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르망 주의보
김지애
샤르망은 프랑스어로 매력적이라는 뜻이다. 매력은 상대적이다. 그렇기에 누구에게는 그 매력이 빛을 발하고, 다른 이에게는 매력은커녕 눈엣가시 같기도 하다.
샤르망도 강아지였을 때는 앙증맞고 귀여웠다. 동생의 SNS 사진으로 샤르망을 보고 나 역시 ‘귀여워’를 연발하며 녀석을 만나고 싶어 한 적도 있었다. ‘샤페이(shar pei)’ 견종은, 얼굴 가득 쭈글쭈글한 주름이 쭉 늘어진 생김새가 이색적인 아우라를 발했다. 빨래판 같은 몸의 주름도 개성 있었다. 타고난 생김이 독특한 매력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이다. 그러나 샤르망은 사진에서만 매력적이었다. 실물로 마주했을 땐 난감했다. 탱글탱글 까만 눈이 주름에 묻혀 잘 보이질 않는 게 아닌가. 게다가 눈 주위에 흘러내리는 주름으로 눈가 짓무름이 심했다. ‘안검내반’ 증상으로 쌍꺼풀 수술을 해야 하는데 심장이 안 좋아 수술이 위험하다 했다. 날이 더우니 살이 접히는 데마다 피부병이었다. 이놈의 매력이 화근이었다.
손 많이 가게 매력적인 샤르망은, 조카가 태어나고 친정집에 맡겨졌다. 몸길이 육십 센티미터, 몸무게 삼십오 킬로그램에 육박한 녀석을 갓 태어난 아기와 한 공간에서 키우는 건 무리였다. 손재주 좋은 아버지는 마당 한쪽의 후미진 곳에 한 평 남짓한 창고를 만들어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녀석은, 변도 제집에서는 절대 보지 않았다. 참고 있다가 헨젤과 그레텔이 식빵 부스러기 남기듯 산책가는 길목마다 변을 남겼다. 문제는, 사냥견과 투견의 피가 흐르는 종이라, 갑작스러운 공격성을 늘 염두에 둬야 했다. 낮에 사람 많은 곳은 피해야 했다. 친정집은 서울의 인구 밀집 지역에 있었다. 해서 아직 통 트기 전 새벽에 샤르망과 산책하는 게 아버지의 중대한 일과가 되었다. 두툼한 배변 봉투를 들고 땀범벅이 된 아버지의 팔에는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다.
나와는 그 어떤 추억도 없기에 샤르망이란 이름이 입에 착 붙질 않던 그 날! 친척 결혼식을 보고, 친정에 잠시 들렀던 날이었다. 내 구두를 신고 딸이 마당에 나갔다. 굽 높은 구두를 매우 헐겁게 신고,
‘또각또각 또그락또그락 또각’
엇박자의 부자연스러운 구두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일곱 살 된 딸이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웃음이 비명으로 바뀐 건 순식간이었다.
샤르망이 단단히 묶인 목줄을 끊고 딸에게 달려들었다. 딸의 종아리에서는 피가 났고, 친정엄마가 맨발로 번개처럼 뛰쳐나가 녀석을 온몸으로 맹렬하게 막아냈다. 녀석을 끌어안듯 부여잡은 엄마의 모습이 흡사 호랑이를 부둥켜안은 형상이었다. 엄마도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한발 늦게 아버지와 동생이 녀석을 진정시켜 사태는 수습되었지만, 딸의 종아리에는 녀석의 잇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그 무렵, 개에 물리는 사고가 뉴스에 빈번하게 나왔다. 사망에 이르는 사고도 있었다. 아버지는, 혹여 모를 사고에 대비해 대문과 담장에 ‘개 조심’을 크게 써서 붙였다. 그 경고문이 내겐 내면의 폭염이 되어 와락 화를 치솟게 했다. 아버지의 팔은 녀석에게 물려 성한 데가 없었다. 녀석을 씻기고, 불편한 부위를 소독하고 치료해 주다 물린 상처들이었다. 이러다 사달이 나지 싶어, 신중하게 고려해 안락사를 시키자 했다. 동생도 견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며 불편한 신체로 인해 맹견이 된 녀석의 안락사를 동의했다.
