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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가해 10월1일 주일
[(백)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선교의 수호자) 대축일]
[수도회] 회개하고 낮추어 작아지는 큰 사람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이사 66,10-14ㄷ
○ 제2독서 1코린 7,25-35
† 복음 마태 18,1-5
◈ 오늘의 묵상
하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는 성인들은 하늘의 별처럼 찬란히
빛나지만, 저마다 다른 시대와 지역에서 이 세상을 살아 낸
분들입니다. 따라서 그분들이 가진 성덕과 카리스마(은사)는 다
특별합니다. 그렇지만 그중에 공통된 성덕은 바로 겸손함과
단순함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은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며, 따라서 우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하늘 나라의 성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어린이 같은 성인입니다. 어린 나이에 수녀원에 들어가서 결핵에
걸려 스물네 살의 짧은 생애를 마친 성녀는, 가장 약하고 단순한
모습으로 살았지만, 가장 위대한 삶을 살아 내었습니다. 봉쇄
수녀원에서 평생을 살았지만, 그분의 기도는 온 세상을 향했던
선교의 수호자입니다.
그분의 이 위대함의 근본은 바로 겸손함과 단순함입니다. “당신의
작은 딸은 언제나 아주 이름 없는, 모든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모래알로 남아 있어서 예수님만이 그를 보실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하십시오. 그는 점점 더 작아져서 무가 되어야 합니다.” 이 작은
마음 안에, 성녀는 오로지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모든 것을 그분께
맡겼습니다. 어머니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 안에서 온전히 자유로운
어린이의 모습은, 우리가 성녀를 통해서 바라보는 거룩함의
모습입니다.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 매일 미사 -
◈ [인천] 단순하고 작은 일에 충실한 모습
2017년 가해 10월1일 주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선교의 수호자) 대축일
제1독서
<보라, 내가 예루살렘에 평화를 강물처럼 끌어들이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66,10-14ㄷ
제2독서
<처녀는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7,25-35
복음
<너희가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5
자동차 와이퍼를 구입하기 위해 대형마트를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어느 성당에 특강을 갔는데 강의 시작 전까지 여유가 있어서 들린
것이지요. 그런데 와이퍼가 진열되어있는 자동차 용품 쪽에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종류가 이렇게 많은지 상상하지 못했거든요.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와이퍼, 눈비에 강한 와이퍼, 가격이 저렴한 와이퍼
등등 종류가 다양하고 참 많았습니다. 무엇을 골라야 할지 갈등을
하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사실 선택의 폭이 좁을 때에는 오히려 편합니다. 별 생각을 할 필요
없이 그냥 구입해서 사용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선택의 폭이
많아지면 이것저것 저절로 살펴보게 됩니다. 가격, 품질, 서비스.....
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어떨까요? 저렴한 가격을
원한다면 당연히 가격표를 보고서 구입할 것이고, 품질 좋은 것을
원한다면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사람들의 좋은 평을 받는 품질 좋은
것을 선택할 것입니다. 따라서 선택을 쉽게 하는 방법은 자신이
원하는 목적이 분명하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너무 어려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지만, 집에 손님이 오시면 맛있는
것 사먹으라면서 제게 용돈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러면 제 위의
형들이 많은 동전을 가져와서는 제게 바꾸자고 했다고 하더군요.
예를 들어, 500원 짜리 지폐(지금은 없지만 예전에는 있었습니다) 한
장과 몇 개의 동전을 바꾸자는 것이었지요. 저는 어떻게 했을까요?
