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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꽃길을 꿈꾸며
요즘은 아침 저녁으로는 서늘하고 쓸쓸한 느낌마저 드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입니다. 가을이라면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각자마다 생각키는 바가 다를 것입니다. 소슬바람이 부는 파아란 하늘과 들판에는 누렇게 익어가는 벼이삭이며, 빠알갛게 물든 단풍잎, 가을소풍, 누구나 모두 이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마음 뒤켠에는 켜켜이 쌓여 있는 추억의 똬리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가을의 대명사라고도 할만한 코스모스의 향기를 찾아갑니다. 2016년 10월 16일(일) 09시 51분에 위짜추 조단스 씨모우 까토나 넷이서 경의중앙선 구리역 1번출구를 벗어납니다. 바로 건너편에 넓게 자리잡은 구리공원이 시원스레 가꾸어져 있습니다. 조각상을 비롯하여 각종 구기종목의 경기를 즐길 수 있는 구장도 깨끗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일요일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이용하는 시민들은 눈에 띄이지를 않습니다. 주차장도 축구장만한 크기로 갖추어 있으나 역시 주차한 차량은 손꼽을 정도입니다. 주차비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으나 시민들이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으면 좋을텐데 하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주위 아파트의 주차공간이 충분한 여유가 있는 모양인지도 확인은 별무 간섭입니다. 남의 제삿상에 감을 놓든지 족발을 올리든지 뭔 오지랍인지 나도 모르겠습니다. 왕숙천 방향으로 내려섭니다. 흐르는 물 흐름의 색깔은 약간 검은 편이며 냄새도 그리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낚싯줄을 드리우고 한 마리의 물고기를 기다리는 강태공(江太公)이 아닌 천태공(川太公)의 그림도 보입니다. 낚은 잉어나 붕어나 장어나 물고기를 무엇에 쓰려는지도 묻고 싶습니다. 그리 깨끗한 개천은 아니며 2급수 정도로 좋지 않은 향기를 머금었을 물고기이기에 말입니다. 예전에 조선시대의 이 개천은 상당히 깨끗한 샘물과 같은 모습이었으라고 짐작됩니다. 조선초기의 이성계는 방석의 1차 왕자의 난을 겪은 후에 정종에게 왕위를 넘겨 줍니다. 왕업을 이루게 한 고향인 함흥이 그리워 궁궐을 떠납니다. 2차의 왕자의 난을 치루고 방원이가 태종 임금으로 왕권을 잡습니다. 태종이 10여명의 차사를 보내며 환궁할 것을 아뢰지만 분노한 이성계 마음을 돌릴 수는 없습니다. 함흥에 찾아 오는 차사마다 활을 쏘아 애꿎은 차사들만 모두 제물로 되고 맙니다. 여기에서 함흥차사(咸興差使)라는 단어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찾아온 친구마저 죽이지만 간곡한 그의 요청을 따르기로 마음을 잡습니다. 함흥을 떠나 오면서 이성계는 무학대사와 지금의 경기도 진접면 팔야리에서 묵게 됩니다. 그 때부터 그 마을 앞을 흐르고 있는 개울을 왕숙천(王宿川)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팔야리(八夜里)라는 마을 이름도 이성계가 여덟밤을 자고 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기도 합니다. 패전을 모르는 맹장이며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개국하는 시조(始祖)입니다. 