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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라카노
이 홍사
결론부터 말하자면, 홍랑은 지금 차가 없다.
차를 아들 녀석에게 빼앗긴 셈이다.
지하철이 없고 대중교통이 시원찮은 중소도시에서 차가 없으면 불편할 것 같지만, 전혀 아니었다.
차가 없으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말하자면 심신이 평온한 상태다. 홍랑은 지금 한국이 아니라 미얀마에 머물고 있다. 한국에서 차가 없이 보름 이상을 지내다가 미얀마로 들어온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인천공항에서 바로 인천으로 가서 찜해놓은 차를 사서 끌고 구미로 내려갈 생각이었다.
이참에 차를 사지 말까?
차 없이 사는 방법에 길을 들여봐? 꼭 필요하면 아들 녀석의 차를 이용하고?
한국의 차는 감가상각이 너무 심하다. 새 차를 사면 시세로 일 년에 얼마가 까진다는 건 계산기로 두드리면 바로 답이 나온다. 그러나 미얀마는 그렇지 않다. 전부가 일본이나 한국에서 중고차를 들여온 것이지만, 작년에 천만 원에 거래된 차가 올해 들어서 천이백만을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새 차의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에 그렇다. 심지어 사 년을 탔는데도 살 적에 준 값을 그대로 부르기도 한다. 그런 일이 허다하다. 그게 미얀마의 차량의 시세인데 한국의 차는 너무 감가상각이 심하다.
차가 없으니 참 편했다.
아내가 어디를 태워달라는 소리도 하지 않고 시내에 나가면 주차문제로 고민할 거리도 사라졌다. 오토바이는 너무 편리했다. 아내는 오토바이를 태워달라는 소리는 결코, 하지 않았다.
드디어 족쇄가 풀린 것이다.
아내는 운전을 못 하는 게 아니다. 다만 면허증이 없을 뿐이다. 지난봄, 계모임에 갔다가 여편네들끼리 객기를 부리며 막걸리를 한 잔 마시고, 아내는 절대로 마시지 않았다고 우겼지만 홍랑이 미루어 짐작하는데 마신 것이 틀림없다. 아무튼, 운전해서 들어오다가 사고가 있었다. 집 앞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다가 접촉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는 크지 않았다. 신호대기하고 있는 차, 뒤범퍼가 살짝 긁히는 정도였는데 음주운전에 낸 사고라 면허가 취소되었고 사회봉사를 몇 시간 받고, 사 년간 면허시험에 응시할 자격마저 상실했다. 사소한 사고였는데 결과는 엄청났다.
처음에는 홍랑 앞에서 아내가 마치 죄인처럼 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니 간이 슬금슬금 커져서 홍랑의 차를 넘보기에 이르렀다. 절에 간다. 모임에 간다. 심지어 재래시장에 간다. 그때마다 태워달라고 하는 것이다.
“면허도 없는 주제에, 시내버스 타고 다녀!‘
그렇게 퉁을 먹이지만 시간이 날 적에는 태워주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이다. 택시를 타고 다니면 그게 결국 누구 주머니에서 나가는 것인가?
차를 넘기고 나니, 아내의 그런 요구가 사라졌다. 아들 녀석의 차를 이용하는 것이다. 아내의 면허가 취소되자 홍랑이 처음에는 상당히 불편했다. 은행의 심부름을 시킬 수가 없었다. 그게 엄청 불편했다. 홍랑의 주거래 은행에서는 직접 본인이 보아야 할 볼일이지만 담당자에게 전화해놓으면 아내가 가도 본인으로 인정을 해준다. 그게 소규모 지방은행의 장점이다. 심지어 은행의 담당자는 전화만 해서 누구라고 밝히지 않아도 홍랑의 목소리를 알아본다. 그게 편해서 단골로 이용한 게 벌써 이십 년이 넘었다. 담당자인 이 계장은 다른 지점으로 두어 번 갔다가 왔지만, 자신의 고객이라고 생각하는지 좋은 상품이 나오면 먼저 전화를 해서, 이렇고 이런 상품이 나왔는데....... 홍랑의 의사를 물어보는 형편이다. 아내가 면허증이 없으니 공단 저쪽에 있는 은행 볼일을 홍랑이 직접 보러 다녀야만 했다.
