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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홀로 떠난 남도여행 . 여행일 2011. 11. 12-11. 14(음 10. 17-19) . 여행 한 곳 담양 메타쉐콰이어길, 선암사-굴목재-송광사, 순천만, 낙안 금전산 . 함께 여행한 사람들 홀로 . 여행지 가고 오는 대중교통 . 서울(센트럴시티)-담양 : 1일 2회, 10:10분차를 탔음. . 담양-광주터미널 : 311번 시내버스 수시로 있고, 시외버스도 있음. . 광주-순천터미널 : 05:40-23:00까지 20분 간격, 1:10 소요 . 순천-선암사 : 순천역통과하여 터미널 경유 선암사행 1번 시내버스 이용, 06:00-22:00까지 40분 간격 25회 운행, 30분 소요 . 송광사-순천 : 송광사에서 터미널 경유 순천역을 통과하는 111번 시내버스 이용, 05:45-22:10까지 21회, 1시간 20분 소요 . 순천-순천만 : 순천역 통과하여 터미널 경유 순천만을 지나가는 67번 시내버스 이용, 25분 간격, 터미널에서 30분 소요 . 순천만-금전산 : 순천역 통과하여 터미널 경유 낙안읍성으로 가는 61번(5회), 63번(10회), 68번(9회) 이용, 순천만에서 67번 버스 승차한 후 청암대 정류장에서 내려 63번 버스 이용 금전산 불재에서 하차하였음. . 낙안읍성-순천 : 63번 시내버스 이용 . 순천-영등포 : 기차 수시로 있음. 4시간 50분 소요 , 12:28분 기차 이용하였음.
. 여행 코스별 소요시간 . 11. 12. 10:10 강남터미널 출발 담양 메타쉐콰이어길 들린 후 광주경유 21:10 선암사 주차장 도착 . 11. 13. 08:30 선암사 계곡 야영지 출발 선암사-작은굴목재-송광사-순천만 여행 20:40 금전산 불재 도착 . 11. 14. 09:00 금전산 야영터에서 출발 금전산 산행 후 낙안읍성 경유 12:05 순천역 도착 17:16 영등포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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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답사여행’이라는 새로운 장을 열었던 유홍준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첫 머리 화두는 “아는 만큼 보인다”입니다 꼭 토를 달자면 나는 이 화두에 덧 붙여서 "아는 만큼만 보인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알면 어쩔 것이며, 모르면 또 어떤가요
알고 모르고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무작정의 여행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보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이 가을을 가슴에 담으며 걷고 싶어 배낭을 꾸렸습니다
문화유산을 보러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답사라고 할 수도 없고 가고자 하는 곳이 이 가을에 가 볼만한 곳일 뿐입니다
여행을 떠나면 그 고장의 먹거리를 맛보는 재미도 있다하던데 혼자 먹는 음식이 얼마나 맛이 있겠습니까 편안한 잠자리와 맛있는 음식은 제쳐두고 텐트치고 야영하면서 자연과 함께 지내는 여행을 떠납니다
. 여행 사진 담양의 메타쉐콰이어길은 1970년대 초반 전국적인 가로수 조성사업 당시 내무부의 시범가로로 지정되면서 3~4년짜리 묘목을 심은 것이 지금은 하늘을 덮고 있는 울창한 가로수로 자라난 것이다.