하지만 고려(高麗)의 역사로 바라보면 대역죄(大逆罪)를 벌인 군사쿠데타의 원흉(元兇)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무관(武官)으로 다져진 육체와 용맹도 세월 앞에는 흐르는 물과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육십을 넘긴 나이에 자식 형제들 사이에 서로가 죽고 죽이는 왕자의 난(亂)을 바라보는 애비의 심정은 오죽 했겠습니까. 곤히 잠든 무학대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상념에 잠깁니다. 오늘밤도 하얗게 잠 못 이루며 뒤척이는 노(老) 상왕(上王) 이성계는 개울가로 향합니다. 밤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하게 수를 놓고 반달마저 선명하게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수양버들이 늘어진 개울가에는 목욕하고 있는 아녀자들의 웃음 소리가 노왕(老王)의 발걸음을 잡습니다. " 대감님이 오늘밤에 함께 하자고 하셨는데 어이하여 아니오시는지 모르겠네, 아이 참 " 바람이 잔뜩 들어간 여인네의 간드러지는 콧소리는 오늘 새벽에 들었던 바로 그 소리입니다. 새벽에 잠을 설친 노왕이 갯가에 도착해 보니 몇몇의 여인네들이 동이에 물을 담고 있습니다. 기침을 계속하고 있는 늙은이에게 바가지에 물을 가득 담아 올립니다. " 간밤에 대감께서 너무 과하게 용틀림을 하셨나 보옵나이다 " 수줍은 듯 얼굴을 외면하던 미색의 여인입니다. 얼른 바람결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뒤로 몸을 숨깁니다. 조요한 달빛은 개울물에 흩어지며 멀리서 들려오는 소쩍새의 구슬픈 울음 소리가 외로운 나그네의 마음을 휘저어 놓습니다. 흐르는 물줄기에 드러나는 매끄럽고 풍만한 젖가슴은 마치 반달을 엎어놓은 황홀함 그 자체입니다. 꽃순이 박순이 예쁜이 함하자 박아주 안아주 박지마 곽박아등의 수 많은 궁녀들에게 눈길 한번 보내지 않았던 왕이지만 뜨거워진 가슴을 억제키는 어렵습니다. 사회적인 지위와 체면은 잊어 버린지 순간이며 가슴은 쿵쾅거리며 맥박은 최고조로 치닫고 있습니다. 시야는 흐려지고 머리는 몽롱해지며 짜릿한 느낌만이 온 몸을 휘감습니다. 아랫도리가 부플어 오르고 축 쳐져 있기만 하던 물총이 사격자세에 돌입합니다. 두건을 벗어 던지고 윗도리를 벗고 아랫도리를 내리는 찰나에 묵직한 목탁소리가 뒷덜미를 낚아챕니다.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낭낭한 무학대사의 염불 소리는 가득히 차오르던 물바가지가 쪽박으로 깨어지고 마는 순간입니다. 이성계가 여덟밤을 보내고 떠난 그 이후로 바람에 나부끼던 버드나무 가지들은 하늘로 치솟고 간미수(姦未樹)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하늘에 별이 총총한 밤에 폭풍우를 동반한 천둥 번개가 몰아치며 간미수의 버드나무를 시커먼 재로 날려 버립니다. 맑은 밤하늘에서 때 아닌 날벼락이 덮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왕숙천의 물줄기가 시커멓게 보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조금 더 깊숙한 사연을 알려면 무무의 "조선별들의 전쟁" 십팔년(2018년도) 판(版)의 186 페이지 일팔육(一八六)편을 필독하시기 바랍니다. 어째거나 예나 지금이나 지위고하(地位高下)를 막론하고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숫컷들의 일탈 행위는 계속 진행형입니다. 암컷들의 요새를 별 볼일 없는 문어다리로 폭죽을 쏘고픈 헛 본능은 늙은이나 젊은 녀석들이나 오십보 백보입니다. 어쩌면 파렴치한 저들만이 주장하는 하나의 예술(?)이며 게임으로 ♂만이 갖고 있는 유전자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일설에는 왕숙천(王宿川)은 광릉에 단종애사(端宗哀史)의 총감독이며 연출가인 세조가 영원히 잠들어 있다고 하여서도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합니다. 