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교리문답 성만찬 3
성만찬을 통해 약속하신 죄 용서의 말씀을 믿는 자가
유익을 얻는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례전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인 본질과 유익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다음으로 어떤 사람이 이 성례전의 능력과 유익을 받을 수 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성만찬의 능력과 유익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말씀이 가르치는 것과 말씀이 제공하는 것을 믿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돌이나 나무에 설교한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을 위해 제정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죄를 용서해 주시고 약속하시는 까닭에 믿음이 아니고서는 받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너희를 위하여 주며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실 때, 이미 우리에게 이 믿음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는 ‘너희에게 내 몸과 피를 주노니 너희 것으로 삼아 죄 용서를 누리라’는 뜻과 같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성찬을 무익한 것으로 여겨 은총의 선물이 제공하는 구원을 만끽하려 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리스도의 말씀인 것을 참으로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입니다.
성만찬을 위한 최고의 준비는 금식이 아니라 믿음이다.
믿음이야말로 온전한 성만찬을 귀하게 받기 위해 준비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성찬의 보화는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만 우리에게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약속의 말씀과 믿는 이의 마음이 하나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영원한 성찬의 선물과 보화는 손으로 받아들이거나 머리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금식과 기도가 외적인 준비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기 위한 옳고 경건한 방법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는 것은 우리 몸이 바라고, 이해하는 방식과 매우 다릅니다. 이것은 성찬의 보화를 깨달을 수 있는 우리의 마음속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성찬은 필요할 때만 받는 것이 아니라
기회 있을 때마다 받아야 한다.
앞에서 우리는 성만찬의 바른 이해와 가르침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제 권면과 충고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위대한 성찬의 보화를 경솔히 여기지 마십시오. 주의 만찬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매일 나누도록 일상의 중심에 놓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 자라면, 이 귀한 성찬을 자주 받아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성례전을 귀찮게 여기며 타성에 젖은 채 참여하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복음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일 년, 이 년, 삼 년, 세월이 지나면서 성례전 없이 살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그렇게 성례전을 불필요하게 여기며 사는 것을 신앙 깊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성찬을 금지하고 겁을 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성찬에 대한 주림과 갈급함 없이는 받게 할 수 없다고 가르쳤다는 이유를 들어 내쫓기도 한다고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것은 순전히 개인적 자유라고 하면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저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 대부분은 아주 설익은 사람들이 되어 결국 성례전과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 경멸하게 될 것입니다.
오랫동안 성찬 받지 않은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강제로 성찬을 받게 하는 일은 어떤 경우라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은 일종의 ‘영혼 살육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두 알아야 할 것은 장기간 성찬을 멀리한 사람은 그리스도인으로 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우리에게 제정하신 것은 축제의 구경꾼이 되라고 만드신 것이 아니고, 그분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것을 먹고 마시라. 그리고 기억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성례전을 귀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것을 반기 위해 항상 용감하게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신앙이 약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좀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성례전을 받아 야 할 이유와 필요성을 상기시켜 주어야 합니다.
믿음 사랑 인내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이것을 충분히 배우고 가르치고 매일 권면해야합니다. 사람들에게 항상 설교하여, 무관심과 권태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이미 우리 모두 알고 있고 느끼고 있듯이 악마는 힘이 닿는 대로 사람들을 쫓아다니고 선동하며 모든 그리스도교적 본질을 방해합니다.
그리스도의 명령이기 때문에 자주 성만찬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분명한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주신 가르침이며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성만찬을 마음껏 향유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그분이 하신 이 말씀을 유념하고 지키십시오. 강제에 못 이겨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고 따라 지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혹시 당신이 이렇게 말할지도 무르겠습니다. ‘자주 시행하라’는 말씀은 성찬을 일방적으로 강제,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오직 본인의 자유의사에 맡긴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자주 행하라’는 말에는 ‘할 수 있는 대로 시행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을 첨언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이 성례전이 유대인의 유월절 만찬처럼 특정한 절기에 매이지 않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유월절 식사의 경우, 일 년에 오직 한 번만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보름달이 뜨는 때를 기준으로 새해 첫 십사 일째 되는 날 저녁 시간에 맞춘 식사입니다.
이로써 그리스도께서 말씀하고 싶은 것은 이런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위해 유월절 또는 저녁 만찬을 제정하노니, 일 년에 한 번만 하지 말고 어느 때 어디서라도 너희가 원할 때, 기회가 닿는 대로 자주 향유하라. 특정할 때 특정한 장소를 정하지 말라.’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교회는 이것을 왜곡해 버렸고, 다시 예전 유대인의 유월절 식사와 같이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니 원할 때, 기회가 닿는 데로, 어느 곳에서나 성찬을 행하여 우리가 사모하는 주님을 기념하십시오. 이것이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의 본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