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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東 三神山 雙磎寺 八相殿 釋迦八相幀
쌍계사 석가팔상탱 : 보물 제1365호 / 1728년(영조4년)
하동 쌍계사팔상탱은, 현존하는 석가팔상도 가운데 가장 오래된 예천 용문사팔상탱(1709년 숙종 35)),
순천 송광사팔상탱(1725. 영조 원년))에 이어 비교적 제작시기가 빠른 편에 속하며, 공간감과 색채의 조화 등
그에 상응하는 화풍상의 특징도 보여주고 있다. 여유로운 경물의 배치와 함께 일반회화에서 볼 수 있는
수목의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표현기법 또한 18세기 전반의 팔상도나 감로왕도 등에서 종종 보여지고 있어,
당시 또는 앞선 시기 일반회화와의 관계까지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는 데 자료적 가치가 있다.
하동 쌍계사 팔상전
팔상탱(八相幀)의 여덟 장면은 석가모니가 도솔천에서 코끼리를 타고 사바세계로 내려오는 장면인 도솔래의상,
석가모니가 룸비니 동산에서 마야부인의 옆구리를 통해 출생하는 모습을 그린 비람강생상,
태자가 성문 밖의 중생들의 고통을 관찰하고 인생무상을 느끼는 장면의 사문유관상,
부모의 반대를 무릎쓰고 출가하는 장면을 묘사한 유성출가상, 설산(雪山)에서 6년동안 수행하는 모습을 그린 설산수도상, 태자가 수행 중 온갖 유혹과 위협을 물리치는 수하항마상, 부처가 녹야원에서 최초로 설법하는 모습을 나타낸 녹원전법상, 부처가 쌍림수 아래에서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표현한 쌍림열반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탱화(幀畵)란 액자나 족자형태로 만들어 법당에 걸 수 있게 만든 불교그림을 말한다.
보물 제1365호 '쌍계사팔상도'의 원본은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팔상전에는 모사품이 걸려있다.
그런데 후불탱화가 문제다. 원래 봉안되었던 보물 제925호 '영산회상도'의 모사模寫가 아니고
전혀 다른 내용의 후불탱화라 찾아온 이를 어리둥절케 한다.
팔상전 앞에는 보물 제925호 '영산회상도'의 안내판이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고...
팔상탱은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으로부터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에 이르기까지 모두 여덟 폭이며 각 폭마다 동일하게 하단에 화기(畵記)를 갖추었는데, ‘옹정(雍正) 6년’이라는 조성연대와 일선· 후경· 명정· 최우· 원민· 처영· 신영· 영호 등 화원을 명기하고 있어 1728년 8명의 화승들이 참여하여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패널형식의 각 폭 모두 주요 내용만을 중점적으로 나타낸 간단한 구도로, 건물의 위치 및 형태와 구조, 이야기의 전개방식과 내용, 장면 구분방법, 인물과 경물의 배치와 표현에 이르는 구성이 3년 앞서 1725년에 그린 순천 송광사 팔상도와 비교할 때 색채만 약간 다를 뿐 거의 같은 도상을 보여주고 있어 동일본을 사용하여 그렸음이 짐작된다.
각 폭의 장면은 건물과 구름·나무·산을 이용하여 구분짓고, 각 장면마다 이에 따른 내용을 적어 놓고 있어 그림을 이해하기에 쉽다는 특징이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각 상相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수목의 표현은 도식적이지 않고, 일반회화 속의 나무와도 같아 매우 자연스럽고 사실적이다.
1. 도솔래의상 (兜率來儀相) - 도솔에서 내려오는 장면
'兜率來儀相'에서는 네 장면이 전개된다. 즉 탱화의 왼쪽에는 마야궁(摩耶宮)에서 마야 부인이 의자에 앉아 흰 코끼리를 탄 호명보살(護明菩薩)이 내려오는 꿈을 꾸는 장면 / 바로 위에 입태전(入胎殿)이 있어서 입태되는 장면 / 그 위에는 소구담이 도적으로 몰리어 죽는 장면 / 오른쪽에는 정반왕궁(淨飯王宮)이 있고 여기에는 왕과 왕비가 꿈꾼 내용을 바라문에게 물어보는 장면이 묘사된다.
2. 비람강생상 (毘藍降生相) -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는 장면
'毘藍降生相'에서는 여섯 장면이 묘사된다. 마야 부인이 궁전을 떠나서 친정으로 가던 도중 룸비니 동산에서 무우수(無憂樹) 나뭇가지를 잡고 서서 오른쪽 겨드랑이로 아기를 낳는 장면 / 태어난 아기가 한 쪽 손은 하늘을, 한 쪽 손은 땅을 가리키면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存)"이라고 외치는 장면 / 제천(諸天)이 기뻐하면서 갖가지 보물을 공양하는 장면 / 용왕(龍王)이 탄생불을 씻갸주는 장면 / 왕궁으로 돌아오는 장면 / 아지타선인의 예언 등으로 꾸며진다.