타고 다니던 대형 외제 승용차가 눈엣가시처럼 여겨졌다.
다 이유가 있었다.
차를 넘긴 건, 남에게 판 것이 아니라 사무실에 같이 근무하는 여동생에게 넘긴 것이다. 꼭 필요하면 하루쯤 빌려 타도 무방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다만 그 차를 이용했다면 이번에 미얀마에 나올 적에 버스터미널까지 좀 태워달라고 했을 뿐이다. 그것도 아들 녀석의 차를 이용하면 되는데 녀석이 약속이 있다고 꽁무니를 뺀 까닭이었다.
예전에 경기가 좋을 적에 홍랑이 여동생에게 업무용으로 경차를 한 대 사준 적이 있다. 그런데 여동생의 아들, 생질 녀석이 직장을 갖자 여동생은 그 차를 빼앗겼다. 차는 그렇게 필요에 따라서 빼앗고 빼앗기는 물건인 모양이다. 생질 녀석이 유지비가 적게 든다면서 그 차를 가져가 버리고 여동생은 남편인 매제의 차를 끌고 출퇴근을 하며 볼일을 보는 터라 매제가 쉬는 날이면 차가 없어 친구들이 태우러 오고 또 여생이 출근하고 난 다음에 택시를 타고 차를 가지러 오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홍랑이 알고 있었다.
차라는 물건은 항상 주인이 따로 있는 법이다.
여동생은, 홍랑이 끌고 다니던 대형 외제 승용차가 얼마나 먹힌 차라는 것을 알고 있다. 경리부장이니, 못 받은 공사대금과 가외로 준 금액이 얼마라는 걸 여동생은 알고 있다. 그 차를 넘길 적에 여동생은 형편에 맞게 중형차를 고집했으나 매제가 그 차를 알고 있으니, 구미가 당겼던 모양이다. 쉬는 날만 타면 유지비가 얼마 들지 않는다고 나서서 중형차를 고집하는 여동생의 의견을 단칼에 무시하고 차를 가져갔다. 그렇다고 홍랑이 그냥 준 것이 아니다. 가격을 홍랑이 제시했는데 차를 가져올 적에 먹힌 가격은, 삼 할에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그것도 차를 먼저 가지고 가고 형편 되는대로 일해서 갚으라고 했다. 매제는 굴착기 차주인데 홍랑의 사무실 일이 바쁠 적에는 그 일을 하고 늘 대금을 받아가는데 거기서 공제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일은 여동생이 알아서 장부를 다 정리한다.
“형님 당장 차가 없으면 아쉽잖아요?”
바로 가져가라는 말에 매제가 물었다.
“오토바이가 있는데 뭔 상관이야? 꼭 필요 자네에게 부탁하지. 뭐!”
“언제든지 부르세요. 기사까지 대동하지요.”
매제는 의외로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차를 사기 전에 그렇게 넘긴 건 홍랑이 믿는 구석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차를 가져가고 이전은 하지 않았다. 이유는 여동생이 통신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그런 대형차를 소유하면 등록금 면제가 안 된다고 마지막 한 학기가 끝나고 이전을 하겠다고 했다. 좋을 대로 하라지.
일단은 마당에 차가 없으니 앓던 이를 뽑은 듯이 시원했다. 꼴 보기 싫은 대상을 자꾸 보아야 하는 스트레스도 없어졌다. 홍랑은 말은 안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 이미 찍어둔 차가 있었다. 인터넷 중고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매일 확인하는 차가 있었다.
머라카노!
그 기종의 차를 마음속으로 찍어둔 것이다.
머라카노!
그런 차가 있는 것을 알고 그 차를 처음 접한 것은 친구의 중고타이어 가게였다.
타이어 수리하러 들어온 차를 본 것이다.
그 차량의 고유명사를 읽었을 때 머라카노라는 경상도 사투리가 불쑥 떠올랐다.
무라노 MURANO 라고 영어로 된 고유명사를 차 뒤에 붙여 놓았는데, 뭐라고 하노? 의 준말인 머라카노가 불쑥 혀 밑에서 감돌았다. 머라카노? 경상도 지방에서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면 되받는 말이다. 재래시장에서 미나리를 사다가 가격을 깎거나 한 줌 더 달라고 하면 미나리를 팔던 할매 입에서 나오는 말이고, 받을 공사대금이 있는데 미루고 미루다가 대목에 가서야 설 쇠고 준다는 말을 하면 놀라서 불쑥 나오는 말이다.
