남들을 위해 쓰면 결과로서 반드시 얻어지는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이 물었다. “내가 어떤 방면의 일을 하면 경제적으로 가장 성공할까요?” 그러자, “경제적이라는 생각을 집어치우시오. 경제적인 이익은 정직하고 성실하기만 하면 자연히 따라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사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오. 이익은 신이 주십니다.”라는 대답이 주어졌다. 어떤 무역상은 이런 말을 들었다. “동포에 대한 봉사를 목적으로 삼으시오. 당신이 거래하는 사람들이 당신 때문에 이익을 보도록 하고, 결코 그들을 발판으로 이용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명예나 부는 결과로서, 그리고 남들에게 해준 봉사의 결과로서 받도록 하십시오. 남들을 자신의 명예나 부의 발판으로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독자들 가운데는 여기서 저 위대한 건축가 크리스토프 윌렌의 일화를 상기할지도 모른다. 어느 날 윌렌경은 자신이 설계한 런던의 대사원 건축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현장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는 일꾼들이 자기 스스로 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 일꾼 몇 명에게 차례로 같은 질문을 해보았다.


“자네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첫 번째 일꾼이 고개를 들며 투명스럽게 대답했다. “벽돌을 쌓고 있소.” 두 번째 사람은 “난 이렇게 일해서 오늘 2실링을 벌고 있는 거요.” 세 번째 일꾼의 대답은 “큰 사원을 짓는 일에 힘을 보태고 있지요”였다. 케이시 리딩이 직업 선택에서 헤매는 사람들에게 주는 지도원리는 육체적 노고나 금전적 보수를 생각하지 않고 아름다움을 마음에 그리고 있는 이 세 번째 일꾼의 태도인 것이다.


케이시의 직업철학의 세 번째 기본개념은 “몸 가까이에 있는 것을 활용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뻔한 말이어서 군소리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성이라는 것은 멀리 있는 복잡한 것 쪽에 훨씬 호기심이 돋우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다른 많은 명백한 진리와 마찬가지로 이것을 거듭거듭 강조해 줄 필요가 있는 조언이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시작된다. 더구나 그 첫걸음은 그 사람이 지금 서 있는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 대표적인 몇 가지를 들어보자. 49세인 한 부인이 “저의 평생 사업은 무엇일까요?” 하고 물었다. 대답은 “몸이 약한 사람이나 기운을 잃은 사람들을 격려해 주고 좌절한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도록 하시오.” “어떻게 하면 그런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그녀는 다시 물었다. “오늘 당신의 눈에 뜨이는 일을 하십시오.” “저를 위해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그녀는 계속 물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리딩이 반문했다. “당신이 지금 있는 곳에서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활용하십시오. 하느님의 인도를 기원하십시오. 당신을 하느님의 손에 맡기십시오. 나는 어디에서 일을 하고 싶다든가 하고 하느님께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아니라 ‘주여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의 뜻대로 나를 써주십시오’라고 말하십시오.”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부인이 또 있다. 그녀는 61세이고 어떤 나라의 외교관의 아내이다. 오랜 동안 동양의 여러 나라를 여행했고, 예술과 종교를 연구해 왔다. “어떻게 하면 제가 인류에게 가장 봉사할 수가 있는지 자세히 가르쳐 주십시오”하고 그녀가 물었다. “그날그날 당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봉사하십시오. 가장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위대한 일을 하자고 계획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주어진 기회나 특권을 활용하는 사람이 큰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기회를 활용하면 보다 좋은 길이 열립니다.”


---<중략>---


환경이라는 것은 설령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그 사람의 내적인 눈뜸의 단계에 꼭 맞는 것임을 케이시 리딩은 끊임없이 상기시켜 준다. 설사 현재의 환경이 겉으로 보기에는 그 사람의 진정한 사명 달성에 방해가 되는 것처럼 여겨진다 해도, 그것은 그가 걸려 넘어질 돌이 아니라 그의 디딤돌인 것이다. 외적인 환경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길은 그런 환경의 장애요소들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꾸준히 바꾸어나가는 것이다. 리딩은 말한다.


