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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살 때 찬송가만을 위해 살리라 하나님께 소원함. 하나님은 찬송가 작사를 위해 문단에 데뷔하게 하시고, 찬송가 작곡을 위해 작사가로 데뷔하게 하시며, 찬송가 편집을 위해 월간 [새가정], [기독교사상] 등 잡지사에서 편집을 연수하게 하신 뒤 마침내 목사가 되게 하심. 그래서 결국 평생 찬송가를 작사, 작곡, 편집을 했고, 국내 최초 새찬송가 645장 전곡 해설집을 펴낸 오소운 목사의 자전적 이야기
저는 열여덟 살 때 평생 찬송가만을 위해 살리라 하나님께 소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어여삐 보사 찬송가 작사를 위해 문단에 데뷔하게 하시고, 찬송가 작곡을 위해 작곡을 공부하여 작곡가로 데뷔하게 하시고, 또 찬송가 편집을 위해 월간 [새가정], [基督敎思想], [기독교교육] 등 잡지사에서 편집을 연수하게 하시고, 그리고 찬송가 교육과 보급을 위해 신학을 하게 하시고 마침내 목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평생 찬송가를 작사·작곡·편집을 하며 학교와 교회에서 찬양대를 지휘하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저는 인생을 춘하추동 4계절로 나누어 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노아홍수 이후 인간의 수명을 120세로 한정하셨답니다. 인간의 잘못으로 120까지 살기는 어렵지만 1년 사시사철을 120세로 보고 인생의 춘하추동을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01살부터 30살까지는 새봄: 새싹이 나서 자라고 잎이 피고 꽃이 피는 시절입니다.
30살부터 60살까지는 여름: 꽃이 피어 열매가 자라나고 무르익어가는 시절입니다.
60살부터 90살까지는 가을: 익은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추수의 계절, 마냥 행복한 계절입니다.
90살부터 120살까지는 겨울: 추수한 것을 하늘나라에 저장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절입니다.
이제 가을 끝자락에 다다른 저의 지상 생애 1년의 결실. 이 책은 저의 봄-여름-가을로 엮었습니다. 하나님은 음악의 창조주시요 위대한 음악가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 모든 만물에게 음악을 입력해 주셔서, 만물들은 하나님이 입력해주신 곡조로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노래를 하고 앞으로도 계속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는 창조력을 주시고 '새노래'로 찬양하기를 바라십니다. 이 때 부르는 노래가 찬송가입니다.
CHAPTER 1 새싹 트는 봄
01. '맹꽁이'라는 아이
02. 뭘 먹나?
03. 외할머니의 옛날 얘기와 '천로 역정'
04. 새벽기도와 가정 예배
05. 두 무릎 관절염으로 한 달 입원
06. "네가 완쾌된 것은 부모님 기도 덕이다!"
07. 바이올린과 오르간 그리고 하이꾸(俳句)
08. 피도 조선 뼈도 조선
09. 귀신들린 사람들
10. 책에 미친 아이
11. 아, 목동아!
12. 조선어 썼다고 매 맞은 맹꽁이
13. 칠중(七重) 동그라미 받는 맹꽁이
14. 나라 위한 기도회
15. 주일학교 교사가 된 맹꽁이
16. 지서에 끌려 간 맹꽁이
17. 맹꽁이의 첫 작곡
18. 찬송가 작가가 되리라
19. 맹꽁이의 첫사랑
20. 악랄한 왜놈들의 장기 계획
21. 신사참배 강요
22. 가미까제 특공대
23. "덴노헤이까가 높은가, 하나님이 높은가?"
24. 정신대로 끌려간 동창 소녀
25. 주희의 비밀
26. 원자폭탄 두 방에 무조건 항복
27. 원자탄 맞고도 살아 돌아온 효원이형
28. 맹꽁이에게 한글을 배우는 선생님들
29. 할아버지와 아리실교회
30. 아버지와 아리실교회
31. "사람도 믿어야 한다"
32. 입시 낙방을 비는 아버지
33. 혼자 음악 공부하는 맹꽁이
34. 병이 든 맹꽁이 형제
35. "소가 밥해?"
36. 비행기를 만드는 아이
37. 맹꽁이의 가출
38. 까까머리를 하이칼라로
39. '미련한 처녀' 맹꽁이
40. 영수학관 입학
41. 세계가 알아주는 천재 김현문(金賢文) 선생님
42. 아버지의 저주
43. 학생 사진사
44. 조선신학교 입학
45. "보따리 싸 가지고 집에 가!"
