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기쁨공식으로 푼, 김인강 교수!
가난과 장애, 차별과 절망,
도저히 평안할 수 없는 상황과 조건에서도
평안을 누리며 산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충청도 농사꾼의 6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난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2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으나
너무 가난하여 치료시기를 놓쳤고,
그 후유증 때문에 “앉은뱅이”로 어린 시절을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장애를 부끄러워하시며,
술을 마신 날이면, 저런 쓸모없는 놈
제발 좀 갖다버리라고 말하며 폭력을 휘둘렀고,
어머니는 눈물로 지샜습니다.
혼자 힘으로 설 수도 없었기에 기어 다녔습니다.
비료 포대 위에 엎드려 한 손으로 땅을 짚고
다른 한 손으론 포대를 잡아끌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에게 친구라고는 병아리들과 강아지,
마당에 지천으로 피어 있던 작은 꽃들이 전부였습니다.
어머니의 등에 업혀
집에서 1시간 떨어진 초등학교에 입학하고자 했으나,
학교는 '장애인이란 이유' 로
그의 등교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와 아들은 그날
교문 밖에서 한없이 울었습니다.
아들을 등에 없고 오는 길에
슬픈 마음으로 어머니는 아들의 꽁꽁 언 발을 만지며
“ 아가야 춥지? ”
라고 따뜻하게 물으셨습니다.
어머니의 그 한마디는
그에게 다른 어떤 말보다 값지고 힘이 났으며,
세상의 힘든 일들이 비수처럼 다가왔을 때
기억나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은 어둠 가운데
생명과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같았습니다.
그 날 이후 아들은 평안해졌고,
어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11세에, 집을 떠나 재활원에 들어갔고
굳은 다리를 펴서 보조기를 끼우고
목발을 짚으며 걷는 방법을 배우는데 2년이 걸렸습니다.
그런 그가 공부에서는 늘 1등을 했고
선생님의 추천 덕분에 대전 중학교에 들어갔고,
고등학교 입학 연합고사에서 만점을 받아
장학금을 받고 충남고에 배정받았습니다.
TV가 크게 틀어져 있는 방 한구석에서 밥상을 놓고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를 하여 서울대학교 수학과를 입학했고
미국 버클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카이스트와 서울대 교수를 거쳐
현재는 고등과학원 (KIAS) 교수로 재임 중입니다.
2007년엔 40세 이하의 과학자에게 주는
‘젊은 과학자 상’ 을 받았습니다.
그는 누구일까요?
장애를 딛고
세상에서 온갖 냉대와 차별 속에서도
“인생을 기쁨공식으로 풀어낸”【김인강 교수】입니다.
그는 '3차원 다양체의 위상수학' 과
'기하학 분야' 의 세계적인 수학자로 명망이 높습니다.
김인강 교수는 자전 에세이 《기쁨공식》을 펴내,
소외받는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용기" 를 주었습니다.
이 책에서 장애를 딛고
촉망받는 과학자로 성장하기까지
『지나온 삶』을 진솔하게 고백합니다.
김 교수는 남들보다 조금 느리고,
조금 불편한 삶을 살고 있지만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자부합니다.
그는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공식“ 을 들려줬습니다.
김 교수는
주위의 온갖 냉대와 차별 속에서도
장애를 이겨낼 수 있었던
"신앙의 힘" 에 대해 이야기 하고,
하나님이 그를 위해 마련해 둔 계획은
달랐다고 털어 놓았습니다.
그는 또 고통스러운 육신 안에서
수학을 전공하면서 그 곳에서 만난 하나님과
그분 안에서 발견한 “기쁨 공식” 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다음은 《기쁨 공식》책의
“불완전한 자를 쓰시는 하나님” 내용입니다.
나는 끔찍한 고문과도 같은
재활 치료 끝에 초등학교 6학년 때
보조기를 끼고 목발을 짚고 처음으로 일어설 수 있었다.
대학교 3학년 초,
목발을 짚고 무거운 가방을 맨 체 너무 많이 걷다 보니
갈비뼈와 폐가 부딪쳐 폐에 큰 구멍이 났다.
