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신연월일이나 발신자, 수신자가 없는 간찰이지만 추사 김정희가 자신의 傔人이나 아랫 사람에게 보낸 간찰로 추정된다. 喪期를 마치는 상대방을 위로하고 이 아무개에게 맡긴 책 장황이 어찌 되었는지, 공가는 얼마인지를 알려달라고 하고 또 별지에 말한 것을 畹(梁文畹으로 추정함. 한 글자 가지고 여기까지 나간 건 너무 나간건가?)과 함께 상의해서 바로 도모하여 모레에는 어떻게 해서든 내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추사가 자신의 겸인이자 장황사인 劉命熏에게 보낸 편지를 유명훈의 둘째 아들인 劉在護가 첩으로 만들고 題簽을 써 붙인 편지 모음집 [완당소독]이 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그와 유사한 유형의 간찰이다. 유명훈, 유재호는 [이향견문록]을 쓴 유재건의 아버지, 동생이다. 小牘이란 정식 간찰이 아니고 짧은 메모식 간찰을 말하는 것으로 유재호가 명명한 '소독'이라는 말이 매우 적절하다.
歲月流遷 祥期將/終 想廓然靡極 變/制果何以爲之耶 念念/ 李寅桓許冊裝 更/未問及耶 竝以工價/ 詳示之意 及之爲望/ 另片所報 与畹相商/ 卽圖之 某樣出送於/再明間 亦好亦好 不式
세월이 흘러 상기가 곧 끝날 것이니 아마 가슴이 텅 빈 것 같을 것입니다. 변제를 과연 어떻게 했는가요? 계속 생각이 납니다.
이인환에게 책을 장황하도록 한 것은 다시 묻지는 않았는지요? 공가와 함께 자세히 알려달라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쪽지로 알린 것은 원(양문원으로 추정함)과 상의하여 바로 도모하시지오. 어떻게든 내일모레 사이에는 내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만.
[완당전집]에 양문원에 보낸 편지가 두 통, 시가 한 수 실려있다.
[완당전집] 제4권 / 서독(書牘) 양문원에게[與梁文畹]
지난 번에 들은 겸복(兼服)의 한 조항은 바로 “참최(斬衰)의 상(喪)에 이미 우제(虞祭)와 졸곡(卒哭)을 마치고서 자최(齊衰)의 상을 만났을 적에는 경한 자는 포(包)를 하고 중한 자는 특(特)을 한다.”는 것은 이미 성훈(聖訓)에 나타났으니 자네가 오늘날에 있어 그에 따라 행해야 할 것이네. 그러나 포 ㆍ 특(包特)의 예는 후세에 와서 행한 일이 없네. 대개 경중의 구별은 전혀 질ㆍ대(絰帶)에 있고 자ㆍ참(齊斬)에 있지 않네. 요새 사람들의 보통 행하는 것은 다만 자ㆍ참을 보아 경중을 삼는데 이는 너무 고례는 아닌 것이네.
지금 궤연(几筵)에서는 각자 해당되는 복을 입고 있으니 포나 특을 말할 것이 없네. 다만 자네들은 동서남북으로 떠다니는 사람들이어서 예를 지키고 상려(喪廬)에 있지 못하며 매양 연복(燕服)으로 지내니 교대(絞帶)와 포대(布帶)에 의심을 갖게 되는 것이네. 지금 복의 중한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자최에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참최의 갈(葛)이 자최의 포(布)를 감쌀 만한데 합당할는지 모르겠네. 지금은 다만 승중(承重)으로써 중하게 여길 뿐이라면 감히 알 바 아니네.