왕숙천은 경기도 포천의 수원산에서 발원하여 내촌과 광릉내를 거쳐 남양주시 수석동과 구리 토평을 경계로 한강과 합류합니다. 왕숙천은 한강의 제1지류로서 발원지로 부터 한강과 합류하는 곳까지 거리는 38.5km 정도 되는 길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전거 전용도로와 보행로도 구분이 되여 있으며 일부 구간에는 생태습지가 보기 좋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조깅하는 사람과 열심히 걷는 사람도 자전거 패달을 신나게 밟으며 달리고 있는 청춘들의 모습도 보기에 좋습니다. 이 노객도 왕년에는 패달을 밟고 밟으며 남한산성도 한탄강까지도 섭렵을 하던 젊음이 있었습니다. 흐시기 소이서 도야흐 기즈시 등과 바람을 가르던 추억이 오늘 따라 새롭게 다가옵니다. 개천 한 가운데 바위 위에서 검은 왜가리 한 마리가 양쪽 날개깃을 활짝 펴고 반기고 있습니다. 일렁이는 한강물 위로는 운무(雲霧)가 잔뜩 찌프려 있으며 가랑비가 제법 내리고 있습니다. 민족의 젓줄인 한강의 발원지는 강원도 태백시에 있는 해발 1,418m인 금대봉의 800m 자락에서 출발합니다. 1억 5천만년 전의 석회암 동굴에 있는 소(沼)로서 바로 검룡소(儉龍沼)에서 분출하고 있습니다. 석회 암반에서 솟아 오르는 물줄기가 바로 497.5 Km에 달하는 한강의 본류천(本流泉)의 시발지(始發地)입니다. 태백시 황지동에 있는 황지연못은 영남지역을 통과하여 남해로 흘러드는 낙동강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옛날 황씨 성을 가진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스님에게 시주로 쇠똥을 주는 바람에 집이 갈아 앉아서 연못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낙동강은 한반도에서는 압록강 두만강에 이어서 세번째이며 남한에서는 525.15 Km로 제일 긴 강이기도 합니다.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이 한국의 4대강입니다. 4대강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젓줄이며 나라의 흥망성쇠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나라의 뼈대이며 근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4대강을 정비사업을 한답시고 4년 가까이 수십조원(22조원)의 엄청난 혈세를 쏟아 부어서 2012년도에야 완성이 되었습니다. 해마다 되풀이 되는 홍수 피해를 없애고 농공업 용수로 활용한다는 명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물의 흐름이 바뀌고 수중보(水中洑)로 하여금 흐름도 원할치 못하여 녹조마이 가득한 저수지로 전락합니다. 강바닥은 황폐화 되어 물고기는 떼죽음으로 떠오릅니다. 어민들은 생계가 막막하다며 울분을 토합니다.보(洑)라도 열어 제끼거나 아니면 철거하라고 목청을 높이지만 마이동풍(馬耳東風)으로 마이웨이입니다. 이게 바로 대한민국 정부의 현주소이며 대통령들의 횡포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백성 위에 군림하는 안하무인이며 불통(不通)의 극치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바뀌면 괜찮을까 하는 마음으로 선거에 임하지만 혹시나는 언제나 역시나이며 더 역시나입니다. 그러니 국민들의 불신은 극에 달하고 무관심으로 돌아섭니다. 막강한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퇴임 후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안도 강구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거나 4대강과 같은 중차대(重且大)한 사업은 반드시 국민 전체의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법적인 뒷받침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국회의원의 숫자도 대폭 100여명 정도로 감소시키고 사적(私的)인 특권도 모두 삭제해야 된다고 봅니다. 