2002년 산림청과 생명의 숲 가꾸기 국민운동본부가 ‘가장 아름다운 거리 숲’으로 선정한 곳이기도 하다. 길 가운데에서 쳐다보면 영락없는 영국 근위병들이 사열하는 모습으로 질서정연하게 사열하면서 외지인들에게 손을 흔들어 준다. 담양 터미널에서 순창 방향으로 시가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메타길이 시작되기 때문에 도보로 이동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조금만 유명세를 탔다하면 어느 곳이든 휴일날은 발 디딜 곳이 없습니다 이 곳 담양의 메타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메타길의 초입이 시작되는 곳은 마치 장터를 방불케하는 수 많은 인파로 붐비고 있었고, 사진은 메타길의 맨 끝 부분 조금 한가한 곳입니다
2. 붐비는 메타길을 뒤로하고 터미널 부근의 음식점에서 선지해장국으로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담양의 먹거리로는 떡갈비나 대통밥이 유명하지만 원래 식도락과는 거리가 멀기도 하지만, 오늘 밤 순천 조계산의 선암사에 가려면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습니다 이왕에 나선 여행길 좀 느긋하게 다닐법도 한데 오늘의 일정은 어쩔수가 없습니다
광주에서 담양터미널을 거쳐 죽녹원까지 수시로 왕복 운행하는 311번 시내버스를 타고 광천터미널로, 다시 광천터미널에서 순천까지는 고속버스를 이용합니다
광주-순천간 고속버스는 20분 간격으로 운행되지만 휴일이라서 제일 빠른 버스가 1시간 20분 후에 있었으나 버스 타는 곳에서 줄 서서 기다렸다가 다행히 빈 좌석이 있어 40분 빨리 순천행 버스를 탔고 순천에서 다시 선암사행 버스를 타고 캄캄한 밤에 선암사 주차장에 내립니다
매표소의 불도 꺼진 어두운 밤길을 타박거리며 계곡을 따라 선암사까지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다가 넓은 공터의 한쪽 편편한 곳에 오늘 밤의 보금자리를 짓습니다 승선교 부근에 헝겁집을 지을까도 생각했지만 여행길에 빠질 수 없는 이슬이와 기름냄새가 부담스러워 경내에서 조금이라도 먼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헝겁집을 짓고 난 후 복덩이가 양념해 준 찌게를 끓입니다 나무가지 사이로 비치는 음력 17일밤의 환한 둥근달 아래에서 이슬이와 함께 늦은 가을 밤을 지냈습니다 선암골을 졸졸 거리며 흐르는 물소리를 풍악소리삼아...
새벽부터 절간을 찾는 불자들의 두런거리는 소리에 선암사 계곡에서의 단잠을 깹니다
선암사는 백제성왕 5년인(527)년 현재의 비로암지에 초창주 아도화상(阿度和尙)께서 선암사를 창건하였고, 산명을 청량산(淸凉山) 사찰명을 해천사(海川寺)라 하였다.
정유재란과 조선 영조 35년의 큰 화재로 인해 소실 된 것을 여러번의 중창불사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19년 본발사법에 의하여 전국사찰을 30본산으로 지정했을 때 선암사는 전남의 4본산 중 하나로 지정되어 순천,여수,광주지역의 사찰을 관장하였다.
강원과 선원에서 수많은 스님들이 수행정진하는 종합수도도량의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3. 이른 아침 산사를 찾은 아빠와 아들의 모습이 정겹습니다
승선교(보물 제400호)는 선암사(仙岩寺)의 부도군(浮屠群)을 지나 경내(境內)에 이르면 이곳 주산(主山)인 조계산(曺溪山) 계류(溪流)를 건너야 되는데 이 건널목에 놓인 다리가 바로 승선교 (昇仙橋)이다. 계곡(溪곡)이 넓은 편(便)이나 이 승선교(昇仙橋)는 한개의 아치로 이루어진 무지개 모양으로 아름답게 놓여져 있다.
조선 숙종 24년 호암대사가 관음보살의 모습을 보기를 바라며 백일기도를 하였지만 그 기도가 헛되자 낙심하여 벼랑에서 몸을 던지려하는데 이때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하고 사라졌다. 대사는 자기를 구해주고 사라진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을 세워 관음보살을 모시는 한편 절 입구에 아름다운 무지개 다리를 세웠다고 한다.
강선루는 선암사의 출입용 문루역할을 하는 팔작지붕의 층층누각으로 사찰의 실질적인 영역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주 진입로를 가로지르는 계곡에 서 있으며, 일반적인 사찰과는 달리 누문이 일주문 밖에 서 있어 흥미롭다.
4. 승선교와 강선루입니다 단풍이 들었을 때에 많이 찾는 곳인데 낙엽진 늦 가을에도 참 좋습니다
선암사 선암매(仙岩梅)는 원통전.각황전을 따라 운수암으로 오르는 담길에 50여주가 있다 원통전 담장 뒤쪽의 백매화와 각황전 담길의 홍매화가 천연기념물 제488로로 지정되어있다
문헌에 전하는 기록이 없어 수령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사찰에서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약600여년 전에 천불전 앞의 와송과 함께 심어졌다고 전하고 있어 선암사의 역사와 함께 긴 세월을 지내 왔음을 알 수 있다
매화꽃이 필때면 매화를 보기 위해 선암사를 찾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나무 중 생육상태가 제일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5. 선암사 각황전인 종정원 옆 담을 따라 심어져 있는 수령 600여년의 선암매입니다
6. 마침 천도재를 올리고 있었는데 스님들이 바라춤을 추고 있습니다 흔히 보지 못하는 영산재 의식을 잠시 동안이나마 볼 수 있는 행운을 가졌습니다
7. 작은 연못에 수 많은 작은 소망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선암사 해우소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문화재로 지정된 뒷간인 선암사 해우소는 그 생김새부터가 눈길을 잡아끈다. ‘정(丁)’자형으로 우아하게 들어앉은 모습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생긴 화장실’답다.