글쎄 너무나 좋아하면서 동전과 바꿨다고 합니다. 어린 저에게
선택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많은 숫자와 짤랑거리는 동전 소리였던
것이지요. 세상의 관점으로는 어리석은 선택이지만, 스스로는 가장
기쁜 행복한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어떤 선택을 하면서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요? 세상의 관점을
따르는 선택이 반드시 옳지는 않습니다. 그보다 나의 진정한 행복을
가져오는 선택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의 관점을 뛰어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린이와 같이 단순해야지만 가능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오늘 우리가 대축일을 지내는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바로
어린이와 같이 사신 분이라고 합니다. 성녀는 24세라는 젊은 나이에
선종하셨지만, 봉쇄 수도원에서 일상의 단순하고 작은 일에
충실하면서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고 고행하셨다고 합니다. 특별히
선교하는 사제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신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요. 그래서 단 한 번도 수도원 밖을 나가신 적이 없어도 선교의
수호자가 되셨고, 단순하고 작은 일에 충실한 어린이와 같은 모습이
교회의 학자가 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올바른 선택을 하는 사람은 단순하고 작은 일에 충실한 모습, 즉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만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지금 어떤 선택을 하고 계십니까?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를 때는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쪽을 선택하는
게 낫다. 사람은 이익 앞에서 눈이 어두워지는 법이다
(미우라 아야코).
소화데레사 성녀.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세 여자를 놓고 고민하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누구랑 결혼해야 할지
도무지 판단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테스트를
했습니다. 즉, 각각에게 1000만원을 주고 그 돈을 자기(남자)를
위해 쓰라고 한 것입니다.
첫 번째 여자는 성당에 이 남자 이름으로 감사헌금으로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요.
“당신의 이름으로 성당에 봉헌했어요. 하늘에 보화를 쌓은 것이니
분명히 하느님의 특별한 축복을 받을 거예요.”
두 번째 여자는 이 돈으로 남자에게 선물을 했습니다. 고급 넥타이,
화장품, 양복, 골프채 등등...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모든 걸 당신을 위해 샀어요. 당신은 내가 사랑하는 남자이니
멋진 신사가 되어야지요.”
세 번째 여자는 이 돈을 주식에 투자 했습니다. 그리곤 원금의 세
배로 만든 것입니다. 남자에게 1000만원을 돌려주면서 말합니다.
“나머지 돈은 은행에 넣어 두었어요. 우리의 장래를 위해 재투자해서
돈을 늘려 갈 거예요. 사랑하는 당신을 위해 살림을 잘 꾸려나갈
거예요.”
세 여자가 자기를 위해 해 준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 여자는 신앙심이 뛰어나서 항상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줄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여자는 자기를 위해 뭐든지 할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여자는 참으로 알뜰해서 앞으로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연 이 남자는 누구를 선택했을까요?
어느 책에 나와 있는 유머를 정리해보았습니다. 이 책에서 나오는
선택은 “셋 중에서 제일 예쁜 여자였다.”라고 나오더군요. 어쩌면
관심사가 외모에만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선택을 했겠지요. 그러나
여러분의 선택은 어떻습니까? 한 번 생각해보시죠? 만약 이 글을
읽는 분이 여자라면, 남자를 여자로 바꿔서 생각해보시고
선택해보세요.
수녀원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어린 데레사 성녀.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회개하고 낮추어 작아지는 큰 사람 -
기 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7년 가해 10월1일 주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대축일, 마태 18,1-5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
회개하고 낮추어 작아지는 큰 사람
예수님께서는 카파르나움에서 두 번째로 수난예고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 제자들은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며 서열 다툼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8,3-4)
그 당시 어린이들은 가난한 이들처럼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고 주장할
권리도 없었지요. 여기서 어린이처럼 되라는 말씀은 어린이의 겸손,
천진함을 흉내 내라는 뜻이 아니라, 회개함으로써 새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곧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고쳐먹고, 새롭고 순수한
눈으로 모든 사건과 사람들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또한 어린이와 같이 되려면 자기 자신을 낮추어야만 한다고
하십니다. '낮춘다’는 것은 자제극기나 맹목적인 복종이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에 적극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봉사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기준과는 달리 하늘나라에서 위대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회개하고 자신을 낮추는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곧 당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라 하십니다(18,5). 어떻게 해야 예수님과
일치하고 하늘나라의 기쁨을 지금 여기서 맛볼 수 있을까요?
그러려면 회개하여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자신을 낮추고 비워
주님을 모시야 합니다. 나아가 보잘것없는 작은 이들 안에 계신
주님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그런 삶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성녀는 9년간의 짧은 가르멜 수도원에서의 평범한 생활 가운데서
겸손과 온유, 복음적 단순성과 하느님에 대한 굳은 신뢰심을 배워
살았지요. 그녀는 죽기까지 영혼들을 구원하고, 교회를 새롭게 하고,
선교 지역에서 신앙을 전파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데에 온
힘을 다했지요.