대통령 국회의원 장차관 고위공직자 판검사 대기업회장 과연 이들만이 인생의 꿈을 이룬 것이며 성공한 인간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참다운 성공의 기준은 자신이 원하던 목표를 달성하고 하고픈 일을 성실히 하고 있는 사람만이 삶의 성공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답이 없는 기준의 잣대로 오늘의 인물을 판단하거나 선입견은 버려야합니다. 인간은 모두가 다른 위치에서 다른 관점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위의 높고 낮음이나 경제적인 눈금으로 성공 여부를 쉽게 판단하는 어리석음은 이제 버려야합니다. 삶은 오로지 개인 자신만의 선택으로 한 평생을 살아야 하는 것은 변함이 없으니까 말입니다. 씨잘데 없는 생각으로 열을 올리면 나 홀로만의 혈압이 오를 터이고 건강에 마이나스입니다. 심호흡으로 강바람을 말초혈관까지 불어 넣어서 열을 끌어 내립니다. 조금씩 굵어지는 비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한강 상류를 바라봅니다. 팔당대교와 일천만 서울시민들의 생명수를 공급하는 팔당댐의 모습이 흐릿하게 시야에 들어옵니다. 한강을 경계로 팔당대교의 좌우로는 예봉산(683m)과 검단산(657m)이 마주하고 있으며 그 사이로는 경의중앙선이 뻗어 있습니다. 서울의 관문을 지켜주는 수문장으로서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하류 쪽을 바라보며는 강동대교와 암사구리대교 그리고 광진교 천호대교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팔당댐에서 흐르는 한강줄기는 왼쪽으로 완만하게 굽이치고 천호대교를 지나면서는 다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흐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강물은 지면의 높낮이를 따라서 자연의 상태와 조건에 순응하며 흐르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시냇물과 강물은 흐르고 흘러서 종착지는 끝없이 넓은 바다로 흡입됩니다. 계속하여 한강가의 산책로를 걷노라면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의 들판이 노객의 가슴을 시원하게 열어 주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아름다운 한강을 걷고 있는 이 노객들의 종착역은 과연 어디일까를 되씹어 봅니다. COSMOS(코스모스)는 우주, 천체를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며 국화과에 속하는 한해살이 꽃으로 멕시코가 원산지입니다. 가을꽃의 대명사이기도 하는 코스모스는 화려하면서도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토록 화려함의 뒤안길에는 왠지 모를 슬픔을 잉태한 가녀린 여인의 치맛자락으로도 비추어지고 있습니다. 빨강 하양 분홍 연분홍 보라 연보라 갖가지 색깔로 물들인 물결이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바라보면 무늬도 모양도 크기도 모두 제 각각의 특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냥 스쳐 지나가기만 하던 코스모스이건만 오늘 따라 새삼스러움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가을이면 당연히 코스모스의 꽃은 피는 것이라고 새로울게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평생을 가까이에서 언제나 어디서든 볼수가 있으며 접하던 꽃인데도 말입니다. 