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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사랑(3)
▣ 아낌없이 주는 나무
옛날 한 그루 나무와 이 나무가 사랑하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매일 나무 주위에서 놀았습니다. 떨어진 나뭇잎을 주워 왕관을 만들어 숲 속의 왕자 노릇을 하기도 하고, 나뭇가지에 매달리기도 하고, 열매를 따먹기도 하면서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나 소년이 나이가 들자 나무는 혼자 있는 때가 많았습니다. 어느날 소년이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물건도 사고 신나게 놀고 싶은데 돈이 없어." 나무는 자신에게는 돈은 없고 열매를 따다가 팔아서 그 돈을 가지고 사고 싶은 것을 사라고 했습니다. 소년은 나무에 올라가 열매를 따 가지고 제 갈 길로 가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습니다. 나무는 매우 슬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청년이 되어 나타났습니다. 그 나무는 너무나 반가워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 가지에 매달려 즐겁게 놀아보렴." 그러자 소년이 말했습니다.
"나는 한가하게 놀 시간이 없어. 결혼도 하고 집도 지어야. 해."
그러자 나무가 "그러면 나뭇가지를 베어 가서 집을 지어 행복하게 살아라." 소년이 나뭇가지를 베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소년은 중년이 되어 나타나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바다 건너 먼 곳으로 갈 배가 필요해." 그러자 나무가 "내 나무 둥지를 베어다가 배를 만들어."라고 말했습니다. 소년은 톱으로 나무를 잘라서 어디론가 가져갔습니다. 중년이 된 소년의 뒷모습을 보며 나무는 흐뭇했습니다.
그 후로 오랫동안 그 소년은 나타나지 않았고, 나무는 몹시 외로웠습니다. 세월이 흘러 소년은 초라한 할아버지가 되어 나타났습니다. 나무는 매우 반가워하며 "이제는 더 줄 것이 없네. 그러나 잘려나간 나무 밑동에 앉아서 쉬어라."하였고 소년은 둥지 위에 앉아서 쉬었다고 합니다.
인간의 사랑이 받기만을 좋아하는 초라한 할아버지의 모습이라면, 예수님의 사랑은 밑동을 잘라 주기까지 한없이 사랑을 베푸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모습이 아닐까요?
배창돈
▣ 사랑은 기본에서부터
미국 16대 대통령 링컨 재임 시절, 남북전쟁 때의 이야기기입니다. 뉴욕 출신의 한 지원병이 탈영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병사 자신은 어쩔 수 없이 잠시 이탈한 것이지 결코 탈영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그는 무죄를 증명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링컨 대통령의 귀에 들어갔고 대통령은 부당한 판결이라고 확신하고 병사에게 사면령을 내렸습니다. 사면령의 내용 중에 부대가 존재하는 한 최선을 다해 맡은 임무에 충실하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병사는 자신이 소속한 부대로 돌아갔고 주어진 임무를 잘 감당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날 무렵 많은 부상병과 전사자의 시신이 후송되었습니다. 전사자의 시신 중에 그 병사의 시신도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그의 가슴에는 대통령이 친필로 보내 준 사면장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불명예로부터 구해 준 대통령을 사랑하였고, 국가를 위해 생명을 아낌없이 바침으로 링컨의 사랑에 보답하였던 것입니다.
배창돈- 전도예화 다이제스트 중-
▣ 최고의 일등상
1985년 세계 마라톤 대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많은 선수들이 결승점을 향해 달리고 있었습니다. 결승점을 코앞에 두고 일등으로 달리던 선수의 다리에 갑자기 쥐가 났습니다. 그 선수는 절뚝거리면 서도 사력을 다해 뛰었으나 이등으로 오던 선수에게 추월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등으로 달리던 선수가 일등으로 달리던 사람 곁으로 다가가 어깨동무를 하며 천천히 뛰기 시작합니다.
이등으로 달리던 이 사람은 결국 일등을 하지 못했지만 메인 스타디움을 메운 수많은 관중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비록 일등이 받는 면류관은 받지 못했지만 이 사람은 특별상을 받았습니다./ <배창돈 - 전도예화다이제스트중>
▣ 이상한 병
의학계에 마라스머스라는 이상한 병이 있다. 이 병은 주로 전쟁 고아나 고아원에서 외롭게 자라는 어린이들에게 나타난다. 증상은 신체발육이 부진하고 온몸에 힘이 빠진다. 환자는 결국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만다. 이 병은 영양부족이나 병균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 원인은 사랑의 결핍이다. 부모의 품에 안겨 재롱을 부리고 어머니의 살내음을 맡아야 할 어린이가 그것을 전혀 누리지 못할 때 이 병은 나타난다. 마음속의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거나 남들로부터 전혀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마라스머스와 유사한 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 그런데 의사들이 밝히는 이 병의 치료법은 너무나 간단하다
"매일 사랑을 고백하십시오" 이 사랑의 말 한 마디가 최상의 묘약이다
부모와 형제, 남편과 아내, 친구와 연인, 직장 동료와 이웃에게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자. 사랑은 만병을 치유한다. 진실한 사랑의 말은 가정과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다.
-국민일보에서-
▣ 사랑의 우선순위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사랑이다. 그런데 참된 사랑은 개인적으로 편향되는 것이 아니다. 수직과 수평, 내향적인 면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프랑스의 루이 9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프랑스를 사랑하며 마가렛 공주를 사랑하낟. 이 사랑의 순서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도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첫째 계명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느 ㄴ둘째 계명을 주셨다. 주님께서는 하나님 사랑이 먼저임을 소년시절에 이미 말씀하셨다. 열두 살 때에 목수 요셉에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 알지 못하셨습니까?"라고 하셨다. 또 마태복음 10장 37~38절에 기탄없이 사랑을 명령하셨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라고 하셨다.
전 김 대통령은 아들 사랑을 잘못해서 자신과 국민에게 누를 끼쳐 화제가 되었는데, 우리 모두 루이 9세처럼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며 가정을 사랑한다."라는 명제를 다시 되새겨 보아야 하겠다.
▣ 돼지를 구해준 사연
링컨 대통령은 마차를 타고 백악관으로 가다가 진흙탕 속에 빠져서 버둥거리고 있는 돼지 한 마리를 보았다. "돼지로군." 하고 링컨은 무심히 지나쳤다. 그러나 백악관에 이르자 링컨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양심의 고뇌를 이기지 못하였다.
"돼지는 하나님이 지으신 동물이다. 살려고 발버둥치는 돼지 한 마리도 구해줄 생각조차 안 하는 내가 대통령으로서 수천만 국민을 위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진 내가 어찌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으랴."
이렇게 생각한 링컨은 예복을 입은 그대로 진흙탕 속에 있는 돼지를 구하러 달려갔다. 허겁지겁 뛰어내려가 돼지를 끌어올리려 애쓰는 동안 얼굴에 흙탕물이 튀고 예복도 더럽혀졌으나 개의치 않고 간신히 돼지를 구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돼지 한 마리에 얽힌 에피소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링컨의 양심이며 진실한 기독교적 인간성인지 모른다.
그는 그 일이 있었던 날 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통회하였다.
"하나님이여, 저는 죄인입니다. 오늘 제가 돼지를 구해준 것은 생명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제 마음에서 일어나는 고통을 제하기 위하여 구해준 것이었으니 어찌 이것이 순수한 사랑의 행위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분명히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자책을 감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요 결국은 나를 위하여 행한 행동이 아니겠습니까?"
▣ 사랑의 법칙
세상 모든 일과 사물에는 어떤 법칙이 있다. 음양의 법칙, 관성의 법칙, 만유인력의 법칙 등. 어떤 시인은 사랑에도 법칙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세가지이다.
첫째, 모자이크의 법칙이다. 모자이크는 중세 비잔틴시대에 유행했던 회화예술이다. 그것은 벽이나 바닥에다 조각조각을 배열해서 어떤 현상을 연출한다. 모자이크는 약간 떨어져서 보아야 아름다운 그림을 볼 수 있으며 너무 가까이서 보면 별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사랑도 너무 가까이서 보면 흠과 티만 보여지고 깨지기 쉬운 것이다. 위대한 사랑도 사실은 사소한 조각들-관심, 책임, 존경, 이해, 용서, 격려-이 모여서 아름답게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둘째, 장미의 법칙이다. 가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미가 꽃 중의 왕인 것은 짙은 향기와 농염한 색깔 때문이다. 장미는 홑겹이 아니라 수많은 관심의 꽃잎, 이해와 용서와 격려라는 꽃잎이 겹쳐지는 세워로가 더불어 완성되는 것이다.
