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9:3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개역개정판)
1983년 7월 4일 KBS 이산가족찾기 현장...
부산방송총국과 청주방송총국을 연결하는 그 자리에서
고아로 지낸 두 남매가 30여년만에 만났다.
고아원에서 학교까지 보내주고
어엿한 군인이 되었다.
나라가 약하여 비극을 맞은 자가
나라를 강하게 지키는 군인(부사관)이 되었다.
눈물의 상봉 자리에서
강원도에서 나라를 지키던 동생은
그 절규의 자리에서도
소감을 묻는 아나운서의 질문에
"오늘 저의 생일입니다. (일동 박수) 이 자리를 만들어주신 전두환 대통령 각하와 사단장님, 연대장님, 대대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시대가 그런 시대였을테고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을테지만
감사의 마음과 이성을 잃지 않았다.
세월이 원망스러웠을텐데
그 상황에서도
생각의 끈을 놓지 않은 것이다.
원망...
세상이 원망스럽고
하나님도 원망스러운 순간이 있다. (나만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다르셔서
원망하는 자에게 즉각적으로 심판을 내리시거나 노를 발하시거나 하는 적은 거의 없다.
요셉을 만난 베냐민은 긴장했을 것이다.
형들과는 달리 초행길이었고
세계 최강국 총리를 만나는데
이미 형들은 투옥경험도 있다.
곡식을 싣고 왔는데, 돈이 자루 아귀에 있는 것을 보고
기뻐하기는커녕
혼이 나서 떨며 서로 돌아보던 형들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창 42:28)
그래 이런 반응이 자연스럽지...
이런 일을 우리(형들)에게 행하신 이유와 원인은
그들 자신에게 있었다.
우리를 잡아 노예로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창 43:18)
나귀가 아까워서가 아니라
돌아갈 길이 막혔다는 것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 흉년에도 총리의 대접 잘 받고
동생 베냐민만 식사를 5배나 많이 주었는데 (비용인지, 분량인지 알 수 없으나..)
예전 같은 질투는 없었다.
그러나 일어나지 말았으면 했던 그 일...
요셉의 은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되었다.
아무의 은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어야 했는데...
어렸을 때 라반 삼촌이 자기의 드라빔 찾는다고 도망가던 아버지와 우리 일행을 뒤졌을 때
찾지 못했던 때도 있었잖는가(창 31:35)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 베냐민...
그런데 형들의 반응이 놀랍다.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창 44:16)
요셉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저 동생만 노예가 되고
나머지는 그냥 가시던 길 가시라고
고대 사회에서는 보기 힘든 젠틀함으로, 자신을 괴롭혔던 형들에게 호의를 베푼다.
유다와 형들은 원망하지 않는다.
특히 자식을 둘이나 잃었던 유다는
자신이 자원해서 베냐민을 대신하겠다고 한다.
나였다면
왜 이런 일을 주셨어요? 왜요? 왜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교회 성도들이 속한 모든 교회와 공동체에서
문제 없는 곳은 없을 것이다.
원망을 해도, 하루에도 수십번씩 할 수 있을 그런 기가 막힐 상황들이
다양한 버젼으로 존재할 것이다.
그때 원망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함부로 입을 놀리는 것은 언제나 위험하듯
내 속의 분노와 울분, 억울함을 하나님께 쏟아내더라도
원망만은 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일의 책임은 나에게 있으며
우리 공동체의 슬픔은 내가 나눠져야할 몫이기 때문이다.
내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인다면
아마도 그 사람은...
잠언 19:3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개역개정판)
주여
내 입술을 지키시고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지시는
주님의 손길을 기억하게 하셔서
미련하여 내 길을 굽게 하지 않게 하시고
마음으로 주님을 원망하지 않게 하소서.
특별히
아직도 가정과 가족의 문제로
만나고 싶으나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
벗어나고 싶으나 벗어나지 못하는 문제가 있는 사람들 기억해 주시고
노예 삼지도 않으시고, 나귀를 빼앗지도 않으시며,
마침내 가족들을 상봉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을 체험했던
그때 그 사람들처럼
저들도, 우리도
주의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