의사가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기도원 한 구석에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했다.
“ 하나님
왜 나한테만 이렇게 가혹하신가요 ?
항상 아프기만 하고..
아무 쓸모없는 나를 데려가 주세요. ”
그때 문득 등 뒤에서 찬송소리가 들려왔다.
“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 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나 받아주소서. ”
그 순간 자아가 꺾이며 회개가 터져 나왔다.
욥처럼 하나님의 모든 주권과 통치권을 인정하게 되었다.
나처럼 연약한 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내게 주신 하나님의 뜻임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육신을 의지하지 않는 법”을 내게 가르쳐주셨다.
나는 아파서, 누워있는 동안
‘기도하는 법’ 과 ‘성경 읽는 법’ 을 배웠다.
고통 하는 가운데서도 ‘찬양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육신의 나약함에 끊임없이 노출되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인해
『약한 데서 강해지는 법』 을 배우게 하셨다.
[예수님]은 나에게
‘세상의 모순과 절규’ 를 알려주었고,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는 방법’을 알게 하셨다!
세상이 나를 죄인 취급할 때 하나님은
나를 변화시키시며 주님이 하실 일을 계획하셨다.
나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질그릇이 되게 하신 것이며
나를 변화시켜
하나님의 이름과 선하심을 나타내려 하셨다.
만에 하나 쯤 생길 수 있는
"경이로운 인간승리 이야기" 입니다.
나는 《인강》이 살아온 삶의 과정을
숨죽이며 읽어 내려갔다.
“김인강” 은 말했다.
『 이웃을 돕는 다는 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자신의 인생을
진정으로 공유할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 』
이 한마디가 나를 사로잡았다.
경험에서 얻어진
생명력 있는 명구 (名句) 다.
“인강” 은 어디서나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다.
동정의 시선 , 호기심의 시선,
경멸의 시선...
그 눈초리가 무엇이었던 간에
“인강” 은 견디기 힘든 모욕감을 느꼈다.
눈총을 받아내기 위해 무감각을 연습했다.
뜨거운 물속에서 ‘이건 안 뜨겁다’ 고
주문을 외우는 것과 같았다.
정신적으로 견딘다 해도 상처가 남는다.
상처 위에 덧 입혀져
무감각해질 때까지 버티는 동안
어느덧 “인강의 마음” 은 딱딱해지고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졌다.
대학에 들어와 성경공부를 하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온갖 모욕을 당하시는 구절들을 읽었다.
마치 “인강” 자신이 당하는 것 같았다.
뺨을 때리고 침을 뱉고 희롱 당하고
업신여김을 당했던 예수님의 고난을
인간은 자신의 처지로 이입시키는 놀라운 체험을 한다.
예수님은 그렇게 모욕을 준 사람들에게
"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
이 말씀이 인 강의 가슴을 쳤다.
완전한 용서 완전한 사랑이었다.
이렇듯 하나님께 접붙여진 순간 “인강”은 아버지를
용서했다.
그를 보고 놀렸던 아이들도 용서했다.
그리고 나서야 웃음이 회복되었다.
막혔던 기쁨의 샘물이 터졌다.
김인강! 을 읽으면서
한대 얻어맞은 것처럼 현기증이 일어났다.
지지리도 가난했던 중중장애 앉은뱅이 소년이
대학교수가 된 과정을 써내려 간 그의 ‘성공담’ 이 아니다.
그가 걸어온 과정을 진솔하게,
솟아날 구멍이 없는 절망 속에서 하늘을 쳐다보며 견디어낸,
그 ‘힘의 원천’ 이 피부로 느낄 만큼
강렬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오늘도 건승하시며 좋은 일만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
출처 : 知人이 보내온 글
◆◆◆ 한국유리(株) 設立, 최태섭(崔泰涉)會長 STORY! ◆◆◆
(감동적인실화)
서울에 있는 한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작은 규모의 사업을 운영하던 그는 6•25전쟁이
일어나자, 한시바삐 피난을 떠나야 할 형편이었다.