셋째, 태극의 법칙이다. 서양에서는 이상적 배우자를 Better half(좋은 반쪽)라고 하지만 반쪽끼리 만났으니까 쉽게 떨어진다. 그러나 동양은 음양의 법칙으로 만난다. 음양은 서로가 부족한 점을 보완하면서 기어처럼 맞물려서 원을 이룬다. 남편이 양이라면 아내는 음이다. 그래서 성경은 "둘이 합하여 한 몸이 될지라."고 했고,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고 하였다.
▣ 오직 죽음으로써만
폴란드의 귀족 출신인 캐서린은 스웨덴의 왕자 존과 결혼했다 그런데 권력다툼에 휘말려 그의 남편 존은 형 에릭에 의해 평생 동안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에릭이 국왕으로 있는 동안은, 적어도 그때까지는 감옥에서 지내야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캐서린은 급히 스톡홀롬으로 달려갔다. 캐서린은 에릭 왕에게 나아가 간청했다.
"폐하, 저를 제 남편과 함께 감옥으로 보내 주십시오."
"캐서린, 그대의 남편은 평생 동안 다시는 햇빛을 못 보게 될 것인데 그대는 그것을 알고
그런 간청을 하는 것인가?"
"폐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가 무죄이건 유죄이건 간에 존 왕자는 저의 변함없는 남편입니다."
왕은 측은하다는 눈빛으로 캐서린에게 말했다.
"짐의 생각으로는 그대의 남편이 감옥에 보내진 순간부터 그대는 그와의 서약에서 풀려 자유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러자 캐서린은 자기가 끼고 있던 결혼반지를 빼들고서 이렇게 말했다.
"폐하, 부디 이 반지에 새겨진 문구를 읽어 봐 주십시오."
반지를 받아든 왕은 "오직 죽음으로써만"이라는 문구를 읽은 후 캐서린을 단념시킬 수 없으리라는 것을 직감해싿. 캐서린은 감옥으로 갔다. 그로부터 17년 동안을 남편과 함께 감옥에서 보냈다. 그러다가 국왕 에릭이 사망하자 두 사람의 불멸의 사랑은 햇빛을 더 받게 되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고 참다운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며 유정한 것이다.
▣ 교회학교 교사의 그림자
랄프 M.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하옵 살 때에 나는 핫스프링 제2침례교회 주일학교에 다녔다. 주일학교 교장 선생님은 우리 반 교사를 구하는 데 무척이나 애를 먹었다. 왜냐하면 우리 반 친구들은 모두 장난꾸러기들이었고 다루기가 힘들어서 교사가 임명되었다가도 우리들에게 질려 곧 그만두고마는 것이었다. 어느 날 목사님이 우리 반을 맡으실 선생님 한 분을 소개했다. 그분은 별로 교육을 받지도 못하였고 글도 간신히 읽는 정도였다. 공과공부를 지도할 때면 학생들을 한 사람씩 호명하여 성경구절을 읽게 하고는 그 본문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그렇지만 그 선생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 있어 꼭 필요한 조건을 갖추고 계셨다. 바로 사랑이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했고 우리도 또한 선생님을 사랑했다. 언제나 선생님은 우리를 위해 건전한 활동이나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순서를 준비해 오셨다. 그분은 우리들의 거친 행동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훌륭한 봉사자로 변화할 수 있는 감추어진 자질을 보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3년간이나 그 선생님께 배웠다. 우리와 우리반을 향한 그분의 믿음과 성실성은 실로 놀라운 복으로 보답되었다. 그 반 학생들 가운데서 변호사와 판사가 각각 한명씩 나왔고, 목사님이 세명이나 배출되었던 것이다."
▣ 넉넉한 사랑
10세 소녀로 고아가 되고 한 끼의 식사를 위해 혹독한 노동을 해야 했던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돈을 <땀과 눈물의 종이 조각> 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가난이 강요하는 시련을 견뎌야 했다. 그런 그녀였지만 그녀는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자산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것은 낙관적인 인생관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엘리너 루스벨트. 다름아닌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이었다. 루스벨트 여사는 어떤 절망적 상황에서도 결코 비관적 언어를 사용하지 아니하였다 심지어 여섯 자녀 중에서 하나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아직도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자녀가 다섯이나 있는 걸."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인생 말년에 남편 루스벨트가 관절염으로 휠체어 인생이 되었다. 어느 날 남편의 휠체어를 밀어주고 있을 때 루스벨트가 그녀를 불러 그윽히 응시하면서 "아직도 나를 사랑하오?"라고 물었다. 엘리너는 지극히 따뜻하고 확신에 찬 음성으로 "그럼 내가 사랑한 것이 당신의 다리뿐이었는 줄 아셨습니까? 당신 전체를 사랑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낙관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시험이 시험으로 다가올 수 없다. 우리들의 주변 상황이 아무리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사랑하는 마음과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살면 밝고 아름다운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아버지 사랑
1880년대 일본에 현상금까지 걸린 유명한 강도가 있었는데 그는 일곱 살 난 아들과 함께 호화로운 주택에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이 살인강도가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어떻게 죽일까 의논하다가 악한 자의 씨마저 없애야 한다고 하면서 아들과 함께 죽이기로 결정했다. 가마솥에 기름을 붓고 강도와 아들을 그 안에 앉혀 놓고 밑에서 불을 피워 끓는 기름에 죽게 하는 것이다.
사형 집행 날짜가 되어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가마솥 안에 들어가 앉았다. 밑에서는 불을 피웠다. 차츰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아들이 아버지를 향해 "아버지 뜨거워!"하며 소리질렀다. 아버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조금만 참아라." 하면서 품에 꼭 껴안았다. "아버지, 뜨거워서 더 견딜 수 없어!"하고 계속 소리치며 몸부림치자 가슴이 찢어지는 아버지는 무엇인가 굳게 결심하더니 일곱 살 난 아들을 번쩍 들어 치켜 올렸다. 그리고 살인범은 기름에 데어 죽기까지 아들을 내려놓지 않고 치켜들고 있었다. 이 감격스러운 광경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그 어린 아들은 살려주어라." 하고 외치기 시작했다. 자신은 죽으면서도 어린 아들을 살리려는 아버지의 사랑에 감동을 받아 아이를 살려주었다고 한다.
주님께서는 "악한 자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밤낮 부르짖는 자의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겠느냐?"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확신하셨다. 그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자신을 버리면서 우리를 살리려 한 주님의 희생을 보시고 죄인된 우리를 살려주셨다.
▣ 순교자의 심장 박동
스위스의 한 순교자가 장작더미 위에 맨발로 올라섰다. 이제 막 불을 질러 화형을 집행하려는 순간, 그는 자기의 화형 집행 형리를 감독하던 치안 판사에게 가까이 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죄송하오나 판사님의 손을 제 가슴에 얹어 보십시오. 저는 이제 곧 화형을 당하는 몸이옵니다. 만약 저의 심장이 평상시보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뛴다면 저의 종교를 믿지 마시고, 저의 하나님을 부인하셔도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순교자의 표정이 너무 담담해서 의아하게 여겼던 그는 떨리는 손으로 순교자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의 가슴은 화형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침대에 잠자러 가는 사람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치안판사는 너무나 놀랐다. 과연 이 비범한 힘이 어디서 왔단 말인가? 죽음이 불신자들에게는 불안한 것이요 두려운 것이며, 고통스러운 것이 될 수 밖에 없으나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주님을 만나는 순간이요, 주님의 예비하신 아름다운 영원한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다. 그러니 순교의 순간이라하여 어찌 불안하며 두려우랴.
그렇다. <믿음>이라는 성령의 은사를 받은 이들에게는 진정 불가능이라는 단어가 없을 뿐 아니라, 그 어떤 환난이나 고통, 나아가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능력이 주어지는 것이다.
