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규 선수의 경기를 지켜보는 한 동호인. 인천에서 올림픽공원까지 지하철로 이동해 관전한다. 한솔코리아오픈때도 하루정도 빼고 매일 경기장을 찾았다. 임용규에게 상대 약한 서브나 세컨 서브를 왜 공격적으로 리턴을 하지 않는 지를 궁금해했다.
삼성증권배는 올해로 10회를 맞는 우리나라 최고 상금이 걸린 남자국제대회다.
이형택이 2000년 US오픈 16강에 오르던 해 한국 남자테니스의 부흥과 이형택 선수의 16강 기념으로 대기업을 설득해 만들어졌다.
이 대회를 통해 이형택을 비롯해 많은 선수들이 1승 1승을 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특히 이형택은 투어를 돌다가 점수를 별로 못얻은 상황에서 삼성증권배챌린저에서 우승하면서 100점을 보태 100위권을 유지했다.
대회의 취지는 이렇다. 한국 실업 대학 선수들에게 예선출전 기회와 기대주에겐 본선 와일드카드를 통해 외국 선수들과 기량을 겨루고 기회를 잡아 랭킹 포인트를 따게하기 위한 구상이다.
10회를 거치면서 대회는 날로 커져 챌린저 규모로는 높은 등급의 대회로 발전했다.
우리나라에 삼성이나 한솔같이 테니스를 후원하는 기업이 없다. 물심양면으로 그리고 전폭적으로. 태국의 테니스 영웅 파라돈 스리차판도 삼성의 후원을 받고 싶어 안달이었다. 그러나 그 후원은 오로지 한국선수에게만 제공됐다.
글로벌 기업인 삼성이 외국에서 테니스대회도 하고 골프대회도 하고 승마대회도 열고 영국 축구팀 첼시 선수들 가슴팍에 엄청난 파운드를 들여 제품 선전을 하는 판에 테니스에서는 유독 한국 선수들의 성장만을 고집했다.
그것은 삼성과 한 가족인 한솔도 마찬가지다. 소비재 출시를 하지 않는 기업에서 협회장을 맡고 있고 테니스를 사랑해 선수들을 프로식으로 후원하고 잘 헤쳐나가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삼성증권배 예선 기간 중에 전국체전이 열려 예선을 통과할만한 선수는 전국체전에 목을 매달고 있었다. 지난 몇년전에도 예선 출전 선수가 부족해 동호인이 출전하고 중학생이 예선 한자리를 채우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대학이나 실업 선수들 상당수가 '나가봐야 예탈인데'하면서 도전조차 하지 않았다. 현실적인 판단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대회를 열고 진행하는 입장에선 본래의 취지에 선수들과 팀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다.
27일 본선 1회전의 과정과 결과를 놓고 보면 대회가 계속 유지될런지 의문이 들 정도다.
그동안 이형택이 버텨주어 늘 화려한 결승전이 마련됐다.
그런데 1회전에서 와일드카드든 국가대표든 결과는 모두 실망을 안겼다.
어렵사리 직장시간 쪼개 경기장을 찾은 테니스마니아나, 한솔오픈부터 멀리 인천서 지하철 몇시간 타고 온 한 초로의 테니스인을 비롯해 참 아쉽다는 말을 들게 만들었다. '참 이해가 안간다'며.
프로라 하면 몸관리부터 상대 선수 분석까지 모두 마친 상태에서 대회에 임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어느 선수라도 지고싶은 선수는없을 것이다. 그런데 27일 보여준 한국 선수들은 아무 준비없이, 이 대회 취지도 모른 채 들어가 관중과 팬들에게 실망을 안겼다.
올림픽코트에는 서울 경기 지역에서 도시락 싸들고 우리나라 테니스 잘 되길 기원하면 관전하는 단골손님이 많다.
이들의 이야기는 소박하게 "우리 선수들이 좀 더 분발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도자와 선수가 대회 스폰서와 얼마 안되는 관중을 위해 잘해주길 바라고 있다.
야구같은 경우 국가대항전이 열리거나 WBC같은 월드컵이 열리면 상대 국가 경기 녹화 테이프를 구해 철저히 분석한다. 우리나라 배구도 이탈리아 전력분석관을 수입해 상대팀의 공격 루트와 상대 주포의 특징 습관 등을 낱낱이 기록해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머리를 맞대고 연구해 상대팀 승리 전략을 세운다.
