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이 좀 자극적이다. '교육이 없는 나라' 라고. 우리나라로 말할 것 같은데 교육으로 일어선 나라인데 왜 저자는 뜬금없이 '교육이 없는 나라' 라고 단언할까?
책 표지 그림도 암울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서열화된 대학, 경쟁력 없는 교육, 불행한 사회라는 키워드는 책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저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로 입학처장 및 부총장의 직임을 수행했던 경험을 살려 우리 교육의 현 주소와 문제점, 앞으로 경쟁력 있는 교육으로 세계에서 교육으로 일어선 나라가 되기 위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가 분석한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좋은 의미에서 차별화가 되어 있다면 좋겠지만 입학 당시의 수능성적, 고등학교 내신 등급에 의해 한 줄로 줄세워져 있다는 점이 대학의 존립 자체를 흔들고 있다고 진단한다. 더구나 인구 절벽의 시대에 대학의 구조 조정은 불가피한 현실이 되고 말았다. 과거 우리나라는 전쟁으로 인해 잿더미로 변했지만 짧은 시간 안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낸 명실공히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나라라고 자부한다. 그렇게 된 이유는 '교육'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이제는 '교육' 때문에 국가의 발전이 정체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 온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대학이 원래의 목적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대학 입학이 샴페인을 터뜨릴 일인가? 대학교도 변모되어야 한다. 연구 중심의 대학, 교육 중심의 대학, 혼합 중심의 대학으로. 수준 높은 강의, 치열한 학습 풍토, 뛰어난 연구 성과, 올바른 사회 기여도가 대학의 경쟁력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의 기원과 역사를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고구려의 태학, 신라의 국학, 고려의 국자감, 조선의 성균관, 근대의 원산학사와 육영공원, 민립대학 설립 운동, 경성제국대학으로 이어온다. 그러다가 1996년 '대학설립준칙주의'에 따라 대학의 양적 확대가 지방에서 나타났다. 대학설립준칙주의는 2013년 폐지되고 허가제로 바뀌었다.(209쪽 참조)
대학을 입학할 수 있는 비율이 20%가 안 되었을 때에는 나름 대학 입학만으로 경쟁력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대학 입학이 성공을 보장해 주는 시대는 아니다. 입학은 쉽게 할 수 있으나 졸업 하기는 어려운 구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학벌주의의 상징이 된 서울대의 입학 제도를 학부 중심에서 대학원 중심으로 전환했을 때 나타나는 장점에 대한 저자의 의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 교육의 제도가 아직도 과거에 머물려 있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폴란드의 벽돌공에 대한 예화로 든 점이 기억이 남는다. (29쪽)
"실제 아우슈비츠 수용소 정문에는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폴란드의 한 성실한 벽돌공은 자신이 쌓고 있는 건물이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임을 몰랐다고 한다. 만약 그 사실을 알았다면 성실하게 벽돌을 쌓았을까?
앞으로의 미래 경쟁력의 핵심은 데이터와 노하우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새로운 곳에 적용할 수 능력이다.(33쪽)
저자가 예화로 든 것 중에 또 하나 기억에 인상적으로 남는 내용이 있었다. (78쪽)
중국에 있는 모죽이라는 대나무 이야기다. 모죽은 처음 5년 동안은 아무리 가꾸어도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하루에 70~80센티미터씩 자라기 시작해 나중에는 30미터까지 자란다고 한다. 새로운 것을 분석하고 만들어 가는 능력은 처음부터 나타나지 않는다. 배움의 즐거움을 통해 서서히 나타난다. 저자가 얘기한 성실과 근면보다 재미, 상상력, 도전, 창의성 교육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