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8월 21일 비내리는 새벽 대구수목원 산길을 걸으며, 두목의 '제오강정' 한시를 성독하다.
題烏江亭(제오강정)
杜牧(803~852)
勝敗兵家事不期(승패병가사불기)
包羞忍恥是男兒(포수인치시남아)
江東子弟多才俊(강동자제다재준)
捲土重來未可知(권토중래미가지)
승패는 병가에서 기약할 수 없는 일
수치를 안고 모욕을 참는 것이 바로 남아 아니던가
강동의 자제 중에 뛰어난 준재 많았는데
흙먼지 일으키며 다시 온다면 알 수 없지 않는가
이 시는 당나라 시인 두목이 홍구와 오강정을 지나다가 초한전에서 패한 항우를 생각하며 지은 시 ‘오강정’이다.
전쟁터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기약할 수 없는 자주 있는 일이라고 하였다. 당서(唐書)에서 황제 헌종(憲宗)이 ‘승패병가지상사(勝敗兵家之常事)’라고 한 말과 같다. 그러니 남아라면 패전의 수치를 참고, 강동의 뛰어난 젊은이들을 다시 모아 군마를 몰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일어났다면 결과는 알 수 없는 것이며, 역사는 달라질 수도 있었을텐데 하며 항우의 결정을 몹시 아쉬워하는 내용이다.
진시황이 죽고 서로 패권을 다투던 항우와 유방이 마지막 결전을 벌인 곳이 이곳 홍구이었다. 항우는 유방에게 패하고 겨우 도망쳐 해하성 오강이라는 작은 마을 어귀에 도착하였다. 따르는 군사는 10여명, 오강의 정장(지금의 면장)이 항우에게 자기의 배를 타고 강동으로 피하여 훗날을 도모하라고 적극 권하였으나, 항우는 유방에게 패한 수치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결하고 만다.
훗날 천년 뒤 당나라 만당 시인 두목이 이곳 오강정을 지나다가 천하의 영웅 항우가 자결한 역사의 현장을 보며, 항우가 수치를 참고 다시 땅을 말아올리듯(권토) 다시 일어나는(중래) 결정을 왜 하지 않았는지를 안타까워 하면서 이 시를 지었다. 바로 여기서 유명한 사자성어가 나온다. 4구에 있는 ‘땅을 말아서(권토), 다시 돌아오다(중래)’라는 권토중래 사자성어는 바로 두목의 오강정 시에서 유래하고 있다.
두목이 아쉬워 한 바와 같이 항우가 자결하지 않고 수치를 참고 다시 권토중래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사자성어 권토중래 단어는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으니, 수천년을 지나도 읽는 독자의 가슴속에 만가지 상념만 남길 따름이다.
두목은 당나라 말기의 뛰어난 만당 시인이었다. 이상은과 더불어 이두라 불리었는데, 이백과 두보를 이두라고 하였기에 이상은과 두목은 소이두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조선 중기의 천재 여류 시인 허난설헌이 가장 존경하였다는 두목은 이 오강정 시에서 항우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일어나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 하면서 ‘권토중래’ 사자성어를 지어, 한유의 ‘과홍구’ 시에서 유래된 ‘건곤일척’사자성어와 연결되는 멋진 명품 시와 고사성어를 역사에 남겨주었다.
이 '제오강정' 시는 어제 읊은 한유의 '과홍구' 한시와 같이 읽어야 시의 맛이나 의미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으며, 또한, 과홍구에 나오는 '건곤일척'과 이 '제오강정'에 나오는 '권토중래' 두 사자성어 역시 함께 엮어서 읽어야 한다.
8월 21일 새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