▣ 심장을 주십시오
파루아의 성 안토니오는 어린아이였을 때 예수님을 만난 체험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안토니오는 자기 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누가 왔나 보려고 달려갔다. 문을 열자 누더기를 걸친 거지가 매서운 추위에 덜덜 떨며 서 있었다. 그는 거지를 불쌍하게 여겨 이렇게 말했다. "제가 아버지께 가서 당신에게 따뜻한 옷을 드리라고 부탁해 볼게요."
거지가 대답했다. "당신네들이 사는 세상은 참 춥군요. 그러나 나는 옷을 구걸하러 오진 않았습니다."
안토니오가 다시 말했다. "굉장히 배가 고프신 모양이군요. 들어오세요. 우리 어머니께서 당신에게 따뜻한 음식을 대접할 것입니다."
거지가 대답했다. "배가 고프긴 하지만 음식을 구걸하는게 아닙니다."
안토니오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그러면 당신은 왜 우리 집 문을 두드리셨어요?"
거지가 말했다. "나는 당신의 심장을 나에게 달라고 부탁하러 왔습니다."
안토니오는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제 심장을 당신에게 드리면 저는 죽을 거예요."
그러자 거지는 어깨에 메고 있는 자루를 내려서 거기에서 몇 개의 심장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심장이고, 이것은 막달라 마리아의 것입니다. 나에게 심장을 준 모드 사람들은 죽지 않고 오히려 영원히 살고 있습니다.
▣ 도끼도 사랑하는 향나무
유명한 미술가 루오의 작품 중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날에도 향을 묻힌다"는 제목의 판화가 있다.자신을 괴롭히고 아픔을 주는 도끼날에 독을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향을 묻혀준다는 것이다.
해마다 이맘 때면 "사랑의 원자탄"의 손양원 목사가 생각난다.자기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죽인 인민군을 양자로 삼아 감동을 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원수를 사랑함으로 그는 스스로 사랑의 원자탄이 된 것이다.사랑만 있으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사랑은 미움도 용서와 관용으로 변화시킨다.
사람에게는 본능적으로 여섯 가지의 욕구가 있다고 한다.첫째는 안정의 욕구,둘째는 소속의 욕구,셋째는 인정의 욕구,넷째는 경험의 욕구,다섯째는 자아실현의 욕구,여섯째는 사랑의 욕구이다.앞의 다섯개가 생물적인 욕구라면 맨뒤의 사랑의 욕구는 문화적 욕구라고 할 수 있다.다른 모든 욕구가 충족된다 해도 사랑의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그 누구나 삶의 보람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기독인이라면 향나무의 향처럼 어떤 경우에도 사랑을 풍겨주는 사람이 돼야 한다.
▣ 사랑과 기도의 기적
지금부터 30 여 년 전 미국 어느 도시 시립병원 정문 앞에 생후 6개월 된 아기가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날 때부터 시각장애와 뇌성마비에 걸린 정신지체아였습니다. 병원 당국은 당황해 마침 은퇴한 간호사 메이 렘케에게 이 사연을 말했습니다. 당시 52세로 신앙이 깊었던 그녀는 "내가 죽는 날까지 그 아이를 돌보아 주겟습니다." 하면서 버려진 아이를 데려왔습니다.
그러나 메이는 아기를 보는 순간 너무도 비참한 인간 생명의 무기력함에 울어야 했습니다. 우유를 대주어도 빨아먹을 수 있는 본능마저 없는 이 생명, 메이는 그때부터 아이의 뺨에 얼굴을 비비대며 팔과 다리, 손가락을 정성스럽게 안마해 주었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이야기와 자장가를 들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몇 년이 흘러도 이 식물인간 레슬리는 단 한번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고 말한마디는 물론 웃음이나 눈물도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메이는 이때부터 눈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제가 스스로 레슬리를 찾아나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이 아이를 키우도록 선택된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엔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닙니까. 주여, 그 이유를 언제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기도라기보다는 항변에 가까운 호소를 하면서 걸음마를 시켜보고 특수요법으로 치료를 계속했으나 레슬리는 그 어떤 변화도, 살아 있다는 신호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성경의 기적을 믿습니다. 이 아이에게도 기적을 허락하소서. 정신적 감옥을 깨뜨리시고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기적을 주시옵소서."
이것은 메이에게는 마지막 호소이자 기도였습니다.
그런던 어느 날 메이는 레슬리가 엄지손가락으로 기타를 튕기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실로 18년 만에 처음으로 보여 준 이 기적 앞에서 순간 메이는 "음악이다 음악이야." 하고 외쳤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메이는 남편과 함께 레슬리의 방에 피아노, 오디오, 라디오 텔레비전을 틀어놓아 온통 음악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레슬리의 손가락을 잡고 피아노 건반을 눌러주며 연습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레슬리는 한번의 기적으로 만족하라는 듯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1971년 겨울 새벽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곤한 잠에 빠진 가족들은 누군가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치는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순간 메이는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레슬리의 방으로 달려갔습니다. 거기에서 레슬리는 미소를 머금은 채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레슬리를 잊지 않으셨군요."
순간 레슬리의 눈에도 실로 21년만에 진주같은 이슬이 맺혔습니다. 레슬리는 노래까지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너무 성량이 풍부했습니다.
그녀는 후에 뉴욕 넬레비전에 출연하여 피아노를 연주해쓴데 더듬대며 "음악은 사랑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매스컴은 이 실화를 "메이 부인의 사랑과 기도의 기적"이라고 보도해했습니다.
▣ 사랑의 미소
하늘나라에 미하엘이란 천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어떤 여인의 영혼을 데려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땅에 내려온 천사는 그 여인의 집에 가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여인은 하루 전에 쌍둥이 딸을 낳았는데 너무 탈진한 상태여서 어린것들에게 젖도 먹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자기 영혼을 데려가려고 온 천사를 본 여인은 애원합니다.
"천사님, 제 남편은 며칠 전 산에서 나무하다가 사고로 죽고 우리에게는 일가 친척이 한 사람도 없는데 제가 죽으면 이 핏덩이를 키워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천사는 그만 빈손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말하기를 "저는 그 딱한 어머니의 영혼을 불러올 수 없었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라, 가서 그 어머니의 영혼을 불러 오라." 하고 엄히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천사는 다시 내려와 그 여인의 영혼을 데리고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해서 미하엘은 금빛 두 날개를 잃고 지상으로 추방당하게 됩니다. 그는 세 가지 과제를 풀어야 다시 하늘로 올라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첫째는 인간의 가슴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었고, 둘째는 인간에게 베풀어져 있지 않은 것이 무엇이냐, 그리고 셋째는 인간은 무엇으로 사느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밤, 지상으로 추방된 미하엘은 추위와 굶주림으로 얼어 죽을 지경에 이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판단으로도 도저히 남을 도울 처지가 못 된다고 생각되는 가난한 구둣방 주인 내외의 뜨거운 사랑을 받게 됩니다. 투박한 식탁에서 따뜻한 식사를 대접 받으면서 미하엘은 행ㄹ복한 듯이 싱긋이 웃습니다. 그는 세무이라는 가난한 내외의 가슴 속에 깃들인 사랑의 실체를 보고 제1의 과제를 풀면서 미소를 지었던 것입니다.
미하엘이 그 구둣방에 온 지 1년이 되던 날, 그는 큰 사나이의 신발을 주문받게 됩니다. 사나이는 황금마차를 타고 왔습니다. "1년을 신어도 탈이 없도록 튼튼하게 만들란 말이야." 하면서 거만을 떠는데, 미하엘은 그 사나이의 등뒤에 서 있는 죽음의 사자를 보고 다시 한번 싱긋이 미소를 짓습니다.
"죽음이 등 뒤에 찾아왔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1년 동안 신을 신발을 만들라니. 인간에겐 자기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가 없구나"
1년만에 제2의 과제를 풀고 그는 다시 웃었습니다.
어언 6년이란 세월이 흘러간 어느 날, 중년부인이 귀엽게 생긴 쌍둥이 소녀를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무척 행복해 보였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예쁜 구두를 맞춰 주세요."
미하엘은 소녀들을 보는 순간 적이 놀라며 중년부인에게서 자초지종을 듣고는 실로 5년만에 하늘을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습니다.
어머니를 잃었으니 애처롭게 죽어갔거나, 아니면 어떤 불행한 가시밭길을 피 흘리며 걷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던 두 소녀가 이웃 아주머니의 사랑을 먹으면서 해맑게 자랐으니 그는 자신의 염려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깨달았습니다. 인간은 자기 길을 염려함으로나 계획함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있기에 사랑으로 보람있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마지막 문제의해답을 깨닫는 순간 그의 등뒤에 후광이 서리고 황금빛 날개가 다시 돋더니 홀연히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이것은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단편의 내용입니다.
