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5대 교황 베네딕토 16세. 독일 바이에른 출신으로 본명은 요제프 알로이스 라칭거(Joseph Alois Ratzinger)입니다. 이분의 화려한 약력에도 드러나듯이, 현시대 최고의 신학자이자 정통 교리의 수호자였습니다.
지난 2008년에서 2013년,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각각 바오로의 해, 사제의 해, 신앙의 해를 선포하여 교회의 내적 쇄신을 위한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교황이 성경 인물이나 특정 지향을 앞세워 기념하는 해를 제정하고 선포한 일은 드문 경우입니다. 물론, 이후에 프란치스코 교황 또한 이러한 지향을 이어받아 ‘자비의 희년’을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을 되찾기 위한 신앙의 본질회복, 내적 쇄신을 부르짖었던 분이었습니다.
그 중 ‘사제의 해’를 보내던 때에 교회에 큰 놀라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사제들에게 축복의 시간이 돼야 할 이 기간에 미국과 아일랜드 등 서구교회 곳곳에서 사제들을 둘러싼 성추문 사건이 터졌고, 물론 그 중에는 사실로 밝혀지고 교회가 반성해야할 일들도 적잖이 있었지만, 마치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수많은 모함과 금전적 이익을 얻기 위한 움직임들이 판을 쳤습니다. 사제의 해에 오히려 사제 문제 때문에 교회가 위기감을 느끼게 될 만큼 어려움을 겪었고, 여론의 질타와 신자들의 실망감은 그 누구보다 교황을 곤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교황은 언론과의 대담에서 “악마가 사제의 해를 참고 볼 수 없어서 우리 얼굴에 오물을 내던진 것 같다.”고까지 밝혔습니다.
맡은 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어쩌면 죄의 나약함으로 교회에 상처를 입힌 사제들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사제들이, 사제라는 이유만으로, 교회라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공격을 받았고, 그 아픔과 무게를 이기지 못한 많은 사제들이 스스로 교회를 떠나면서 그야말로 ‘사제의 해’에 사제와 교회가 흔들리는 아이러니한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 때 이미 예정된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사제들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통상 교황의 연설문은 미리 작성이 되고 여러 차례 교정작업을 거치는 관계로 그 원고도 교황청 공보실에서 미리 가지고 있다가 연설이후 바로 그 내용이 공개되곤 합니다. 그런데 그 날은 달랐습니다. 교황은 미리 준비된 원고를 곧장 접어두고는 자신이 하고 싶은 솔직한 말과 심정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교회가 겪고 있는 아픔들, 그리고 교회의 최고 목자로서, 인간적 나약함으로 우리 교회가 저지른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하며, 그 자리에 있는 사제들에게 진심으로 이야기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고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제 여러분, 지금 그 누구보다 사제들 여러분이 힘들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제는 하느님의 현존을 가장 본질적으로 드러내는 존재입니다. 부디 흔들리지 마시고 여러분에게 맡겨진 직무에 최선을 다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합니다. 화살은 제가 다 맞겠습니다. 제가 여러분과 교회의 방패가 되겠습니다.”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던 베네딕토 교황의 모습은 모두에게 낯설기만 했습니다. 신앙교리성 장관시절부터 ‘철갑 추기경’이라 불릴 정도로 강인한 이미지로 인식된 베네딕토 교황의 눈물은, 그 어느 누구의 눈물보다 서글퍼 보였습니다.
사실 베네딕토 교황은 흔히 알려진 보수적이고 강인한 이미지만이 아닌, 인간적이고 따뜻한 면모를 갖추고 교회의 쇄신을 외쳤던 분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변화에 앞장서는 진보적 이미지의 프란치스코 교황과 대비시켜 베네딕토 교황을 보수적 이미지로 묶어두려 하지만, 이는 사실 그 분에 대한 단편적인 이미지만 부각시키는 오해입니다.
1954년부터 신학교수로 강단에 선 그는 젊은이들의 말에 귀를 가장 잘 기울이는 신부로 인기를 끌었고, 그의 강의실은 늘 학생들로 빼곡했습니다. 개혁 진보 성향의 신학자로 통할만큼 경직된 교회의 권위주의를 서슴없이 비판했습니다.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막하자 신학 자문위원 자격으로 공의회 모든 회기에 참여하여, 개혁과 쇄신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훗날 교회 안에서는 “라칭거가 참석하지 않았더라면 공의회가 쇄신의 씨앗을 뿌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공의회에서의 활동을 토대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배경과 과정, 공의회 정신을 설명하는 해설서를 내기도 하며, 개혁과 쇄신에 앞장섰던 신학자였습니다.
