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국 열전은 계속됩니다. 제주에서 살다보면 듣게되는 이름난 해장국집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보는 재미이기도 하죠. 아직까지는 딱 한군데 말고는 대부분 만족스러운 맛이었습니다. 한 집은 맛은 있지만 조미료맛이 너무 강해서 제 리스트에서 제외시켰죠. 그 집을 제외하고는 덜 풀린 속을 만족스럽게 달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집들이었죠. 옆에 막걸리 한 잔 두지 못한다는 게 무척 안타까울 정도죠. 게다가 집집마다 맛의 특성을 느껴가며 먹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그만큼 제주에도 해장은 삶의 순간순간의 화두가 되어 있습니다.
가까이 두고도 가보지 못하거나 뒤늦게서야 발견한 집들이 꽤 많습니다. 이 집도 이야기만 들어오다가 이제서야 가보게 되네요. 어느 화창한 평일 점심,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들러보았습니다.
유명세와 오랜 시간을 간직한 집들은 특유의 분위기가 있습니다. 이 집도 그런 면에서 눈에 확 들어옵니다. 해장국 단 하나.. 존재감이 가득한 메뉴판입니다. 그리고 금연.. 밖에서 담배를 피는 것까지야 뭐라하고 싶지는 않지만, 식당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보면 정말 화가 나죠. 자리에 앉으면 식탁엔 이렇게 기본 찬이 나옵니다. 매운 청양고추는 제주의 식탁이라면 빠질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아주 즐겨먹는 것 같지도 않은데, 마치 여기서는 이게 없으면 상이 아니라는 듯 언제나 빠지지 않습니다. 마치 김치가 그러하듯. 먼저 밥이 나오고 깍두기 물김치가 나옵니다. 물김치는 개인마다 한그릇씩 나오는데 이거 참 특이하더군요. 아주 시원하거나 당기는 맛은 아니지만 이 집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함입니다. 밥이 나왔으니 수저와 젓가락을 놓아야죠. 수저통을 열어보니 젓가락만 잔뜩입니다. 일하시는 분께 수저를 달라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옆에서 그러지 말라고 합니다. 뭘까? 싶은 생각이 드는데..보니까.. 해장국 뚝배기에 수저가 꽂혀서 나옵니다. 아.. 이것도 특이하더군요. 뚝배기 하나하나에 수저가 꽂혀나오는 모습이라니... 그런데 왜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 물어보질 못했네요.. 고추기름과 후추가 뿌려진 뚝배기를 수저를 잡고 한 술 떠 봅니다. 국물은 깊이가 있지만 조금 심심하고 평범한 느낌입니다. 그닥 강조점없이 적당한 만족감이 있달까요? 하지만 내용물은 선지와 콩나물을 비롯하여 푸짐합니다. 미풍이라는 이름처럼 은은하고 부드럽습니다. 조금은 자극적이거나 한 입에 맛있다는 느낌은 없지만, 이런 조용한 듬직함이 오랜 사랑을 받아온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올해는 무척 더디긴 하지만 그래도 날이 서서히 더워집니다. 올해 한치는 얼마나 잡혀줄까 싶은 생각과 함께 해장국으로 속을 달래는 것도 좋지만 시원한 물회로 속을 달랠 때가 오는구나 싶어집니다. 제주는 이래저래 해장의 섬인가 봅니다. |
출처: 칼을 벼리다. 원문보기 글쓴이: 민욱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