홍랑은 경상도에 살아서 그 말을 수시로 듣고 산다.
머라카노!
현장에 나가면서 들르고, 들어오면서 들러서 커피를 마시고 노닥거리던 친구의 타이어가게에서 생전 처음 보는 차의 고유명사였다. 타이어를 교환하러 들어온 차량인데 국산 레저용 RV차량인 줄 알았는데 보닛의 마크를 보니 닛싼, 일본에서 나온 차였다.
“어? 이거 외제차이네요? 마라카노라고 불러야겠네요.”
“마라카노? 하하하, 일제입니다.”
타이어를 교체하려고 바퀴를 다 빼놓은 차량 주위에서 얼쩡거리던 사내가 말했다. 차주인 모양이었다. 리프트에 올려놓아 차량이 상당히 높이 있었고 밑에서 봐서는 디자인을 잘 모르고 그냥 국산 RV차량이라고 생각했던 터였는데 궁금증이 심하게 작용을 했다. 지금 짚어보니 아무래도 타든 차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랬던 모양이 분명하다.
친구가 가게 안에서 타이어를 교체하는 틈에 홍랑은 리프트 전원 스위치를 누르고 완전히 내려 차량 문을 열어보니 실내 디자인이 상당히 고급스러웠다. 국산차량과는 또 다른 격조를 지니고 있었다.
“아! 차를 바꾸려면 이런 차로 바꾸어야겠구나.”
뭐? 차를 바꿔?
지금 빚더미에 앉았는데?
홍랑은 자신도 모르게 소스라치게 놀랐다. 미얀마의 일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아 상당한 금액의 빚을 지고 있다. 그러나 차주라는 작자에게 물었다. 물어보는 데는 빚이 많은 것과는 무관하다.
“이런 차는 상당히 비싸지요?”
“비싸지는 않지만, 휘발유를 먹는 차입니다. 그래서 중고차 시세가 없어요. 그러나 고장이 없어요. 국산과는 확실히 달라요. 엔진오일과 타이어만 제시간에 교환하면 돼요.”
썩 구미가 당기는 말이었다.
홍랑은 일본에서 생산된 차를 몽골과 미얀마에서 타보았다. 정말 고장이 없는 차다. 지겹고 싫증이 나서 못 타지, 고장이 나서 폐차를 시키는 일은 없다. 몽골에서는 한국에서 생산된 차와 일본에서 생산된 차의 가격부터가 다르다. 운전석과 조수석이 바뀌어서 다소 불편하지만, 가격은 여전히 일본 차가 우세다. 황무지, 사막길이나 초원을 달리다 보면 고장이 나서 서 있는 차량은 모조리 한국에서 들여간 중고차다. 그러나 몽골과는 달리 한국으로 들어오는 일본 차는 중고차량이 아니라 수출을 염두에 두고 왼쪽에 운전석을 배치했기에 그런 불편사항은 없다.
지금은 시대가 어수선해서 일본에서 들어온 수입 차량에 오물을 뿌리는 일이 수시로 발생한다지만, 품질이 우수하다는 건 숨길 수가 없는 사실이다.
차의 장점에 관해서 침을 튀기는 차주라는 젊은 작자에게 넘겨짚어 떠보았다.
“그래도 고장이 나면 부품수급이 어렵잖아요?”
“내구성에 대해서라면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절대로 고장이 나지 않아요.”
“파실 생각이 있나요?”
“희귀종이라 팔려고 내놓아도 임자가 없습니다. 더 타다가 싫증이 나면 폐차처분을 해야지요.”
“미얀마로 들여가면 상당히 받겠는데요.”
그 말을 하며 홍랑은 입맛을 쩍 다셨다. 하지만 그런 차는 이제 미얀마에 들여올 수가 없다. 미얀마도 승용차는 생산된 지 삼 년 미만의 차만 수입을 허용하고 있다. 중장비는 오 년 미만까지 허용하고. 그렇게 수입을 규제하니 이미 미얀마에 들여가서 타고 다니는 중고차 가격이 상승하는 기현상이 생겼다.
