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굳게 닫힌 임진왜란 승리의 주역 영천 의병장 호수 정세아를 모신 환구세덕사
선원리 언덕 철불선원(선원사) 앞에 자리잡은 환구세덕사는 임진왜란 때 영천의병장으로 홍의장군 곽재우와 함께 영남의병의 수장이었던 호수 정세아(1553-1612)선생과 부친을 구하기 위해 경주성 전투에서 장렬히 산화한 아들 백암 정의번(1560-1592)공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사당이다.
호수 정세아는 임진왜란이 끝난후 이곳에 은거하면서 1599에는 자호정사(강호정)를 세우고 ‘자호정사에 올라(登紫湖精舍)’ 라는 시를 짓고 후학양성에 힘썼다.
‘장년의 뜻 적장의 머리 벨 것을 기약했건만/
쇠잔해진 이 몸 귀밑 털이 셀 줄이야…/
노쇠하고 병드니 어찌 출세길 달릴 것인가/
한가로이 물러나서 청류를 구경함이 내 분수에 맞다/
백구도 강호수를 싫어하지 않고 찾아주니/
이제부터 청안으로 죽을 때까지 쉬리라.’
호수 정세아는 1602년에 승사랑 군자감봉사에 제수되었으나 “전쟁터에 부자가 출전해 아들이 전사한 터에 어떻게 공을 받고 벼슬길에 나아가겠는가”하고 받지 않았다. 이듬해에는 임란으로 소실된 임고서원을 중건하고 사액 받았다.
호수 정세아는 1605년에는 선무원종공신 3등으로 채록)되었다.
환구세덕사는 고종 5년(1868),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철거되어 그 유지에 충효각과 부속건물 2동만이 남아 있다.
영천여행을 하면서 두 번째 찾아갔지만 두 번다 문이 잠기고 문에는 무단출입금지 라는 문구와 함께 연락처만이 달랑 적혀 있어서 영천의 불멸의 혼이 되신 호수 정세아 선생의 유적지를 담너머로 기웃거려야 하는 황당함을 겪어야만 했다.
영천시 임고면을 오래도록 지켜오면서 임진왜란에는 결연히 의병을 일으켜 백척간두에 선 나라를 구하고 임란후에는 충절을 널리 알리고자 충절의 표상인 임고면 출신의 포은 정몽주 선생을 모신 서원인 임고서원을 복원한 정세아 선생에 대한 오늘날의 평가가 그대로 보이는 것만 같아서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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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구세덕사
위치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 768번지
지정번호/지정사항 : 민속자료 제87호(90.8.7)
시대 : 조선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