“어릴 때는 사람도 동물도 귀여워. 손이 많이 가도 돌봄이 즐겁지. 나이 들어 병들면 동물도 사람도 눈을 마주하지 않아. 병만 보지. 산책갔다 장갑 끼고 금덩이 만지듯 부드럽게 어루만지면 시원한지 눈을 껌벅껌벅해. 그 눈이 참 선해. 눈곱 낀 눈에 살겠다는 의지가 있어. 산책가려고 부스럭거리기만 해도 그 소리 알아듣고 얼마나 반기는지 아니? 명줄 붙은 생명을 나 힘들다고 내치면 못 써.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게 생명이 아니야.”
우리의 뜻과는 달리 아버지의 신념은 확고했다.
더위를 많이 타는 아버지는 몇 해 여름을 긴소매 옷차림이었다. 통풍이 잘되는 얇은 바람막이 점퍼라 해도 갑갑해 보였다. 삼십삼 도가 넘는 푹푹 찌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우리 집을 방문한 아버지는 점심 한 끼 들고는 바로 서둘러 집에 갈 채비를 했다.
“폭염 주의보 내렸다는데, 해나 지면 움직이세요. 집에 훔쳐 갈 금덩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유를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부러 ‘금덩이’를 강조했다.
“금덩이도 보통 금덩이여야지. 폭염 주의보는 아는 주의보라 괜찮아. 지금 샤르망 주의보 내려진 판국인데.”
아버지가 객쩍게 웃었다. 그러자 이마에 빨래판 같은 주름이 잡혔다.
“샤르망 주의보요? 무슨 태풍주의보도 아니고…….”
쓰나미처럼 쏟아내고 싶은 말을 목구멍으로 삼켰다. 샤르망의 ‘샤’자만 들어도 속에서 천불이 났다. 날이 더우면 녀석의 접힌 피부에 진물이 났다. 가렵고 불편하니 저 스스로 긁고 물어뜯어 상처가 낫질 않았다. 산책할 때 착용하는 입마개를 어쩔 수 없이 집에서도 하게 되었다. 입마개를 하니 입 주변이 또 짓물렀다. 한여름의 습하고 더운 공기가 악순환의 고리를 더욱더 옭아맸다.
그 고리가 끊어지던 날, 녀석은 피부질환과 심장 이상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녀석의 죽음에, 무더운 한여름의 소나기처럼 시원할 줄 알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몇 날 며칠을 일어나지 않았다. 하루도 거르지 않던 산책은커녕 외출도 하지 않았다. 녀석이 죽어서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내리 잠만 자는 아버지가 걱정되었다. 내가 너무 녀석을 미워해 아버지에게 저주가 걸렸나 싶어 가슴이 내려앉았다.
샤르망 주의보가 내려졌던 애증의 그 여름이 훌쩍 지난 어느 날, 칠십이 넘은 아버지의 처진 눈꺼풀이 불편해 보였다. 안검하수 수술을 제안했다. 아버지는 나이 들어 얼굴에 칼 대기 싫다며 있는 그대로 살고 싶으시단다. 한 생명을 끝까지 책임진 아버지의 눈꺼풀이 무거워 보였다. 처진 눈매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눈에서 불현듯 샤르망의 눈이 오버랩되었다. 명치 끝이 찌르르 알알했다. 그러나 교복 치마 아래로 딸의 종아리를 볼 때마다 속이 상하는 건 여전하다. 혹여 인명 사고가 나지 않을까, 불안증과 걱정으로 조마조마한 시간도 떠올랐다. 녀석에게 물린 후, 딸은 트라우마가 생겨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동물을 좋아하는 작은 아이는 틈틈이 반려동물을 키우자고 나를 설득 중이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샤르망 이야기를 꺼내며 한 생명이 죽을 때까지 책임질 수 있냐고 되물으면 더는 졸라대지 않는다.
내게는 ‘녀석’으로, 아버지에게는 ‘샤르망’이라 불리던 금덩이! 샤르망은 이름과 달리 매력적이지 않다. 내게는 그저 치명적인 존재였을 뿐! 그러나 동트기 전 가장 어두운 시간, 아버지와 함께 집 밖을 나서던 녀석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떠오르면 공연히 가슴이 아려온다.
< 김지애_ 프로필 >
2004년 박화성 문학상 (박화성 탄생 100주년 기념 단편소설 현상공모) 소설 부문 우수상
2009년 평화신문 신춘문예 유아동화로 등단
어린이·청소년 논술 지도와 엄마표 놀이 칼럼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