▣ 사랑표현
서로 좋아하는 청춘 남녀가 있었습니다. 좋아한다기보다 실상은 사랑하는 사이였습니다. 그들은 만나면 서로의 연정을 이상화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고상한 사랑의 밀어를 나누었습니다.
"사랑이란 말을 어떻게 새롭게 표현할까?"
이것은 그들이 줄곧 나누어 온 진지하면서도 열띤 주제였습니다.
여름 밤은 한창 익어가는데 그저 둘이는 사랑이란 말의 또 다른 정의를 찾기에 겨를이 없었습니다 쌓고 허물고 또 쌓아 올리고 또 허무는 모랫벌의 아이들처럼 그렇게 둘이는 사랑이란 말의 의미를 추구하면서 새로운 언어라는 벽돌로 사랑탑 쌓기에 긴 밤을 밝혔습니다.
"사랑은 <공유>라고 풀어보자. 사랑은 서로를 소유하는 것이니까" "아니 <불꽃> 이라 풀어보자. 사랑은 보바리 부인처럼 활활 타 오르다가 한 줌의 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니까" "사랑은<성체>라고 풀어보자. 서로 경건하게 나누는 성만찬과 같은 것이니까"
그해 가을이 깊어가는 어느 날 저녁 둘이는 아늑한 다방에 앉았습니다. The falling leaves를 콧노래로 흥얼거리던 청년은 무료한 듯 성냥개비를 뚝 꺽더니 약간은 장난끼 어린 표정으로 "사랑은 이쑤시개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그의 애인은 자리를 툭차며 일어서더니 뒤돌아보지 않고 밖을 향해 뛰쳐나갔습니다
그후 청년은 애인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왜 그토록 좋아했는데 멀어져 갔을까, 그날 밤 왜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을까, 왜 소식도 없고, 또 이렇게 헤어질 이유가 무엇인가, 이런 의문과 함께 비로소 청년은 그녀를 잊을 수 없게 돈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사랑의 상처를 안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후 그가 그녀에 대해서 들은 것은 결혼해서 미국으로 이민갔다는 소문뿐이었습니다. 그는 40세가 넘어서야 결혼했지만 아직도 그녀가 자기 곁을 훌쩍 그리고 영원히 떠난 이유를 속시원히 캐지를 못했습니다.
귓가에 흰머리가 비치기 시작하던 중년의 사나이는 어느날 어떤 회합에서 꿈에도 잊지 못했던 옛 애인을 극적으로 만났습니다. 그렇게도 못 잊었던 애인이었지만 이제는 설레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긴 헤어짐 끝에서도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들처럼 담담하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상기된 얼굴로 "그날 밤 왜 뛰쳐나갔습니까?" 라고 묻는 사나이를 향해 옛 애인은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때 당신께서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은 끝내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신 곁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나이는 탄성에 가까운 괴로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당신을 내가 사랑하지 않았다니! 아, 그렇게 우리는 서로가 어리석었을까!"
사실 사나이는 애인을 너무너무 사랑했기에 그 흔한 말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지 않았을 뿐이었습니다. 비록 유치할지라도 고백하지 않는 사랑, 그것이 사랑의 허상이란 것을 사나이는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사랑은 언어의 유희가 아닙니다. "사랑합니다"라는 이 말은 너무 흔하고 유치한 말이 된 것 같습니다. 이 말의 순수성이 너무 오염되고 그 값이 휴지조각처럼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사랑한다"는 고백을 듣기를 갈망하고 또 들어야 안정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고백도 마찬가지입니다. 결정적이 고백 없이 신앙을 무엇이라 정의하는 것, 주의 사랑을 최상으로 미화시키는 것, 격식 있는 예배를 드리는 것, 아름다운 음율로 찬양하는 것-이것은 하나의 신앙적 유희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서 고백을 들으시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줄 당신이 아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바울도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라고 담대히 선언했습니다. 가장 절실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주님을 향해 "주여, 내가 당신을 사랑하나이다"라고 하는 이 사랑의 말입니다.
▣ 진정한 형제애
어느날 스펄전목사가 길을 가다가 굶주리고 누더기를 걸친 집없는 소년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소년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와서는 새 옷과 음식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끏고 소년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기도 중에 몇 번인가 하나님을 가리켜 "우리 아버지"라고 말했습니다. 기도가 끝나자 소년이 물었습니다. "목사님 기도하실 때 '우리 아버지'라고 말씀하셨나요?" :
그래 맞다 하나님은 너와 나의 아버지가 되신단다." "그래요? 그렇다면 우리는 형제가 되겠네요 ?" "당연히 그렇게 되지" 그는 이어서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소년에게 신발가게 주인 앞으로 보내는 편지 한 통을 써서 돌려 보냈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이 소년에게 신발 한 켤레를 내어 주라는 것과 신발값은 나중에 지불하겠다는 것입니다. 며칠 후 스펠전 목사가 신발가게를 지나가는데 그를 본 주인이 달려오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며칠 전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아이가 저희 가게로 오더니 자기형이 보냈다고 하면서 신발 한 켤레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너의 형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글쎄 목사님이라고 하질 않겠어요? " 그 애 말이 맞습니다. 나의 형제이고 또 당신의 형제이기도 하지요"
▣ 선으로 악을
미국의 수도가 워싱턴으로 결정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당시 워싱턴은 도로포장이 되지 않아 비가 오면 도시가 온통 진흙탕으로 변했다. 도로는 널빤지를 깔아놓아 겨우 한 사람이 지나다닐 정도였다. 어느 날 평소 라이벌 의식이 강했던 두 하원의원이 좁은 길에서 마주쳤다. 성격이 급하고 직설적인 란돌프 의원은 팔짱을 낀 채 버티고 서서 그레이의원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
"나는 악당이나 위선자에게는 길을 비켜주지 않는답니다."
그러자 예의바른 그레이의원이 정중하게 인사한 후 말했다.
"나는 악당에게는 언제나 길을 비켜 준답니다."
그는 구두를 벗고 흙탕물로 내려서서 란돌프가 지나가도록 배려했다. 그 순간 란돌프의 얼굴이 상기되고 말았다.
악으로 악을 이기면 승자와 패자로 나뉜다. 그러나 선으로 악을 이기면 모두 승자가 된다. 예수님이 인류에게 가르쳐주신 승리의 열쇠는 사랑이다.
▣ 사랑의 절정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부인이 다섯 살과 세 살된 아들을 키우기 위해 철길 가에 있는 신발공장에 취직을 했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 두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기 때문에 안고, 업고, 공장으로 출근하여 공장 안에 조그만 방에서 놀게 하고 부인은 일을 했습니다.
따뜻한 어느 봄날, 방안이 답답하다고 두 아이들이 엄마 몰래 철길로 나갔습니다. 철길에서 조약돌 치기도 하고 가위, 바위, 보 놀이도 하면서 놀고 있을 때 기차가 달려들었습니다.
누군가가 애들이 없다는 소리에 엄마가 뛰어나가 보니 철길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쏜살같이 달려가 두 아들을 철길 밖으로 던져 낸 순간 기차가 뛰어들어 엄마를 치고 지나갔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그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 두 형제는 고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자라서 어른이 된 후 어머니의 무덤에 조그마한 묘비를 세우고 다음과 같이 새겨 놓았습니다. "어머니, 우리 어머니,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라고. 그 어머니의 사랑의 절정은 두 아들을 기르기 위해 일당 몇 백원을 받으며 일했던 그것이 아닙니다.
두 아들을 기르기 위해 자신이 굶고 아이들 입에 먹을 것을 넣어 주었던 그것이 아닙니다. 그 기찻길에서 놀고 있던 두 아이의 생명을 건져내고 자신의 목숨을 버렸던 그 사건에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절정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찬송 작사자 하버겔은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위해 무엇 주느냐"라고 읊었습니다.
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해야 합니까? 그것은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셨고 지금도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 귀염 받고 자란 아이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어거스터스"라고 하는 작품 속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내외분이 오랫동안 애가 없어서 몹시도 초조하게 기다렸는데 마침내 기다리던 아들을 낳았습니다. 온 집안이 기뻐합니다. 그 어머니의 기쁨은 더더욱 말할 것 없었습니다.