“이것을 아십시오. 어떤 처지에 있어도 그것은 당신의 진보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은 나날의 공동생활 속에서 여기에서 하나, 저기에서 하나 하고 자기 자신의 이상을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말과 행동을 통해 인격이 도야됨을 되새기면서 말입니다. 벽돌을 한장 한장 쌓아올림으로써 집은 지어집니다. 말로 그리고 나날의 조그만 행위로 사람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면서 그 지식과 잠재능력 및 참 목적의 완전한 성취를 향해 전진하는 것입니다. 그가 끊임없이 전진적 실천을 통해 봉사하려고 마음먹는다면 환경은 필연적으로 변화하여, 다음단계의 방법 다음의 기회가 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밑천으로 조금씩 착실히 쌓아나가십시오.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미리 걱정하는 것도 무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전체의 건물은 신이 만드는 것이니까요.”


케이시 파일에는 인간의 갖가지 재능이 하나하나의 생애마다 향상되어 간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어, 우리의 앞길에는 각자의 여력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사람들 중에는 도저히 실현될 것 같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청년 시대에 품었던 꿈을 계속 동경하며 추구해 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통상적인 관찰에서 본다면 그 꿈이 실현되지 않는다는 현실은 몹시 쓸쓸하다. 그러나 이것을 카르마의 연속에서 본다면 그 쓸쓸함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어떤 노인이 꽃을 훌륭하게 피워보려고 계속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무리 애써도 원예경진대회에서 상을 타기는 커녕 세상에 별로 알려지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노인이 앞으로 몇 번인가 환생하는 사이에 언젠가는 뛰어난 식물학자나 원예가가 될 식물학의 기초지식을 쌓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미술에 대하여 어처구니없을 만큼의 노력을 기울이는 어떤 부인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끊임없이 농담거리를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래에 어떤 궁전에 벽화를 그리게 될 능력의 기초를 쌓고 있는 것이다.


윤회의 개념에 따른다면 어떤 노력도 결코 헛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카르마가 나쁜 짓을 한 것을 벌줌에 있어 공평한 엄격함으로 임한다면, 그것은 건설적인 노력을 한 것을 보상하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공평함으로 임할 것이다. 이 중요한 사실을 인식한다면 절망 따위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어떠한 순간에도 사람은 자기 자신의 미래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며, 그 미래의 기초를 닦고 있는 것이다. 미래는 지금 이 순간에 적극적이고 건설적으로 노력을 하고 있느냐, 아니면 표면적인 장애에 굴복하여 소극적인 태도가 되어 버리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는 필요없다. 사람들은 오직 자기 자신을 능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진리임을 정말로 인식한다면 현생에서 자기와 다른 어쩌면 더 유리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과 자기를 비교하며 속을 썩이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경쟁이란 유물론자들의 미신과 착각에 불과하다. 영적 사실에 있어서는 보다 낮은 자기 자신과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관습이나 제도야 어떻든, 노인은 철 지난 옷을 좀약과 함께 옷장 속에 넣어버리는 것처럼 치워져야 할 인간이라는 따위로 스스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반대로, 가정적인 책임이나 직업적인 의무 때문에 전에는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일을 연구하거나, 새로운 능력이나 재능의 창문을 열어나가는 데 조용히 시간을 바쳐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미래에 환생했을 때 누릴 내적 부의 기초가 닦인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또 이것이 “땅에 보배를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보배를 쌓아 두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해석의 하나이기도 하다. 천국이란 해탈한 의식상태를 가리키며, 보배란 정신적 능력 영적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케이시 리딩은 때때로 분명하게 인간은 그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건설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자. “무슨 일에서나 정도를 지나치지 말고 중용(中庸)을 얻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당신은 98세까지 살 수 있습니다. 하긴 그 만큼 오래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생활을 한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남에게 줄 수 있는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줄 수 있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오래 살아서 남들을 방해할 권리는 없을 것입니다. 뭔가 줄 수 있는 것을 갖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당신은 살아있는 동안에 가치있는 삶을 살 수가 있을 것입니다.”


