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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지난 주일에는 우리 교회 한국에서 유명하신 유기성 목사님이 오셨죠. 그리고 우리 교회 참 귀한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오늘 설교 영상이 일주일 만에 1만 회를 넘었어요. 그만큼 우리 교회도 널리 알려진 것일 거라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제가 목사님을 초대한 것도 아니고 또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가 요청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저는 유 목사님을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보내주셨다고 믿었고 또 전해주실 말씀을 고대하면서 여러분과 함께 기도하자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오셔서 전해주신 말씀은 저하고 같이 교회에 대해서 얘기한 적도 차를 같이 마신 시간도 없는데 우리 교회가 들어야 할 말씀, 우리가 갈망하는 교회였습니다. 우리가 갈망하는 교회로 주님의 교회, 주님과 하나 된 교회, 주님의 영이 각 사람 속에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이렇게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모든 교회가 들어야 할 말씀이지만 특별히 우리 교회를 향해서 주셨고, 킹스 크로스 교회가 정말 영국에서 좋은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주셨어요.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도 같은 마음으로 받고 말씀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면서 정말로 백성의 칭송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느 교회이든 칭송을 받는 교회는 이게 밖으로 죽기 전에 먼저 안에서 좋습니다. 먼저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들 안에서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고 즐거움이 있다 하는 것이죠. 이것을 잘 보여주는 것 하나는 우리가 지난주에 받은 본문의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에서 4-7절 말씀인데 그 본문의 마지막은 어떻게 끝납니까?
47절 내용인데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렇게 말씀을 끝나요.
그런데 그 앞에 길게 나오는 42절부터 길게 나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뭐냐 하면 믿는 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자들이 하나가 된 모습이죠. 예배와 교제와 섬김에 있어서, 나눔에 있어서 사귐에 있어서 하나가 된 교회입니다. 백성의 칭송을 받으려고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려고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에요. 안에서 먼저 좋은 것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신 내용이고 또 그 이후에 모든 교회들에서 나타나야 할 교회 찬 모습이죠. 주 안에서 하나 되는 교회 교회가 같은 믿음 안에서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 그렇게도 중요한데 실제적으로는 이것이 참으로 이루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잘 압니다.
왜 어려운 것일까요? 어느 교회이든 믿음 안에서 서로를 사랑함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 왜 정말 어려운 걸까요? 쉽게 답답하면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하기에는 정말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실 만큼 어렵다. 하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또 수많은 좋은 교회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성령님께서 이끄시면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갈망하는 그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오늘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볼 질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질문이고 여러분도 함께 성령 안에서 생각할 수 있기를 바라고 본문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주시는 말씀은 우리가 다름을 서로의 다름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거나 그 다른 것들이 복음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교회가 하나 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받는 고린도 교회는 그런 면에서 하나가 되지 못했어요. 은사는 많았지만 문제도 많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러한 교회 상황에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는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는 그 이유, 그리고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을 동시에 알려주고 있습니다. 한번 같이 볼까요? 4절부터 7절인데 하이라이트된 부분이 있습니다. 좀 굵은 글씨로 돼 있는데 이 부분에 강조점을 두고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지금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처럼 은사, 직분, 사역은 여러 가지입니다. 여럿이라고 번역하지만 이 이 말의 원어에 담겨 있는 기본 의미는 다름이에요. 다르다는 겁니다. 각 사람에게 주어진 은사가 다르고 각 사람에게 맡겨진 직분이 다르고 각 사람이 하는 사역과 그 사역의 결과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다음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으면 교회가 하나 되기 어려운 것이고, 반대로 이 다음만이라도 제대로 알고 인정하면 해도 교회가 하나가 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고린도 교회가 실패한 것이고 또 어느 교회든지 실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그렇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런 부분이 있다면 오늘 말씀을 듣고서는 그 길에서는 그 길에서 멀어져야 합니다. 은사 사역 직분이 다른 것을 알아야 할 텐데 그뿐만이 아니죠. 우리가 다른 것은 우리가 있는 만큼 많습니다. 각 사람이 여기까지 온 과정도 다르고 또 이후 갖는 길도 다를 것이며 현재 처한 상황과 형편과 다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갖는 표정이 다르고 속에 있는 생각 감정이 다르고 밖으로 나타나는 반응이 다르다 하는 것이죠.
