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도 한탄강 얼음장 밑으로 얼지 않고 졸졸 흘러갔던 옛이야기, 오늘은 발아래서 잔물결로 일어난다. 철조망을 따라 싸리꽃 피는 막사에서 아버지 전 상서를 쓸 때 한 잎 두 잎 분분히 휘날리던 꽃잎에 물들던 군복 소매, 비상 도로 타다 끝내 전역하지 못하고 벼랑 아래로 전사한 전우의 이름을 부르며 서툰 바느질로 한 땀 한 땀 명찰을 고쳐 달고 휴가를 기다릴 때 나라를 위해 넋이 된 볼그레한 동안의 전우들이 지뢰지대에서 노랗게 핀 민들레 홀씨 되어 철원의 바람 타고 훨훨 고향으로 가기를 바랐다.
기상나팔 소리에 일어나 상의를 탈의하고 오와 열을 맞춰 군가를 부르며 뜨거운 입김을 뿜으며 달리던 겨울 구보가 그리운 것은 전사한 그들이 그립기 때문이다.
초병 서는 차가운 총검에 어머니 눈물처럼 별빛을 머금은 밤이슬이 방울방울 맺힐 때 멀리서 우는 산짐승 소리에 군화 끈을 더 단단히 매던 밤, 후방에 목련꽃 뚝뚝 지고 자식을 앞서 보낸 노모가 켠 기일의 촛불이 가물가물 말없이 타오르면 함께 근무하지 못하고 전우를 먼저 보낸 슬픔도 그리움을 한 촉 두 촉 높여 갔다. 그래도 비 내리는 고모령이라는 노래를 틀어주는 대남방송* 속에서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경계의 눈빛을 늦추지 않았다. 이제는 나만 전역한 지 오래나 옛이야기는 잊는 게 아니라 아직도 퍼런 한탕강물로 살아 굽이굽이 출렁인다. 오지리 옥수수밭 옥수수로 알알이 박혀 익어가기에 더더욱 가슴 미어지는
* 북한에서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군인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비 내리는 고모령을 틀어주었다. -----
심사위원단은 수상작에 대해 “철원이야기는 자신의 체험을 시로 표현한 것이기에 감정의 과잉 노출이나 표현의 작위성에서 벗어나 있다”며 “산문시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리듬과 호흡이 유장하게 이어져 출렁이는 강물의 흐름을 연상시킨다. 오랜 숙련의 경력을 가진 시인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