물음 : 노후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까요?


대답 : 현재를 위해 준비 해야 합니다. 늙음은 자연히 당신을 무르익게 해줍니다. 사람은 마음과 목적이 젊으면 젊은 것입니다. 젊음을 유지하고 싶다면 언제나 따뜻하고 친절하며, 매사에 충실하도록 하십시오.


물음 : 어떻게 하면 저는 노후나 고독의 근심을 떨쳐 버릴 수 있을까요?


대답 : 자신의 일을 자신이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자진해서 뭔가를 도와주십시오. 자기를 잊고 남을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 남을 도와줌으로써 당신은 그 막연한 걱정에서 해방됩니다.


물음 : 어떤 취미를 가지면 좋을까요?


대답 : 누군가 남을 도와주는 취미가 가장 좋습니다. 집 밖에서 화초를 가꾸는 것도 당신의 취미로서는 좋겠지요. 그러나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매일 뭔가 조금씩 도와주도록 계획해 보십시오.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들의 말 상대가 되어 주는 것만으로도 당신을 위해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사람의 재능은 모두 그 사람이 스스로 벌어들인 것이며 하나의 삶에서 다음의 삶으로 지속되는 것이라는 진리에서 나오는 중요한 사실은, 선망(羨望)이라는 것은 불필요한 감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남을 부러워하는 것은 그 사람이 지닌 어떤 능력이 바로 그 사람이 과거에 노력한 결과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흔히 선망의 감정이 동기가 되어 다른 동기에서는 도저히 될 것 같지도 않은 일을 해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선망으로 인해 악의·증오·비난·중상·원망 및 그와 유사한 저속한 감정으로 이끌리게 된다면 그것은 좋지 않다.


누군가 다재다능한 사람을 보면 대개 부러워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모든 재능은 어느 것이나 인간 누구나의 손이 닿는 곳에 있다는 사실이 보다 널리 알려지게 된다면, 부러워하는 감정은 엷어지고 정말로 다재다능한 인간이 이 세계에 늘어날 것이다. 우주의 영적 질서는 이 세계의 어떤 경제구조처럼, 가지지 않은 다수의 희생 위에서 가진 소수가 나온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모든 자질은 그것을 이기적으로가 아니라 순수하게 쓰기만 한다면 누구나가 평등하게 쓸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삶을 거듭해 갈 때마다 직업적 능력이 성장한다는 설에서 필연적으로 나오는 또 하나의 중요한 결과는, 실망은 선망과 마찬가지로 별로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영혼이 물질의 세계에 갇혀 있는 한 욕구불만은 필연적이다. 들국화는 가련한 모습 속에 나름대로의 거룩함이 깃들여져있다. 그것은 다알리아 꽃이 아니라 들국화 꽃이어야만 한다. 백합꽃은 장미의 선명한 색채를 동경하며 바라볼지도 모른다. 장미는 또 장미대로 백합의 우아한 선을 감탄하며 바라볼 지도 모른다. 있는 모든 것이 각각 그 자체로서 완전하더라도 자기 자신의 모양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마음의 올바른 태도를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좋은 예는 위대한 바이올린 연주자인 파가니니의 일화 속에서 볼 수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는 2년 동안 빚 때문에 감금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어떤 경로인지 그는 낡은 세 줄짜리 바이올린을 손에 넣었다. 그 불완전한 악기로 끊임없이 연습을 하는 것이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소일거리였다. 드디어 그가 감옥에서 풀려나와 다시 무대에 올랐을 때, 그는 일찍이 누구도 발휘한 적이 없는 격렬함과 완벽한 기교를 가지고 연주했다. 그리하여 그 비교할 바 없는 솜씨는 당시의 청중들을 매료시키고 만 것이다. 어떤 때는 어려운 곡을 한창 연주하는 도중에 바이올린의 줄이 하나 끊어졌지만, 나머지 세 줄만 가지고도 끝까지 연주를 해낸 일도 있었다. 그는 그런 전대미문의 연주능력은 바로 2년 동안의 감금생활에서 기초가 닦였던 것이다.


