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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그들이 함께 모였을 때에 주게 물어 말씀드리기를 “주여, 이 대에 이스라엘에 그 왕국을 다시 회복하시겠나이까?”하니 주께서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에게는 그 때나 시기를 알게 하신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자신의 권한에 두셨느니라. 그러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능력을 받으리니 그러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당끝까지 이르러 내게 증인이 되리라.“고 하시니라. 주께서 이런 일들을 말씀하신 후에 그들이 보는데서 위로 들려 올라가시니 구름이 그들의 시야에서 주를 가리더라. 주께서 올라가실 때에 그들이 하늘을 주시하고 있는데, 보라.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말하기를 “너희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너희는 하늘을 쳐다보고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바로 이 예수는 너희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하더라.
(사도행전 1:6~11 한글킹제임스성경)
사도행전 1장에는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성도들이 기쁜마음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봅니다. 누가복음 24:52~52에서는 ‘그들이 주를 경배하고 기쁨이 충만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계속 성전에 있으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송축하더라. 아멘.’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스도게서는 이미 십자가에서 부활하셔서 ‘그 후에는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일시에 보이셨는데 그들중 대부분은 지금도 살아 있으나 더러는 잠들었느니라.(고린도전서 15:6)’처럼 공개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건의 신비는 논쟁의 여지없이 위대하도다. 하나님게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셨고 성령으로 의롭게 되셨느며, 천사들에게 보이셨고 이바인들에게 전파되셨으며, 세상에서 믿은 바 되셨고 영광 가운데로 들려 올라가셨음이라.(디모데전서 3:16 한글킹제임스성경)’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첫째로 메시아가 다윗의 보좌에 오를 신정통치국가 이스라엘의 회복이 언제 이루어질 것이냐를 묻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때나 시기는 알수 없고 오직 아버지의 권한에 두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위로자이신 셩령게서 오신다고 말씀하셧습니다. 두 천사(요한복음 20;12)가 그리스도께서 올라가신 그대로 다시 내려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영적인 재림이나 상징적인 재림이나 비유적인 재림이나 관념적인 재림이 아닌 문자적으로 부활하신 모습 그대로 다시 재림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오신다는 말을 들은 사도들은 기쁨으로 올리브산에서 내려가서 그분을 찬송햇습니다.
우리는 이대가지 2천년 교회사를 뒤돌아보면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음으로 인하여 교회는 영적으로 타락하게 되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게서 곧 오신다고 믿은 전천년주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황제의 기독교 공인은 정통기독교인 재침례교도인 도나티스트를 배제한 로마정부에 협력하는 보편교회(커톨릭)을 공인한 것에 불과합니다. 로마카톨릭의 세상이 된 중세시대는 재침례교도의 박해와 로마 카톨릭의 교세가 점진적으로 전세계로 확장되는 것이 천년왕국이며 교세가 완성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통치한다는 것이 후천년주의의 근간입니다. 그러나 정작 중세시대 1000년이 지나도 그리스도의 재림은커녕 오히려 동방정교회의 분리와 이슬람세력과의 싸움인 십자군전쟁을 통해서 후천년주의의 취약함을 파악하고 중세 후기에 스콜라 철학을 수용해서 천년왕국은 문자적인 지상의 왕국이 아니라 영적인 왕국이라면서 더더욱 펠라기우스주의의 공로주의적 종교행위를 강요함으로써 로마 카톨릭의 부패를 가중시켰습니다. 이것이 무천년주의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는 진짜 속마음은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를 통치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누가복음 19;14)‘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회개하고 돌이키라. 그러면 주의 임재하심으로부터 새롭게 되는 대가 올 때에 너희 죄들이 지워지리라. 또 하나님께서 전에 너희에게 전파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리라. 하늘은 만물이 회복될 때가지 그분을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이 일에 관하여 그의 모든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니라.(사도행전 3:19~21)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처소를 마련하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셧습니다.(요한복음 14:2) 그 대신에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올ㄹ가시면 위로자를 보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복음 14:26) 위로자이신 성령님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베지로부터 보내시는 성령이십니다.(요한복음 15:26) 그러므로 진리의 영인 성령님께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슴하지 않으시며 들은 것인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성경에 근거하시는 붕이시며 성경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에베소서 5:26)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계시며 하늘에 계십니다.(골로새서 3:1) 그리고 높은 곳으로부터 능력이신(누가복음 24;49) 성령님께서는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고 게십니다.(베드로전서 1;5) 즉 그리스도게서 올라가시고 성령님께서 내려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는 바로 그리스도의 여이십니다.(로마서 8:9)
사도행전 3:19~21의 그리스도의 임재는 지금 교회시대가 아닌 미래의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계시고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보증으로 계시기 때문입니다.(고린도후서 1:22)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져야만 만물의 회복이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없이는 만물의 회복은 이루어질수 없으며 개선되지도 않습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흰 말이 보이더라. 그 위에 앉으신 분은 신실과 진실이라 불리며 의로 심판하고 싸우시더라.(요한계시록 19:11)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그들이 그 위에 앉았는데 심판이 그들에게 주어졌더라. 또 예수에 대한 증거와 하나나미의 말슴으로 인하여 목베임을 당한 사람들의 혼들도 보였는데, 그들은 그 짐승에게나 그 형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표를 그들의 이마나 손에도 받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므로 그들은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게 천 년을 통치하더라.