폐차처분을 하기에는 사실이지 좀 아까운 차다.
“머라카노! 매력적인 차인데?”
홍랑은 또 입맛을 다셨다. 그렇게 입맛을 다시며 마음이 변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날 본 머라카노라는 차는 사륜구동이란다. 디자인보다 마음이 끌리는 것은 상시 사륜구동이라는 점이었다. 홍랑은 중장비 차주다. 시쳇말로 ‘노가다꾼’이기에 현재 차로서는 무거운 장비나 중기부품을 들고 산길을 오르내리는 일이 허다하다. 사륜구동이 절실하다. 그날부터 인터넷 중고차 사이트에 들어가서 그 기종을 훑었다. 휘발유를 먹는 차량이라 인기가 없어서 그런지 중고가격이 상당히 낮게 책정되어 있었다. 감가상각이 상당히 심한 차였다. 중고차를 사려면 그런 차를 골라야 한다는 생각이 압도적이었다.
이거? 가격에 놀라고 품질에 놀라겠는걸?
홍랑이 한 달 전까지 타다가 여동생에게 넘긴 차는 돈을 주고 산 차가 아니다.
아니다. 그게 아니다. 따지자면 엄청 비싸게 먹힌 차다.
지난해 봄에 신설 초등학교 석축 공사현장에 굴착기를 보내 일을 해주고 공사대금을 못 받아서 빼앗은 차다. 빼앗은 게 아니라 그 망해버린 회사에서 대물로 공사비 대신에 준 차량이다.
노가다를 오래 하니 세상에 받다가, 받다가 승용차까지 받아보는 경우가 생겼다.
공사대금은 못 받아서 받아본 물건은, 서술하자면 여러 종류다.
현장 사무실로 쓰던 컨테이너는 여러 개를 받아서 넘겨 보았고, 공사현장의 철근이나 자재를 압류해서 고물상에 넘기기도 했고, 심지어 시멘트로 만든 흄관을 두어 차 받아 다른 현장에 싼값에 처분하기도 했으며 망해버린 레미콘 공장에서 모래를 대형 덤프트럭에 마흔 차, 싣고 온 경우가 있다.
그걸 다 구체적으로 나열하여 서술하자면 길다.
아무튼, 공사대금을 못 받아서 받은 차량인데 차에 도무지 정이 가지 않는 것이었다. 정이 가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마당에 서 있으면 그렇게 꼴 보기 싫은 것이다. 나름대로 그 차가 지닌, 전 주인의 냄새를 없앤다고 이전 등록을 하며 번호판도 바꾸고 매트도 새로 깔고 핸들 커버도 다시 했지만, 여전히 그랬다.
그 차를 받고, 그 이전에 타던 차는 딸에게 할부만 내라고 하고 넘겼다. 딸이 지방으로 발령을 받는 바람에 한 대는 사위가 타고, 하나는 딸이 타야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다. 사위는 차가 절실한 시점에 그런 제안을 했으니, 이게 웬 떡이냐, 하면서 군소리 없이 가져갔다.
아니다. 그 대형 외제 승용차를 받기 전에 사위에게 전화를 걸어서 흥정했다.
이렇고 이런 경우로 승용차가 하나 생기게 되었는데 타던 차를 가져갈 생각이 있느냐고 의중을 파악했다. 공사대금 대신 받는 차는 외제 대형 승용차라 공무원이 굴리기에는, 남의 이목도 이목이지만 유지비가 공무원 월급으로 감당이 안 되는 차량이다. 사위가 생각하고 자시고 할 여유도 없이 그렇게 하자고 해서 바로 받기로 했다.
공사대금을 떼이는 것보다는 낫다.
그 망해버린 건설회사 사장이란 작자는 공사대금을 차일피일 미루더니, 종내에는 홍랑의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었다. 연락 두절, 속 터지는 기간을 석 달 넘게 지속했다. 참 끈질기게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홍랑은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내용은, 받을 공사비를 많이 포기해 본 사람이다. 인간적으로 서운하다. 공사비를 포기할 터이니 통화나 한번 하자. 절을 모르고 시주를 해서야 되겠느냐?