거꾸로 읽으면 뒤깐이고, 제대로 읽으면 깐뒤이고, 또 어떻게 보면 싼뒤이다
뭘 까고 뭘 싸는 것일까, 근심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 그야말로 승속이 여일한데 더럽고 깨끗한 것이 구별이나 될 것인가
8. 지방유형문화재 제214호인 선암사 해우소입니다
선암사 해우소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굽은 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 정호승 -
9.
10. 가을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또 있었으니 아침 햇살을 받으며 굴뚝에서 피어 오르는 연기입니다 낙엽 태우는 연기는 아니지만...
11.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가기위해 작은 굴목재 가는 길에 숨어있는 듯 소박한 모습의 부도가 눈길을 끕니다
12. 작은 굴목재 오르는 길입니다
조계산 보리밥집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은 배가 엄청 고플 때 먹는 밥이고, 두번째로 맛있는 밥은 산을 탄 뒤 먹는 밥일 것이다. 조계산의 선암사와 송광사를 잇는 산길을 길목재길이라고 하는데 이 굴목재길의 중간쯤 되는 산 속에 보리밥집이 자리하고 있다.
선암사에서 출발하면 큰굴목재나 작은굴목재를 넘어야하고 송광사에서 출발하면 송광굴목재를 넘어야 보리밥집에 갈 수 있다. 큰 고개를 넘은 다음에 먹는 보리밥이니 당연히 꿀맛이지만 이 집의 보리밥은 실제로 맛이있다.
참기름과 고추장이 담긴 사발과 보리밥, 된장국, 그리고 절에 따라 신선하고 깔끔한 여러 나물과 채소가 나온다. 한쪽 아궁이 무쇠솥에서는 숭늉이 펄펄 끓고 있어 마음대로 가져다 먹을 수 있다.
13. 선암사 굴목재와 송광굴목재 사이에 있는 보리밥집입니다.
14. 이 곳에 왔으니 그냥 갈 수 없어서 한 그릇에 6,000원 하는 보리밥 한 그릇 뚝딱 해치웁니다
15. 송광굴목재에서는 어느 회사의 직원들이 단체 산행을 와서 힘차게 애국가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2절은 내려가서 부른답니다
16. 송광굴목재의 급경사길을 내려와 채마밭을 지나고 대숲길을 지납니다
17. 현판은 없으나 외인출입금지 안내문이 붙어있는 사찰 건물의 소박한 담벽이 마음을 포근하게 해 줍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富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 법정스님 '산에는 꽃이지네' 중에서 -
송광사는 16국사를 배출하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고승대덕을 배출해 삼보사찰 가운데서도 승보종찰로서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사찰이며 지금 남아 있는 기록에 의하면 송광사는 신라말 혜린(慧璘)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30, 40명의 스님들이 살 수 있는 그리 크지않은 규모의 절이었다고 한다.
길상사가 중창되고 한국불교의 중심으로 각광받게 된 것은 불일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정혜결사가 이곳으로 옮겨지면서 부터이며
송광(松廣)이라는 이름에는 몇가지 전설이 있다.
'광(廣)'은 불법을 널리 펴는 것을 가리켜서 18명의 큰스님들이 나서 불법을 크게 펼 절이라는 것이다.
곧 스님께서 정혜결사를 옮기기 위해 터를 잡으실 때 모후산에서 나무로 깍은 솔개를 날렸더니 지금의 국사전 뒷등에 떨어져 앉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뒷등의 이름을 치락대(솔개가 내려앉은 대)라 불렀다한다. 이 전설을 토대로 육당 최남선은 송광의 뜻을 솔갱이(솔개의 사투리)라 하여 송광사를 솔갱이 절이라 풀었다고 한다.
그에 유래해서 송광산이라 했으며 산 이름이 절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18.