스포츠는 과학이다. 테니스도 무작정 라켓 들고 코트 들어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그런 경기가 아니다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특징없는 선수들의 플레이, 무기없는 플레이, 리드하고 있으면서도 위닝샷없는 플레이. 상대가 궁지에 몰렸는데도 끝내지 못하는 플레이로는 팬들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
27일 1회전 가운데 가장 안타까운 경기는 단연 임용규 경기였다. 한솔과 3년 후원 계약을 맺고 대학 진학이 확정된 선수다. 한솔 관계자들도 경기 관전을 위해 자리를 함께했다.
경기전 임용규로서는 이기기 어려운 상대 다나이 우돔초케였다. 챌린저대회급 선수로 우승과 준우승을 수없이 한 선수였기 때문이다.
임용규가 자신의 기량을 펼치기만 바랬는데 웬걸 뚜껑을 열어보니 우돔초케의 어깨가 정상이 아니었다. 첫세트 6-1로 임용규가 이겼다. 챌린저 1승에다가 대어를 낚는 그야말로 1타 2피였다.
그런데 웬걸. 어깨 근육이 손상돼 포핸드와 서브가 안되는 우돔초케의 노련한 경기운영(임용규가 절대 포핸드를 못피게 백핸드 슬라이스로 리턴)으로 한국의 기대주 19살 국가대표를 요리했다.
2세트 2-2에서 상대 서비스게임 브레이크 못하고 자신의 서비스게임은 내주며 2-4로 벌어진 임용규는 어이없게 만들었다. 기권할 듯 기권할 듯 하던 우돔초케는 백핸드 슬라이스와 가끔의 포핸드 샷으로 임용규를 발바닥과 등허리에 땀나게 했다.
임용규는 위닝샷이다 하고 치면 네트 좌우 상단에 걸리고 네드 대시해 스매시해 칠라하면 공은 네트와 친구 삼았다.
상대가 도저히 라켓 들 힘 조차 없는 상황이어 더블폴트 8개로 게임을 주고 언더서브로 경기를 해도 요리를 못한 것이 임용규였다.
올림픽코트에 지붕이 있었으면 관중들과 관계자의 한숨 소리로 지붕이 꺼졌으리라.
안재성 무죄처럼 임용규도 무죄일까. 임용규는 죄가 없을까.
올초 퓨처스에서 연거푸 우승하며 기대를 모은 선수가 임용규였다. 위기때 터지는 서브 포인트, 로딕을 닮은 묵직한 포핸드 스트로크, 안정적인 백핸드. 포핸드보다 좋다한 백핸드 등등을 장착한 선수였다.
그러나 여러 경기를 하고 각종 대회에 출전하면서 독학을 한 임용규는 별다른 진전이 아닌 퇴보를 하고 있었다. 꼭 필요한 기술인 다운더라인 공격은 장착도 못하고 포핸드 비거리는 짧아지고 백핸드는 수비하기 급급하는 등 선수가 자신감이 결여됐다. 실전을 거치면서 홀로 문제를 해결하다보니 공 넘기기 급급해 보였다.
이겨야 하는 경기를 해야하니 넘기는 플레이에 익숙한 것이 임용규가 아니었을까. 독학의 한계로 여겨진다.
선수 하나가 온전히 큰 다는 것이 정말 멀고도 험한 길이다. 주위의 격려와 손길 그리고 확실한 모델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용규와 한국선수들 그리고 한국코치들에게 참고가 될런지 모르겠지만 소개한다.
미국대학선수권 2년 연속 우승하고 인도첸나이오픈 투어대회 준우승한 데브바르만 선수가 대회에 출전했다. 배나오고 다리 절룩거리는 나이든 코치를 데리고 와 열심히 지도를 받고 있다. 본선에 자동 출전할정도로 랭킹이 임용규보다 높은 선수는 지도자를 모시고 대회에 출전했다. 1회전을 이기고 28일 2회전을 출전한다.
27일은 경기 뒤 바로 호텔로 돌아갔지만 일요일부터 구석 후미진 코트에서 열심히 코치의 잔소리를 듣고 포핸드 스트로크를 교정하고 있었다. 유연한 몸에 습자지같은 흡입력을 지닌 그 선수의 플레이와 연습은 볼만하다.
아무튼 비록 조숭재만 남아 한국선수들의 볼거리가 대폭 줄어들었지만 다른 나라 커나가는 선수들을 보면서 타산지석으로 삼을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