그런 요지의 메시지였다.
메시지를 보내고 오 분 정도 지나니 전화가 왔다.
면목이 없지만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것이었다. 당장 돈이 나올 구멍은 없고 타던 승용차를 팔아서 주겠노라고 했다. 홍랑은 그렇게 전화를 끊으면 다시는 전화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홍랑은 그 차가 무슨 차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사겠노라고 하면서 차를 한번 보자고 했다. 그러니 무슨 회사에서 나온 몇 년식이고, 몇 시시짜리의 고급 승용차라고 했다. 홍랑은 그런 경우에는 관심을 보여야 한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색상은 무엇이며 몇 킬로미터나 탔는지 물었다. 그 작자는 그것까지도 알려주고, 쓸개가 풀렸는지 당장 사무실로 오겠노라고 했다.
그 작자가 사무실로 오는 동안, 홍랑은 인터넷 중고차 사이트에 들어가서 대충 가격을 검색했다. 요즘은 중고차를 가지고 거짓말을 못 한다. 사이트에 들어가면 바로 시세가 나오는 것이다.
홍랑은 받아야 할 공사대금과 찻값을 비교했다. 조금 비싼 편이지만 떼이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 사위에게 전화한 것이다. 사위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고 이참에 외제 대형 승용차를 타보자고 마음을 먹었던 것인데, 이 작자가 와서 웃돈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당시에 그 현장에 일했던 인부의 인건비를 못 주고 있는데 그 돈도 차를 팔아서 준다고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상당히 비싸게 사는 차인데?
홍랑은 잠시 고민했다.
고민하는 사이 그 작자가 말했다.
“사장님이 저보다는 형편이 낫지 않습니까? 보태주는 셈 치세요.”
고민은 절대 오래 할 것이 못 된다. 결정은 빠를수록 좋다. 이미 사위에게 운을 뗀 상태이고.
이미 시주하는 것 좀 더 하자.
아랫입술을 깨물었지만, 심리적으로 결단이 내려지자 다음날 이전 서류를 만들어서 오면 그 인건비를 지급하겠노라고 했다. 그 작자가 요구한 인건비는 그리 많은 금액이 아니었다. 그날 차를 바로 받고 그 작자를 집까지 태워다 주었다. 집에 가보니 허름한 빌라였는데, 아뿔싸! 홍랑은 있는 대로 주머니를 털어서 주고 싶은 지경이었다. 비록 단종회사지만, 건설회사 사장이란 작자의 집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였다.
아무튼, 다음날 동사무소 문을 열자마자 그 작자가 서류를 떼어서 연락이 왔다. 동사무소에서 뗀 서류는 매수자의 난에 홍랑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매도용 인감이었다. 그 작자에게 동사무소에 기다리라고 하고는 홍랑이 동사무소로 가서 그 작자를 태우고 바로 차량등록사업소로 가서 세금을 내고 이전 등록을 했다. 이전 등록을 하면서 번호판도 바꾸었다. 새로 나온 등록증을 받자 그 자리에서 바로 핸드폰으로 불러주는 계좌에 말했던 인건비를 송금시켜 주었다.
그다음에 홍랑의 이름으로 이전된 차량인데 첫 손님으로 망해버린 그 작자를 태우기가 께름칙해서, 다른 곳에 급한 볼일이 있다고 둘러대면서 택시비를 넉넉하게 집어주고 홍랑은 혼자서 차를 끌고 돌아왔다. 대형 외제 승용차라 확실히 승차감이 좋았다.
그때까지 타던 차는 다음날 사위가 저녁에 올라와 급하게 가져갔고.
그런데, 그런데 그 차를 볼 때마다 그 작자의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이거 재수 없는 차가 아닌가? 그게 홍랑의 선입견인가? 아내가 그 차를 끌고 나가서 면허가 취소되는 사고를 내고 오니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급기야 차를 세워두고 오토바이만 타는 일이 생겼다. 꼭 오토바이를 이용하지 못할 때만 차를 사용했는데 마당에 서 있는 것을 보는 것조차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정나미가 떨어지던 차에 머라카노라는 일본 차를 본 것이다.
머라카노!