우리가 정말로 갈망하는 교회에 좋은 교회를 원한다면 우리는 주 안에서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서 서로의 다름을 끝까지 인정하고 존중하는 교회가 되어야 되는데 그것은 우리 각 사람이 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옆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 정말 다르죠. 그 다음을 끝까지 인정할 수 있는 내가 달라요. 여러분이 볼 때도 저 독특하죠. 내가 다른 만큼 또 옆에 있는 사람도 다 다른 부분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 우리가 끝까지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가 다름을 알고 또 그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이 다음이 연결되는 기준이 중요합니다. 이 부분에서 문제가 있으면 역시 하나가 되기가 어렵습니다. 말씀을 다시 한 번 볼까요? 4절부터 7절인데 이번에는 역시 굵게 표시된 글씨를 잘 염두에 두면서 읽겠습니다.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경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성령을 모든 사람 가운데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시고 유익하게 하려 하시니라.
이 말씀대로 은사 직분 사역은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고 주도 같고 하나님이 같습니다. 그리고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시는 목적도 같아요. 무엇인가요? 유익하게 하려 합니다. 교회의 유익이지만 또한 각 사람의 유익입니다. 어느 교회든지 하나님과 주와 성령에 있어서 일치가 있는 교회는 하나 됨이 있습니다. 없다면 가능합니다. 반대로 이 부분에서 일치가 없거나 그 자리에 다른 것이 들어가 있어 어려운 것이 들어가 있다 그러면 교회가 하나 되기가 어렵습니다.
이 부분에서도 고린도 교회는 실패했지 우리 교회에는 하나님과 주와 성령에 관해서는 다름이 없기를 바랍니다. 다름이 있을 곳은 여기서 말씀하듯이 은사와 직분과 사역이에요. 이것들은 다를 수밖에 없는 소위 작은 것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작은 것이라고 해서 무시할 것은 아니죠. 작은 것이 귀하고 또 작은 것이 많을수록 좋고 교회를 풍요롭게 합니다. 다만 그것들이 정말로 존중을 받고 교회와 각 사람에게 유익함이 되기 위해서는 오직 주 안에서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시고 모든 것을 모든 사람 안에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우리 교회에 있는 모든 다른 모습들이 연결된 것은 하나님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대로 정말로 많이 다른 우리들이 이렇게 예수의 이름으로 모였는데 예수의 안에서 성경 안에서 하나님 안에서 정말로 하나가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것만 붙들어도 우리가 하나가 되는 교회를 향해서 크게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이 말씀과 연결해서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것이 있는데 우리 교회 나의 교회라는 말이에요. 지난주 유기성 목사님 설교를 통해서 우리가 우리 교회 나의 교회의 문제점을 들었습니다. 교회를 내 것 우리의 것으로 잘못 생각한 문제를 지적하시는 거예요. 이건 내 교회야 이거는 우리 교회 어느 교회든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시기 때문이에요. 주님이 교회의 머리이시고 주님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땅의 모든 교회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오늘 방문하신 분들이 많이 있는데 여러분들이 소속된 교회 또 방문하신 이 교회가 다 주님의 교회로 한 교회이죠.
그러나 우리 교회 나의 교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중요한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라고 할 때 문제는 소유이지 소속이 아니에요. 유대와 갈렐리와 사마리아 교회를 말할 때 한 교회라고 말했어요. 주님의 교회이기 때문에 다 한 교회입니다. 같은 교회예요.
그렇지만 그러한 한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 유대교회, 갈릴리 교회 교회, 사마리아 교회 이렇게 지역 교회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빌리모 교회도 에베소 교회도, 데셀로 교회도, 갈라디아 교회도 또 지금 런던에 있는 여러 한인 교회들도 다 그렇습니다. 모두 주님의 교회이지만 서로 다른 지역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는 교회라 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각 교회 성도는 어느 교회든지 자신이 출석하고 섬기는 교회를 가리켜서 우리 교회 나의 교회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출석하고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봉사하고 세우는 이 교회에 대해서 나의 교회 우리 교회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좋은 교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 교회 나의 교회라고 이렇게 구별해서 부를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죠.
제가 우리 교회 나에게 이것을 말하게 하는 문제가 있어요. 유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소유의 문제였는데 오늘 함께 생각해야 할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교회는 으로 시작한 말에 있습니다. 이 교회는 이것 말 자체는 틀린 게 아니에요. 그렇죠. 그런데 이것이 문제가 되는 방식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나라는 이 집안은 이 사람은 다 그렇죠. 이런 말투에는 뭔가 거리감이 있어 방문자가 오늘 방문하신 분들 얘기하는 게 아니고요. 방문자나 감독자나 감찰자들이 쓰는 말이지 교회 성도가 자기가 속한 교회를 통해서 두고서 이 교회는 이렇다 저렇다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죠.
