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타의로 투약땐 즉각 경찰에 신고를”
25년 마약중독 극복한 박영덕 중독재활센터장
“상담자 10~20% 강요로 첫 투약…신고 망설이다 중독의 길 들어서”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장이 7일 서울 영등포구 중독재활센터 사무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마약중독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 10명 중 한두 명은 타의로 마약을 처음 투약한 뒤 중독에 이른 사례입니다.”
7일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장(59)은 최근 발생한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과 관련해 “누군가 건넨 음료가 마약인 줄도 모르고 복용하거나, 마약인 줄 알았더라도 강요로 복용하는 등 범죄로 인한 마약 입문 사례가 늘고 있다”고 우려했다.
박 센터장이 상담을 했던 20대 여성 A 씨도 그런 사례였다. A 씨는 3년 전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한 남성을 만나 친밀감을 쌓아가던 중 그가 건넨 자양강장제를 마셨다. 그는 “자양강장제에 필로폰을 타 두었고, 그걸 마셨으니 너는 이제 마약 사범”이라며 A 씨를 협박해 A 씨의 휴대전화를 빼앗고 감금했다. 성매매까지 강요했다. A 씨는 일주일 만에 탈출해 공중전화로 중독재활센터(1899-0893)로 전화를 걸었고 센터와 경찰의 도움으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박 센터장은 “타의로 마약을 투약하게 됐다면 증거 확보를 위해 즉각 경찰에 피해 사실을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차례 마약이 몸에 투약된 경우 통상 7일이 지나면 소변 샘플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신고를 망설이다 보면 2차, 3차 투약으로 이어져 중독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마약을 투약하게 된 경우는 이를 입증하면 처벌 받지 않는다.
이러한 범행은 채팅 앱 등을 통해 익명으로 만난 사이에서 가장 자주 발생한다. 범행을 당하더라도 신분 노출을 우려해 경찰 신고를 주저하기 쉬운 성소수자나 가출 청소년이 표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박 센터장은 “본인이 마약을 하는 것을 본 사람이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도록 억지로 마약을 투약시켜 ‘공범’으로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마약 판매상이 수요 창출을 위해 마약을 권하는 경우도 흔하다. 대마 등을 구매하던 기존 구매자에게 필로폰처럼 중독성이 더 강력한 마약 1, 2회분을 무료로 제공하며 유혹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박 센터장은 “‘더 강한 것’을 해보라는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운 마약 사용자들의 심리를 교묘히 파고드는 행위”라고 말했다.
마약 판매상은 말단 유통책이 포함된 투약자 명단을 만들어 두고 본인이 검거됐을 때 경찰에 제출하는 용도로 사용하기도 한다. 박 센터장은 “‘큰손 고객’은 보호한다. 본인이 출소 후 다시 약을 팔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센터장은 10대 시절 마약을 처음 접해 25년 동안 중독 상태였던 마약 경험자이기도 하다. 2002년 마약을 끊은 후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 중독재활 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처럼 마약을 조직적인 사기 범죄에 이용한 사례는 처음 봤다”며 “유사 범죄 재발을 막기 위해 피해자들이 안심하고 신고할 수 있도록 보호 장치를 더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