그러한 때에 그날 밤에 신비한 노인이 이 산모에게 나타나서 "이 아이를 위해서 한가지 소원을 말하라, 그 한가지 소원은 내가 꼭 들어주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생각했습니다. 딱 한가지거든요. 무슨 말을 할까 많이 생각하다가 소원 한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낳은 이 아들은 앞으로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라고 소원했습니다. 그 노인은 말하기를 "그래, 네 소원을 들어주마" 했습니다. 이 아이는 자라면서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형제의 사랑을 받고 선생님의 사랑을 받고 이웃의 사랑을 받고 온통 사랑을 독차지하며 많은 칭찬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어느 날 그 노인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래 만족하냐?" 하고 물었습니다. 이때에 여인은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가 자라면서 사랑만 받으니까 자기는 당연히 사랑 받아야될 자인 줄 알고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고 교만하고 걷잡을 수 없는 아주 극단적인 정신적 미숙아로 자라게 되더란 얘기지요. 그래서 어머니는 소원을 바꾸어서 하는 말이 "이제는 사랑 받기 보다 사랑할 줄 아는 사람,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하게 요청했다고 합니다.
▣ 높고 깊고 넓은 사랑
한 영국인이 요크셔 해안에 아름다운 별장을 소유하고 있었다.
해안 한쪽에는 커다란 바위가 바다를 향해 불쑥 나와 있었다.
어느 날 이 영국인은 딸을 데리고 바위 꼭대기에 올라갔다.
그들이 꼭대기에 이르렀을 때 아버지는 딸에게 평생 잊지 못할 교훈을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애야, 위를 올려다 보아라."
딸은 아버지의 말대로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이번에는 아래를 내려다 보아라."
아버지의 말대로 딸은 하늘이 비춰지는 바다를 내려다 보았다.
"이번엔 저 앞을 내다보아라."
딸은 아버지의 말대로 했다.
"내 딸 도로시야, 이처럼 높고 한없이 깊고 끝없이 넓고 아름다운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말을 들은 딸은 아버지를 향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이처럼 높고 깊고 끝없이 광활하다면 우리는 그 한가운데서 살고있군요."
하고 똑똑히 말했다.
아버지는 딸의 이 말을 평생 잊지 못했다고 한다.
▣ 200개의 가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였던 이태영 여사는 이화여전을 졸업하고 평양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때 평생의 반려인 정일형 박사를 만나 결혼했지만 그녀는 오랜 시간 남편의 옥바라지를 해야 했다. 미국 유학까지 하고 온 남편은 항일운동을 한다는 명목으로 항상 일본 경찰의 감시 대상이었던 것이다.
결국 이태영 여사는 남편의 옥바라지와 식구들의 생계를 위해 교사일을 그만두고 누비이불 장사를 시작했다. 이불보를 만드느라 밤새 가위질을 하고 낮에는 이불을 이고 집집마다 다니며 팔았다. 전차삯을 아끼려고 이불 보따리를 이고 수십 리를 걷는 날이 허다했다.
남편의 옥살이는 광복이 될 즈음에야 끝났다. 그런데 감옥에서 나와 아내의 손을 잡은 남편은 눈물을 왈칵 쏟을 뻔했다. 아내의 오른손 엄지가 90도 넘게 뒤로 제껴지고 검지와 중지도 크게 휘어져 있었던 것이다. 일제시대 말기 전쟁 무기를 만들기 위해 쇠붙이를 죄다 쓸어가 이불보를 자를 제대로 된 가위가 없었다. 그렇게 날이 무디기만 한 가위질을 어찌나 많이 했던지 손가락이 휘어 기형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동안 아내의 고생이 어떠했는지 그 휘어진 손가락으로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런 아내를 위해 이제 자신이 무거운 보따리를 바꿔 질 때였다. 그렇게 남편의 격려로 이태영 여사는 1946년 서른셋의 나이로 법학 공부를 시작했다.
훗날 남편 정일형 박사는 외국을 나가거나 멀리 여행을 다녀올 때면 아내를 위한 선물을 꼭 하나 사 왔는데, 그것은 바로 가위였다. 잘 드는 가위 하나 가져 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아내의 옛 소망을 그렇게나마 풀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사 모은 가위가 200개가 넘었다.
▣ 사랑의 희생
13세기 스페인의 귀족이며 명문 대학의 교수였던 라몬 럴은 자신의 유망한 장래를 포기하고 모슬렘교도들을 복음화하기 위해 갔었다. 그는 두 번이나 그 나라에서 추방을 당하였다. 1년 반을 감옥에 감금당했다. 노인이 되어 성벽으로 끌려가 돌에 맞아 죽어 갈때에 그의 마지막 말은, "오직 예수"였다. 죽기 직전에 그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살아 있지 않은 것이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는 사람은 결코 죽지 않는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그의 목사 안수식 때에 "오, 주 하나님 당신께 나 자신, 나의 아내, 나의 자녀, 그리고 나의 모든 소유를 드립니다"라고 말했으며 죽는 날까지 그리스도만을 향한 독점적인 사랑을 취소하지 않았다. 네덜란드에서 핍박이 심해질 때에, 겔린드 물러는 믿음을 버리고 성경 읽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화형당하게 된다는 경고를 받았다. 그에게는 아내와 네 자녀가 있었다. "당신의 아내와 자녀를 사랑하는가?"라고 재판관이 물었다. "만일 하늘이 진주이고 땅이 금덩어리이고, 내가 그 모든 것의 소유자라면, 우리가 겨우 빵과 물만 먹고 살게 될지라도 내 가족을 위해 그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아신다. 그러나 결단코 그리스도만은 포기할 수 없다." 그는 교살되어 화장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사랑의 희생을 잊지 않으셨다.
외로울 때 당신 곁을 보라
외로울 때 당신 곁을 보라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아프리카 선교사였던 데이빗 리빙스턴은 글라스고우 대학교에 연사로 초청되어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이국 땅에서 저에게 적개심을 품는 종족들과 생활을 할 때 무엇이 저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되었는지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 그것은 바로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전적으로 의지했고, 이 말씀은 저를 꼭 지켜 주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면서도 때로는 외로움을 느낍니다. 또한 자신의 십자가가 그
누구의 십자가보다도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리빙스턴이 위로를 받았던 마태복음 28장 20절 말씀으로 당신도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주님의 약속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과 동행할 때 당신은 결코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 저희가 외로움에 지칠 때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주님의 말씀으로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외로울 때 당신은 무엇으로 그 외로움을 달래려 하십니까 ?
외로움에 대한 가장 확실한 치료법은 하나님께서 슬프고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오셔서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함께 계셔 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 우리 역시 마찬가지
인간들의 사랑 속에는 언제나 사심이 있습니다. 인간들의 마음속에는 순수한 하얀 것,
순수한 까만 것, 순수 악과 순수 선이 사실 거의 없다시피 한 것입니다. 남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나의 행복을 구한다 든지, 그 사람에게서 존경과 사랑을 구합니다. 사랑을
주고받음에 있어서 우리는 무서운 착취를 하게 됩니다. 사랑과 애정과 인기와 존경을
수입하고 그 사람과 상하 관계를 만들어 버리거나 주종 관계를 만듭니다. 예를 들면 백원의
사랑을 주고는 자기 장부에는 받을 것을 천원이라 적어 놓습니다. 무의식중에 그렇게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조그만 사랑을 베푼 후에는 그 사람을 자기의 정신적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에게 짐지우고 또 그것이 세상에
선전되기를 바라며 그 보답이 어디선가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계산을 하고 타산을
합니다. 순수하고 사심 없이 사랑하기란 인간으로서는 참으로 힘든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마도 하나님께 무슨 척도가 있어서 인간의 사랑을 시금석으로 분석해 보면 역사에 알려진
위대한 영웅적인 사랑의 행동에도 불순한 것이 30퍼센트, 어떤 것은 40퍼센트,어떤 것은
90퍼센트, 혹 어떤 것은 세상의 선전 효과를 노린 것도 있을 것입니다. 이기심이 사라지고
있었던 것 외에도 여러 가지 것이 있을 줄로 생각됩니다. 위선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불완전하지만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심 없이 사랑했습니다.