자식이 부모를 두고서 이 부모는 엄마 아빠를 두고서 이 너는 이렇다 저렇다 하지 않죠. 또 부모도 자녀를 두고 이 자식들은 이렇게 이렇게 말하지 않죠. 만약에 그렇게 한다면 이미 관계에 거리감이 생겼다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우리 교회에 가족 처럼 보이는 세 사람이 방문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들어오실 때에 주보를 주는 분이 기도 모임에 가셔서 그 자리에 없었어요. 그래서 주보를 못 받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이 교회는 주보도 없나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방문자니까 우리가 이해를 해 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자신이 속한 교회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제가 볼 때 생각할 것이 참으로 많이 있는데 다 말할 수 없고 하나만 말하자면 그 사람 안에 교회에 소속하지 못하고 거리를 두게 하는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교회가 문제일 수 있고 자신이 모일 수도 있고 교회도 자신도 모두 문제가 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이 부분에서 우리가 생각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뭐냐 하면 교회는 본래 나와 같이 문제 있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에요.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고 모인 사람들이 교회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좋은 교회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유명한 교회들, 참 모범적인 교회라고 하는 교회들 안에 들어가면 다 문제를 갖고 있어요. 그럼에도 좋은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은 이유가 있고 그 이유를 오늘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데 뭐냐 하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같은 성령 같은 주 같은 하나님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 된 교회 좋은 교회로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실 수 있다. 우리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개인적인 공동체적인 관계적인 문제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 주 앞에서 겸손하여서 같은 성령의 인도함을 따르면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어떤 문제라도 극복하게 하는 극복해 나가는 좋은 기회로 만들어 주실 것이다.
그것이 바로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일을 행하시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측면에서 내가 출석하는 교회를 가리켜 우리 교회 나의 교회 이렇게 부를 수 있는 것은 참으로 귀한 것이다.
우리가 말할 수가 있어요. 교회를 정하기 전에는 여러 교회를 다녀볼 수 있지요. 그리고 제3자의 입장에서 평가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출석할 교회, 내가 예배할 교회, 내가 섬길 교회, 내가 교제할 교회를 정한 다음에는 그 교회에서 또 직분을 받은 다음에는 내 교회에 우리 교회라고 강력하게 부를 수 있는 그 자리에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에요. 믿음 안에서 잘 성장한 사람은 그 일이 첫 주에서부터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 아직 믿음이 없으면 10년이 지나도 그 자리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여러분은 방문자라고 하더라도 여러분이 속한 교회를 향해서 정말로 내 교회 우리 교회 그런 의미에서 주님의 교회라고 부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내가 사실 어느 교회에든 갈 수 있죠. 이것 자체도 교만한 생각일 수 있지만 어느 교회든지 정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으로 보내셨습니다.
여기가 바로 내가 예배드리고 배우고 섬기고 교제하는 나의 교회, 우리 교회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은 어느 교회에서도 귀예요. 그리고 그런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시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가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다릅니다. 성격이 다르고 배경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고 스타일이 다르고 배운 것이 다르고 갖고 있는 것이 다르고 가고 있는 방향이 다릅니다. 본문 말씀처럼 은사와 직분과 사역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서 갈등이 생길 수 있고 문제가 나타날 수 있는 겁니다.
어느 교회든 다 그렇습니다. 혹시라도 그렇게 된다면 우리 안에서 혹시라도 그렇게 된다면 서로를 괴롭게 하는 서로를 찌르는 그 가시만 보지 말고 그 너머 깊은 곳에 있는 아픔과 상처를 이미 품으신 주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혹여라도 그동안 이 교회와 이 교회라고 보면서 이 교회와 거리를 두고 그냥 관망하고 평가하는 자리에 있었다면 주님 만난 날을 기억하면서 이제는 주님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 교회를 내 교회라고 부르면서 아끼고 사랑할 수 있고, 우리 교회라고 부르면서 모든 사람에게 친절할 수 있고, 주의 말씀을 따라서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기를 힘쓰고 주님과 하나 된 교회로 세우는 데 열심을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 교회도 백성의 칭송을 받는 참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렇기 전에 먼저 우리 안에 교회를 다님에 기쁨이 즐거움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