그 차를 보고 나자 슬금슬금 마음이 변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든 차를 바꿀 구실을 찾게 되는 것이다. 단박에 바꾸면 또 아내의 잔소리가 늘어지는 것을 홍랑은 알고 있었다.
당시에 인터넷 중고 사이트에 들어가면 찍어둔 차를 금세 찾을 정도로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이 차를 꼭 사야지. 그렇게 마음을 먹고 차를 넘긴 것이다. 차를 여동생에게 넘기고 바로 사려고 했더니, 보름 정도만 있으면 미얀마에 나와 한 달을 넘도록 있게 된다. 그리고 찜을 해둔 차는 인천에 있었다. 가만히 생각하니, 한 달 동안 보험료도 장난이 아니고 인천까지 갔다가 오는 수고를 해야 하고, 당장 사더라도 한 달이 넘도록 마당에 세워두어야 하는 이치였다.
아내는 홍랑이 그런 속셈이 있는지도 모르고 제안을 했다.
아들 녀석이 타던 C 차를 다시 빼앗아 홍랑이 타고, 아들 녀석은 제 마음에 든다는 좀 작은 차를 사주라고 했다. 그게 경제적으로도 덕이고, 다른 기사들의 이목도 있으니 도리라고 했다.
‘저 자식은, 쥐뿔도 없는 놈이 눈만 높아서 어지간한 차는 마음에 안 들어 할 건데?’
사실이 그랬다.
이 녀석이 제대하고 바로 중고차지만 중형차를 사주었다.
일을 시키려면 차가 필요했다.
일찌감치 면허를 냈고 군에서 다시 굴착기를 구체적으로 배웠으니 제대하고 조금 숙련이 되자 홍랑이 아들 녀석의 이름으로 굴착기를 한 대 더 샀다. 녀석은, 제 말마따나 무늬만 굴착기 차주이지 기사로 일하며 홍랑에게 월급을 받아가는데 이젠 웬만한 난이도의 작업을 가뿐하고 마치고 들어오는 녀석이다. 기사로 일하려면 새벽에 출근해야 하기에 자기 차가 필요해서 과감하게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사주었다. 그런데 녀석이 어떻게 관리를 했는지, 그게 일 년 정도 굴러가다가 중고차가 엔진오일이 떨어진 것을 점검하지 않고 다니다가 엔진이 과열로 붙어서, 수리하려면 중고차 가격을 능가하는지라 폐차처분을 하고 폐치비에 보태서, 녀석이 타라고 중형차를 사서 끌고 왔는데 정작 녀석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머라카노? 이 차를요? 아버지가 타세요.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지.”
“꼴값하네. 야! 이 자식아! 네가 무슨 사회적 지위가 있어?”
“아무튼, 싫어요,”
녀석은 중고로 끌고온 중형차에 눈길도 주지 않고 홍랑의 C 차를 끌고 나가는 것이었다. 물론 명의는 전부가 홍랑 앞으로 되어 있는 차인데 홍랑이 타던 C 차를, 폐차를 기화로 마치 제 것인 양 타고 다녔던 것이었다.
귀때기가 새파란 굴착기 기사 녀석이 타기에는 남의 이목도 있고 차를 바꾸어 타자고 했더니, 머라카노? 라는 말로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게 일 년이 넘자 당연히 C 차를 제 차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들 녀석은 C 차를 타고 아비는 중형차를 끌고 다니던 기간이 일 년이 넘었다. 그리고 홍랑이 공사대금 대신에 외제 대형 승용차를 받고 중형차를 딸에게 넘겨도 녀석은 상관할 바가 없다는 듯이 소 닭 보듯이 했다. 그동안 C 차의 기름값과 보험료는 홍랑의 몫이었다.
기름은 굴착기 연료를 고정 거래를 하는 주유소에서 전표를 떼주고 넣어서 월말에 결재하니 한 달에 기름값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녀석도 홍랑도 모르고 있었던 일이다.
그동안, 녀석은 C 차가 제 차라는 인식이 확실히 뇌리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얼마 전에 홍랑이 C 차를 끌고 나갔다가 차 안에서 담배를 피웠더니 녀석은 난리가 아니었다. 담배 냄새가 차에 고스란히 배었다고, 다시는 차를 사용하지 말라고 못을 박으며 난리를 뜨는 것이었다.
