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자 수필 문득.1534 --- 김만중은 대전 문학의 보배
이미 3백여 년의 세월이 흘러갔는데 멀쩡한 것이 있으랴마는 막상 최후의 보루이며 낙원처럼 여기며 4년여 말년을 보냈을 노도에서 영정으로 뵙게 되니 새삼스럽고 먹먹하기만 하다.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지운듯싶다. 근엄한가 하면 대전에서 왔다고 반가워 은근히 인자함이 풍기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조금은 짓궂은 듯 마음껏 찾아보면서 마음껏 생각하고 마음껏 좋은 이야기든 싫은 이야기든 이야기꽃을 피워보라 하지 싶다. 끼어들지도 끼어들 틈도 없어 지켜만 보겠다는 듯 아주 태연한 척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진실은 묻히고 왜곡돼도 언젠가 모두 드러나면서 밝혀진다. 김만중은 우리나라의 역대 훌륭한 문인으로 부족하지 않다. 문학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대전으로서는 김만중 같은 상징적인 인물이 필요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아무래도 대전의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아 자랑거리가 거의 없다. 대전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우슬군, 고려시대는 공주목의 회덕현이었다. 조선시대는 공주목의 진잠현과 회덕현으로 나뉘면서 대전역을 중심으로 한밭이란 작은 마을이었으나, 1905년 경부선 대전역의 개통과 1932년 충청남도 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겨오고, 1936년 서대전역이 개설되면서 대도시가 되었다. 1989년 대전직할시에서 1995년에 대전광역시가 되었다. 대전지역에 연고를 둔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는 불후의 명작으로 김만중을 대전 문학의 원조로 삼아도 손색없을 것이다. 그러면 대전 지방의 문학도 30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역사를 지닌다. 어쨌든 김만중과 대전은 돈독하면서 밀접한 관계가 되었다. 덧붙여서 유배문학을 알게 되었고, 남해 독일마을을 탐방하였으며 문인 간 친목 도모 등 다각적인 효과가 있었다. 지난여름의 역대급 무더위에 구겨질 대로 구겨진 마음의 응어리와 남은 찌꺼기를 탁탁 털어내고 씻어내면서 나름대로는 한해를 거두는 풍성한 가을맞이로 신선한 힐링이 되었다. 여행은 직간접적으로 값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