물론 투옥이란 상황은 그에게 심한 절망감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그의 반응은 소극적이 아니라 적극적이었다. 인간은 각자 미래에서 아직은 상당 기간 동안 스스로 일구어 놓은 징벌의 카르마 때문에, 또한 모양 있는 존재로서의 당연한 제약 때문에 필연적으로 좌절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좌절에 부딪쳤다고 해서 꽁무니를 빼거나 진보를 멈추거나 움츠러들 필요는 없다. 족쇄를 채워도 무용을 공부할 수가 있으며, 감옥의 벽 속에서도 노래를 연습할 수가 있는 것이다. 좌절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참을성 있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때로는 기쁨을 가지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을 배워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미래 능력을 성취하기 위한 바탕을 쌓아 올릴 수가 있는 것이다.


인생은 재미있는 소설의 줄거리처럼 그 모순과 투쟁 때문에 흥미가 깊은 것이다. 원시인에게는 투쟁이 주로 자연의 여러 가지 힘에 대한, 그리고 다른 인간에 대한 싸움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진화함에 따라 그 투쟁은 차츰 내적 요인에서 생겨나게 되었다. 이 내적 투쟁은 각 시대에 따라 선과 악, 영과 물질, 이성과 감성, 양심과 충동, 의식적인 마음과 무의식적인 마음의 대립으로 묘사되어 왔다.


그런 묘사에는 모두 어느 만큼의 진리가 담겨 있지만, 윤회론이 말하는 의미에서의 투쟁의 설명은 되어 있지 않다. 윤회론에서 보면 투쟁의 근본 원인은 인간이 스스로를 물질적 차원의 존재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저지르게 되는 잘못에 있는 것이다. 하긴 인간은 스스로를 진화시키기 위해 그 물질을 통해 자기를 표현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런 그릇된 인식이 이기적이고 차별적인 행동을 낳고, 나아가서는 그것이 보복의 카르마를 작동시키게 되는 것이다. 카르마의 작용은 인간의 그릇된 행위를 객관화 시킨다. 인간은 그 속에 갇혀 자유를 잃고 만다. 이 자유의 상실이 인간의 정신적 고뇌의 근본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에게 지운 그 보이지 않는 감옥인 속박과의 투쟁이 내적 갈등의 기본형이다.


케이시 리딩은 이 밖에 또 하나의 투쟁원인이 있다고 밝혀준다.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카르마에서 보복과 연속이라는 두 면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연속성 때문에 많은 부조화와 충동이 계속 이월되면서 인간의 내면세계에 새로운 갈등의 원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리딩에 따르면, 충동이란 뭔가 과거생의 경험에서 나오는 강한 욕망이나 욕구를 말한다. 모순되는 욕구로 생긴 투쟁보다도 더 어려운 것은 충동이 완전히 진정되지 않은 때이다. 많은 경우에 인간은 자기 자신의 모순을 깨닫지 못한다. 충동과 그 교정의 불완전이라는 이 개념들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예는 다음의 경우일 것이다.


이 사람의 성격에는 두 가지의 기본적인 모순이 있다. 첫째는 이 사람이 어떤 때는 은둔적이고 내향적이며, 침묵·냉담·비사교적·학구적·초세간적인가 하면, 또 어떤 때는 아주 상냥하고 외향적이며, 명랑하고 솔직하며 관능적이라는 것이다. 리딩은 이 기묘한 분열이 두 가지의 분명한 경험의 흐름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비사교적 경향은 영국의 수도원에서 수도승으로 살았을 때에 형성되었으며, 그의 명랑하고 솔직한 성질은 중세의 십자군 전사였던 전생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했다. 성격상의 이런 이상한 이중성은 대개 사람들이 싫어하기 마련이다. 오늘은 솔직하고 내일은 냉담하고 무뚝뚝할지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가까이 하기를 주저할 것이다.


