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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7 죄인 위해 계시는 구원자 예수 (베드로전서 4:1~3)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김성현감독 설교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니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베드로전서 4:1~3)
<기도>
하나님 아버지, 종의 입술을 기름부어 주시사 말씀의 지혜와 지식과 능력이 있게 하여 주셔서 종이 입을 열어 말씀할 때에 이 소리를 듣는 자에게 복이 있게 하여 주셔서 저들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하나님 말씀을, 하나님의 뜻만은 받아들이게 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생각으로 다시 전환하지 않고, 또 그런 식으로 통역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통역해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은 사실 굉장히 짧은 것입니다. ‘휙’ 하고 지나가는 이 인생을 길게 보면서 마치 무한한 선택의 여지가 있고, 많은 변화가 당연히 있어야 된다는 식으로 펼쳐 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인간의 삶은 순간에, 하나님께서 천년이 하루 같은 것으로서 휙 지나가기 때문에, 우리 삶에서의 중요성에 대해, 그 의미에 대해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잠깐이지만 태어나기 전에는 인생에 대해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 천 구백 몇 년도, 혹은 이천 몇 년까지 자기가 살 것이라고 가정해 볼 때 굉장히 짧은 기간인데 그 의미를 잘못 설정을 해 놓으면 영원한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성경에서는 그 중요성에 대해서 우리에게 심각하게 많은 면을 할애하여 알려주고 있고, 하나님은 2천년 넘게 쉼 없이 우리를 위해 이렇게 간구하고 계십니다. 마귀에게 한 번 마음을 빼앗긴 것이 이렇게 회복하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무엇일까요? 결론을 먼저 내리겠습니다. 우리 인생은 죄인이 구원자를 만나 그 구원자의 보호를 받으며 죽을 때에 영구적인 구원이 있도록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인간은 다 죄인으로 왔습니다. 죄인으로 왔는데,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고 ‘아, 큰일 났다! 어쩌지? 대책이 있어야 되겠는데?’ 하는데 엄청난 그 대책을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해 주셨다는 것을 듣게 됩니다. 복음입니다. 그러면 복음으로 옷을 입어야 되겠네요? 이 난리 난 이 상태를 복음으로 씌워서 가리우고 가야 하겠네요? 복음을 임시 방편삼아 뒤집어 쓰고라도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활짝 필 때가 아닙니다. 마치 지금은 땅 속에서 어느 날 살아날 날을 위해 준비하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싹이 돋고, 가지가 나기 시작하지만 영광의 열매를 맺는 것은 저 영원한 나라, 길고도 긴 나라에서 있을 일입니다.
우리는 대 반전을 이루었습니다. 본래 우리는 지옥에 중심에 들어갈 자들이었고, 지옥의 역군으로써 지옥을 더 활성화시키는 자들, 지옥에 들어가기 위해 더 기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경우가 아니라 완전히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그 죄의 세력을 막도록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 인생 나머지 동안, 우리는 잘 지켜야 합니다. 요한일서 3장 7절부터 보면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 같이 의로워야 한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 이 존재가 바로 범죄의 씨라. 그는 모든 범죄하는 자의 아비라.’[1]라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악행하게 하는 자란 것입니다. ‘오, 하나님, 내가 마음으로 조금 범죄했네요.’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음…’ 하고 생각하다가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죄를 짓지 말라는 것은 악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2] 마귀가 이렇게 인간들을 범죄하게 하고, 악행을 하게 하고, 악행하는 인간을 죄의 올무에 쥐고 있습니다. 또 죄에서 벗어나갈 여지가 생기면 ‘휙’ 휘어잡아서 죄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다리를 붙잡습니다. 마치 악어가 늪을 빠져나가려는 먹잇감을 확 물고 문 채로 막 돌려서 다시 못 빠져나가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 요한일서 2장 보면, 우리 인간이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가장 무엇보다도 앞서는 문제가 나옵니다.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요한일서 2:12~14)
우리가 인간이 태어나서 죄인인 줄 모르고 있다가 어느 날 자기 구주를 만나게 됩니다. 근데 그때 자기에게 착고가 채워져 있었다는 것을 함께 발견합니다. 나를 구원해 주는 자와 나를 착고에 채운 자, 원수 마귀가 동시에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는 영문을 모르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구원자가 나타나 나를 구원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상황입니다. 그래서 신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아, 예수님이 다 구원하셨구나.’라고 단정지어 버립니다. 죄에 대한 마음이 휑하게 비어 있습니다. ‘나는 이제 죄 하나도 없는데 뭐.’ 하고 죄를 지어도 이제 자기에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이 생각합니다. 그래서 욕심을 내서 교회를 탈취하려는 자들도 있고, 교회의 분란도 납니다. 이런 자들은 성경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아주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있는 동안에는 그 무서운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극복하고, 그것을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여기 계신단 말입니다.