19. 송광사 경내는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곳이 참 많아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밖에서 바라보는 지붕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 송광사를 찾는 진사님들이 가장 즐겨 담는 홍예교와 우화각과 풍경입니다
오늘은 선암사-송광사 코스를 지나고 순천만의 갈대를 보러가는 일정입니다 송광사에서 순천까지 하루에 25회 운행하는 버스를 40분간 기다렸다가 1시간 30분간 타고간 후, 다시 순천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30분가량 진행하면 순천만생태공원에 도착합니다
순천만 생태공원은 전국에서 가장 자연적인 생태계와 국제적 희귀조류의 월동지로 각광받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자취를 감춘 해안하구의 자연생태계가 원형에 가깝게 보전되어 있는 곳이 순천만입니다.
특히 순천만은 조류와 갯벌 또한 흑두루미의 월동지로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갈대가 고밀도로 단일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이러한 갈대 군락은 새들의 서식환경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은신처와 먹이를 제공하고 자연정화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순천만의 S자형 수로는 우리나라 사진작가들이 선정한 10대 낙조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2000년 7월에 남해안 관광벨트 개발계획 사업으로 자연생태공원을 조성하여 2004년 11월부터 운영하고 있습니다
21. 해는 서산에 지려하고 사람에 막혀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고, S라인이 가장 잘 내려다 보이는 저 앞산의 용산전망대는 멀게만 느껴집니다
22. 갈대가 활짝 피기는 했는데 날씨 탓인지 은빛 물결로 출렁이는 장관은 볼 수 없습니다
23. 결국은 용산 전망대를 100여m 남겨두고 연무 속으로 자취를 감추려는 햇님을 급히 담았습니다 이 장면이라도 급히 담지 않았다면 S라인 여인의 붉은 입술은 이번 여행에서 못 맞출뻔 했습니다
24. 발 디딜 틈이 없이 탐방객으로 꽉 들어 찬 용산전망대입니다
시간에 쫓기기도 했지만 서쪽 하늘에 옅게 깔린 구름 속으로 숨어든 햇님을 아쉬운 마음으로 보냈습니다
서울을 떠나올 때의 일기예보에는 월요일에 구름 한점 없이 맑은 날씨라고 했는데 전망대 어디쯤에서 자리잡고 야영을 할 까도 생각했지만 애초의 계획대로 금전산으로 향하기로 맘 먹었습니다 월요일은 이 곳 생태공원이 휴관하는 날이기도 했지만 용산전망대에서는 일출각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67번 버스를 타고 나와 청암대 정류장에서 내려 1시간 30분을 기다린 후 낙안행 시내버스를 타고 불재에서 내려 또 다시 깜깜한 산길을 올랐습니다 다행히 그리 험하지 않은 등산로를 따라 20여분 오르니 야영하기에 맞춤인 좋은 자리가 나타납니다
금전산의 쌀바위와 구능수의 전설
예전에 處士 한분이 득도하기 위하여 이 곳에서 수도를 하는데 석굴 입구 위쪽에 있는 구멍을 통하여 하루 세끼분의 쌀이 나와 연명을 했다한다. 하루는 손님이 찾아와 식량이 부족하자 쌀이 더 나오도록 부지깽이로 구멍을 쑤셔대자 쌀은 더 나오지 않고 뜨물만 흘러내렸다 하며, 구멍 입구에 쌀 뜨물이 흘러내린 모양의 석영이 있다.
또한 석굴 안쪽 한편에 석유구가 있는데 이 곳에서 나오는 물이 신령스러워 공을 들이지 않거나 상스런 행위를 하고 물을 받으면 조금전까지 흐르던 물이 마른다는 이야기가 있다
25. 쌀바위 앞에서 헝겁집을 짓고 어제 밤 선암사 계곡에서처럼 나무가지 사이로 비치는 휘영청 밝은 달과 함께 하루밤을 지내고 텐트 바깥이 훤하게 밝았지만 침낭속에서 느긋한 아침을 즐기는데 이름모를 산새의 노래소리가 유난히도 가깝고 크게 들립니다
밖에 나오니 구름 한점 없는 맑은 하늘과 알싸하게 느껴지는 상큼한 공기가 폐부에 스며드는 기운이 참 좋습니다 바위의 좌측 중간쯤 둥그런 구멍이 쌀이 나왔던 구멍이고, 텐트 우측의 직사각형 굴 안쪽에 구능수가 있습니다
금전산 금전산의 옛이름은 쇠산 이었으나, 100여년전 금전산 으로 바뀌었다고 하며 한자의 뜻을 그대로 번역하면 금으로된 돈산이다.