성격의 둘째 모순은 분명히 불완전한 교정에서 생기는 것 같다. 이 사람은 먼 과거생에서 이집트의 임금 자리에 있었던 적이 있다. 으스대고 오만한 태도, 의젓하고 자신만만한 행동거지 따위는 그 경험에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음 생에서 팔레스타인에 태어나 예수님에게서 큰 감화를 받았다. 그 위대한 스승의 인격은 그에게 엄청난 감명을 주었고, 그는 예수님과의 교류를 통하여 사회봉사에 대한 강한 충동과 인간은 모두 형제라는 이성적인 믿음을 얻은 것이다.


그의 경우 현생에서 우세한 것은 이 후자 쪽의 충동이다. 그는 평생의 사업으로 종교나 사회봉사 분야에서 지도자로 일하는 길을 택했다. 복음전도의 새로운 방식을 세워 그는 지금도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또 고민하는 사람들의 상담자로서도 아주 알뜰하고 진지하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이따금 저 이집트 시대의 사나운 오만에 사로잡히곤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성질이 팔레스타인이나 그 밖의 전생에서 반밖에는 고쳐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잠재해 있는 모순된 성질을 깨닫고, 그는 지금 그것을 극복하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노력을 계속하노라면 그는 차츰 조화를 잘 이루는 사람이 되고, 아직 청산되지 않은 성질도 차츰 자기완성과 봉사라는 새로운 목표에 따라 향상되어 갈 것이다.


이렇게 모순을 자각하는 것, 어떤 성격적 경향이 가장 바람직한가를 분별하는 것, 그리고 대립되는 성질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것 등이 뿌리 깊은 갈등을 해결하는 올바른 방법일 것이다. 이런 경우들을 면밀히 살펴 나갈수록 누구든 뚜렷이 “먼저 당신이 사는 목적을 정하시오”하고 리딩이 거듭해서 권고하는 까닭을 알게 된다. 이것은 과연 극히 건전한 말이지만, 동시에 너무 평범하고 유치한 말 같기도 하다. 그러나 신중하게 끝까지 음미해 본다면, 이 평범한 말의 뜻이 인격의 통일과 조화를 향해 가는 도상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문제에 있어서도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단 이상 내지 목표가 정해지면 항해에 필요한 나침반은 가진 것과 같다. 즉, 그것은 무의식의 마음속에 있는 어떠한 모순되는 생각의 소용돌이라도 다스리고 조화시키고 초월하는 도구인 것이다. 그 투쟁은 어쩌면 빛과 어둠의 투쟁, 영과 육 또는 선과 악의 싸움이라고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다 현대적인 표현으로 말해 본다면 그것은 무의식의 심층에 들어 있는 과거의 생각과 행위가 갖는, 아직 청산되지 않은 힘과 계몽된 의식과의 싸움인 것이다.


-----<중략>-----


인간은 몇 세기에 걸쳐 무죄(無罪)와 원죄(原罪)라는 문제로 고민해 왔다. 많은 철학자들이 인간의 본성이 원래 선인가 악인가를 따지는 일에 정면으로 맞붙어 왔다. 플라톤은 갓난아이의 마음은 전생에서 살던 상태의 기억으로 가득 차있다고 생각했다. 로크는 갓난아기의 마음은 백지이고, 그 위에 사상(思想)으로 개념화될 온갖 인상들을 감각이 써넣는다고 보았다. 신학자들은 모든 유아는 아담과 이브의 원죄로 더럽혀져 있으며, 원죄는 오직 올바른 영성체(領聖體)로써만 씻길 수 있다고 한다. 윤회론의 견해는 모든 인간이 진정 죄의 유산을 지니고 태어나지만, 그것은 자기 자신이 지어 놓은 죄이지 아담과 이브의 죄라는 따위의 비유적인 성격의 것은 아니며, 죄는 과거의 자신의 행위에서 생기기 때문에 세례나 교회의 어떤 의식 -물론 그런 의식에는 그 나름의 상징적 가치나 목적은 있다. - 으로 씻길 수는 없다고 본다.