이 성녀는 1897년 9월 30일 숨을 거두면서 말합니다. "오, 저의
하느님, 사랑합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의 소명, 마침내
저는 그것을 찾았습니다. 제 소명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교회의 품 안에서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저의 어머니이신
교회의 심장 안에서 저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일상적인 기도와 일, 자만심에 따른 과오,
고집스런 성격, 내적 외적인 시련에 직면하면서도, 이 모든 일을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그 사랑을 위하여 ‘작은 길’을 용감하게 걸어
나갔습니다.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작음을 깨닫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의 자비에 자신을 내맡기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오늘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의 축일을 지내며 우리 또한 회개하여
하느님의 눈으로 만사만인을 바라보도록 해야겠습니다. 자신이
하느님 앞에 가난한 자임을 깨닫고, 다른 사람들을 자기 자신보다 더
높은 사람으로 여기고 존경할 만한 사람으로 여겨야겠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작음의 정신으로, 주님을 맞아들이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내 영혼의 빈터에
찾아오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품어야겠지요.
오늘도 회개하고 낮추는 어린이가 되고,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의
겸손과 온유를 마음에 새기며 영혼의 ‘작은 길’을 걸어갔으면 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신부 -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 [서울]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선교의 수호자)대축일
2017년 가해 10월1일 주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선교의 수호자) 대축일
"너희가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 마태 18,1-5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하느님의 나라가 곧 온다고 믿었습니다. 구원의
때가 곧 온다고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가진 것들을 기꺼이 나눌 수
있었습니다. 시련의 때가 와도, 박해를 받으면서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곧 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는
새로운 구원을 이야기해야 했습니다. 곧 올 것 같았던 하느님의
나라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박해의 시기도 끝나고, 교회는
조직과 제도를 마련하였고, 교회는 마을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제
하느님의 나라는, 구원은 하느님의 은총과 각자의 선행과 기도를
통해서 가는 곳으로 이해되었습니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들에게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개인주의,
자본주의, 신자유주의는 이웃을 위해서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미
이곳에서 시작되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
나라는 이곳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공간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자본과 이익의 논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나눔과 섬김에서 자라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 ‘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서 전쟁을 하기도하고, 서로를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제국주의는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을
몰아내고, 죽였습니다. 공간을 위해서 살면 우리는 다툴 수밖에
없습니다. 공간은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가치의 시간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의미의
시간을 살아간다면 이곳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둘째, ‘일치가 갈등을 이긴다.’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언제나 하나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여러분도 하나가 되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것을 이해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나와 다른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 ‘실재는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행동하지 않는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을
질책하셨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짐을 남들이 짊어지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자신들도 실천하지 않으면서 남들도 실천하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성인과 성녀들은 생각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행동으로 신앙을 드러냈습니다. 야고보 사도께서도 “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넷째, ‘전체는 부분보다 더 크다.’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질문을 하였습니다.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고 대답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통해서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 앞서야
하는 것은 멈추지 않는 사랑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하십니다.
오늘은 10월의 첫날입니다.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이웃에게 나의 삶을 나누는 것, 바로 이것이 신앙의
출발입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 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원]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선교의 수호자)
대축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오늘의 강론 묵상
2017년 가해 10월1일 주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대축일
포교 사업의 수호자
복음: 마태 18,1-5: 너희가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 이 말씀은 교회가 이 어린 성녀의
살아있는 모범으로 그 자녀들에게 제시하는 복음적인 이념이다.
프랑스의 알랑송에서 태어난 데레사는 15세에 리지외에 있는 가르멜
수녀원에 9년을 살았고, 그곳에서는 특별한 영적인 노력을 하였다.
성녀는 그의 언니 첼리나의 명을 들어 내적 체험을 썼는데 그것이
“영혼의 이야기”이며, 이것으로 성녀가 존경을 받게 되는 자서전이다.
