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맞이꽃을 먹다니
- 최문자
감마리놀렌산이 혈행에 좋다고
그렇다고
그 꽃을 으깨다니
그 꽃 종자를 부수고 때리고 찢어서
캡슐 안에 처넣다니
그 피범벅 꽃을 먹고
혈관의 피가 잘 돌아가다니
욕심껏 부풀린 콜레스테롤이 그 꽃에 놀아나다니
그렇다고 나까지
하루 두 번 두 알씩 그걸 삼키다니
머지않아 꽃향기로 가득 찰 혈관
그렇다고
하필 그 환한 꽃을 죽이다니
밤마다 달을 바라보던 그 꽃을
꽃 심장에 가득 찼을 달빛을
그 달빛으로 기름을 짜다니
노오란 꽃에 앉았던 나비의 기억까지
모두 모두 으깨다니
부서진 달빛, 꽃잎, 나비,
두 알씩 삼키고 내 피가 평안해지다니
생수 한 컵으로 넘긴 감마리놀렌산 두 알
혈관에 달맞이꽃 몇 송이 둥둥 떠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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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꽃’, ‘그 피범벅 꽃’, ‘그 환한 꽃’, ‘그 달빛’으로 건너뛰는 대명사,
‘그’. 그냥 꽃이 아니라, 그 꽃. 그냥 달빛이 아니라 그 달빛. 대명사 ‘그’가 있기에
꽃과 달빛과 내가 하나로 묶인다.
그러니 가책하지 말자.
내가 꽃이자 달, 내 핏줄 속에 꽃향기와 달빛을 채우면
우주 행성의 운행도 잘 돌아갈 터이니.
몸이 소우주란 말, 어디선가 들은 적 있지만
쉰 살 무렵에는 봄조차 몸이라. 얼마 전 어떤 시인이 고백하시길,
“선생님의 봄은 꽃에서 시작해서 꽃에서 끝나는군요.
제 봄은 이렇습니다.
아침저녁 종근당석류콜라겐 5알, 비타민A 2알, 철분 2알, 삐콤씨 2알, 오메가쓰리 4알,
글루코사민 2알, 경남제약비타민C 수시복용 홍삼.
그러다 보니 오줌색깔이 개나리꽃보다 더 노오오래요.”
-장옥관 시인(매일신문)
가끔은 자기 오줌에서 진한 냄새를 맡습니다
그게 자가진단법이란 것을 병원에 가서야 알게 됩니다
팔순 어머님을 병상에 눕히고도 익숙한 방안에서 잠을 자는 불효를 저지릅니다
지금 어머님 방안 서랍에는 온갖 약 봉지가 부스럭거립니다
아, 어제 저녁에 마신 술이 아직 몸안에서 비틀거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