우리는 대개 자기가 저지른 죄보다도 남이 자기에게 저지른 죄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남에게 욕한 것보다 더 많은 욕을 먹었다고 느낀다. 모두 자기는 죄가 없고 선량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조물주에 의하여 창조된 자가 원래 지니고 있는 자만심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대개는 우리가 ‘망각의 강’에 잠겨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사악한 과거를 자비로운 자연의 섭리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가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남들에게 친절을 베풀어 왔는데, 그런 나는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인간이란 정말 잊기 잘하는 동물이야!” 하고 투덜대는 여성이 있다. 옳은 말이다. 당신은 현생에서는 친절하다. 왜냐하면 당신은 곱지가 못하니 남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친절을 베푸는 것이라고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이 현생에서 가꾸어 낸 미덕에 불과하다. 아름답고 냉정한 여자, 육욕을 마음대로 부린 여자로서의 전생을 보라. 당신은 그 때 뿌린 씨를 지금 거두고 있는 것이다. 당신에 대한 사람들의 대접이 인간은 배은망덕한 존재라는 사실에 대한 증명이 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단지 당신 자신이 전에 남들을 대하던 방식대로의 것이 지금 되돌아오고 있을 뿐이다. 이제부터도 몇 번씩 환생해 나가는 사이에 지금 씨 뿌린 것은 나중에 무화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그 때까지는 엉겅퀴를 당신이 거두어야 할 수확으로 알고 받으면서 꾸준히 무화과를 심어 나가야 한다.


인간의 성격을 깊이 날카롭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의 드러나지 않은 천박하고 음산한 부분이 있는것을 알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서는 약탈적인 지배욕이, 또는 얼음 같은 냉담함이 엿보이기도 한다. 젊음이나 미모나 부나 지식이나 관능의 만족 따위와 형식적인 상냥함으로 만족하고 있는 개성은 자기 내부에 이런 악덕이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개성을 지탱해 주는 외적 안정성이 흔들리어 무너져 내리면 인격은 자기 내부에 깊이 박혀 있는 사악한 것이 드러남을 보고, 그것을 보상하기를 강요하는 운명에 다소곳이 따르게 된다.


쓰디쓴 경험이 생기면 개성은 “나는 이런 꼴을 당할 아무것도 안했는데···.”하고 불평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자기는 죄가 없다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 그런 사람은 양친을 죽이고 재판을 받을 때 죄를 고백하면서 “저는 고아입니다. 살려 주십시오.”하고 애원하는 어떤 사람의 논리처럼 우습기만 하다. 개성(에고)은 자기 죄를 고백하지 않는다. 그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고아라고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그는 틀림없이 이것저것 잘못을 저질렀다. 아니면 불행이 그에게로 닥칠 턱이 없다. 자기 내부에 악이 잠재해 있어, 그것이 피동적으로 불행을 끌어오지 않으면 불행은 절대로 찾아들지 않는다.


성격의 변화는 삶의 변화와 유전의 - 그것이 전생이든 질병이든 홍수와 같은 외적 재난이든, 또는 미묘한 내적 갈등이나 투쟁이든 - 계몽적인 목적이다. 심리학이 진화의 나선형 계단 위에 서서, 이 모든 인생의 부침(浮沈) 속에 있는 목적을 인정하고 이해한다면 위대한 영적진보를 이룩하리라.


출처-우주네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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