순수했습니다. 제자들에게 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한 사랑의
부채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 포기하지 않는 사랑
수년 전 한 아가씨가 스코틀랜드 주일학교에서 장난꾸러기 소년만 모인 반의 담임을
자청하고 나섰다. 그중에서도 보비라는 소년은 다룰 수 없는 골칫거리 아이였다.
주일학교에서는 이 여선생님에게 새 옷 한 벌을 가지고 보비의 집을 방문하여 계속 출석을
잘하도록 했다. 여선생님이 보비의 집을 방문했을 때 보비는 씻지 않아 땟물이 흐르는
얼굴에 머리는 빗질을 하지 않아 헝클어져 있었고, 그가 입고 있는 옷은 진흙에 뒹굴어
거의 걸레가 되어 있었다. 여선생님은 보비에게 새 옷을 갈아 입히고 교회에 잘 나오도록
부드럽게 얘기했다. 그러나 보비는 또 더러워졌고 교회도 나오지 않았다. 여선생님은 다시
보비를 방문했다. 이미 새 옷은 다 망쳐지고 걸레가 되어 있었다. 또 한 벌의 새 옷을
선물하고 잘 타일렀다. 그러난 여전히 보비는 달라지지 않았다. 여선생님은 힘이 빠지고
말았다. 주일학교 부장을 찾아가 이제 더이상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주일학교
부장은 "용기를 잃지 말고 계속해 보십시오"하고 격려했다. 그 여선생님의 계속적인
노력으로 고삐 풀어진 망아지 같은 이 소년은 나중에 훌륭하게 성장하여 중국에 선교사로
갔다. 그가 바로 로버트 스미슨 목사이다. 그는 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수백만의 영혼을
주께로 나오게 했다.
G.D. 제임스
▣ 사랑은 사랑을 낳고
오래 전에 이름을 밝히지 않은 사람이 고아원에 찾아와 이렇게 물었다.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을 아이가 있습니까?" 그 물음에 원장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네, 있어요. 열
살짜리 여자아이인데 매우 흉한 꼽추예요. 단지 이름만은 좋아서 머시 굿페이스(Merch
Goodfaith: 훌륭한 믿음의 은혜라는 뜻)이지요." "바로 그런 아이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하고서 그 아이와 함께 떠났다. 35년이 지난 후, 아이오와 주 고아원
감사실의 실장은 한 고아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가정은 매우
특별한 곳인데 깨끗하고, 음식도 훌륭하며 특히 그곳 원장은 사랑이 넘쳐 흐르는 영혼을
가진 사람이다. 이곳에 수용된 어린이는 모두 잘 보살펴지고 있으며, 원장은 풍부한 사랑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저녁식사 후에 피아노 앞에 모여 섰을 때 나는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분위기를 느꼈다. 나는 결코 그 원장의 눈과 같은 아름다운 눈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내가 그 원장의 얼굴이 보기 흉하고 꼽추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데
놀라워했다. 그 원장의 이름은 머시 굿페이스이다." 어떤, 이름도 알 수 없는 사람이 추하고
보기 흉한 고아를 보살펴 줄 용기를 가지고 있었기에 머시 굿페이스는 사랑의 방법을
배우고 또 그 사랑을 백 배로 증식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오늘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돌볼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기를 기도한다.
인생 최대의 갈망, 로버트 슐러
▣ 사랑의 의미
6.25 직후 나병 환자 수용소에 미국 로터리 클럽에서 회원들이 방문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미국에서 파견나온 간호사 선교사 한 사람이 나병 환자의 고름이 흐르고 있는
상처를 간호하고 있는 뜨거운 인간애의 장면을 포착하였습니다. 한 사업가가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사진을 찍으면서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백만불짜리 가치가
있는 사진이다. 그러나 나는 누가 나에게 백만불을 주어도 이 일을 못할 것이다." 간호사
자매는 이 사업가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저도 그 일을 못합니다." 이
대답을 듣고 사업가가 당황하면서 말하기를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소?"라고 물었더니 자매가 대답하기를 "그리스도의 사랑이 저를 강권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향해 보여 주신 조건 없는 그 놀라운 사랑!
내가 그를 신뢰했을 때 나에게 놀라운 죄사함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나를 의롭다
하시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나에게 영생을 허락하시고 지금 내 삶의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이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만이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방식을 따르십시오.
▣ 그리스도의 사랑
영국의 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 대륙의 전도 책임자로 있을 때 그는 가끔 전도를
희망하는 후보자를 면접하였다. 한번은 봉사하기로 결심한 한 사람을 만나 "왜 당신은 해외
선교사로 가기를 원합니까?"하고 물었다. 선교사 후보자는 대답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전세계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가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또 다른 한 명은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리스도 밖에서 타락하고
있기 때문에 선교사로 나가기를 원한다고 대답하였다. 그 때 허드슨 테일러는 말하기를 "그
모든 동기들은 좋지만 시험과 시련 그리고 고생, 심지어 죽음의 순간을 당할 때, 그것은
당신을 구하지 못합니다. 단지 한 가지 동기가 당신을 어려운 시험과 시련에서 견디게 해줄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프리카에 있는 선교사가
한번은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당신은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진실로 좋아해서
하십니까?" 그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아닙니다. 나와 처는 먼지와 이 고생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초라한, 냄새가 나는 이런 오두막집에서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우리는 가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진정한 봉사를 하게 할 것이다.
인생을 다시 한번, 배훈
▣ 사람을 변화시키는 사랑
찰스 콜슨(Charles Colson)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미국 닉슨 대통령 시절에 대통령 보좌관으로 있으면서 정치적인 권력을 누렸던 사람입니다. 그는 머리가 비상할뿐더러 지독할 정도로 냉철한 사람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런 그가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류되어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때 상원의원 세 사람이 그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들은 바로 항상 콜슨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애썼던 헤트필더, 휴스, 퀴에라는 의원들입니다. 찰스 콜슨이 투옥되자, 그들은 그를 위해 날마다 기도시간을 정하여 함께 기도하였고 그를 찾아가서 위로하며 책을 주었습니다.
찰스 콜슨의 형 집행기간이 7개월 가량 남았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평상시처럼 기도하는 가운데 퀴에의 마음에 그를 위해서 대신 옥살이를 해야겠다는 감동이 생겼습니다. 변호사였던 퀴에는 특수 법조문 안에 다른 사람들 대신하여 형기를 치를 수 있다는 내용이 언급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법원에 제안해 보았지만 거절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퀴에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콜슨이 마침내 감옥에서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값없이 베푼 사랑 앞에 교만하기 짝이 없던 그의 자아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베풀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습니다. 남아있는 형기 동안 그가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대상은 오로지 동료 죄수들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어떻게 하면 저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하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죄수들이 제일 싫어하는 빨래를 자청해서 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 죄수들은 그런 그의 태도를 믿지 못하고 다른 속셈이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죄수들은 자신들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결같이 봉사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하나 둘씩 감동 받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기도 모임을 시작하고 사랑의 교제를 나눕니다. 콜슨은 그의 자서전에서 "평생 동안 집안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던 나는 저들을 사랑하면서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발견했다"고 고백할 만큼 비참할 수밖에 없는 감옥에서 사랑을 베풀며 지냈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는 일평생 죄수들을 위해서 살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그는 형기를 마치고 나와서 "거듭나기(Born Again)" 라는 책 한 권을 발행했는데, 그 책은 한 때 미국 사회의 커다란 화젯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감옥에서 결심한대로 '교도소 선교회(Prison Fellowship)'라는 단체를 조직해서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씁니다. 그 후에 그는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탬플턴상을 받게 됩니다. 어느 외국 잡지는 탬플턴상을 수상한 찰스 콜슨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하였습니다. "현재 미국의 가장 건강한 사상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 저술가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전도자, 그리고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가장 따뜻한 이웃인 그가 새로운 이웃이 되어 우리 곁에 돌아왔다."
어느 누구도 그가 그런 존재가 되리라고 상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를 변화시킨 것은 세 사람이 나누어준 주님의 사랑이었습니다.
▣ 아내의 힘
루스벨트 대통령은 젊은 시절 갑작스럽게 소아마비에 걸리게 되었다. 그는 다리를 쇠붙이에 대고 고정시킨 채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다. 정치가로서 한창 왕성한 활동을 하던 그에게는 너무나 큰 시련이 아닐 수 없었다. 깊은 절망감에 빠진 그는 자신의 방에만 갇혀 지냈다.
