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 내전이 우파정권 등장 이후 이탈리아의 영토회복주의 기운 때문에 발칸지역 전역의 국경분쟁으로 번질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휩싸였다.
베를루스코니 정권에 3명의 각료를 입각시킨 네오파시스트당인 민족동맹 지도자 잔프랑코 피니는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영토로 돼 있는 아드리아해 북동부 이스트리아반도를 되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발설했다. 이에 힙입어 사회당 정권 아래서 이 문제를 한번도 공식화하지 못했던 이스트리아 출신의 이탈리아인들이 영토회복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50년간 이탈리아 정부는 우리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새 정부는 우리 말을 들을 뿐 아니라 우리의 요구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다.” 이스트리아반도 바로 위쪽 이탈리아령 트리에스테에 있는 이탈리아-이스트리아 망명자협회는 나아가 “우리가 원하는 건 보상이 아니라 실지회복”이라는 점을 분명히했다.
아름다운 풍광으로 전 유럽에서 관광객들이 몰리는 이스트리아반도는 1918년 유고슬라비아*가 탄생하기 전 500여 년간 베네치아와 오스트리아가 지배하고 있었다. 이 땅은 무솔리니 정권 때 이탈리아 영토였다가 2차 세계대전 뒤 유고 땅으로 넘어갔고 1991년 유고가 해체되면서 다시 유고 구성공화국이었던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령으로 분할됐다.
이스트리아가 유고 땅이 되면서 이곳에 살던 이탈리아인 중 30만 명이 이탈리아로 이주했다. 이들이 실지회복 운동을 이끌고 있는 이탈리아-이스트리아 망명자협회의 중심세력이다. 발칸지역의 국경선 변동이 옛 유고권의 범위를 벗어나게 될 경우 복잡한 사연들을 지니고 있는 이 지역은 물론 유럽 전체가 일대 혼돈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런 움직임이 외교 분쟁을 부를 조짐을 보이자 외무장관을 통해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에 “그것은 정부 공식 입장과는 무관하다”는 뜻을 공식 전달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정부가 내심 바라는 것은 이스트리아 망명자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이탈리아 정부는 1994년 6월 슬로베니아가 유럽연합 가입을 신청했을 때 이를 강력히 반대했다. 표면적인 반대 이유는 슬로베니아나 크로아티아가 망명 이탈리아인의 재산권과 이스트리아반도에 남아 있는 3만 여명의 이탈리아인 권리문제를 선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탈리아의 이런 입장 때문인지 이스트리아에는 이탈리아 역사와 말을 가르치려는 움직움이 강화되는 등 이탈리아 입김이 강해져갔다. 이와 반비례해 이를 두려워하는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정부 쪽의 단속도 강화됐다. 유럽의 화약고 발칸이 더욱 시끄러워지고 있다. (1994.8.18.)
*Yugoslavia
유고슬라비아는 20세기 대부분에 걸쳐 유럽의 남동부 발칸 반도에 연이어 존재했던 세 개의 나라를 말한다. 유고슬라비아는 ‘남南 슬라브인들의 땅’이란 뜻이다. ‘유고슬라비아’란 국명은 1918년 건국된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왕국이 1929년에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개칭하면서 처음 쓰였다. 이 나라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이었던 1941년에 추축국樞軸國(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국 측에 맞선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왕국, 일본 제국 세 나라)의 침공으로 멸망했다.
이후 유고슬라비아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인 1945년 유고슬라비아 민주연방이라는 이름으로 수립된 공산국가로 이어졌다. 이 나라는 1946년에 유고슬라비아 인민공화국으로, 다시 1963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공화국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나라는 1991년에 연방을 구성하던 공화국 중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마케도니아 공화국·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분리 독립하면서 해체됐다.
1992년에 세르비아(코소보와 보이보디나 자치주 포함)와 몬테네그로는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과 구분해 ‘新유고 연방공화국’이라고도 함)을 발족했다. 그러나 2003년 新유고 연방이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로 개칭하면서 유고슬라비아라는 이름은 사라졌다. 2006년 5월에는 몬테네그로가 국민투표를 통해 분리돼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