與梁文畹
頃聞兼服一欵。是斬衰之喪。旣虞卒哭。遭齊衰之喪。輕者包重者特 。已著於聖訓。汝之今目所遵而行之者也。然包特之禮。後世無以行之。大槩輕重之別。專在於絰帶。不在於齊斬。今人通行。但視齊斬爲輕重。大非古禮也。今於几筵。各服其服。無包特之可言。但汝輩東西南北之人也。不得守禮在廬。每以燕服居之。絞帶與布帶爲持疑。顧今所服之重。固在於齊衰。然斬衰之葛。可以包齊衰之布。未知合否。今但以承重爲重而已。則非所敢知耳。
[완당전집] 제4권 기이(其二)
시골 날씨가 화창하고 길어졌는데 여러 가지 회포를 거두어들이기 어렵더니 곧 보내온 편지와 연전(連牋) 수십 편을 받아 보니 역시 마음에 흐뭇하네. 다만 어비이 병환이 오래 간다니 염려가 놓이지 않으며 여러 가지 근심 걱정이 있을 터이니 마음에 쓰이네. 이 몸은 근자에 더욱 쇠약하여 병이 갈수록 사나우니 붓으로는 낱낱이 적을 수 없네. 면(麵)과 떡[餠], 선전(扇箋)을 이와 같이 아름다운 것을 보내주니 매우 고맙네.
일본 사람이 나의 글씨를 구한다는데 먼 데 사람의 정중한 뜻을 저버릴 수도 없는 일일세. 다만 팔이 강하고 필력이 건장할 때에는 약간 정력을 허비하면 마칠 수 있는데 이렇게 여지없이 쇠퇴하여 또 지난해에 산사(山寺)나 강사(江寺)에 있을 때와 비교가 안되고 또 그대 같은 사람이 곁에서 도와주고 거들어주어야만 흥이 나서 가로 긋고 내리 쓰곤 할 텐데 적적한 시골 창가에 햇빛마저 들어오지 아니하고 안력은 몹시 달리고 필력(筆力)도 역시 줄어들었네. 지금 만약 급히 끝내려고 한다면 아무래도 억지로 만들어 낼 수는 없을 것 같네.
근자에 가슴이 답답하여 덮인 것도 같고 뭉친 것도 같아서 사십 리 밖에 있는 산사로 한번 소풍을 나가고 싶으나 사소한 일로 인하여 꼼짝 못하고 있으니 꽁무니가 들썩여서 더욱 견딜 수 없는 지경일세. 이 밖의 여러 가지 보여준 뜻은 이 편지로는 자세히 언급을 못하겠으니 미루어 두고 한번 만나야 되겠네. 헤아려주게. 근자에 더욱 세상일에는 마음 두는 바 없어서 이 일이건 저 일이건 모두 간섭하고자 아니하며 일체 문을 닫아버렸으니 옛날 나와 지금 나를 이상히 여길 것이 없네.
표고버섯은 동승(東僧)과 언약을 했으니, 오면 당연히 나눠 주겠네. 운구(雲句)는 상기도 오지 않았네. 마침 화성(華城)의 유상(留相, 수원유수)이 지나는 길에 들려서 극히 분요한 가운데 간신히 답을 썼네. 이만 줄이네.
與梁文畹[二]
村日舒長。懷緖隨以難收。卽見來函連牋十數片。亦足慰沃。第湯患彌久。不勝耿慮。種種憂冗。爲之慮慮。此狀近益頹唐。病情轉奇轉惡。非筆縷述耳。麵餠扇箋之若是惠嘉。甚荷甚荷。日本人所求拙字。遠人鄭重之意。無以孤矣。但腕强筆健之時。畧費精費力可了。而顧此衰朽無餘。又非去年山寺江寺之比。且如君者旁扣側發。迺可隨喜橫竪。寂寂村窓。日光不到。眼力甚短。筆力亦屈。至若趁今急就完。恐無以强之也。近欝如翳如屯。竊欲一暢於四十里外一山寺。緣些未卽動尻輪。尤不可耐耳。外此種種示意。非此紙可以細及。留續一展。諒之。近尤世諦邊。無所留心。非箚切如藕。都不欲相淺。一切閉關吾見。已多君之訝。無恠於古我今我。且呵。蔈耳與東僧有約。來當分之。雲句尙不來耳。適因華城留相歷存。極擾艱答。不宣。
[완당전집] 제10권 / 시(詩) 백일홍을 차하여 양문원에게 보이다[次百日紅 示梁文畹]
하나 하나 붉어 붉어 만으로 모여지니 / 一窠紅聚萬窠紅
비 젖는 그 가운데 별스럽게 타는 노을 / 別樣霞烘雨浥中
딴 꽃들이 덧불 쬐어 기색을 북돋우니 / 群卉與榮添氣色
작은 뜰 어느 땐들 봄바람 아니리오 / 小庭何日不春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