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추위는 매섭기가 참기 어려울 정도로 사나웠다. 황소 등에 질매 얹어 보현산 줄기 땔나무 실으러 오르면 황소 입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린다. 우리 집 대문에 나설 때는 웅크러지는 몸을 어렵게 펴며 귀찮기도 했다. 그러나 5km쯤 걸으면 온몸이 후끈 달아올라 추위가 사라진다. 젊은 혈기로 혈액순환이 왕성하여 추위를 잊는 경험을 매일 겪어보았다. 땔나무 묶는 작업할 때는 등에 땀이 흐른다. 추위 느끼는 감각은 몸을 움츠리고 활동하지 않아서 생긴다. 손발 동상 걸리는 것도 활동 부족에서 팔다리 멈추어 생기는 상처라 생각이다.
농촌에는 나무 땔감 사용하는 난방 시절이라 부지런히 움직여야 살아남는 생활이다. 연탄 공급도 1970년대 후반에서야 뒤늦게 농촌에 보급되었다. 온돌방 군불을 넉넉하게 지펴서 방바닥 아랫목에 장판이 타도록 대비도 했다. 실지 장판이 검게 탄 집이 많았다. 그래도 새벽녘에는 추워서 윗목에 펴둔 물수건이 고드름 주름으로 변한다. 물수건은 초저녁 더운 방바닥 식히고 공기 수분조절 때문이다. 새벽 추위 심하면 목이 아프고 감기 앓는 증상까지 느끼게 된다. 콧물감기는 친구처럼 몸에 달고 살았던 어려운 시절이다.
몸에 입는 방한복도 당시는 허술했다. 지금처럼 단열시공 없는 농촌 주택이라 생활에 불편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농사일 없는 겨울철은 산에 땔나무 실으러 다니기에 바쁘다. 집채 같은 나무 연료로 쌓아야 한해 농사철 땔나무 준비라고 했다. 콧물감기는 더운물 마시고 움직이면 사라진다. 특별한 치료 약 사용하지 않아도 벌꿀 한 숟가락 따뜻한 물에 타서 마시는 것이 약이었다. 벌꿀은 우리 집의 양봉에서 생산해 쉽게 사용한 일이다.
농촌에 연탄 공급이 시작되고 농사와 더불어 부업양계도 하게 되니 산에 나무 실으러 갈 시간도 바빠서 줄었다. 연탄으로 보일러를 사용하게 되어 땔나무 걱정도 덜게 되었다. 화학비료 구하기 쉬워지니 농작물 생산량에 획기적인 증산 요인이었다. 그 결과 지금의 쌀값이 천대받는 시절로 바뀌었다. 그렇게도 귀했던 쌀이 이토록 흔하고 싸다니 먹을 때마다 고맙게 느낀다. 값싼 전기와 석유와 비료가 노동력을 줄여서 생산비가 절감을 가져온 농기계 덕이다. 어려운 모심기와 탈곡까지 기계화가 쌀농사 짓지 않아도 쉽게 먹도록 혜택을 누린다. 과일 농사로 바꾸니 쌀은 농협에서 파는 쌀로 대신한다.
모를 심어보고 밟는 탈곡기로 작업해 본 사람은 농사의 중노동 고통을 절감한 기억이다. 내가 초등학교 졸업 때 마을 큰 일꾼이 하루 종일 계상 돌에 보리타작 매치기로 하루 품삯 겉보리 한 말 받아 가는 일을 보았다. 그토록 곡식이 귀하고 양식 걱정하던 시절도 있었다. 현재 쌀 상품 20kg 들이 6만 원이면 다른 물가에 비교해서 매우 싼 편이다. 손주가 받는 용돈보다 적은 금액이다. 보리밥만 먹을 때는 쌀밥이 고급 식품이라 귀하게 생각했다.
먹는 밥이 모자랄까 걱정에도 밥 얻어먹는 사람들이 아침마다 자주 왔다. 마을마다 형편은 같았다. 부족한 밥이라도 불평하지 않고 나누어 먹던 풍습이 기억에 아스라이 남는다. 쌀 천대 시절에 와서 보니 거지도 사라졌다. 정부가 지원하는 국민 보호정책 때문이다. 가난하면 국가 보호 대상자 의료혜택도 무료고 생활비도 지원받고 있다. 살다 보니 이처럼 살기 좋은 세월이 왔다는 사실이 고맙다. (글 박용 2025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