그리고 성녀는 그의 작품 “영적인 아이의 작은 길”에서 무한한
봉헌을 하고 있다. 성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좋으신
하느님께 아무 것도 거절하지 않았다!” 이 말은 자신의 “성소”를
발견한 교회의 마음으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힘을 말하는 것이다.
성녀는 짧은 기간의 수도생활이었지만, 그리고 한번 들어가면
바깥구경을 전혀 할 수 없는 봉쇄 수도원에 살았으면서도, 그 안에서
전교지방에 있는 선교사들을 위해, 전교지방을 위해 기도하고 희생을
하였다. 자신은 한 번도 전교지방에 가서 전교를 해본 일이
없으면서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포교 사업의 수호자’로
선포되었다.
성녀는 수도원 안에서 몇 년간의 수련장으로 일했으며, 많은
사람들을 위해 영적인 삶의 스승이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성녀를
조금씩 세상의 구원을 위한 사랑에 자신을 모두 바치도록
인도하셨다. 여기서 ‘포교사업의 수호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모든 삶을 이를 위해 바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녀는 작은
일에 충실하였다. 문을 조용히 닫는다든지, 복도를 다닐 때 조용하게
하는 것 등이다. 성녀는 특별한 업적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일상으로 성녀가 되신 것이다.
또한 성녀는 성체를 통해 사도적 역할을 발견하였고, 이 성체는 오늘
우리에게 역시 성체의 “영적인 가난”을 통하여 무엇보다도
전교지역의 교회에 대한 큰 지향을 통하여 성녀를 닮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 축성된 적은 양의 빵과 포도주를 통하여
공동체의 전례 안에서 “가장 미소한 분”이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길을 가르쳐
주신다: 바로 당신의 십자가이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베드로가 주님과 함께 동전으로 성전 세를
내는 것을 보고, 그것도 동등한 세금을 지불했다는 이유로 베드로가
다른 사도들보다 더 높아졌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주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1절) 하고
물었다. 베드로가 특별대우를 받는 것 같고, 자기들은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그래서 그렇게 물은 것이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3절)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 하나를 가운데
세우셨다. 그 어린이는 성령을 지닌 어린이이다. 성령을 지닌 그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어린이는
부모를 따르고 사랑한다. 이웃에게 해를 입힐 생각도 못하고,
재산에도 관심이 없다. 교만하지도 않고 미워하지 않으며,
거짓말하지 않고, 자기가 들은 말만 믿고 진실이라고 들은 것을
지키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4절) 이 말씀은 바로 누구든지 당신을 본받고 당신처럼
자신을 낮추면, 즉 당신이 종의 모습을 취함으로써 당신을
낮추었듯이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하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는
뜻이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5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겸손과 순결을
본받으며 사는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사신다.
순결하시고 어떠한 죄도 없으신 예수께서는 우리도 거룩하게 살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어린이를 본보기로
세우셨다. 어린이와 같은 모습은 어떤 것인가? 어린이는 원한을 품을
줄도 화를 낼 줄도 모른다. 악을 악으로 갚을 줄 모르며, 지저분한
생각을 할 줄도, 간음도 방화도 살인도 모른다. 어린이는 도둑질도
말다툼도 모르며, 죄로 이끄는 그 무엇도 모르며, 남을 비방할 줄도,
하느님을 모독할 줄도, 상처를 줄줄도, 거짓말을 할 줄도 모른다.
어린 아이는 말을 들으면 믿는다. 무엇을 가르치면 따지지 않는다.
아이는 온 마음으로 부모님을 사랑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어린 아이가 타고난 순수함을 되찾아야 한다. 이렇게
죄 없는 어린이가 된 사람은 당연히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누구든지 이런 사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린이는 도움을 받고, 보호와 지도를 받아야 하는 존재이다. 이렇게
도움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어린이처럼 하느님 앞에 인간은 하느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 언제나 하느님께 달아들고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면서 자신을 낮출 수 있는 사람은 진정 하느님 앞에 어린이와
같은 사람이고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하느님의 뜻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즉시 실천하는 그래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삶이 되도록 기도하자.
- 수원교구 상하 성모세 성당 조욱현 토마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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