이 땅에 있는 동안 우리는 그리스도와 인연이 많습니다. 이 땅에 있는 동안에 우리는 계속 그분을 대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 가서도 그분 대하고, 여기서도 그분 대하고, 곳곳마다 그는 살리려 하시는데, 관심이 없으면 나만 손해입니다. 내 구주는 계속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지나갈 때에 그의 영향력은 우리 가운데 계속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를 보기 싫어하면 그도 멀리 계시겠지만, 물론 그래도 떠나지 않고 지키시지만, 우리가 원수 마귀를 좋아한다면 그는 우리를 구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동안에 그는 뭐 하실까요? 믿는 자를 보호하는 일일입니다. 민수기에 보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광야로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제는 가나안 땅으로 점령해 들어 점령해 들어가라, 젖과 꿀이 흐르는 그곳을 점령하라 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각 지파에서 한 명씩 뽑아 열 두 명을 가나안의 정탐꾼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갔다 온 자들이 “어유, 저 거인들, 우리는 못 이겨. 우리는 못 이깁니다. 못 이깁니다.” 하고 보고했습니다. “그냥 우리 애굽에서 살지. 광야에서 죽는 게 낫겠다. 아유, 저들이랑 싸우다가 우리 다 죽는다. 그냥 돌아가자… 돌아갈 걸 왜 괜히 나왔나…” 하며 불만을 표했습니다. 대부분의 정탐꾼들이 그렇게 약속의 땅에 악평을 늘어 놓자, 사람들이 전부 그 말에 끌려 마음이 녹아내렸습니다. 그들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요!”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축 늘어져서 ‘안된다’고 부정했습니다. ‘우리 돌아가자. 하나님이 구해주셨는데, 이거 소용없구나. 구원이 소용없구나. 돌아가는 게 낫지 않겠느냐?’ 하며 불만 했습니다. 내 보내준 걸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무찌르자!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떻게 이 사건을 대하셨냐면, “가나안에는 아무나 못 들어가리라. 내가 합당히 생각하는 그 믿음 있는 자만 들어가게 될 것이니, 갈렙과 여호수아 지파 외에는 못 들어간다.”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전부 광야에서 패하여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성경은 ‘모세의 정탐을 받고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회중으로 선동케 하여 모세를 원망하게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그 땅을 탐지하러 갔던 사람 중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만 생존하니라.’[3]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애굽에서 빠져나왔다고 다 가나안에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나와 있습니다. 교회가 광야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희가 들어가라. 들어가라.’ 했지만 ‘아유~ 안되겠어.’ 하고 불만하는 자들은 못 들어갔습니다. 무슨 죄입니까? 그냥 불만했을 뿐입니다. 그냥 ‘안된다.’ 하고 소극적으로, 비판적으로 봤을 뿐인데 못 들어갔습니다. 천국에 아무나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 우리 중에도 겉으로는 “나도 교인이다.” 하지만 ‘어우, 저거는 어렵지.’ 이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좋아하고, 하나님이 주신 소망을 좋아하고, 하나님이 주신 계획을 기뻐하고,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혜를 기뻐하는 지를 보십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범죄를 좀 해도 된다.’ 해서 교회를 어렵게 하고, 성도들과 제 사이를 이간하고, 계속해서 거짓 선동으로 교회를 세상 법정에 올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거짓으로 선동해도 많은 사람이 그 말에 잘 속습니다. 그래서 누구든 거짓말에 능한 자들은 항상 자신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김성현 목사가 압제를 하고, 폭력적으로 성도들을 괴롭혀서 성도들이 너무 고통스러워한다. 살려주십시오.’라고 계속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 교회에 그런 일이 있을까? 한 때는 우리와 하나 된 자들이었는데. 너무 슬픕니다.