3. 사문유관상 (四門遊觀相) - 四門 밖에 나가 관찰하는 장면
'四門遊觀相'에서는 네 장면이 묘사된다. 태자가 東門으로 나가 노인의 늙은 모습을 보고 명상하는 장면 / 南門으로 나가 병자를 보고 노고(老苦)를 느끼는 장면 / 西門으로 나가 장례 행렬을 보고 죽음의 무상을 절감하는 모습 / 北門으로 나가 수행하는 사문(沙門:출가한 중)의 모습을 보고 출가를 결심하는 모습 등이다.
4. 유성출가상 (踰城出家相) - 성을 넘어 출가하는 장면
'踰城出家相'에서는 보통 세 장면이 묘사된다. 태자궁에서 태자비와 시녀들이 취하여 잠자고 있고, 태자가 출타했음을 상징하는 빈 의자가 있다. / 태자가 말을 타고 성문을 뛰어넘는 모습 / 마부 차익(車匿)이 돌아와서 왕비와 태자비에게 태자의 옷을 바치면서 태자가 떠났음을 보고하자 왕비와 태자비가 태자의 소재를 묻는 장면 등이다.
5. 설산수도상 (雪山修道相) - 설산에서 수도하는 장면
' 雪山修道相'에서는 보통 여섯 장면이 묘사된다. 태자가 삭발하고 사문의 옷으로 갈아입는 장면 / 마부 차익(車匿)이 돌아가는 장면 / 정반왕이 교진여 등을 보내어 태자에게 왕궁으로 돌아갈 것을 설득하는 장면 / 환궁을 거절하자 양식을 실어 보내는 장면 / 목녀(牧女)가 우유를 석가에게 바치는 장면 / 모든 스승을 찾는 장면 등이다.
6. 수하항마상 (樹下降魔相) - 보리수 아래서 마구니를 항복시키는 장면
'樹下降魔相'에서는 네 장면이 묘사된다. 마왕 파순이 마녀로 하여금 태자를 유혹하게 하는 장면 / 마왕의 무리가 코끼리를 타고 위협하는 장면 / 마왕이 80억의 무리를 모아 부처님을 몰아내려고 하는 장면 / 마왕의 항복을 받아낸 부처님이 지신(地神)에게 증명토록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수인을 나타낸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7. 녹원전법상 (鹿苑轉法相) -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포교하는 장면
'鹿苑轉法相'에는 네 장면이 묘사된다. 대개 상단과 하단으로 구분되는 경우가 많다. 上段에는 석가삼존불이 설법하는 모습/ 하단에는 교진여 등의 다섯 비구에게 최초로 설법하는 모습 / 기원정사(祇園精舍:中印渡 舍衛城 남쪽에 있던, 석가와 그 제자를 위해 세운 절)를 건립하는 장면 / 아이들이 흙을 쌀로 생각하여 공양하자 부처님이 이를 탑으로 바꾸는 장면 등이다.
8. 쌍림열반상 (雙林涅槃相) - 사라쌍수 아래서 열반에 드시는 장면
'雙林涅槃相'에는 네 장면이 묘사된다.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든 부처님 모습 / 금관에 입관된 부처님이 가섭의 문안을 받고 두 발을 관 밖으로 내보이는 모습 / 다비 후 불사리(佛舍利)가 수없이 떨어져 이를 받아 모으는 장면 / 바라문이 다비에 참석한 여덟 나라의 왕들에게 불사리를 골고루 나누어주는 장면들이 상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자료 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쌍계사 팔상전 영산회상탱
보물 제925호 : 경남 하동 쌍계사 팔상전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화.
비단바탕에 채색. 세로 410㎝, 가로 273㎝.
쌍계사 영산회상도(靈山會相圖)는 석가불(釋迦佛)이 법화경을 설법한 영축산(靈鷲山)의 법회 모습을 그린 것으로
조선 숙종(肅宗) 13년(1687)에 조성된 것이다. 팔상전의 후불탱화로 봉안되어 있는 이 불화는 비교적 큰 편에 속하지만,
화면을 압도하는 중앙의 본존불과 비교적 굵직하게 묘사된 협시보살상들 때문에 협시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
쌍계사 팔상전 영산회상도 (사진=문화재청 제공)
팔상전 앞의 안내판
현재 팔상전에 봉안된 후불탱화는 문화재청이 발표한 보물 제925호 '영산회상도'가 아니다.
팔상전 앞에 세워진 안내판의 해설과 무관한 후불탱화이다. 어인 일인가?
쌍계사로 문의를 했다. 짐작대로 원본 영산회상도는 성보박물관에 모셔져 있었다.
도난과 훼손의 우려 때문에 다른 사찰들은 원본은 성보박물관에 전시하고
팔상전에는 원본을 모사하여 걸어놓았는데, 유독 쌍계사만 전혀 다른 그림으로 바꾸어 걸었다.
' 팔상전에 봉안되었던 영산회상도의 모사탱은 어디에 있을까' 궁금증이 가시지 않았다.