그런데, 피난길에 오를 준비를 하던 중
그는 자신이 빌린 돈을 은행에 갚아야 할
기일이 된 것을 알고 돈을 준비해 은행에 갔다.
전쟁이 나자 사람들은 돈이 될 만한 것
이면 뭐든 챙겨서 떠나는 상황이었는데,
그는 반대로 돈을 들고 은행을 찾아간 것이다.
“여기 빌린 돈을 갚으러 왔습니다.”
남자는 돈이 든 가방을 열며 은행 직원을 불렀다.
은행 직원은 남자를 보고 매우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빌린 돈을 갚겠다고요? 전쟁 통에 융자장부가
어디 있는 지도 모릅니다.
장부의 일부는 부산으로 보냈고, 일부는
분실됐습니다. 돈을 빌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마당에..
그래도 갚으시게요?”
은행 직원의 말에 남자는 잠시 어떻게
해야 할 지 망설였다. 사실, 갚을 돈을
은행 직원에게 준다고 해서, 그 돈을 은행
직원이 자기 주머니에 넣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하지만 남자는 여러 생각 끝에 돈을 갚기로 결심하고,
은행 직원에게 영수증에 돈을 받았다는 도장을 찍어달라고 했다.
결국 은행 직원은 남자의 뜻에 따라 돈을 받고,
자신의 인감도장이 찍힌 영수증을 건네 주었다.
6•25전쟁이 끝난 후, 남자는 가족들을 데리고
제주도에서 군납 사업을 시작했다.
신선한 생선을 공급하는 일을 맡게 되어 갈수록 물량이 많아지자,
그는 원양어선을 구입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수중에 돈이나 담보물이 전혀
없어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도저히 배를 구입할 수 없었다.
남자는 사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산의 은행을 찾아가 융자를 신청했다.
그러나 은행에서는 전쟁이 막 끝난 후라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융자는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그의 요청을 거절했다.
융자 받기를 포기하고 은행 문을 나서려다가 문득 자신이
전쟁 중 피난길에 서울에서 갚은 빚이 잘 정리되었는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발길을 돌려
예전에 받은 영수증을 은행 직원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한 장의 영수증이 남자의
모든 상황을 바꿔 놓았다.
영수증을 본 은행 직원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 바로 당신이군요!
피난 중에 빚을 갚은 사람이 있다고 전해
들었을 때,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정직함은 은행가에서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답니다.”
직원은 그를 은행장의 방으로 인도했고
은행장은 “당신처럼 진실하고 정직한
사업가를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면서 필요한 금액을 흔쾌히 융자해 주었다.
남자는 융자받은 사업 자금과 은행권의
신용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사업을 펼쳐 나갔다.
정직이란 어떠한 상황에서도 생각, 말, 행동을
거짓 없이 바르게 표현하여 신뢰를 얻는 것이다.
정직의 성품으로 한국의 존경 받는 경영자가된 그가 바로
한국유리공업주식회사의 설립자인 최태섭(崔泰涉•
1910~1998)회장이다.
전쟁 중에도 정직의 성품으로 신뢰를 얻은 그는
어려운 시기에 정직의 성품을 밑천으로 사업을 번창시켜
국내 굴지의 기업을 키웠으며, 급기야 유리를 수출
하는 나라로 만들었다.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잘 사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출처 : 知人이 보내온 글
첫댓글 정직성품의 표상 최태섭 회장이십니다.
상보형 말씀같이 정직,성실,열심히 사는 사람이
잘사는 나라가 되어야 겠습니다.
오늘(6.6)은 殉國先烈과 護國英靈들의 高貴한 護國·犧牲精神을 기리는 제67회 顯忠日이며
24절기의 아흡번째인 망종(芒種→벼나 보리같이 수염이 있는 곡식의 종자를 뿌려야 할
적당한 시기라는 뜻)입니다! 여름의 熱氣가 더해가는 일기 속에 恒常 健勝하시고 幸福
하시며 殉國先烈과 護國英靈들을 追念하는 6월 護國報勳의 달! 되시기를 祈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