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기 전의 나의 감정은 울분과 화와 그리고 마음이 무겁고 우울한 것이었습니다. 좋거나 건강하지 못한 상태였지요. 개인적인 일로 인해서 마음이 그렇기도 했지만, 의석수의 힘으로 이른바 검수완박을 밀어 부치려는 국회의원들 때문이기도 하지요. 성경은 그런 심리 상태와 관련하여 말씀을 합니다.
"이스라엘 왕은 무겁고 우울한 마음으로 사마리아로 돌아갔습니다"(열왕기상20:43).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찌니"(잠언22:24).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야고보서1:20).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잠언20:22).
제가 가졌던 감정이 전혀 성경적이지 않네요. 하나님이 싫어 하시는 것들이란 뜻이지요. 다시 말하면 저의 감정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즉시 회개하고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감정은 세상적인 것이며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는 육신적인 것이기 때문이지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12:2).
그러면 어떻게 마음의 변화를 받나요?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사람이지요. 그러므로 잘못되거나 나쁠 경우에는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도록 도우시거든요. 감화를 시키시지요. 그래서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생각하게 되지요. 그리고 성경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요한복음11:29).
우리는 자주 육신의 정욕을 멍에로 삼아 그 멍에 아래로 들어 가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좋지 않은 감정에 휩싸이게 되지요. 거룩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멍에로 삼으시고 그 멍에 아래에 들어 가세요. 예수님과 함께 하는 멍에.. 그러면 분이 풀리고 화가 삭아집니다. 울분이 사그러 들지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잠시 시궁창같이 더러워진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야지요. 예수님의 보혈로 씻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해집니다. 어지러운 마음을 안정되게 정돈해야 합니다. 정상적으로 돌아오게 해야지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리보서4:4).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5:18).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립보서4:5).
다양한 얼굴 표정을 나타내는 이모티콘이 있습니다. 움직이는 행동을 묘사하는 이모티콘도 있지요.
감정을 뜻하는 emotion과 조각을 뜻하는 icon을 합친 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모티콘(emoticon)이란 말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감정이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지요.
사람의 감정을 일컬어 보통 '희로애락'(喜怒哀樂)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을 이르는 말이지요. 그렇지만 기쁨에도 여러 모습들이 있고 노여움을 나태내는 모습도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림으로는 사람의 감정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는 어렵다는 말이지요.
희로애락뿐만 아니라 근심, 걱정, 염려, 불안, 두려움도 있고 곤고할 때도 있습니다.
"일평생을 어두운 데서 먹으며 번뇌와 병과 분노가 저에게 있느니라"(전도서5:17).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요한복음14:1).
성경은 또 말씀하십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립보서4:6).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베드로전서5:7).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일을 만나서 심히 놀랄 때가 있습니다. 몹시 당황하고 정신이 혼미해지고 두려울 때도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믿고 의지 하십시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41:10).
예수님은 십자가의 무섭고, 정말 공포스러운 형벌을 이겨내셨습니다.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기 위함이셨지요. 하나님의 아들이신데도 인류의 죄를 한 몸에 다 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지요. 인간으로서 무섭고 두려운 공포를 친히 체험하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이 세상의 어떤 황급한 일도 넉넉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지요.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16:33).
주님을 의지하고 불안해 하거나 낙망하지 마십시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편42:5).
인생은 기쁠 때가 있고 슬퍼할 때가 있지요. 미울 때도 있고 사랑스러울 때도 있구요. 원망이 가득차고 원한을 품은 마음도 있습니다. 성경은 이 모든 감정을 극복하도록 가르치십니다. 좋은 쪽으로 말이지요.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전도서7:3).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도서7:1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전도서3:4).
"내가 사람에게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원망하고 있으니 어찌 내 마음이 초조하지 않겠느냐"(욥기21:4).
미워도, 증오심이 생겨도, 하나님의 사랑의 힘으로, 예수님의 마음으로, 용서하고 용납하고 관용을 나타내야지요.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사랑에 빚을 진 사람들이니까요.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로새서3:13).
때로는 마음이 조급하고 초조할 때도 있지요.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찾으십시오. 예수님 안에서 안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주님이시니까요. 지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내 초조한 마음이 나로 하여금 대답하게 하나니 이는 내 중심이 조급함이니라"(욥기20:2).
사람 얼굴 표정이 일그러지고 펴지기도 하지만 그 표정들을 지을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살아 있다는 표시이며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요. 표정 그 자체가 바로 삶이지요. 세상은 끝날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환란이 닥아 올지 모르지만 천국을 바라보는 신앙으로 항상, 그리고 끝까지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표정이 나쁘게 변할리가 없습니다. 언제나 기쁘고 즐겁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요한복음16:20).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는 새하늘과 새땅 위에 세워질 것이며 그곳은 곧 새예루살렘성입니다. 그 모습은 이러합니다. 어두운 표정이 있을 수 없지요.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요한계시록21:4).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요한계시록21:1,2).
이모티콘같이 어둡고 슬픈, 그리고 걱정 가득한 그런 표정들은 장차 들어갈 저 새 예루살렘성에서는 전혀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영화로운 몸을 입었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