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사진편지 제 1011호 (09/4/16/목)
'제 3구간 다섯째 날 이야기(4.3)'
4월 3일 (금), 걷기에 좋은 날씨였습니다.
이날은 화진 해수욕장에서 포항시 흥해읍 포항대 근처까지 26km를 걷는 날입니다.
아침에 TV를 켜니 경주의 이름난 벚꽃 길이 만개이고 그 길에서
오랜 전통의 단축 마라톤 경기가 이 날 열린다고 보도했습니다.
작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강릉 경포대까지 걸을 때보다
금년은 일주일 빠르게 제 3구간 걷기를 시작했지만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라서 그런지 올해도 벚꽃이 한창인 때 걷게 되었습니다.
이번 걷기에서 처음으로 조반 전에 약 4km를 걷고, 가는 도중에
아침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숙소인 화진 관광모텔에서 아침 7시 정각에 출발했습니다.
약간 높은 지대에 위치한 숙소에서 내려와 7번 국도를 밑으로 가로질러
좁은 해안도로를 따라 가기 위해 길 양편에 벚꽃이 활짝피어 있는
동네 앞길로 들어섰습니다.
'인생은 未知를 향한 긴 여행이고, 한편의 연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 인생 무대 위에서 주연이 되어 자기 만큼의 연기를 통해서
자기를 보여주며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럴바에는 되도록 좋은 연기를 보여 주어 주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여운이 남는 명연기를 해야할 것 아닙니까?
좋은 연기는 실제의 연극이나, 인생의 연극에서 엄청난 연습과
노력의 결과로 나온다고 합니다.
'연습 없이 잘 할 수 있는 일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이 말은 뇌리에 붙어 항상 자신을 채찍질하는 '스티커 메시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DNA가 받쳐주면 같은 연습으로도 더 일류가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최고도 될 수 있지만, 비록 소질이 없다 해도 연습을 제대로 잘하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잘 할수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음치에 가까운 사람이 자신의 승용차에 좋아하는 노래 CD를 넣고 다니며
만 번 이상 따라 연습한 결과 그 노래를 어느 누구 보다도 더 잘 부르게 된
친구를 저는 알고 있습니다.
노래방에 간다면 도망치기 일수고 장기자랑 시간에는 항상 뒤로 숨는 친구들은
지금도 늦지 않으니 꼭 한 번 도전해 볼만한 일입니다.
걷기에서도 평소 꾸준한 연습은 그대로 효과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증거는 작년 가을 제 2구간의 김균순 님이었고,
이번 제 3구간 걷기에선 바로 에델바이스 부부였습니다.
그들은 제3구간 걷기에 앞서 오래 전부터 매일 약 2시간 이상씩 꾸준히
동네를 비롯한 이곳 저곳을 꾸준히 걸었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평소, 지하철 역 2-3개 구간은 의례 걷는 것이 보통인 분들입니다.
그 결과 제 1, 2구간 걷기 때 힘들어 했던 그들은 이제는 마치 동네를 산책하듯이
시종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피로의 기색도 없이 가볍게 걷고 있었습니다.
저는 눈에 띄게 경쾌해진 에델바이스 부부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다시 한번 연습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 4구간 참가 희망자는 지금부터 6개월간 지속적으로 하루에
2시간씩만 걸어다닌다면 아름다운 경치와 별미를 신체적인 부담없이
즐기면서 제 4구간 걷기 여행을 즐겁게 하실수 있을 것입니다.
약 1시간 걸은 뒤 우리는 스쿠버 다이버들의 교육과 민박을 돕는
'아쿠아벨'이란 회관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 가정식 백반을 아침식사로 미리 부탁해 놓았기 떄문입니다.
사전 답사 떄 근처에 조반을 먹을 마땅한 숙소가 없어 마을 주민들에게 수소문하고
다니다가 어떤 주민이 이 마을의 음식 솜씨 좋은 권씨 아주머니를 소개해주엇습니다.
집에서 먹는 아침 밥처럼 해 줄것을 부탁했더니 얼른 알아차리고
기꺼이 받아들여 주어 거기에 아침 밥을 예약해두었던 것입니다.
한 시간 걷고 먹는 조반은 꿀맛이었습니다.
거기다가 누구나 좋아하는 시레기 된장국, 꽁치구이,
콩나물 묻침, 문어 데친것까지 나와서 모두들 좋아했습니다.
조반을 든 후 우리는 바다를 왼편에 두고 한적한 해안 도로를 행복하게
서서히 걸어갔습니다.
걷다가 지치면 벚꽃 아래 주저 앉아 허필수 님과 신원영 님의
'EDPS'를 즐기면 금새 찡그린 얼굴은 밝게 펴지고 피로는 회복되었습니다.
이날 우리는 월포해수욕장을 지나 칠포 해수욕장의 경관이 좋은 위치에
자리 잡은 '마루 횟집'이란 세련된 식당에서 모처럼 생선 초밥을
점심으로 들게 되어 있었습니다.
식당 주인은 걷고 있는 저에게 자주 전화를 걸어 초밥을 만드는
타이밍을 맞추려고 마음쓰고있는 것을 보고
전문가의 솜씨를 더욱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마루횟집'이 거의 보이는 지점의 바닷가 언덕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
배우처럼 훤칠하게 생긴 미남 청년이 차를 세우고 우리들에게 접근해왔습니다.
"저도 도보꾼입니다. 걷기 클럽 회원인데 어르신들이 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찾아 뵙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걷기 일정과 계획 등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프로그램을 주고 간단히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는 몹시 놀라며 자기도 우리와 비슷한 코스를 거의 걸었다면서
연세가 높으신 어른들이 대단하시다며 자동차에 싣고 가던
오가피 음료수 한 상자를 전달하면서 따뜻하게 위로하여 주었습니다.