그러나 실은 불가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부처의 뛰어난 제자들인 오백비구(혹 오백나한)중 금전비구에서 산 이름을 따왔다"고 하며 낙안읍성 뒤에 낙안의 큰 바위 얼굴로 우뚝 서 있다. 정상부의 서쪽면이 모두 바위로 뒤덮여 특히 석양 무렵 이면 붉디붉은 광채로 사람들의 시선을 끈디. 이 암봉 사이로 등산로가 나 있으며 원효대, 의상대, 형제바위,등 기암들이 도열해 있다.
26. 금전산 정상입니다
27. 금전산 정상에서 남해바다가 멀리 조망됩니다
28. ,바로 아래쪽에는 낙안읍성이 내려다보입니다
금강암은 백제 위덕왕 때 검단선사가 창건하고, 신라 의상대사가 중수하고, 고려 때는 보조국사가 거쳐 갔던 호남 제일의 관음기도 도량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여수·순천사건 때 불타버렸다가 1992년 작은 집하나 지어놓은 게 다시 암자가 되었다. 왼편으로 금강암을 호위하고 있는 커다란 바위가 원효대. 오른쪽으로 가파른 낭떠러지를 막아선 바위가 의상대인데 금강암을 신라의 대표적인 고승 두 분이 지키고 있는 형상이다.
29. 토담에 기와를 얻은 허름한 암자 금강암입니다 내부는 3칸으로 되어있는데 가운데 칸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고, 좌측칸에는 스님이 거처하는 방인 듯하고, 우측은 주방인 듯 한데 막혀있습니다
낙안읍성과 넓은 낙안평야가 시원스레 내려다 보이는 의상대에는 바위에 붉은 입술을 한 관음보살이 말끔하게 앉아있습니다. '마치 소원을 말해봐!'라고 소곤거리는 듯한 모습으로…
또 한켠 바위 낭떠러지 앞에는 '자연석조여래좌상'이라고 팻말이 붙어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바닥에 물만 고여있을 뿐 불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암자에 와서 혼자 수행하시는 스님께서 손수 깍아주신 단감과 커피를 대접 받고 의상대의 '자연석조여래좌상'에 대해서 여쭈었더니 고여있는 물의 모습이 여래좌상이라는 말씀을 듣고 다시 의상대로 올라갔습니다
30. 자연석조여래좌상 아 !!! 계셨습니다. 고여있는 물의 형태가 가부좌하고 앉아계시는 여래좌상의 모습이 뚜렷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자연석조여래좌상의 모습입니다 머리끝이 쭈뼛거리는 전율이 몸 속으로 전달되어져 오는 느낌을 받습니다
31. 극락암에서 깍아지른 듯한 바위 사이 틈 사이에 요리조리 나 있는 길을 따라 내려오니 극락문입니다 지금까지 극락세계에 있었던겁니다
금전산의 날머리인 낙안온천에서 도보로 약10분 가량 도로를 따라 내려오면 낙안읍성입니다. 조선시대 성터와 동헌(東軒), 객사(客舍), 임경업군수비, 장터, 초가가 원형대로 보존되어 성과 마을이 함께 국내 최초로 사적 302호에 지정되었고, 지금도 성안에는 108세대가 실제 생활하고 있는 살아숨쉬는 민속고유의 전통마을로서 민속 학술자료는 물론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낙안읍성은 들르지 않았습니다.
이번 여행 떠날때부터 낙안읍성은 여행지에 포함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왠지 들어가서 둘러보았자 대한민국에 널려있는 여늬 민속촌에 온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거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읍성 부근의 음식점에서 요기나 좀 할까 생각하면서 맑은 가을하늘 아래 상큼한 공기를 마시며 걸어 가는데 순천가는 버스가 저만치 지나갑니다 어제밤 1시간 30분을 기다려서 버스를 탔던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었더니 기사분이 친절하게도 기다려줍니다
아무 생각없이 무작정 떠난 가을길에서 난 무엇을 가슴에 담고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슴 속이 더 허전한 것을 보니 담고 있던 것까지 비우고 온 것 같습니다 돌아오는 발걸음은 더 커진 가슴을 채우기 위해 또 떠날 생각을 하는건지도 모릅니다 더 큰 가슴을...
이 가을에 살으리 산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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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 아름다운 사진, 아름다운 글 잘 감상했습니다.
마음을 비우는 마음이 부처님 같습니다.
혼자 여행 한다는게 그리 쉽지만을 않을 텐데요.
이러한 마음으로 법당에 나오셔서 우리 함께 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