오히려 이런 분이 보수적인 이미지로 각인된 것은 오히려 70년대부터 유럽사회에 불어닥친 광신적 이데올로기의 영향이었습니다. 오히려 신앙과 교회의 가르침이 남용되면서 다원주의, 세속주의, 무신론의 도구로 전락해버리는 현실 속에서, 이러한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세상의 유혹에 위협받지 않기 위해서는 정통 가르침에 충실해야 한다는 신념 하에서, 참된 개혁과 쇄신은 ‘신앙 본질의 회복’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는 현재 우리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의 상황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신앙교리성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20세기 말부터 팽배한, 사상과 문화의 혼돈 속에서 가톨릭 신앙의 정통성을 수호하며, 가톨릭교회를 흔드는 시도에 대해서는 한치의 타협도 허용하지 않는 강인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2005년 교황에 즉위한 베네딕토 16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계승자로 현대 세속주의와 물질주의, 반 생명주의 문화의 혼돈 속에서 가톨릭 신앙의 정통성을 지키는데 헌신했습니다. 원칙을 강조하는 가톨릭 신학자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평화의 사도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교황은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다름을 이해하며 다가갔고, 기존 가르침을 지키면서도 차이를 인정하고 대화했습니다. 무엇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가르침을 현대 교회의 나침반으로 삼아 교회 쇄신과 개혁에 주력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3년 2월 11일. 교황직을 사임하겠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교황은 이날 “이 교황직 사임의 중대성을 잘 의식하고 완전한 자유로 베드로 성인의 후계자인 교황의 직무를 사퇴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오히려 이 교황직 사임은 “도피가 아니라 봉사직에 충실히 머무는 또 다른 방식”이라고 했습니다. 베네딕토 교황의 사임 발표에 교회는 물론 전 세계가 당혹감과 충격을 금치 못하면서도 교황의 용기 있는 결단에 존경과 지지를 표시했습니다. 그리고 후임교황을 위해 바티칸을 떠났다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초대에 다시 바티칸의 작은 수녀원으로 돌아온 그는, 교회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필요할 때에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삶을 보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주일 삼종기도 때 말한 것처럼 분명, ‘복음과 교회에 충실했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선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처럼 교회와 하느님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교황, 세상에서는 요제프 라칭거의 이름으로 살았던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천상으로 떠나는 길을 배웅하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교황의 유언장 일부를 함께 나누며,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하느님 곁에서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합시다.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선의 분배자이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당신께서는 제게 생명을 주셨고, 여러 가지 혼란스러운 시기를 만날 때마다 인도해 주셨습니다. 제가 미끄러져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으켜주셨고 언제나 당신 얼굴의 밝은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저는 제 삶을 돌이켜볼 때마다 깨닫습니다. 삶의 여정에서 어둡고 힘든 구간을 만날 때마다, 그것이 제게 구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바로 그 여정을 통해 저를 좋은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주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또한, 하느님 백성 모두가 저에게 베풀어 주신 모든 은총에 감사합니다. 여러분, 믿음을 굳게 지키십시오. 마지막으로 겸손되이 청합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제가 지은 모든 죄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저를 당신의 영원한 거처로 맞아주시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주님, 교황 베네딕토를 주님의 자비에 맡겨 드리나이다. 사랑으로 교회를 다스렸던 주님의 종들의 종 베네딕토를 위하여 바치는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주님과 함께 천상의 영원한 기쁨누리며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첫댓글 베네딕토 교황님을 다시 생각하게 일러 주심에 감사합니다~
본연에 충실 하라는 말씀 가슴에 새기겠읍니다~
예전에 cpbc에서 방영한 「우리시대의 교황님」 중에 베네딕토 교황님께서는 철갑 추기경, 탱크 추기경이라 불리셨지만 따뜻하고 부드러운 분이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많은 것을 감내하셨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신부님의 미사 강론 말씀 중에도 교황님의 그런 모습을 알려주시네요. 그렇게 제 맘에 특별하게 새기고 있었던 교황님께서 선종하셔서 더욱 슬펐습니다. 교회와 하느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셨던 베네딕토16세 교황님께서 천상의 영원한 기쁨과 평화의 안식 누리시도록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베네딕토 교황님을 다시 생각하게 일러 주심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