저는 그 청년에게 노래나 한 곡 들려 달라고 하자 그는 서슴치 않고
멋진 제스쳐와 함께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를
구성지게 불렀습니다. 우리들은 그와 함께 몸을 움직이며 그 노래를
같이 따라 부르며 즐거운 한 떄를 보냈습니다.
소박하고 유쾌한 그가 우리는 금방 좋아졌습니다.
그는 저에게 제 4구간 걷기 시에 연락해준다면 자신도 우리와 함께
한 구간이라도 걷고 싶다고 해서 꼭 연락하겠다고 약속하고
명함을 받아 놓았습니다.
우리 처럼 걷기를 좋아하는 그는 포항에서 '美를 만드는 사람들'이란
다이어트 상담 업체를 경영하는 김현표 대표님이었습니다.(010-6675-1472)
같은 전공이나 동일한 관심,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은 생전 처음 만나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금방 친해질 수 있고 머리와 가슴이
훨씬 잘 통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체험의 공유가 정서의 공유를 낳고 정서의 공유가
쉽게 친밀감과 일체감을 가져오는 것 같습니다.
예정보다 조금 빨리 마루횟집에 도착하였습니다.
우리만 들어갈 수 있게 넓은 방에 정성들여
준비된 생선 초밥은 우리들의 입을 마냥 즐겁게 하였습니다.
오후 거리가 짧았기 떄문에 우리는 그 식당에서 좀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고
오후 1시에 출발했습니다.
이날 걷기는' 마루횟집'까지가 천국이었다면 그 이후 숙소까지는 지옥이었습니다.
마루횟집을 지나 얼마 가지 않아 우리는 포항의 영일만에 새로 조성되고 있는
신 항만과 산업단지 공사 현장 바로 옆을 통과히게 되었습니다.
길바닥은 온통 파헤처져 있었고 거기다 흙과 건축자재들을 가득 실은
육중한 덤프 트럭들이 쉴새 없이 우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소음과 먼지와 워험, 공포가 겹쳐 최악이었습니다.
간신히 오후 4시 45분 경에 이날의 목적지인 베네치아 펜션에 도착했습니다.
그 숙소 길 건너엔 해수사우나가 있어서 그것이 그래도 오후의 힘든 길에서
유일한 그날의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도착해서 바로 찾아간 해수 사우나는 우리에게
너무나 큰 실망을 주었습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더 컸습니다.
"내부 수리 관계로 당분간 휴업합니다."란 쪽지 떄문이었습니다.
허탈감을 안고 숙소에 돌아오니 그동안 우리들의 배낭을 소리 없이
옮겨주셨던 김춘식 교장님이 배낭을 승합차에 싣고 헐레벌떡 도착하셨습니다.
오랜만의 해후였습니다. 김 교장님은 한밤의 사진편지 오랜 독자이고
경북 재량활동 연구회 회장이기도 해서 과거부터
세미나와 연구 관계 등으로 서로 가깝게 지내온 사이입니다.
(휴대전화 011-528-3873, kcs3165@hanmail.net)
이번에 우리들의 배낭 수송을 맡아 지금까지 잘 도와주신 고마운 분입니다.
너무나 고맙고 반갑다는 인사를 나누고 우리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자고
팔을 끌었으나 그는 직원들의 회식이 있어 모두 기다리고 있어
가지 않을 수 없음을 이해해 달라고 오히려 저에게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김춘식 교장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김 교장 님 덕분에 우리는 무거운 배낭을 매지 않고 마음 편히, 몸 편히
안심하고 걸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날 숙소는 펜션으로서 8개의 큰방을 사용했는데 여학생이
3개 남학생이 5개를 썼습니다.
그래서 이날만은 2인1실 원칙을 고수할 수 없었습니다.
각방에서 4-6인 정도씩 처음으로 합숙하게 되었습니다.
참가회원님들은 이런 날도 하루 쯤 필요하다면서 즐겁게 받아들였습니다.
이 펜션의 건물은 3,4층은 숙소이고 2층은 '베네치아'라는 양식당이었습니다.
우리는 걷기 역사상 처음으로 함박 스테이크로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식탁에서 포크와 나이프를 쓰며 느긋하게 식사하였습니다.
식사가 끝난 후에 싱싱한 딸기와 사과가 푸짐하게 디저트로 나왔는데
그것은 이 식당에서 내놓은 것이 아니라
멀리 서울에서 성태제 회원님(이화여대 교수)이 이 식당으로 보낸 것이었습니다.
성태제 회원 님은 지난 2007년, 제주도 일주 걷기할 때부터 꼭 잊지않고
우리들에게 과일을 머나 먼 걷기 현장까지 택배로 보내주시는 아주 특별한
회원 님이십니다. 아무나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아름다운 베품입니다.
그의 관심과 배려와 사랑에 회원 전원은 항상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과는 식당에서 후식으로 먹고도 남아서 객실로 올라가며 모두 1개씩 가지고
올라갔습니다. 걸을 때 가장 먹고 싶은 것은 과일입니다.
그런데 이번 걷기에서도 우리는 김용만 님이 현장으로 들고오신 사과와 감귤, 그리고
성태제 님이 보내신 딸기와 사과를 잘 먹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분들의 고마움을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밤새 바로 창밖의 영일만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영일만 친구'가 아닌 이번에 개인 사정으로 참가하지 못한
우리 한사모 친구들을 생각하였습니다.
이제 내일 하루만 걸으면 이번 제 3구간 걷기를 모두 마치게 됩니다.
계속해서 좋은 날씨를 주시고 우리 모두를 안전하게 지켜주신 하늘에 감사드렸습니다.
<글: 함수곤, 사진: 이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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