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인들이 모두 탄탄대로의 인생을 살았던 건 아니다. 여기, 기구한 운명을 살다 간 비운의 창업자들이 있다.
Bugatti Type57 Atlantic Coupe
1. 에토레 부가티 Ettore Bugatti
자동차 역사상 많은 천재들이 존재했지만 에토레 부가티만큼 예술과 기술에 두루 능통했던 인물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태리 태생의 프랑스인 부가티는 1909년 독일 접경지 몰샤임에 부가티를 설립하고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랑프리카 타입35, 타입57 아틀란틱 쿠페 그리고 초호화차 타입41 르와이얄 등 오리지널 부가티의 작품은 뛰어난 성능과 예술성 그리고 희소성으로 지금도 클래식카시장 최고의 스타로 손꼽힌다.
에토레에게는 재능 넘치는 아들 장이 있었다. 1909년 독일 쾰른에서 태어난 장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뛰어난 사업 파트너였다. 타입41 르와이얄 쿠페 나폴레옹을 디자인했을 뿐 아니라 전설적인 타입57 아틀란틱 쿠페 역시 그의 작품. 신차 개발과 테스트 드라이버까지 도맡을 만큼 다재다능했다. 하지만 1939년 르망 레이스카 ‘탱크’를 테스트하던 장은 공장 근처 도로에서 술에 취한 자전거 운전자를 피하다가 균형을 잃고 나무와 충돌, 30세의 꽃다운 나이에 사망하고 만다.
아들 장이 사망한 후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고급차 사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에토레 부가티는 위험한 독일 접경지에서 파리 근교로 공장을 옮겨 새로운 차를 개발하기도 했지만 예전만큼의 의욕은 찾아볼 수 없었고 결국 1947년 병으로 사망하고 만다. 구심점을 잃은 부가티는 자동차생산을 중단하고 오래도록 그 이름만 남아오다 1987년 로마노 아르티올리에 의해 부활되어 현재 폭스바겐 산하에 있다.
2. 우베 겜발라 Uwe Gemballa
2010년 가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비보가 날아들었다. 포르쉐 튜닝으로 명성이 높은 겜발라의 창업자 우베 겜발라가 목이 잘린 채 발견된 것이다. 그는 남아공에 딜러 확장을 위해 사업차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연락이 두절된 후 100만달러(약 10억원)를 송금하라는 연락이 왔다. 그의 실종을 두고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했다.
1972년 시작된 겜발라는 포르쉐를 소재로 한 독특한 컴플리트카를 선보이며 인기를 얻었다. 911 튜닝카로 노르트슐라이페 랩타임에 도전하는가 하면 애벌렌치 미라지 GT는 2008년 레드닷 수상으로 디자인 감각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명성과 달리 겜발라는 경영난을 겪고 있었고 2010년 2월 이미 파산신청에 나선 상태였다. 우베 겜발라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체코의 돈세탁업자이자 폭력단 두목(Radovan Krejcir)과 만났고 그 과정에서 살해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목이 잘린 사체로 보아 단순 사고 같지는 않다. 미궁이 빠진 그의 사망으로 인해 회사는 결국 파산했지만 투자자와 직원들의 노력으로 신생 겜발라가 만들어져 부활을 꿈꾸고 있다.
3. 프레스톤 터커 Preston Tucker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의 영화 ‘미국의 꿈 터커’는 혁신적인 자동차를 꿈꾸었던 발명가이자 사업가 프레스톤 터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자동차 공장 사환으로 시작한 그는 적극적인 성격과 남다른 아이디어를 가졌던 인물. 2차대전 종전 후 터커사를 설립한 프레스톤 터커는 주식발행과 고객 선입금 등으로 1,200만달러(약 120억원)의 거금을 모아 터커 토피도를 탄생시켰다. 터커는 항공기 기술을 도입한 에어로다이내믹 디자인의 리어 엔진 보디, 4륜 디스크 브레이크, 연료분사장치 등을 얹어 ‘50년 만의 완전한 신개념차’라며 대대적으로 선전했지만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빅3이 사기 및 경제범죄 혐의로 그를 고발하기에 이른다. 1950년 무죄판결을 받은 터커는 5년 뒤인 1956년 47세의 나이에 폐암으로 쓸쓸히 사망하고 만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그의 유작 터커 토피도는 51대만이 생산되었다.
4. 존 드로리언 John Delorean
영화 ‘백투더 퓨처’의 타임머신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드로리언 DMC-12는 GM 출신의 존 드로리언이 탄생시킨 미드십 스포츠카다. 쥬지아로가 디자인한 보디는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들어 독특한 색채를 빛냈고, 로터스 섀시와 걸윙도어 등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메리칸 스포츠와는 성격을 완전히 달리한다.
GM에서 폰티액 GTO와 파이어버드 등을 성공시키며 승승장구하던 존 드로리언은 개성 넘치는 루마니아계 미국인이었다. 톡톡 튀는 드로리언이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GM 경영진과 문제를 일으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결국 회사를 나와 1973년 자신의 이름을 딴 드로리언 모터 컴퍼니를 만는 그는 이후 GM의 내부 비리를 폭로하는 자서전을 출간해 세간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Delorean DMC-12
드로리언은 신차 DMC-12 개발을 위해 이태리의 디자인 천재 조르제토 쥬지아로와 영국의 로터스를 끌어들였다. 하지만 80만달러(약 8억원)를 융자한 영국정부의 압박으로 회사는 곧 위기에 빠졌다. 그러던 중 1982년 10월, 존 드로리언은 마약밀매에 손을 댔다는 혐의로 FBI에 체포되고 만다. 수사진이 계획적인 덫을 놓아 그를 마약 밀매에 빠뜨렸음이 밝혀지면서 2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보석금을 위해 이미 전재산을 팔고, 자신의 꿈이 담긴 회사 역시 DMC-12 5,000여 대의 생산을 끝으로 문을 닫은 상태였다. 사건의 배후에 GM이 도사리고 있다는 음모론이 나돌았지만 더 이상 손쓸 방도가 없었다.
글 이수진 편집위원(sujin@carlife.net)
제공 자동차생활(www.carlif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