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을 넘어가고 질문으로 간다 (외 1편)
―갬미페스
동시영
갬미페스,
무슨 삶을 넘다가 이리 높은 고개가 되었나
광야는 진공처럼 고요하다
텅 빔의 풍요―,
거대 바위 그릇,
흘러 담기는 원시의 액체
길은 길고 시간은 짧다
짧은 스커트, 시간 아래
길고 긴 갬미페스 다리 조금 보인다
기다림의 이정표, 나무
초록을 건너다니는 징검다리
나무처럼 서 있는 사람 한 그루
시간에 뿌리 깊이 내린다
바람 부는 날은 ㅍ이 바빠―
꽃들은 무슨 잠에서 깨어나나
야생화 표기법
누가 하는 말인가
누가 떨구고 간 웃음 파편인가
무엇이 이리도 무늬 내려 보는가
과정만 연습하는 목숨의 길
오후 다섯 시가
금빛 길을 간다
시간은 부유하다
끝없이 오는 내일
해석을 넘어가고
질문으로 간다
*갬미페스 : 스위스 로이커바트의 고개
그를 방랑하다
―천전리 암각화
시간의 소가
신화의 가슴에서 풀 뜯다
안개 입속으로 들어간다
나이나이 난시루 나이네 나이루
시간 삼거리,
어제오늘 내일 위에
옛날을 되새김하는
돌이 된 소 한 마리
돌의 입술에선 신성한 전언
시간도 멀어지면 베일 쓴 매혹
때론, 미래보다 과거에 더 설렌다
그림 손으로 선사(先史) 살결 만지고
부호(符號) 속 향연으로 깊이 들어간다
키르나르 수가르 헤르혀 수마르타 나이나이 난시루 나이네 나이루
얼굴은 본래 신이 주신 가면
가면 같은 남자 얼굴
암호 같은 눈빛
셀 수 없는 시간 너머
그가 나를 응시하고
시선(視線)에 길을 놓아
나는 그를 방랑한다
수가르 나르메 부카르 흐르카니 나이나이 난시루 나이네 나이루
과거와 현재는 너무 닮은 형제
목숨 건 먹이 사냥
성속(聖俗) 넘는 남녀 교합
불안의 짝 기도에
취함인가 몰입인가
니네 나네 난시루 나이네 나이루
늙지 않는 영원에
대답 없는 질문의 터
몸에 다녀간 생각들 같은
장소에 왔다 간 동작들 나와
나이나이 난시루 나이네 나이루
나이나이 난시루 나이네 나이루
―계간 《문학청춘》 2024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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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영 / 충북 괴산 출생.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졸업. 독일 레겐스부르크대학교 인문학부 수학. 한국관광대학교와 중국 길림재경대학교 교수를 역임. 2003년 계간 《다층》으로 등단. 시집 『미래사냥』 『수평선은 물에 젖지 않는다』 등 10권. 그밖에 기호학에 관한 저서들과 기행문집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