그의 아내인 엘레나는 한동안 이런 그를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며칠 동안 내리던 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게 개어 있었다. 루스벨트는 엘레나의 권유로 휠체어를 타고 정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하늘은 더없이 맑았고 정원에는 꽃향기가 물씬했다. 그는 오랜만에 마음이 즐거워졌다.
그때 엘레나가 다정하게 말했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 뒤에는 꼭 이렇게 맑은 날이 오지요. 당신도 마찬가지에요. 당신은 뜻하지 않은 사고로 다리가 불편해졌지만 그렇다고 당신 자신이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요. 지금의 이 시련은 더 겸손하게 맡은 일을 열심히 하라는 하나님의 뜻일 거예요. 여보, 우리 조금만 더 힘을 내요." "하지만 나는 불구자인데 그래서 당신을 더 많이 힘들게 할 텐데 그래도 당신은 날 사랑한단 말이오?"
루스벨트가 우울한 목소리로 묻자 엘레나는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대답했다.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해요? 그럼 내가 그 동안 당신의 다리만 사랑했단 말인가요?" 이 말은 열등의식과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던 루스벨트에게 새로운 용기를 주었다.
그 뒤 엘레나의 말에 힘입은 루스벨트는 불구를 극복하고 예전보다 더 왕성한 미국의 대통령에 연속해서 네 번이나 당선되었다.
▣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실까?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기를 원한다면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실까?
무엇보다도 먼저 최고의 사랑을 요구하실 것이다. 우리가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그를 사랑하지 않는 한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다. 그는 우리의 지상의 가장 귀중한 관계들을 배제하시고 "너는 이 모든 것들을 미워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인상적인 말씀을 하신다. "미워하다"라는 용어는 상대적인 용어이다. 그것은 절대적인 용어는 아니다. 그는 여러분과 나에게서 우리가 최초로 느끼는 사랑, 즉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랑을, 우리의 가장 귀중한 사랑 즉 우리 자신의 생명에 대한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요구하신다.
W.Y.플러튼
▣ 사랑의 희생
13세기 스페인의 귀족이며 명문 대학의 교수였던 라몬 럴은 자신의 유망한 장래를 포기하고 모슬렘교도들을 복음화하기 위해 갔었다. 그는 두 번이나 그 나라에서 추방을 당하였다. 1년 반을 감옥에 감금당했다. 노인이 되어 성벽으로 끌려가 돌에 맞아 죽어 갈 때에 그의 마지막 말은, "오직 예수"였다. 죽기 직전에 그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살아 있지 않은 것이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는 사람은 결코 죽지 않는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그의 목사 안수식 때에 "오, 주 하나님 당신께 나 자신, 나의 아내, 나의 자녀, 그리고 나의 모든 소유를 드립니다"라고 말했으며 죽는 날까지 그리스도만을 향한 독점적인 사랑을 취소하지 않았다. 네덜란드에서 핍박이 심해질 때에, 겔린드 물러는 믿음을 버리고 성경 읽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화형당하게 된다는 경고를 받았다. 그에게는 아내와 네 자녀가 있었다. "당신의 아내와 자녀를 사랑하는가?"라고 재판관이 물었다. "만일 하늘이 진주이고 땅이 금덩어리이고, 내가 그 모든 것의 소유자라면, 우리가 겨우 빵과 물만 먹고 살게 될지라도 내 가족을 위해 그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아신다. 그러나 결단코 그리스도만은 포기할 수 없다." 그는 교살되어 화장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사랑의 희생을 잊지 않으셨다.
기쁘게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 J. 오스왈드 샌더스
▣ 목숨을 바친 사랑
전쟁 중 우리 나라에 있었던 실화라고 한다. 한 만삭이 된 어머니가 아기를 낳기 위해 어떤집을 찾아가던 중이었다. 그 어머니는 그만 그 집을 다가지 못하고 길에서 진통을 하기 시작했다.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던 어머니는 어느 다리 밑에 겨우 자리를 잡아 아기를 분만하게 되었다. 추운 겨울 아무도 도와 줄 사람이 없는 가운데 그 어머니는 모든 것을 혼자 처리하고는 아기가 춥지 않도록 자기 옷을 모두 벗어서 아기를 감싸주었다. 해산 직후 추위에 어머니는 그만 얼어 죽고 말았다. 얼마 후 어느 미군 장교 한 사람이 차를 타고 그 근처를 지나가다가 휘발유가 떨어졌다. 그는 부대로 연락을 취해 놓고 차에서 내려 그 부근을 거닐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상한 아기 울음소리 같은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그 군인은 그 소리를 따라 다리 밑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거기서 그 군인은 기가 막힌 장면을 목격했다. 어머니는 벌거벗은 채 얼어 죽어 있었고 어머니의 옷에 둘러싸인 갓난 아기가 몹시 울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기름이 떨어진 것이 어쩌면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살리시기 위함인지도 모르겠군." 이렇게 생각한 군인은 그 아기를 데려다가 양자를 삼아 잘 키웠다. 그 아들은 미국에서 훌륭하게 자라 성인이 되었다. 늘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알고 싶어하던 그 아들은 어느 날 자기를 키워 준 아버지로부터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아들은 무덤을 찾아 한국에까지 나왔다. 그 아들은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자기 옷을 벗어서 무덤 위를 덮으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 얼마나 추우셨어요! 나를 살리기 위해 어머니는 그런 희생을 치르셨군요! 저는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벌거벗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겠어요!"사랑과 행복에의 초대, 양은순
▣ 사랑의 절정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부인이 다섯 살과 세 살된 아들을 키우기 위해 철길 가에 있는 신발공장에 취직을 했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 두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기 때문에 안고, 업고, 공장으로 출근하여 공장 안에 조그만 방에서 놀게 하고 부인은 일을 했습니다. 따뜻한 어느 봄날, 방안이 답답하다고 두 아이들이 엄마 몰래 철길로 나갔습니다. 철길에서 조약돌 치기도 하고 가위, 바위, 보 놀이도 하면서 놀고 있을 때 기차가 달려들었습니다. 누군가가 애들이 없다는 소리에 엄마가 뛰어나가 보니 철길에서 놀고 있고 있었습니다. 쏜살같이 달려가 두 아들을 철길 밖으로 던져 낸 순간 기차가 뛰어들어 엄마를 치고 지나갔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그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 두 형제는 고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자라서 어른이 된 후 어머니의 무덤에 조그마한 묘비를 세우고 다음과 같이 새겨 놓았습니다. "어머니, 우리 어머니,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라고. 그 어머니의 사랑의 절정은 두 아들을 기르기 위해 일당 몇 백원을 받으며 일했던 그것이 아닙니다. 두 아들을 기르기 위해 자신이 굶고 아이들 입에 먹을 것을 넣어 주었던 그것이 아닙니다. 그 기찻길에서 놀고 있던 두 아이의 생명을 건져내고 자신의 목숨을 버렸던 그 사건에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절정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찬송 작사자 하버겔은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위해 무엇 주느냐"라고 읊었습니다. 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해야 합니까? 그것은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셨고 지금도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박종순
▣ 고귀한 사랑
윤혁택
어느 교회의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기 전에 자기를 찾아오신 나이 많은 신사 한 분을 소개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설교하기 전에 이 노신사 분이 잠시 인사 말씀을 하시겠다고 말했습니다. 강단에 올라간 노신사 분은 인사 대신 다음과 같은 한 이야기를 하시고는 강단을 내려오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하루는 그 아들과 아들의 친구가 바닷가에서 놀다가 그만 둘 다 바다에 빠져 죽어가고 있어 즉시 그들을 구원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목격한 아버지의 손에는 오직 한사람만을 건질 수 있는 구명동의 밖에는 손에 없었는데 그 절박한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누구에게 그 구명동의를 던져 그를 구원 할 것인가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에는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죽이고 아들의 친구를 살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들의 친구를 죽게 놔둘 수도 없고... 그때 아버지의 마음에 순간적으로 스치는 생각은 자기아들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죽게 되면 하늘나라에 가지만 그래서 다시 만날 수 있지만 아들의 친구는 불신자라서 영원히 지옥에 가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향하여 '아들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외치고 구명동의를 아들의 친구에게 던져 결국 아들은 죽고 아들의 친구는 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하나님도 그의 독자를 죽이고 여러분을 살리셨습니다. 이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뒤이어 목사님의 말씀시간이 끝나고 젊은이들 둘이 노신사를 찾아와 "아까 그 이야기는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론적으로는 몰라도 세상에 사는 사람들 중에 어떻게 실제로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노신사는 조용히 젊은이들에게 " 조금 전에 말씀을 전하신 젊은이들의 교회 목사님이 바로 그 친구였고 죽은 것은 내 아들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자기의 아들을 죽이고 아들의 친구를 살릴 수 있는 자는 세상에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나같은 자를 그것도 그의 아들의 친구가 아닌 그의 원수의 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의 독자를 죽도록 놔 두셨다는 것입니다.