코스모스 군락의 곳곳에는 원두막이 설치되어 있어서 길손들을 쉬임터로 맞이하고 있습니다.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에 3계단 높이의 원두막으로 올라섭니다. 위짜추가 가져온 산삼주는 중간에서 미리 한잔씩 음복을 하였습니다. 산삼 배양근으로 주조된 산삼주가 달짝지근하게 목넘김이 부드럽습니다. 각자가 가져온 모시떡 감 삶은 오리알 귤 요구르트 초코렛 등으로 요기를 해결합니다. 오리알의 껍질을 벗기어 한입을 씹어 삼킵니다. 오리알 특유의 쫄깃한 식감과 비릿한 향기가 폐포 깊숙히 스며듭니다. 하늘거리고 있는 코스모스들 속으로 하얀 저고리에 하늘색 치마를 입으신 내 어머니의 모습이 보입니다. 별로 말씀은 없으시나 자식들에게는 언제나 웃는 모습의 인자한 어머니입니다. 평생을 살아 오시면서 자식들에게 야단은 고사하고 큰 소리도 한번 치지 않은 분입니다. 어머니는 봄이면 어김없이 집마당의 주위에는 언제나 여러가지 꽃씨들를 뿌립니다. 나의 집은 약수동에서 동호대교로 가는 중간에 금호터널을 통과하면 전철 3호선 금호역이 있습니다. 3번 출구를 나와서 높은 비탈길로 오르기 시작하면 바로 왼쪽에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자그마한 개울이 흐르고 왼편에 10미터 정도 높은 위치입니다. 대지는 일백여평 정도였으며 현재는 현대식 단독주택으로 되었습니다. 누가 무엇을 하는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냥 지나칩니다. 내 나이 열다섯 살 1958년부터 1974년도 까지 아들 첫돌이 막 지나서 이곳을 떠났습니다. 아들 딸이 40대 중반으로 치달으니 사십년이 훌쩍 흘러간 세월입니다. 집이라고 해야 옥수수대나 수수깡을 새끼로 엮어 세우고 그 위에 흙으로 덮어 씌웁니다. 그리고 지붕은 석가래를 올리고는 천막을 그 위에 깔고 그 때 말로는 타마구(콜타르)를 발라 놓습니다. 비가 새지 않게 바른 타마구는 여름이면 녹아 내려서 집안은 숨이 턱턱 막히는 찜통이 됩니다. 겨울이면 머릿맡에 떠놓은 자릿기물이 꽁꽁 얼어 버리고 맙니다. 얼굴을 덮었던 이불 주위에는 입김이 얼어 붙어서 뻗뻗한 고두름과 같습니다. 그래도 두 칸방에 어머니 아버지 누님 두분과 남동생 여섯 식구의 보금자리입니다. 그것도 1.4후퇴 피난 내려온 후에 중학교 일학년 때의 7년만에 생긴 호화주택입니다. 처음 피난간 대전에서 판잣촌 단칸방으로 5년, 현재 서울 중부시장 자리의 판잣집 단칸방 살이 2년 뒤에 마련한 대궐입니다. 내 어머니는 봄이면 봄 마다 채송화 봉숭아 분꽃 나팔꽃 맨드라미 국화 박 옥수수 호박 금잔화 해바라기 그리고 코스모스를 심습니다. 해당화는 대문 옆에 넝쿨장미는 담벼락을 따라서 심겨져 있습니다. 나비와 벌들이 수시로 꽃잎 속을 날아들며 집안에는 꽃밭으로 가득하곤 합니다. 가을이면 하늘거리는 코스모스를 바라보면서 옥수수 호박을 따서 삶아 먹기도 합니다. 여름철에는 새빨갛게 활짝 핀 넝클장미가 담장을 넘어서 장미숲이 되곤합니다. 가끔은 지나던 사람이나 건너편에 살고 있는 주민들도 집으로 찾아 들기도 합니다. 장미꽃이 너무 아름답기에 구경하러 왔다며 마당 가득한 꽃들에 탄성도 지릅니다. 이토록 꽃을 좋아 하시고 가꾸고 하시던 내 어머니입니다. 가시밭 길 같은 이북에서의 시집살이와 피난살이가 오죽이나 힘들었을런지 짐작하기도 어렵습니다. 40여년 전에 지금 내 나이 즈음에 저 세상으로 떠나가신 내 어머니입니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지며 온몸이 저려옵니다. 용돈 몇푼 드리지 못하고 여행 한번 비행기 한번 태워 드리지도 못한 이 못난 녀석의 내 어머니입니다. 어느 누구의 자식들도 똑 같은 생각이겠지만 시간은 인간을 위하여 기다려 주지를 않습니다. 말씀이 없으신 내 오마니의 희망과 소원은 남북통일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로지 자식들 잘 되기만을 위하여 뒷켯 장독대에 정한수 올리고 빌고 빌고 빌었습니다. 