媤집 온 詩集 한 권
강성희(리디아)
가을 들머리, 우편으로 詩集이 한 권 배달되어 왔다. 퇴임 후 알게 된 지인의 개인 출판 詩集이다. 감사한 마음과 궁금한 마음에 엘리베이트로 14층까지 올라오는 동안을 참지 못하고 엘리베이트 안에서 봉투를 뜯었다. 연노랑일지 미색일지, 한지의 투명한 밝고 맑은 바탕에 크고 작은 동심원들이 색깔을 달리하며 배치되어 있는 표지 그림 위에는 큰 글씨의 시집 제목아래 시인의 이름이 자랑인 듯 겸손하다.
표지에서부터 그 시인의 자존감 있으면서도 단아하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부러운 마음으로 시인의 마음을 어림해본다.
시인은 이 詩集을 엮어 독자들에게 보낼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열 달을 가슴에 품고 죽을 만큼의 산고를 견디며 출산한 언어의 자식들을 내보내는 심정은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 가며 고이 다듬고 길러 딸을 출가시키는 엄마의 마음은 아니었을까?
두꺼운 표지 겉장을 들추자 연자색 고운 색지 위에 시집갈 딸의 시댁으로 보내는 사돈지를 적듯 손수 적어 내려간 편지가 정갈하고 격조가 있다.
‘저희 부족한 여식을 며느리로 허락해 주시고......친딸같이 여기어 항시 예뻐해 주시기를......’ 표지 속장의 짧은 안부글을 손수 적을 때 시인의 마음도 이러했을 것이다. 시인에게 독자들은 자신이 낳은 詩들의 시댁 식구였을지도 모르겠다. 가서 귀함 받고 살아 주기를, 책 잡히지 말고 살아주기를, 소박맞고 내침당하지 말고, 주인 될 신랑에게 사랑받으며 한평생을 동락하기를 바라는 마음일 듯도 하다.
詩集의 또 한 장을 들추니 시댁에 보낼 예단에 물목을 적은 듯, 자연을 노래한 詩, 사람을 생각한 詩, 음악을 그린 詩, 명소를 담은 詩 등 다채롭고 신선한 소재의 많은 목록들이 꾸러미를 이루며 지적 식욕을 자극한다. 생각 세포들을 자극해 머리 속에서는 목록을 읽으면서도 이미 침이 고인다. 책을 받는 순간 시댁 식구가 되어 버린 나는 목록의 처음부터 말미까지 꼼꼼히 살펴보며 내가 가장 관심 있는 선물부터 찾고 싶어 한다.
시인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자식이 없을 것이다. 목록의 모든 詩들은 시인의 고뇌를 통해, 인고를 통해, 희열을 통해, 독기를 통해 태어났을 것이다. 어느 하나 버리고 싶은 자식이 없었고, 詩가 없었을 것이다. 버림 받지 않을 詩를 위해, 그 자리에 맞춤하는 詩語 하나를 찾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고뇌하고 번민했을지도 모른다.
목록만 훑어보고도 올 가을 나는 심한 가을앓이를 하겠다는 예감이 느껴온다. 시인은 친정엄마로서 성공한 것이다. 자신이 출산한 언어의 자식들이, 그리고 출가해서 시집간 언어의 딸들이 시댁 식구들의 혼을 빼놓고, 독자들의 영혼을 흔들었다면 시인으로서는 그보다 더 큰 자식 성공이 어디 있을까?
그 詩集 속의 詩 한 편에서는 오케스트라 속에서 독주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 독주를 카덴차라고 한다. 시인은 그 카덴차를 들으며
‘감겨서 부푼 선율
살포시 눈감으면
열리는 하얀 자유
그 빛을 움켜쥐고 푸드득 날아오르는
나 모르는 나 있다.’
라고 표현한다. 이 詩를 읽으면서 내 몸에 전율이 일어왔다. 음악을. 소리를, 느낌을 어떻게 이렇게 짧은 말로 몸서리쳐지도록 適妙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웅장한 선율이 흐르다 갑자기 들릴 듯 말 듯한 고요한 독주의 현장에 시인은 있었을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이 광활한 공간에 넓게 메아리치는 소리라면 독주는 안으로 안으로 말려 들 듯이 작아지다가 갑자기 환하게 커지는 소리였을 것이다. 그리고 독주자가 오케스라와의 약속을 벗어나 홀로 마음껏 기교를 펼치는 연주를 들으며 오히려 시인이 자유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 자유로움이 시인의 영혼을 날아오르도록 만들었을까?
