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무경운 벼농사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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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무경운 벼농사의 세계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무경운 벼농사에는 크게 나눠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방법입니다. ‘짚 한 오라기의 혁명’과 ‘자연농법’이란 책에 잘 소개가 돼 있는데, 그 두 책을 읽은 분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쌀보리 갈지 않고 이어 곧 뿌리기’라고 합니다. 한자로는 미맥연속불경기직파米麥連續不耕起直播라고 하는데, 여기서 불경기란 무경운과 같은 말입니다. 땅을 갈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방법의 농작업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집니다. 10월 상순에 익은 벼이삭 위로 클로버 씨앗을 뿌립니다. 중순에는 보리 씨앗을 뿌리고, 하순에 벼를 벱니다. 그리고 11월 하순에 볍씨를 뿌립니다. 이 때 볍씨는 진흙경단으로 만들어 뿌립니다. 벌레나 들쥐와 같은 논 생물 피해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볍씨를 뿌린 뒤에는 탈곡을 마친 볏짚을 골고루 펴서 덮습니다.
클로버 씨앗을 뿌리는 까닭은 풀 때문입니다. 클로버는 보리와 함께 싹이 터서 자랍니다. 클로버는 다른 풀이 나서 자라는 것을 막아줍니다. 이초제초, 곧 풀로써 풀을 없애는 전략입니다.
보리를 벤 뒤에는 벼를 키우기 위해 논에 물을 대야 하는데, 물을 대면 클로버는 죽거나 세력이 크게 약화됩니다. 한편 클로버와 달리 벼는 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잘 자랍니다. 후쿠오카 마사노부는 ‘짚 한 오라기의 혁명’에서 이 방법은 소개한 뒤 이어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 이보다 간단한 쌀과 보리 농사는 아마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간단하다는 점에서는 틀린 말이 아니지만, 쉽지 않습니다. 클로버로 풀을 제어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풀은 힘이 셉니다. 그래서 벼농사에서는 아직 아무도 직파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고,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이 방식 또한 아무도 잇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이 아닙니다. 전 세계가 그렇습니다. 갈거나, 제초제를 치면 물론 가능합니다. 하지만 무경운에서는 그렇습니다. 아무도 못하고 있습니다. 풀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무경운 모 길러 내기’입니다. 이 방법은 가와구치 요시카즈라는 이가 찾아냈습니다. ‘자연농 교실’과 ‘신비한 밭에 서서’에 소개돼 있는데, 이 방법은 직파가 아닙니다. 모를 기르고, 그 모를 갈지 않은 논에 심습니다. 논에는 모내기 철이 되면 풀이 크게 자라 있는데, 그 풀을 밟아 눕히거나 모판을 밀고 가며 풀을 눕히고, 그 위에 톱낫으로 한 포기 한 포기 심어 나갑니다. 못줄을 치고, 간격에 맞춰 모를 심어나갑니다.
누구나 할 수 있고, 수확도 안정적인데, 이 방법으로는 너른 면적 재배가 어렵습니다. 이 방법은 자급에 맞을 뿐 전업 벼농사 농가로 살기가 어렵습니다. 그 까닭은 하나입니다. 모내기에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넓은 면전 재배가 어렵다는 것이 큰 약점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이 ‘동기담수무경운이식재배冬期湛水不耕起移植栽培’입니다. 이것은 이와사와 노부오岩沢信夫라는 이가 찾아낸 방법입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지만 공부하고 연구하는 농부였습니다. 처음에는 수박 재배법에서 성취가 있어서 전국으로 불려다녔습니다. 그 과정에서 알았다고 합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 보았다고 합니다. 역시 논이었다고 합니다. 산이 이어지다 들이 나타나는데, 그 들을 논이 차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논경지의 대부분이 논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논농사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합니다. 책을 읽는 농부였기 때문에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책을 읽었고, 그가 말하는 무경운이라야 한다는 데는 동의가 됐지만, 그의 방법만으로는 농부가 먹고 살기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새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것이 동기 담수, 곧 겨울철 물 대기이고, 다른 하나는 무경운 이앙기의 개발입니다. 넓은 면적 재배를 위해서는 그 두 가지가 필요했습니다.
동기담수, 곧 겨울철 물 대기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하나는 김매기입니다. 물을 20cm 이상 대면 풀이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무비료의 문제입니다.
이와사와의 방식에서는 컴바인으로 벼를 벱니다. 너른 면적 재배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나오는 볏짚은 전량 논에 펴고, 물을 댑니다. 그러면 그 볏짚을 먹이로 겨울과 봄까지 수많은 수생동물, 미생물이 삽니다. 나고 죽고, 먹고 쌉니다. 그 양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특히 실지렁이가 많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것들의 똥과 주검이 3cm 내외까지 쌓이고, 그것을 먹고 벼는 잘 자랍니다. 화학비료는 물론 퇴비도 필요 없습니다. 소위 무비료입니다.
