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파트에서 앞산으로 올라가는 중간에 꽤 넓은 텃밭이 있다. 인근 아파트에 사는 여러 사람들이 심심해서 소일삼아 배추 고추 열무 토란등 푸성귀들을 심고 있는데 야채 농사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군데군데 산그늘이 져 있어 농사가 시원찮지만 사람들은 열심히 밭을 일구어 땅을 고루고 무언가 씨앗을 심었는지 이 늦은 가을에 열무인듯한 새싹이 이제 겨우 연한 눈을 튀우고 푸릇푸릇 자라나고 있다.
사람의 발길이 닿은 좁은 길가에는 가을이라 여름내 웃자란 억쎈 쑥과 사람들이 아무리 밟고 밟아도 죽지않는 질경이가 씨가 영근채 자라고 있다 산기슭에는 누군가가 심었을 머위의 연한 잎 줄기가 드문드문 자라고 있다.
텃밭에 심은 고구마는 이미 수확을 한듯 줄기와 잎이 뒤집힌 채 실 뿌리를 하늘로 향하고 얼기설기 한옆으로 치워 놓여져 있다 토란은 아직도 수확하기는 이른듯 그냥 심겨져서 아직도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길이 아닌 그냥 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서있는 나무들은 불어오는 소슬 바람이 겁이 나는듯 "휘이" 소리를 내며 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에 힘이 다한 낙엽들이 우수수 떨어지니 이미 가을은 이 산 곳곳에도 찾아와 있었다.
마치 시골 農牛의 엉덩이에 덕지덕지 붙은 쇠딱지처럼 덧붙어 있는 소나무의 거칠은 겉껍질이 나무의 고달픈 연륜을 말하는듯 하고 이미 알 밤들은 다 따가 버려 밤송이 껍질이 흩어져 있는 근처 밤나무나 상나무 등걸의 맨 아래쪽에 붙어서 자라고 있는 푸른 이끼들이 그쪽이 북쪽임을 알려준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옆 조금 깊은 골짜기에 어느핸가 심한 태풍때 쓸어져 넘어진 아카시아 나무는 이제는 뿌리가 썩어서 없어진채 아직도 그곳에서 서서히 녹아 흙으로 돌아가고 있다.
올라가는 길에는 길옆 나무의 뿌리들이 워낙 오르 내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흙이 패어 나가니 뿌리가 지면으로 앙상하게 들어나 짓밟혀서 마치 중환자의 바싹 마른 손등의 굵고 가는 심줄 모양 조금은 징그럽기도 하고 이런 극한 상황에서도 그날그날 잘 살아남은 나무가 의연하기도 하고 안스럽기조차 하다.
이 산에는 멋있고 곱게 단풍이 드는 나무는 아주 드물고 이파리들이 지질구질 잎이 주접이 들은채 올해를 마감 하려는 나뭇잎들이 마치 우리네 보통 서민들의 고생스런 삶의 흔적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언짢기도 하다.
개중에 운이 좋아 큰나무 등걸에 붙어서 자란 담쟁이 덩굴이 곱게 단풍이 들어 하늘을 향해 오르고 또 오르려던 끝없던 욕망이 올해는 그만 그곳에서 가을을 맞게 되어 성장을 멈추게 됬다.
해가 더 할수록 수목이 욱어지니 어디선가 귀에 설은 여러가지 새 소리도 들리고 우리 정원에서는 이미 사라진 귀뚜라미 소리가 곳곳에서 들리니 반갑기조차 하다.
전에는 나무 위 아래로 마치 나르는 새처럼 잽싸게 오르 내리던 검회색 청설모나 귀여운 다람쥐의 모습은 아무데서도 볼수가 없다.
처음에는 외래종 청설모가 다람쥐나 새의 알을 다 잡아 먹어 버린탓에 새가 드물더니 새들이 살아 나고 그 천적인 청솔모는 어인 일인지 자취도 없이 살아 졌다.
올라 갈때 이미 서산 마루에 걸렸던 해가 어느덧 서쪽 산으로 다 넘어가 버리고 이제는 어둑 컴컴하게 땅거미가 진 산길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서둘러 내려 와야만 했다.
04년 10월 25일 씀 06년 1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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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혁 (2006-11-13 21:33:05)
리바이벌한 글이라도 우리의 일상생활에 관한 내용이어서 다시 보는 나름대로의 의미에서도 뜻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항상 우리 홈에 글을 쓰시는 의지와 노력에 찬사와 감사를 드립니다. 그 뜻은 글을 쓰는 우리 밖에는 모를 것입니다.
우리 동기 모두가 참여의식과 상부상조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으련만... 크게 밝은 전망이 없을 때 좌절감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