46. 즐거운 교회음악 시간
47. 아아! 6·25
48. "순교자가 되라!"
49. "미친놈 죽이는 놈은 진짜 미친놈이지!"
50. "예수 믿고 죽갔소? 예수 배반하고 살갔소?"
51. "예수 믿고 살겠소!"
52. '반신불수가 되게 하여주소서!'
53. 괴뢰군 탱크 도강(渡江)을 저지한 작은 매형
54. '교인명부' 사건
55. "좁쌀 알갱이까지 세는 놈들"
56. "일어나라! 때가 되었다."
57. 처음 드린 감사 예물
58. 야마하 오르간
59. 아아! 한호 형!
60. [제2국민병(第二國民兵)]으로
61. 하루에 160리를 행군
62. 103사단 작전처
63. 제25교육대(敎育隊)로
64. 제20교육대 생활
65. "굶은 병(兵)"
66. 귀향(歸鄕)
67. 둘이서 먹어치운 밭 한 솥
68. 드디어 고향에
69. '영광! 영광! 주께 돌리세!'
70. '하늘가는 밝은 길'
71. '죽은 오장로가 산 윤덕주를 꺾는구나!'
72. 치솟은 불기둥
73. 맹꽁이의 아버지
74. '늘 찬송' 하는 맹꽁이네 가정
75. 병이 드신 어머니
76. 맹꽁이네 신앙 전통
77. 맹꽁이와 찬양대
78. 맹꽁이의 결혼
1) 30도 못 산다며 퇴짜 맞은 맹꽁이
2) 사모는 패물 따위 탐내면 안 된다.
3) 배우자 될 사람 위한 기도
4) 신혼부부의 부창부수(婦唱夫隨)
CHAPTER 2 꽃이 피는 봄
01. 두개의 아호
1) 작은 구름(小雲)
2) 한바우(巨巖)
02. 첫 아들 사무엘이 태어나던 날
03. 부산으로 이사했다가 서울로
04. "전도사님께 대하여 경례!"
05. 암행어사 김학봉 전도사
06. 암행어사의 가족은 굶고 있는데
07. 대한기독교서회 입사
1) 편집부 시절
2)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3) [새가정]지(誌) 편집장
4) 아동문학으로 등단(登壇)
5) 월간 [基督敎思想] 창간 편집장
6) "시도 때도 없이 벌떡벌떡"
7) 인간의 독립된 유일한 지체(肢體)
08. 대한기독교계명협회로
09. 일본 유학시절의 기억에 남는 일
1) '찬송 안 부르면 천국 못 간다'
2) "진지 잡수셨습니까?"(めしだべましたか?)
3) "원자탄은 일본을 살렸다."
CHAPTER 3 성장하는 여름
01. [주일학교 찬송가, 1962] 편찬
1) "밝은 빛을 따라서"
2) "우리들이 모여서 예배드릴 때"
3)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3) '김치 냄새 나는 곡조로 작곡하시오'
4) 최초의 작곡집 [할렐루야, 1965]
02. 기독교교육협회 시절
1) 혼란과 좌절과 궁핍의 시절
2) [기독교교육] 편집장으로
03. [찬송가 (어린이용), 1973] 편찬
1)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
2) '산골에 사는 주의 어린이'
3) "한국어린이 찬송은 이런 방향으로!"
04. [어린이 찬송가, 1979] 편찬
05. [유치부 찬송가, 1984] 편찬
06. [어린이 찬송가, 1988] 편찬
07. [청소년 찬송가, 1994] 편찬
08. 관악여상 시절(1978-1995)
1) 관악여상 선교합창단
2) "천국에서도 Main Choir를 지휘"
3) 방콕에서 성경 쓰기
4) "저 자살 할래요"
5) 울면서 웃는 엄마
CHAPTER 4 추수하는 가을
01. 내 일생 소원은
02. 중앙교회 시절(1983~현재)
1) [베다니찬양대] 지휘
2) [메시야찬양대] 지휘
3) [호산나찬양대] 창설
4) 6년 반 동안 노아속회 인도
APPENDIX 이삭 줍기
I. 小雲漫筆:
01. 꽃은 식물의 생식기(生殖器)
02. 남자 화장실의 4개파/성기(性器)인가 성기(聖器)인가
03. 예수님은 오씨다
04. 열여덟 살 할아버지
05.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을, 그러기 위해 기도하라"
06. 'Boys, be Ambitious for Christ!'