2월의 끝 날, 쌍계사 금당의 '육조정상탑' 사진을 보다가 눈이 번쩍 떠졌다. '팔상전 영산회상도'가
'육조정상탑' 뒤에 봉안되어 있는것이 아닌가!
금당 앞에는 보물 제925호 영산회상도에 대한 안내문조차 없었다.
쌍계사 금당 (일명:육조정상탑전六祖頂相塔殿)
1979년에 중수(重修)한 이 전각에는 중국 불교 선종의 제6대조인 혜능 선사의 머리(頂相)를
모셨다고 전하는 '육조정상탑'이 있다
금당 현판들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
'육조정상탑' 뒤에 봉안된 탱화가 바로 보물 제925호
팔상전 '영산회상도'로 발표된 탱화인데, 무슨 연유로 금당으로 옮겨온 것일까?
팔상전 영산회상도 : 보물 925호 (사진 : 문화재청 제공)
쌍계사 영산회상도(靈山會相圖)는 석가불(釋迦佛)이 법화경을 설법한 영축산(靈鷲山)의 법회 모습을 그린 것으로
조선 숙종(肅宗) 13년(1687)에 조성된 것이다. 석가불을 중심으로 사보살(四菩薩), 사천왕(四天王), 육제자(六弟子),
사분신불(四分身佛)과 타방불(他方佛), 팔부중(八部衆)이 좌우 2열 종대로 배치된 비교적 단순한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본존불의 얼굴은 원만하고 머리에는 뾰족한 육계(肉髻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에
큼직한 계주(髻珠)가 표현되었으며 신체는 건장하고 풍만한 모습을 보여 준다.
오른손은 가슴에 올리고 왼손은 배에 두었으며 엄지와 중지를 맞댄 아미타불(阿彌陀佛)의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의 손모양을 하고 있다. 특히 석가불이 영산에서 설법하고 있는 설법인을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손모양(手印)으로 묘사한 것이 주목된다. (문화재청)
쌍계사에 가면 꼭 보고 오셔요
꽃담장
쌍계사 대웅전 왼쪽에 첨성각(瞻星閣)이 있다.
부처님이 새벽별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어 정각을 이루게 되었으니 수행자들도
부지런히 공부하라는 경책의 의미로 첨성각이라 이름 붙인 승방이다.
그 승방을 둘러친 담장에, 기와 조각으로 꽃잎을 만들고 도자기 조각으로 꽃심을 박은
질박하면서도 화려한 연꽃이 피어 있다.
대웅전 왼쪽 첨성각 담장
기와 조각으로 꽃잎을 만들고 도자기 조각으로 꽃심을 박아
질박하면서도 화려한 꽃담장을 만들었다.
첨성각 앞 담장
막돌과 흙을 섞어가며 쌓은 담장에,
조각난 기와로 '水' 또는 '木' 같은 글씨를 만들어 박아놓았다.
뒤란의 층층담에도 한 송이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마애불(磨崖佛)
대웅전 오른쪽의 명부전 앞 큰 바위에 있는 마애불
바위의 한 면을 사각으로 움푹 파내고 그안에 여래형의 조상을 두껍게 양각하여 감실 안에 불상을 앉힌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불상은 육계와 더불어 머리가 큰 편이고, 법의도 두툼하며, 옷주름은 무릎 앞부분말고는 뚜렷하지가 않다.
두 손은 소맷부리에 넣고 단전 앞에 끌어 모아 뭔가를 받드는 듯 하며, 스님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소박한 인상을 가졌다.
감실 위에 한자로 '나무아미타불'이라 쓰여 있다. 높이는 1.35m 정도이며,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글 : '답사여행의 길잡이'에서 -
(24) 팔상전 (28) 금당 (10) 대웅전 (11) 첨성각 (16) 명부전
첫댓글 '쌍계사팔상도'를 끝으로 보물로 지정된 팔상도(용문사, 송광사, 통도사, 쌍계사) 모두를 공부했습니다.
불자가 아니라 용어 사용에 잘못이 있으리라 우려되지만 열심히 조사한 것으로 어여삐 보아주시리라 믿습니다.
천은사팔상도(숙종41년)와 선암사팔상도(정조4년)는 보물은 아니더라도 18세기 작품이라 조사는 했는데,
팔상전에 봉안된 모사품 사진만 있고 원본 사진을 구할 수 없어 다음으로 미루렵니다
절집에 가셔서 팔상도를 보실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기쁘겠습니다.
하동 쌍계사를 일년이면 한 두번 꼭 찾습니다. 순천에서 그리 멀지 않거든요.
그런데 팔상전, 꽃담장 마애불등 아름다운 보물들을 눈 뜬 봉사처럼 건성으로
보고 다녔으니 부끄럽기 한이 없습니다.
따뜻한 봄날 다시 찾으렵니다. 감사합니다.
안규수 선생님, 올해의 작품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쌍계사 꽃담장을 만날 때마다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안내판이 담장의 상당 부분을 가리고 있어
아름다운 무늬 전체를 담을 수 없는 것입니다.
따뜻한 봄 날 꽃담장을 만나시면 선생님께서도 공감하실겝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