이는 죄인을 보호하시는 주님의 보호를 받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다 죽는 날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 믿었으면 죄사함 받았으니 다 된 것입니까? 당신이 예수 믿기 전에 뭐 했는데요? 죄와 싸우느라 피를 흘리셨습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에 죄가 다 사하여졌습니다. 그러면 ‘어? 그래? 그럼 이제 나는 이제 좀 쉬어야 되겠다.’ 할 것입니까? 죄사함 받았으면 그때부터는 그리스도에게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고, 그리스도로 보호 받는 것이 구원입니다. ‘다 됐대. 거 봐. 마음대로 해도 돼.’ 어디서 그런 소리를 했습니까? 너무 기독교 신앙이, 예수 복음이 왜곡된 것입니다.
구원받는다는 것은 이제 예수께 담당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께서 우리 마지막 날까지 우리를 책임지고 가셔야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병상에서 “아이고… 예수님… 아이고 나 이제 충분히 살았습니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나 딱 한 숨만 쉬고 갈게요. 예수님 고맙습니다. Bye…” 이 사람은 그날 그 시간에 예수님 데려가실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도 ‘쉬는 날이 있다.’ 했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일하다가 세상 질고를 겪고, 괴로움을 당합니다. ‘너도 이 세상에서 하나님 일을 했느니라.’ 하나님과 함께 싸운 것입니다. 원수랑 싸운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나왔어도 죄가 좋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훈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쓰러질 자지만 주님은 우리를 막으셔서 비록 우리는 죄에 자꾸 빠지고, 넘어지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함께 부를 찬양에 ‘자꾸 넘어지지만~ 나 비록 넘어지며~ 흔들리지만~ 주 안에 거하며 나를 붙드시니~ 내 생각을 주께로 돌리고~ 주시는 평강의 옷을 입습니다~’라는 가사가 있는데, 이 가사를 지은 분이 갑자기 어디서 행차하시는 주님을 만나게 돼서 그 말씀을 들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너무나 중요한 얘기를 했습니다. 예수로 구원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부터 죽는 날까지 구원자를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도 저는 세상이 좋은 점이 있습니다. 나는 세상이 역시 편합니다.’ 그렇더라도 지옥에 가는 것 보다 나은 정도일뿐입니다. 주님이 기억하십니다. 나의 주님이 이 부족하고, 이 딱딱하고 답답한 마음도 잡아 주셔야 합니다.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물론 법적으로는 예수께서 우리 죄를 다 사하셨습니다. 우리가 범죄한 것을 그가 다 사했습니다. ‘앗 내가 잡혀 가야 하는데, 주님이 대신 잡혀가셨네?’ 나는 어떤 자입니까? 죄인입니다. 우리는 누가 보든지 간에 죄인입니다. 다만 잡혀가지 않을 뿐입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주님이 대신 우리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다만, 요한일서에도, 그렇다고 ‘죄없다 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다. 하나님을 속이는 자다.’라고 했습니다.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는 자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습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죄인입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그 세리처럼,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우리 죽을 때까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셔야 합니다. 죄인이라는 인식이 사라지면 그 즉시 악행을 하게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제 생각에 죄가에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굶주려서 빵을 얻기 위해서 돈을 훔쳤다면, 그나마 좀 나을 것 같습니다. ‘교회를 좀 털어볼까? 굉장히 허술한데? 내가 거기 싹 들어가서 재정을 좀 담당하고 해서 쓱 좀 해볼까? 교회가 좀 어려워지면 내가 교회를 맡아볼까? 아니야, 그냥 돈으로 환산을 해서 돈으로 조금씩 꺼내볼까?’ 하는 것보다.