1) 참 그리스도인 클라크 박사
2) 소년들아 그리스도를 위하여 큰 뜻을 품어라
3) 삭제된 'for Christ'
07. 갓(God)을 쓰고 다니는 조선인
08. 천국에 가면 세 번 놀란다
09. '쪽발이'란 말
10. 성경을 많이 읽고, 많이 외우자
1) 성경말씀을 많이 외우자
2) 성경은 예수님을 만나게 해준다
3) 성경은 위대한 인물을 만든다
수필6제(隨筆 六題)
1. 하나님이 차려 주신 '생명양식 뷔페'
2. 내 생애 최초의 스키 타기
3. 내 생애 최고의 생존수영(生存水泳)
4. 내 생애 최고의 윷놀이
부록 1
부록 2
오소운 [저]
어린 14살 때부터 찬송가 작사·작곡을 시작하여 찬송가위원회와 찬송가공회의 전문위원으로 주일학교찬송가·어린이찬송가·통일찬송가·신작증보찬송가 등 각종 찬송가 편집을 주관하며 찬송가 평생연구로 평생을 살아온 찬송가연구의 대가.
1956 월간 [새가정] 편집장
1957 아동문학가 강소천님 추천을 받아 월간[새벗]에 동화'네 거리의 플라타너스'로 문단에 등단
1957 월간 [기독교사상]초대 편집장
1958 대한 기독교계명협회 편집인
1965 첫 작곡집[할렐루야]발간
1968 미국 NCC 장학금으로 일본 유학
1971 월간 [기독교 교육]편집인
오소운 [저]
어린 14살 때부터 찬송가 작사·작곡을 시작하여 찬송가위원회와 찬송가공회의 전문위원으로 주일학교찬송가·어린이찬송가·통일찬송가·신작증보찬송가 등 각종 찬송가 편집을 주관하며 찬송가 평생연구로 평생을 살아온 찬송가연구의 대가.
1956 월간 [새가정] 편집장
1957 아동문학가 강소천님 추천을 받아 월간[새벗]에 동화'네 거리의 플라타너스'로 문단에 등단
1957 월간 [기독교사상]초대 편집장
1958 대한 기독교계명협회 편집인
1965 첫 작곡집[할렐루야]발간
1968 미국 NCC 장학금으로 일본 유학
1971 월간 [기독교 교육]편집인
1975 오소운 작곡 [어린이 성가 375곡집]
2011 누구나 알기 쉽게 쓴 <21세기 찬송가 해설>(성서원),
기타 100여권
서울 세종로 새문안장로교회(한국 첫번째교회)에서
김정수. 나운영. 오소운. 김국진. 김순세. 김순제. 유병무.
이한웅. 조돈환 작곡자
서울 종로 중앙감리교회에서 지휘하고 있는 노인찬양대다.
70세 이상 된 남녀 노인들이 대원이다.
최고령자는 91세의 은퇴 원로목사다.
30명 내외가 주일 오후 예배 때 찬양을 드리고 있다.
70세 이상 늙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무슨 찬양대를…?
천만의 말씀이다. 시편 150편은 이런 말로 끝맺고 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70이상 늙은이도 호흡이 있다.
다라서 마땅히 찬양해야 한다.
'찬양대는 목소리가 고와하야 한다'는 생각은 비 성서적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의 목소리는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고운 목소리로 부르는 찬양만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는가?
마땅히 기뻐하시지 않겠는가?
꾀꼬리의 아름다운 소프라노가 있는가 하면
돼지의 툴툴대는 베이스도 있다.
찌르레기의 쉰소리에 맹꽁이의 코맹맹이 소리.
이 모두 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다.
만물은 하나님이 자기네에게 주신 그 소리로 찬양을 하건만
유독 인간만이, 하나님이 찬양을 받으시기 위해 창조한
그 인간만이 '목소리 타령'을 하는 것이다.
호산나 찬양대원 중에는 글을 모르는 할머니,
노래를 전혀 못 부르는 할머니도 있다.
오소운 목사의 찬양대 운영 방침은 이렇다.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 후 하신 말씀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는 말씀이다.
창조함을 받은 만물들이
태초부터 저마다 제소리로 찬양을 하는데
"보시기에 좋았다" 는 것이다.
"듣기에 좋았다"가 아니다. "보기에 좋았다!"
다른 말로 하면 오디오(Aoudio)에 대한 관심보다는
비디오(Video)에 대한 관심이 크신 것이다.
그래서 오소운 목사는
"호산나 찬양대는 오디오보다는
비디오에 무게를 두는 찬양대"
라고 정의내리고 있다.