“인마! 분명히 얘기하는데 이건 아부지 차야!”
“머라카노. 이건 내 차예요. 내가 관리한단 말이에요.”
어처구니가 없었다. 머라카노? 낮춤말이 아니다. 홍랑의 고장에서는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면 상하 지위를 막론하고 그 말이 버릇처럼 나온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 소리가 마땅하지만 잘 나오지 않고 불쑥, 머라카노를 외치는 상스럽고 거친 말투의 고장인데 녀석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무튼, C 차도 월급쟁이가 타기에 만만한 차가 아니다. 3700cc 고급인데 홍랑이 새 차를 사서 겨우 이 년 정도 타다가 아들 녀석에게 고스란히 빼앗긴 셈이다. 정작 홍랑은 중고 중형차를 끌고 다녀야 했다. 아들 녀석의 몫으로 산 차인데 녀석이 눈이 높은 까닭에 엉뚱하게도 딸에게 적절한 시기에 어렵사리 넘어간 것이다.
거듭되는 이야기지만 그런 딸과 사위를 보니 정말 주인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지금 홍랑은 미얀마에 머물고 있다.
한국의 마당에는 세워둔 차가 없으니 심보가 편하다. C 차는 이미 아들 녀석 몫으로 넘어갔고. 홍랑이 타기에 만만한 차를 골라야 했는데 그 차가 바로 머라카노라는 차였다. 인터넷을 뒤적이며 색상과 년식, 가격과 옵션, 전반적으로 훑어보고 찜을 한 차가 있었다.
이번에 한국으로 들어가면서 인천에서, 찜해 둔 머라카로라는 차를 사서 끌고 내려갈 요량이었다. 몇 킬로미터를 탔고, 무슨 색상인지, 몇 년식인지, 일 년에 감가상각이 얼마나 되었는지, 접촉사고가 있어서 운전석 쪽의 휀다를 갈았다는 것까지 완전히 꿰뚫고 있었다. 모델이 희귀종에 휘발유를 먹는 차라 쉽게 팔릴 리가 없다. 홍랑은 자신이 주인이라고 생각했다.
미얀마는 인터넷 사정이 열악하다.
핸드폰의 하스팟은 연결해서 무선으로 사용하는데 핸드폰 요금이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매일 인터넷에 들어가지 못한다. 인터넷에 들어갈 때마다 짬을 내서 그 차가 팔리지 않고 있는지 확인을 했다.
미얀마로 오던 날부터 확인을 했는데 보름이 넘었지만 팔리지 않고 있었다. 중고상사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잘된 일이다.
그런데, 그런데 엊그제 확인을 하니 찜해둔 그 머라카노의 사진이 사라졌다. 팔리고 없는 모양이었다. 허?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었네. 차는 항상 주인이 따로 있다더니? 사이트에서 다른 머라카노의 차량을 다시 훑어보기 시작했다. 희귀종이라 매물로 나온 차는 그 사이트에 예닐곱 대밖에 없었다. 세밀하게 훑어보니 사고의 이력이 있는 차들이었고 만만한 차가 없었다.
홍랑은 고민을 했다.
그 차를 사지 말고 아들 녀석에게 줄 차를 중고로 알아보면 어떨까? 녀석에게 C 차를 빼앗는다고 하면 녀석은 할부로 하더라도 새 차를 넘볼 것이 자명하다.
차라리 형편에 맞게 적당한 차를 골라서 녀석과 상의하는 게 좋겠다.
그런데 녀석 C 차를 끌고 다니며 한 달에 기름값이 얼마나 들어가지?
그게 궁금했다. 그걸 알아보고 결정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사무실 여동생에게 주유소에서 올라온 장부를 뒤져서 C 차가 한 달에 기름값이 얼마나 나가는지 월별로 적어서 날리라는 내용의 카톡을 보냈다.
오 분이 안 되어 여동생에게서 카톡으로 사진이 날아왔다. 여동생은 그 시간, 사무실에 있었던 모양이다.
머라카노?