왜 우리 교회에 이런 일이 있죠?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하는 건 우리의 다음 세대에서는 절대 그런 자가 나오지 말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세상의 눈으로는 굉장히 쉬운 교회라 할지라도, 죽을 때까지 ‘주여, 내게 말씀하옵소서. 나를 구원해주신 내 주님을 위해서 나는 의로 힘쓰겠다. 나는 의로 주님의 발걸음에 맞추겠다.’ 해야 합니다. 교회를 업신 여기는 자, 교회를 공격하는 자, 자기 목자를 치는 자가 다시는 절대 나오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자가 없으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가 맡은 일이 모세 쪽의 임무는 아닙니다. 나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제 직무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제 직무를 보고, 제 직무에 대해서 여러분이 존중하기 원하는 것입니다. 비록 그 직무를 맡은 사람은 부족하지만, 그 직무에 대해서 열심하고, 충성하고, 힘을 다했습니다. 다 발가벗겨지고, 매 맞고, 쓰러지고, 던져져서 아무것도 의지할 데가 없더라도 힘을 다하였습니다. 나는 내가 내게 기회가 있는 동안에는 나는 사랑을 다하고, 나는 의무를 다하고, 나는 예수님의 하나의 손으로서, 예수님의 손의 역할을 해서 마귀에게서 여러분을 잘 보호하려 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마귀에 대해서 비판하고, 마귀에게 속지 않도록 경고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영혼을 잘 구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할 수 있는 일에 내가 그의 쫄병이 되어 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 간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게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내가 죄인이 아니다.” 하는 사람은 예수님이 필요 없습니다. 자기가 죄인인 줄 알고 ‘아… 나는 왜 이렇게 의로워지기 힘들고 왜 이렇게 전체가 죄로 향하고 있는가? 내 운명이 무엇인가?’ 하는 자들을 주께서 붙들어 주십니다. 죄가 있는 자만이 예수를 찾을 것입니다. 그 시스템이 자동적으로 그렇게 돼 있습니다. 의가 있다고 근거 없이 지나치게 자랑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고 보호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베드로후서 2:20~21)
구원받은 우리 사랑하는 여러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곁에서 함께 하시고, 당신 속에서 성령으로 함께 하시고, 당신을 인도하고 계시니 그의 의를 향하게 하시는, 의 안에서 보호하시는, 그 악행하게 하는 원수의 모든 거짓된 것을, 또 거짓말 잘하게 하는 것, 이런 것 다 막으시고 여러분을 거룩하게 인도하시는 그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들 ‘내가 다시 지금 중학생으로 돌아간다면… 고등학교때로 돌아간다면… 스무살 때로 돌아간다면…’ 하는 식의 상상을 다 해 봤을 것 같습니다. 신앙은 지금 다시 시작하면 될 것 같습니다. 수억 년의 가치보다도 더 귀한 거니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삼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확실히 아시는 분은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이거 다 해결된 거예요? 아니에요.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날까지 해결해 주셔야 합니다. 주님의 보호를 받으시는 여러분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우리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는데,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하고,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충만하고, 모두가 순전하게 이 구원의 터 안에서 겸손하게 주님께 자신을 드리고, 악행하고 마귀의 짓을 하는 자들이 없도록 도와주시고, 또 오늘 우리에게 있는 원수의 그런 역사를 이제 우리에게서 멸하여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기도를 겸하여 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 다시는 죄의 역사가 없게 도와주시고,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충만하게 도와주시고, 나와 내 삶에 구원의 은혜가 충만하게 도와주시고, 우리 교회에 구원의 은혜가 충만히 있도록 역사해 주시옵서서. 다같이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 들은 우리 영혼들 도와주시고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오늘 우리의 현실에 있어서 우리의 존재의 목적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우리가 알게 되었는데, 우리가 지금 존재하는 목적은 우리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죽는 날까지 우리 구주 그리스도의 은혜로 잘 보호되고 구원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원수들을 우리 주변에서 다 물리쳐 주시되, 특별히 우리 교회에서 물리쳐 주셔서, 우리에게 환난과 원수에 의한 그러한 핍박이 없도록 하나님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성도들 열심 다하여 정말 주님을 사랑하고 정말 주님께서 주신 이 복음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잘 보전하고, 우리 교회를 정말 복음의 참 터로 만들게 도와 주시되, 원수에게 넘어가는, 그렇게 교육이 부족하고, 훈련이 부족한 자 하나도 없도록 역사하시고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에 대해서 오해하지 아니하고 주님의 역할, 또 우리의 주님 앞에 나타난 우리의 처지에 대한 이 환경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녹취 : 성락교회 성락선교센터
[1]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한일서 3:7~9)
[2]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 3:7)
[3]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으로 모세를 원망케 한 사람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그 땅을 탐지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민 14:3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