3년 여 긴 세월, 암으로 고생하는 80세의 할머니도
항암주사를 맞으며 나와 찬양을 하고,
목소리가 남자와 같아서 저음만 내는
78살 할머니도 굵은 남성 목소리로 찬양을 한다.
찬양대가 1-2절을 부른 후
온 회중이 함께 3-4절을 부른다.
메기고 받는(Antiphonal) 찬양이다.
해설을 미리 준비하여 모든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고
해설 뒤에는 곡조를 실려 속으로 따라 부르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뒤에 앉아 찬양대의 '연주'를
'심사하는 어리석은 짓'을 못하게 한다.
찬양은 "호흡이 있는 자"와 "천지만물"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사항"이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인간과 만물에게
"찬양을 받으시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 호산나찬양대 2011년 11월 찬양곡 해설 ◆
감사 아리랑
우리 중앙교회는 지난 주일에 추수감사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감사는 추수감사절에만 드리는 게 아니다. 어떤 경우에든지 늘 감사해야 한다. 오늘 찬양곡은 <감사 아리랑>이다. 한민족의 추수감사절인 추석이나 어떤 큰 잔치를 벌이고 춤추며 노래할 때 언제, 어디서나 빠지지 않는 노래가 아리랑이다. 그래서 밀양 아리랑과 본조(本調) 아리랑을 합쳐서 편곡한 후 감사의 가사를 붙여서 <감사 아리랑>이라고 했다.(오소운).
외국인들은 코라아(Korea) 하면 ‘아리랑’과 ‘김치’를 떠올린다고 한다. 그만큼 아리랑은 한국의 문화유산이요, 우리 한민족의 고향 같은 노래다. <아리랑>의 뜻에 대해서는 학설이 분분하지만, 결정적 학설이 없다. 어떤 크리스천 학자는 “아리랑은 바벨탑 사건 이후 민족의 대 이동 때 우랄ㆍ알타이 산맥 고개를 넘어올 때부터 하늘의 하나님을 찬양한 <한민족의 찬송가>라고까지 주장한다.
자고로 많은 학자들이 아리랑에 대한 연구를 하여 글을 남겼다. 그 중에서 구한말 우리나라에 와서 선교를 하며 우리나라에 관한 많은 책을 써서 세계에 우리 사정을 알리고, 우리 문화를 알린 헐버트 박사의 아리랑에 관한 글과《매천야록》의 아리랑에 관한 글로 이 자료를 만들었다. 헐버트 박사에 관한《동아백과사전》의 글을 인용한다.
헐버트<Hulbert, Homer Bezaleel> (1863~1949)
한국을 방문한 노경의 헐버트 박사
미국의 선교사ㆍ언어학자ㆍ사학자. 버몬트주(州) 뉴헤이번 출생. 1884년 다트먼트대학을 졸업, 그 해 유니언신학교에 들어갔다가 86년(조선 고종 23) 소학교 교사로 초청을 받고 감리교 선교사 D.A.벙커 등과 함께 내한(來韓), 육영공원(育英公院)에서 외국어를 가르쳤다. 1905년 을사조약 후 한국의 자주독립을 주장하여, 고종의 밀서를 휴대하고 미국에 돌아가 국무장관과 대통령을 면담하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1906년 다시 내한, 《한국평론:The Korea Review》을 통해 일본의 야심과 야만적 탄압행위를 폭로하는 한편, 이듬해 고종에게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보내도록 건의하였다. 그는 한국 대표보다 먼저 헤이그에 도착, 《회의시보:Courier de la Conference》에 한국 대표단의 호소문을 싣게 하는 등 한국의 국권 회복운동에 적극 협력하였다.
1908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에 정착하면서 한국에 관한 글을 썼고, 1919년 3·1운동을 지지하는 글을 서재필(徐載弼)이 주관하는 잡지에 발표하였다. 대한민국 수립 후 49년 국빈으로 초대를 받고 내한하였으나, 병사하여 양화진(楊花津)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저서에 《한국사:The History of Korea》(2권) 《대동기년(大東紀年)》(5권) 《한국견문기:The Passing of Korea》《사민필지(士民必知)》등이 있다.
헐버트 박사는《한국견문기:The Passing of Korea》첫머리에 있는 헌사(獻辭)에서 이렇게 썼다.
“비방(誹謗)이 그 극에 이르고 정의가 점차 사라지는 이 때에, 나의 지극한 존경의 표시와 변함없는 충성의 맹세로써 대한제국의 황제 폐하께, 그리고 지금 자신들의 역사가 그 종말을 고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지만 장차 이 민족의 정기(精氣)가 어둠에서 깨어나면 ‘잠이란 죽음의 가상(假象)이기는 하나’ 죽음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게 될 대한제국의 국민에게 이 책을 드립니다.”