(요한계시록 20:4)
그 천년이 끝나면 사탄이 그의 감옥에서 풀려나 당의 사방에 있는 민족들,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려고 나가서 그들을 함께 모아 전쟁을 일으키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니라. 그들이 땅의 넓은 데로 올라가서 성도들의 진영과 사랑하는 도성을 포위하니, 하늘에서 불이 하나님게로부터 내려와 그들을 삼켜 버리더라.;(요한계시록 20;7~9)
또 내가 큰 보좌와 그 위에 앚으신 분을 보니, 그의 면전에서 당과 하늘이 사라졌고 그들의 설 자리도 보이지 않더라.(요한계시록 20:11)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자 마자 바로 백보좌심판이 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사탄이 천년간 결박되었다가 풀려나는 것을 설명할수 없을 것입니다.(요한계시록 20:3, :70 그리고 천년간 그리스도와 통치하는 천년왕국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요한계시록 20;4)그러면 베드로후서 3:10~12를 가지고 주의 재림과 백보좌심판은 동시에일어난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천년왕국의 시작이 있다면 천년왕국의 끝에 곡과 마곡의 전쟁인 반역이 있을 것이며 그리스도의 보좌는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베드로후서 3:10~12는 천년왕국의 끝에 해당되는 것입니다.(요한계시록 20:8~11)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것은 만물을 회복시키기 위함이며 모든 것이 완벽한 천년왕국 안에서도 첫 번째 인간 아담 안의 육신을 가진 자는 반역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미 천년왕국 이전에 영적인 몸을 입게 됩니다.
그 후에 하늘에 있는 인자의 표적이 나타나리니, 땅의 모든 지파들이 통곡할 것이며, 또 그들은 인자가 권세와 큰 영광으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마태복음 24:30)
이 구절은 백보좌 심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본문은 그리스도게서 다시 오시는 지상재림으로 오시는 것이며 우주의 구성요소가 녹아져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내려오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지파들이 통곡을 하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보고 그분이 메시아른 것을 뒤늦게 알고 두려워 떨면서 통곡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의 거민들 위에 은혜와 간구의 영을 부어 주리라. 그러면 그들은 그들이 찔렀던 나를 쳐다 볼 것이며, 그들이 그를 위하여 애통하리니, 마치 어떤 사람이 자기 외아들을 위하여 비통에 잠기듯 하리라.(스카랴 12;10)’의 의미를 그제서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종교성만 내세우는 배교한 유대인들을 무화과에 빗대어 정죄하셨습니다.(마태복음 21;19) 그러나 마태복음 24:32~34에는 ‘무화과나무의 한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유연해지고 잎이 나오면, 여름이 가까운 줄 너희가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것을 보묜 그 일이 가까이, 곧 문들 앞에 이른 줄 알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2천년동안 나라 없이 방황하였던 민족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독립이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가까운 시기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올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너희는 모두 빛의 자녀들이며 낮의 자녀들이라. 우리는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노라.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자지 말고 깨어 있어 정신을 차리자. 이는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기 때문이라. 그러나 우리는 낮에 속하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인 투구를 스자(데살로니가전서 5:5~8)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오실 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있을 너희가 아니겠느냐?(데살로니가전서 2;19)
교회가 얼마나 신실하나를 판가름하는 척도는 발 ㅗ교회가 얼마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느냐로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고 생각한다면 매일 매일의 삶에서 결코 나태해질 수 없으며 매일 매일의 삶이 마지막 삶을 살아간다는 각오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대통령이 방문한다고 한다면 그냥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물며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앞에서라면 얼마나 더하겠습니까?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마로만 기다린다고 하면서 실제적인 사람에서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면 그 교회 사람들 각자는 나태하며 무기력하며 그 어떠한 간증을 보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아직 어린 교회였지만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오신다는 것을 굳게 믿었던 곳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천년왕국이 오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는 데살로니가성도들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그러므로 전천년주의가 성경적입니다.
형제들아, 잠든 자들에 관해서는 너희가 모르게 되는 것을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가 소망이 없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게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우리가 믿는다면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안에서 잠든 자들도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오실 때가지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잠들어 있는 자들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나서 살아남아 있는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게 구름 속으로 글려 올라가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게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데살로니가전서 4;13~180
우리는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의 휴거에 대해서 생가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이미 죽은 그리스도인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지금은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게 잇습니다.(고린도후서 5:8)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먼저 죽은 자들이 그분과 함게 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라이디케아교회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초대교회의 데살로니가성도들과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현대의 대주준의 그리스도인들은 죽으면 그냥 하나님게로 인도함을 받아 좋은데로 갓다고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죽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다시 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막연한 관명이 아닌 실제적인 확신이었습니다. 몸을 더난 성도들 역시 그리스도의 재림의 대를 기다리고 잇는 것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분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분이 너희 안에는 그분의 영으로 인하여 너희의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9로마서 8:11)’을 염두 하십시오. 인간은 살아봐야 100년 안팎입니다. 그런데 ‘주께서 오실 때가지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잠들어 있는 자들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라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 까요? 매일매일 의 사람에서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며 매일을 마지막 삶을 살아간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내가 그리스도 에수 우리 주 안에서 지니고 있는 너희의 자랑으로 단언하노니 나는 매일 죽노라.(고린도전서 15;31)’라고 말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천년주의는 그리스도인의 실제적인 삶에 있어서 확고한 목적의식을 주는 동기부여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