동생이 A4 용지에 월별로 적어서 날린 사진을 키워서 확인하고 홍랑이 뱉은 말이었다. 한 달에 들어가는 기름값이 장난이 아니었다. 딸과 사위가 출퇴근하는 차량에 비교하면 네 곱이 넘게 들어갔다. 홍랑은 그 정도인 줄 몰랐던 사실이다. 녀석도 모르고 있는 사실이지 싶어 그 사진을 그대로 아들 녀석에게 메시지로 전달하고, 아내에게도 전달하여 집안에 비상을 걸었다.
아내에게는, 녀석을 설득해서 유지비가 적게 들어가는 차를 사자고, 그렇게 할 터이니 알고나 있으라고 비상을 걸어놓고 인터넷을 뒤졌다. 이미 머라카노라는 차량은 살 형편이 안 된다는, 아니 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녀석의 C 차를 빼앗아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이었다.
일삼아서 인터넷에 들어가 녀석이 탈 만만한 차를 골랐다.
그렇게 기름값이 많이 들어갔다면 인터넷 요금이 조금 많이 나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고 사이트에 차량은 얼마든지 있었다. 장가를 가려면 아가씨도 태워야 하고, 다른 기사의 이목도 생각하고, 유지비와 가격, 여러 가지 형평성을 고려해서 차를 골랐다.
그 차의 사진을 찍어 녀석에게 날리고 몇 년식이고 몇 킬로미터를 탔고, 금액은 얼마인데 탈 생각이 있느냐고 카톡으로 물었다.
머라카노?
녀석의 회신에 첫마디에 그렇게 씌어 있었다. 년식이 너무 오래되어 이삼 년 타면 또 차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가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를 터이니 아버지는 그저 돈만 내라는 것이었다.
그 말에 홍랑은 조건을 달아 문자를 날렸다.
가격은 얼마 이하, 몇 cc 이하, 몇 년식 이하, 몇 킬로미터 이하, 전부 이하라는 한계를 정해서 문자를 날렸다. 홍랑은 더 이상 비싼 인터넷을 뒤적이지 않았다. 그렇게 카톡으로 문자를 날리고 십 분 정도 있으니 녀석은 마음에 드는 것을 골랐는지 차량 사진이 한 장 날아왔다.
머리카노?
중고차인데 가격이 새 차나 진배없었다.
머라카노?
머리카노?
그 말이 서너 번 왔다 갔다 했다는 건 조율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내에는 녀석이 할부를 제가 조금 낼 터이니, 제가 마지막으로 고른 차를 선택하겠다는 조건까지 나왔다.
중고차에 할부라니?
머라카노?
안된다고 했다. 그러면 찻값을 보태주지 못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다음에도 머라카노가 서너 번 왔다 갔다 했다. 쉽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그 간격이 그렇게 벌어져서야. 그러면서 홍랑이 내정한 가격이 심리선을 뚫고 조금씩 상승하기 시작했다. 자식을 이기는 장사는 없는 법이라고 했다.
조율 끝!
마지막으로 찍은 차에 조건을 붙였다. 얼마를 지원해줄 터이니, 나머지는 할부로 구매하라고 했다. 내심, 그 할부금은 녀석이 내지 못할 경우, C 차를 끌고 다니며 낭비하는 기름값으로 충당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며 결정을 하고 허락을 해주었다. 마음을 먹으면 홍랑은 바쁘다. 그게 흠이라면 흠이고 추진력이 좋다면 좋은 거다.
내일 당장 가서 사라고 카톡을 날렸다.
머라카노?
녀석은 밑도 끝도 없이 이 말만 날렸다. 승낙을 해주었는데 뭐가 또 머라카노야?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그 답으로 또 홍랑은 카톡을 날렸다.
“머라카노? 빨리 안 사면 날아간다. 차 주인은 항상 따로 있는 법이야. 인마!”
그 답은 금세 날아왔다.
“머라카노? 내일은 일요일인데, 아부지! 일요일에 어떻게 이전 등록을 해요?”
그런가? 내일이 일요일인가?
머라카노라는 말을 더 날리고 싶은데 홍랑은 할 말이 궁했다. 생각이 바뀌었다고 하고 그 차를 사지 말라고 할까? 그러면 또 머라카노라는 말이 날아오겠지. 머라카노를 서두로 녀석을 곯려주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었는데, 쩝! 자식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 아, 물 건너간 머라카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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