그리고 그는 아리랑은 한국인에게 ‘쌀과 같은 존재’라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국인에게 이 노래는 마치 그들의 식생활에서 쌀이 차지하는 것과 같은 비중이다. 다른 것들은 단지 주변적인 노래일 뿐이다. 그래서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니 노래(아리랑)를 들을 수 있다. 오늘날의 한국인에게 이 노래는 마치 미국에서 수십년 전 <Ta-ra-raboom-di-ay>(미국 교과서에 실려 있는 대표적인 민요ㆍ필자 주)과 같은 것이다.”
그는 또 이렇게 주장한다.
“이 노래의 형태는, 내가 명확히는 알 수 없으나, 내 생각에는 아무도 그 정확한 편수(篇數)를 알지 못한다고 생각된다. 사실 한국인은 즉흥연주에 숙달한 명수들이기 때문에, 곡조는 부르는 이마다 다르다. 그러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의 후렴구는 다음과 같이 정형화(定型化) 되어 있다.”
“아리랑 사설(辭說)은 신화나 민요, 자장가나 권주가 그리고 여행과 같은 일상사나 사랑에 대한 사연 등 모든 것을 담아 노래한다. 그래서 한국인과 그들는 마더구스(Mother goose)의 동요이며, 레무스 아저씨인 동시에 시인 바이런의 시이며, 원즈워드이기도 하다.”
노랫말을 즉흥적으로 꾸며 노래하는 한국인들을 헐버트는 세계적인 동화작가와 바이런이나 워즈워드 시인 등에 비겼다.
한말의 시인ㆍ학자ㆍ우국지사인 황현(黃玹)이 기술한 한말비사(韓末秘史)인《매천야록(梅泉野錄)》에는 이런 재미있는 글이 있다.
“1월에 임금님이 낮잠을 자다가 광화문이 무너지는 꿈을 꾸고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임금님은 크게 불길하게 여겨 그해 2월 창덕궁으로 이어(移御)하고 즉시 동궁을 보수했다. 이 때 남도에 난리가 날로 급박해졌음에도 토목공사는 더욱 공교함을 다투었다. 임금님은 매일 밤마다 전등불을 켜놓고 광대들을 불러 <신성염곡(新聲艶曲)>을 연주하게 하였는데, 그것은 <아리랑 타령>이라는 것이었다. ‘타령(打令)’이란 ‘부르는 노래’를 일컫는 말이다. 민영주(閔泳柱)는 원임각신으로서 뭇 광대들을 거느리고 아리랑타령을 부르는 것을 전담하여, 광대들의 실력을 평가해 상방궁에서 금과 은을 내어 상으로 주도록 했다. 이 일은 (일본공사) 오오도리 게이스께(大鳥圭介)가 대궐을 침범할 때에 이르러서야 중지되었다….”
“한번은 밤이 깊었는데 노래하며 악기를 연주하는 소리가 들려 소리를 찾아가 한 전각에 이르고 보니, 휘황하기사 대낮처럼 밝은데, 양(兩) 전하가 편복을 입고 산만하게 앉아 계신 것이 보였다. 섬돌 아래로는 머리띠를 하고 팔뚝을 드러낸 체 노래하고 북치는 자들이 수십 명인데 잡된 소리로 노래하는 것이었다. ‘오다가다 만난 님을 죽으면 죽었지 난 못 놓겠네…’ 너무 음란하여 듣는 자들이 모두 얼굴을 가렸으나 명성황후는 넓적다리를 치면서 ‘좋지, 좋아!’ 하며 추임새를 하였다.”
<아리랑>은 이와 같이 상하귀천(上下貴賤) 막론하고 즐겨 부르는 우리의 얼과 혼이 담긴 노래요, 누구 말대로 한민족 최초의 찬송가라 생각한다.
해 외 공 연 환 송 음 악 회/ 오소운 목사님의 추억
둘째 아들 테너 오성환교수님
.오소운 목사 지음; <21세기 찬송가연구> 출판 감사 가족찬양예배
.오소운 목사 지음; <21세기 찬송가연구> 출판 감사 가족찬양예배
첫댓글 21세기 찬송가연구 오소운목사님 지음 소중한 자료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역사 오소운목사님이 계신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음원은 오소운 목사님 둘째
아드님 테너 오성환교수님 음원 작업해 편집합니다.
우리 조돈환목사님 자료 또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