시인은 천재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국어책에서 배웠던 ‘시인은 하느님 다음가는 창조자’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를 한다. ‘그것을 쓰지 않으면 너는 죽을 수밖에 없는가? 쓰지 않고는 못 배길, 죽어도 못 배길 그런 내심의 요구가 있다면, 그때 너는 네 생애를 이 필연성에 의해서 건설하라.’ 라고 설파한 릴케 시인의 시론을 생각하며 수필도 그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생각할수록 자신이 부끄럽고 한없이 작아져 한 점 티끌이 되어짐을 느낀다.
올가을 나에게 시집온 詩集 한 권을 읽고 또 읽으며 그녀의 귀한 딸이 너무나 소중하다. 그녀가 영혼으로 낳아 나에게 시집보낸 詩集 한 권이 내 영혼을 붉게 물들이는 뿌듯한 가을이 될 것 같다. (끝)
2019.10.17.
첫댓글 시는 조물주와의 대화처럼 고상하다고 합니다만 저는 그 언어를 이해 하는 것이 어렵더군요. 음미하며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답이라는 생각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詩集을 媤집으로 묘사한 발상이 신선합니다. 오랜 산고 끝에 탄생한 한권의 책이 독자손에 보내질때 고이 기른 딸 자식을 시집 보내는 심정으로 시집 가서 사랑받고 잘 살기를 바라는 친정 엄마의 마음 같다는 생각을 해보며 시든, 수필이든 글쓴이의 마음과 독자 관계를 의미있는 설정으로 공감이 느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시보다 더 아름다운 시어(詩語)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시인보다 더 깊게 가슴앓이하는 독자를 봅니다. 올 가을, 아무래도 다른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작가가 탄생할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시나 수필집을 선물 받으면 독자들은 반갑고 감동을 많이 받습니다.저도 상록수필을 편집할 때 두달 동안은 온 정성을 다하여 출판하는데, 혹시 작은 실수라도 있으면 조용히 알려서 보완할 수 있는것을, 인터넷에 올려 일일이 나열하는사람이 있어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은 일이 있습니다. 선생님 같은 독자가 있어서 마음으로 고맙게 생각하며 잘 읽었습니다.
영혼을 울리는 시집을 받아 펼쳐보는 순간, 마음은 이미 시댁 식구를 벗어나 친정 식구가 된 것 같습니다. 맛깔나는 시에 못지않게 새로 출간한 시집을 출가시키는 딸에 비유하여 전개한 점이 아주 돋보이는 적절한 표현 같습니다. 이는 딸을 여럿 시집보낸 엄마가 아니고선 이처럼 리얼하게 잘 표현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음미하며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같은 독자를 만난 시인은 행운입니다.시집을 잘 보냈습니다. 음악의 느낌을 시어로 멋들어지게 표현한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지인의 창작 시집을 시집 온 며느리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문학적 소질인 것 같습니다. 문맥 요소요소가 며느리에 대한 사랑과 사돈에 대한 감사로 넘쳐납니다. 시를 읽으며 더욱 행복을 느기시기를.
시집 온 시집 한 권을 누가 이리 소중하고 살뜰하게 살펴주고 음미해주겠습니까? 리디아님도 이미 시인의 감성을 갖고 시와 글을 사랑하는 분이십니다. 책의 한 귀절을 읽으면서 그 표현력에 무릎을 치며 감탄할 일이 많을수록 행복해지더군요 잘 읽었습니다.
시집을 받고 며느리를 받아들인다는 마음, 감동입니다. 책속에는 정성껏 마련해서 시집을 보내는 사돈의 예단 물목이라고 표현하시는 선생님의 표현 선생님께서는 시인이십니다. 위의 선생님의 말씀처럼 선생님 같으신 독자를 두신 분 시를 쓴 보람을 가지시리라 생각됩니다. 작가의 글을 소중히여기시는 선생님 아름다운 심성 닮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