폭풍한설이 몰아치는 까만 새벽에도 손발이 얼고 부르트도록 하늘을 향하여 숨이 턱에 차도록 기원합니다. 이런 어머니의 애닲은 모습을 어렴풋이 새벽 잠결에 알게 됩니다. 어린 내 가슴에는 알 수 없는 슬픔과 분노가 샘 솟습니다. 그 때 이후로 나는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면 뒷 동산에 오릅니다. 달을 바라보며 약속에 맹세를 거듭하곤 합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공부를 더욱 더 열심히 하여 반드시 꿈을 이룰 것이라고 성공을 하고 말것이라고 말입니다. 꿈은 무엇인지 확실치는 않았지만 다급한 마음으로 무조건 다짐을 하곤 했습니다. 지금 나의 모습이 내 어머니에게는 어떻게 보일런지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이토록 자식만을 위하며 자신의 삶을 포기하신 내 어머니입니다. 코스모스 향기를 못 잊어서 이 못난 아들이 있는 한강으로 찾아 오신 모양입니다. " 오마니 !, 언젠가는 통일이 오는 그 날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입네다. 내래 고향을 찾아 가시는 오마니의 걸음 걸음 마다 당신이 좋아 하시던 코스모스 꽃길을 꼭 만들어 드릴거야요, 그저 그날까지 몸 성히 잘 계시라우요, 오마니 ! 보고싶습네다. 아들 딸 손주 증손주 모두 잘 있으니꺼니 걱정 마시라우요 " 스치던 비바람도 잦아 들고 노객의 소원은 허공을 가릅니다. 원두막에서 내려와서 흐시기가 기다리고 있는 광나루역 1번 출구로 향합니다. 광진교 근처에 있는 회식 장소로 위짜추 씨모우 조단스 흐시기 까토나 다섯이 찾아 듭니다. 씨원한 쐬주 한잔과 권주가에 답답한 마음을 담아서 날려 보냅니다.
2016년 10월 21일 무 무 최 정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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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항상 카토나의 성의있는 리더와 열심히열과성의를다해 기록해주는 것에대해 고마음을 많이느끼면서~~ 2016년10월16일09시51분 카토나,씨모우,조단스,그리고 나랑넷이서 경의중앙선 구리역 1번출구에서 만났다. 밖을나와 역주변을보니 농구장, 일반공원.주차장등 정리정돈이 잘되어 선입관이 아주좋았다. 조금걸어 왕숙천:(한강의 제일지류로길이는38.5킬로미터,포천시내촌면신팔리에서발원하여남양주시와 구리시를거쳐 한강에합류하는 하천)
을따라 지자체에서 성의껏 잘키운 코스모스 꽃길을발부며 그곳에서 멋지게 사진도몇컫을 하며 가져온 간식도 이곳에서 맛있게 들 먹었다.이렇게 정리정돈을 잘된 것을보니 지자체의 위럭이 돋보이며 아주좋았다. 그리고 항상느끼는 것이지만 지하철이 가는곳마다 구석구석 빠짐없이 발전해 나가는 우리강산의 모습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흐뭇해보여 내자신이 괜히 우쭐해보이고 대한민국 국민이된것이 정말 자랑스러윘다. 내가항상 입버릇처럼 얘기하지만 우리나라는 정말 세계에서 가장아름다운 나라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백년지기 행복걷기회 회원여러분!
오는 길에 5호선 광나루 역에서 흐식이를 만나 다섯명이 각자의 기호에 맞는 술과 식사로 하루에 누적된 피로를풀며 즐거운 하루를~~~2016년10월23일. 싸이 이부춘. ###나는사실상 왕숙천이라는 하천은 정말 몰랐고 그날처음 알았습니다. 옛날부터 알게된 하천은 중랑천: (종랑구면목동에 있으며경기도와서울을 아우르는하천. 경기도양주시에서 발원하여 의정부와서울특별시 성동구를지나 한강으로 유입하는 하천) 뿐 이였습니다. 우리회원들과 함께하니 정말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안 녕!
댓글하면 위짜추네요 열심히빠지지 않고 모임에 합류하는 모습도 좋구요 긍정적으로 사는 모습 더욱 좋습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