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교사로 살아가기 / 박미숙
앞에 근무한 학교에는 60여 명의 교사 중 50대는 서너 명밖에 되지 않았다. 발령받을 당시 난 56세였는데 학교에서 나이가 제일 많았고, 같은 학년의 일곱 명은 모두 20대에서 40대였다. 그들은 그전부터 같이 근무하였고 나만 새로 왔다. 학교생활은 마음이 잘 맞는 동료와 함께하면 서로 위안이 되곤 하는데, 처음엔 말 한마디 나눌 사람이 없어 적응하기 힘들었다.
젊은 선생님들의 관심 주제는 나와 아주 달랐다. 아이들 학원은 어디를 보내야 하고, 손톱 다듬기를 어떻게 받아야 하며, 스타벅스 프리퀀시(frequency:스타벅스에서 구매 후 스티커 적립을 완성하면 사은품을 주는 행사)로 분홍, 녹색 중 어느 가방을 받고 싶은지가 주된 관심사였다. 반찬 만드는 얘기를 했다면 한마디쯤 할 수 있었는데, 맛있는 반찬집 말을 하니 도저히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그 자리가 불편해지면 슬그머니 일어서서 우리 교실로 왔다. ‘자기들끼리 얘기 나누는데 내가 있어 방해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자격지심도 생겼다. 나 혼자인 것 같아 외로웠다. 친구들이 이래서 명퇴를 하나보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나를 보고 작은딸이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라고 했다. 선배랍시고 내 생각을 후배들에게 강요하는 꼰대가 되지 말라는 말이었다.
그 당시, 코로나19로 인하여 비대면 수업을 하는 날이 많았다. 줌(zoom)으로 하는 온라인 수업은 집에서도 할 수 있으니, 출근은 한 학년에 두 명만 하라고 했다. 젊은이들은 일찍 일어나기 힘들고, 아기 엄마들은 애 돌보느라 바쁘니 내가 매일 오겠다고 했다. 그러니 다른 이들의 부담이 줄었다. 교사 연구실이 엉망이면 말없이 청소하고 좋은 자료가 있으면 나누어 줬다. 1, 2학년 담임교사들은 필수로 들어야 하는 문해력, 수해력 연수를 내가 먼저 듣고 시험을 치르고 나서 주의할 점을 알려 줬다. “선생님은 이런 것을 어떻게 알아요?”라고 하며, 차츰 나를 대하는 눈빛이 달라졌다.
고구마를 찌거나 과일을 깎아가서 아침을 거르고 오는 동료들이 먹을 수 있도록 했다. 학교 앞 카페에서 차 마시는 것을 좋아하여 가끔 사 줬다. 마음의 문이 열리니 말을 걸어왔다. 학급 아이들 생활 지도, 학부모 상담, 자신들의 자녀 교육 문제에 관하여 내 생각을 물어 왔다. 작은딸과 동갑인 옆 반 선생님은 능력 없는 남자 친구랑 결혼하려니 망설여진다는 의논도 해 왔다. 중요한 것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라며 다독여 줬다. 가장자리에서 맴돌다 말을 섞게 되자 불편한 마음이 조금은 가셨다.
최고 선임 선배의 위치는 올해 새로 전근해 온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학년 초에 딸 또래의 교사가 “미숙 샘”이라고 부를 때는 기분이 묘했다. ‘자기 엄마뻘인데 그렇게 부르나? 아니다, 같은 동료로 여겨서 그러겠지.’ 혼자서 이렇게 생각했다 저렇게 생각했다 한다. 내가 젊었을 때 50대나 60대 선생님은 대선배라서 아주 깍듯하게 대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그때는 컴퓨터 능력이 부족한 분들의 일을 대신해 주는 것도 다반사였지만, 요즘은 ‘능력이 없으면 그만둬야지 왜 계속 다니냐?’라는 눈으로 바라보니 그런 취급을 당하지 않기 위해 내 몫은 스스로 해내려고 한다.
지갑은 항상 열면서 필요할 땐 입도 연다.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동화는 원본을 읽어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책을 구해와서 돌려보게 권한다. 통합 시간의 놀이 도구, 악기 등도 먼저 챙겨와서 수업에 쓸 수 있도록 한다. 학부모 상담을 앞두고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자료를 나누어주며, 좋은 연수는 앞서서 신청한다. 가끔 후배들은 “선생님이 우리 중 제일 열심히 하세요. 나도 나이 들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라고 한다.
됐다. 그들에게 나이 많은 교사는 수업을 대충 하고 학교 일도 안 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좀 없어졌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첫댓글 솔선수범 엄마 마음으로 묵묵히 모범을 보였군요.
훌륭하십니다.
와, 글 너무 재밌네요.
너무나 멋있는 선배 교사십니다. 후배들에게 본이 되고, 사랑받으시겠네요. 후배들 관심사도 웃으면서 읽었습니다.
더불어 살기 참 힘드네요. 그래도 50대 교사의 본을 보이고 있습니다.
노력은 쪼끔만 하셔도 돼요. 선생님께 반할 수 밖에 없으니. 하하.
선배 교사로서 후배들을 살피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눈에 그려짐니다.
선배 교사로 본을 보이시는군요.
선생님과 동학년 하고 싶어요.
찐 고구마도, 깎은 과일도 참 좋아하거든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