모내기를 할 때는 논에 물을 뺍니다. 물을 빼고 모내기는 이앙기, 곧 모내는 기계로 합니다. 무경운 이앙기입니다. 갈지 않은 논에도 벼를 심을 수 있는 이앙기입니다. 이렇게 모내는 기계를 쓰기 때문에 대규모 벼농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평야지대의 벼농사는 모든 농부가 물도랑을 함께 쓰기 때문에 겨울에 혼자서 물을 대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곳은 모두가 함께 해야 하는데, 그것이 겨울철 풍경을 바꾼다고 합니다. 수십, 혹은 수백만 평이나 되는 논에 겨울철에 물이 있습니다. 호수와 같습니다. 물을 좋아하는 겨울 철새가 그곳을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울 겁니다. 논에는 벼 이삭이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종의 수생동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쇠기러기 등이 날아온다고 합니다. 그 수가 수만에 이르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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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제가 하는 벼농사 방법은 두 번째 것입니다. 저는 자급 농부이기 때문입니다.
저희 집 벼농사는 아주 작습니다. 산에 살기 때문입니다. 30평쯤 됩니다. 그렇습니다. 삿갓 배미입니다.
그 전에는, 다른 곳에 있는 400평쯤 되는 논에서 논농사를 지었지만, 산에 집을 짓고 이사를 오며 가까운 돈에 논을 만들었습니다. 작년 가을에 만들었습니다. 그 전에는, 오래 전 일입니다만 부모님이 벼농사를 짓던 곳입니다. 산인데도 물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정말 삿갓 배미였습니다. 그것을 작년에 굴삭기를 불러 넓혔습니다. 그래봐야 30평쯤입니다.
산 위라서 물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만든 논에 물이 고이더군요. 가물 때조차 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신기하고, 또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골짜기가 작고, 또 높은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소위 캐치먼트 에어리어Catchment Area, 곧 집수지 크기가 얼마 안 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 크기를 보면 비록 작기는 하지만 그 논에 물이 고이는 것이, 가뭄에도 물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 놀라운 논입니다.
그 논의 논둑이 올해 큰비가 내릴 때 무너졌습니다. 그 흙으로 논의 3분의 1이 덮여버렸습니다. 산짐승도 들어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노루나 고라니라는데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이 또 3분의 1은 쓰러뜨렸습니다.
그래도 자급에는 걱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벼에만 의지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산에 살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강원도는 산이 많습니다. 밭이 많은 까닭입니다. 강원도, 혹은 강원도 사람을 감자바위라고 합니다. 감자 농사를 많이 짓기 때문인데, 산에 사는 사람은 감자를 주식으로 삼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오래된 삶의 방식입니다. 산악 지역에 사는 사람은 저류藷類를 주식으로 삼았습니다. 감자, 고구마, 마, 야콘, 토란 등을 저류라고 합니다. 藷는 덩이뿌리를 뜻하는 말이므로, 우리말로 하면 저류는 ‘덩이뿌리 무리’쯤이 됩니다.
일본어에서는 우芋라는 한자를 쓰고, ‘이모’라고 읽습니다. 같은 뜻입니다. 덩이뿌리를 뜻합니다. 일본어에서는 덩이뿌리 작물은 모두 이 ‘이모’라는 글자를 붙여 씁니다. 예를 들면 감자는 쟈가이모입니다. 고구마는 사츠마이모입니다. 토란은 사토이모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우芋 대신 저藷나 서薯를 쓰는 사람도 있는데, 모두 같은 뜻입니다.
들에서는 벼농사를 짓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들에서는 벼농사, 곧 도작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하지만 산에서는 그것이 어렵습니다. 산에서는 감자나 고구마가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산에서는 저류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저희 집에서는 그런 까닭에 이렇게 주곡을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감자+고구마+옥수수+밤+쌀
감자와 고구마 농사는 쉽습니다. 올해도 많이 주셨습니다. 옥수수는 씨앗을 겨우 건졌습니다. 산짐승이 다 가져갔습니다. 밤 철에는 행복했습니다. 한 달 넘게 세 끼를 밤만 먹었습니다. 밤과 밥이 있으면 곁지기는 밤을 먹습니다. 저도 밤을 먹습니다. 더 맛있기 때문입니다. 소화도 더 잘 됩니다. 힘이 덜 나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감자와 고구마도 같습니다.
아닙니다. 그렇다고 논농사를 그만둘 생각은 없습니다. 곧 무너진 논둑을 고치고, 울타리도 칠 생각입니다. 그때 논 한 귀퉁이에 작은 연못을 만들려고 합니다. 논 생물을 위해섭니다.
벼농사를 지으려면 때로 물을 빼야 합니다. 그럴 때 논 생물이 숨을 곳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논이 벼농사만을 위한 곳이, 저희만을 위한 곳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수생 동물의 천국이기 되기를 바랍니다. 가능합니다. 갈지 않기 때문입니다. 농약을 일절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탈곡을 끝낸 볏짚은 모두 돌려주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벼농사 직파에 성공한 사람이 없군요. 혹시 진흙경단으로 직파해본 적은 없으십니까?
그리고 클로버 외에 다른 녹비를 써본 적도 있으신지 알고싶습니다.
안녕하세요. 궁금한 것이 후쿠오카 마사노부님의 벼농사방식을 일본에서도 따라못하고 있다는거네요?.
그러면 후쿠오카 마사노부님의 생전(?)에는 그 방식으로 벼농사가 잘 되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