▣ 물 한 컵의 사랑
영국의 시드니 장군은 전쟁에서 심한 부상을 입고서도 승리를 위해 고통을 참으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마침내 전쟁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장군은 후방으로 옮겨졌습니다.
후방으로 옮겨진 장군은 목이 말라 물을 찾았으나 병사들이 갖고 있던 물통에는 겨우 몇 방울만이 남아있었습니다.
병사들은 자신의 물통에 남아있는 몇 방울의 물을 모아 간신히 한 컵의 물을 받아서 시드니 장군에게 가져갔습니다. 목이 말랐던 장군이 물컵을 받아드는 순간 심한 부상을 입은 채 물컵을 바라보고 있는 어느 병사의 간절한 눈빛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장군은 부관을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물을 저 병사에게 주게. 나는 더 참을 수 있으니."
"아닙니다. 이 물은 장군님을 위해 모은 것입니다. 어서 드시지요."
"어서 주라니까. 저 병사가 마시는 걸 보고 싶네."
그리고는 갈증에 시달리는 병사에게 물을 마시도록 권했습니다.
병사는 눈물을 흘리며 물을 마셨습니다. 장군은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띠었고 옆에서 지켜보던 많은 부상병들은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나의 목마름을 채우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채워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그리워집니다.
▣ 베푸는 삶
오래 전 나는 외국 사람들의 생활 풍습에 대해 잘 몰랐을 때 외국 선교사의 집에 초대받아 갔다가 크게 실망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고국에서 그 선교사를 크게 대접한 일이 있었기에 기대를 가지고 초대에 응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의 식탁에 가서 앉아 보니 닭다리 하나로 된 요리가 고작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나라 사람의 대접과 외국 사람의 대접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대접 하기를 좋아하는 우리인만큼 하나님 앞에서 복받을 자질을 갖춘 셈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민족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복이 상승 작용을 일으켜 크게부강한 민족이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데 존재 근본을 두신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 주 안에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 나라와 이웃을 위해 주면서 살 때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풍성한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 스스로 가난을 선택한 왕
덴마크의 철학자 소렌 키에르케고르(1813-1855)가 쓴 한 우화는 "옛날에 한 가난한 아가씨를 사랑한 임금이 있었습니다"라고 시작합니다.
임금은 그녀를 향한 자기의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했을까요? 그녀를 두려움이나 위압으로 억지로 응하게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임금은 그녀가 자기 그대로를 사랑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임금은 자기가 왕으로 그녀에게 나타나면 그 사랑하는 사람이 자유를 잃게 된다는 것을 알고서 평민으로 내려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왕위를 내어놓고 왕의 예복을 벗고 초라한 외투를 둘렀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변장이 아니고 신분을 아주 바꾼 것이었습니다. 그는 한 젊은 여인으로부터 결혼을 승낙 받기 위해 하인의 삶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큰 도박입니까? 그녀가 자기를 사랑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에 쫓아 버린다면 그는 영원히 그녀의 사랑을 잃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선택을 주셨다는 것을 묘사한 하나의 그림이요, 이 우화의 요지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사랑을 얻으시려고 낮아지셨습니다. "너희 안에 이 생각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도 있는 생각이라. 그는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는 것을 탈취라 생각지 아니하셨으나 오히려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느니라." (빌 2:5-7) 고 하였습니다. 이 땅에 우리와 같은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을 모습으로 나타나신 하나님,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해야 할까요, 아니면 쫓아 보내야 할까요?
▣ 도마뱀의 우정
일본 도쿄에서 올림픽이 열리게 되어 스타디움 확장을 위해 지은 지 3년 되는 집을 헐게 되었다. 막 인부들이 지붕을 벗기려는데, 꼬리쪽이 못에 박혀 벽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도마뱀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인부들은 집주인을 불러 이 못을 언제 박았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집을 짓던 3년 전에 박은 것이 분명하 다는 대답이었다. 3년 동안이나 못에 박혀 움직이지도 못했을텐데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고 하며 모두 혀를 내둘렀다. 사람들은 이 신기한 사실의 까닭을 알기 위해 공사를 잠시 중단하고 도마뱀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이었다. 그 도마뱀은 하루에도 몇번 씩이나 못에 박혀 움직이지 못하는 친구들 위해 먹이를 가져다 주었다. 이렇게 하기를 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계속했던 것이다. 참 아름다운 도마뱀의 우정이다.
*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도마뱀보다 못하진 않겠죠?
▣ 허드슨 테일러의 일생
중국에서 80여 년간의 생애를 바쳤던 전설적인 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에게 젊은 선교사들이 조언을 듣고자 방문했습니다. 그는 먼저 젊은이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왜 선교를 감당하려고 하십니까?" 젊은이들이 자신있게 대답합니다. "저는 이 황무지 같은 중국 땅에 교회들이 서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저는 이 중국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미개한 삶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테일러가 빙그레 웃으며 말합니다. "나는 아닙니다. 중국이 사랑스러워서도 아니고, 이곳 생활이 즐거워서도 아닙니다. 모래 바람이 일고 미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문명의 불모지가 무엇이 그리 좋습니까? 이처럼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고 즐거워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 무엇이 내 안에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나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에 붙잡히면 조금도 사랑스럽지 않은 것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랑하게 됩니다. 조금도 즐겁지 않은 것을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합니다. 또한 도저히 내 힘으로 감당할 수 그 어려운 십자가의 길을 강권하시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 사랑의 법
어떤 주인이 하녀를 고용하면서 세 가지 규칙을 만들었다. 첫째, 아침 여섯시까지 일어날 것, 둘째, 아침 일곱 시까지 식사 준비를 마칠 것, 셋째, 아침 아홉 시부터 청소를 시작할 것, 이 세 가지 중 한 가지라도 어길 경우 즉시 해고할 것임. 이 하녀는 고용당한 날부터 매일매일을 무거운 부담 속에서 살아야 했다. 그런데 시일이 지나면서 주인과 하녀 사이에 사랑이 생겨 그들은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한 직후 하녀였던 부인이 "이제 나는 당신의 하녀가 아니고 당신의 부인이예요. 이전에는 여섯 시에 일어났지만 앞으로는 열 시에 일어날 거예요"하고 말한다면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 종의 위치에서 아내으 위치로 이끌어준 남편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여섯 시가 아니라 다섯 시에라도 일어날 준비를 갗추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 사이에 계약이란 법은 없어졌지만 새로운 사랑이란 법에 매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앙인들이 은헤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서 율법을 어겨도 된다는 말은 아닌 것이다. 죄로부터의 자유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더욱 하나님께서 설정하신 율법을 지키고자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만큼 하나님의 공의를 중시해야 하는 것처럼 신앙인들은 율법만큼 복음을, 복음만큼 율법을 중시해야 하는 것이다. "비천한 종의 자리에서 왕의 자녀의 자리로 옮겨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로하여금 왕의 자녀답게 지혜 있게 하시고 주의 도와 율례를 지켜 나를 복음의 빛 아래서 해방케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생명되신 주님의 말씀에 더욱 순종하게 하옵소서.
사랑은 국경도 이념도 신분도 다 뛰어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삶의 지평 위에 얼마나 많은 "공통분모"가 있느냐에 따라 더 먾은 가치를 부여받게 된다.
생 떽쥐베리-"사랑은 영원히 서로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곳을 줄곧 나란히 향하는 것이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열렬한 사랑이 있다고 해서 두 사람이 영원히 행복한 관계를 지속할 수 있을까?
앙드레 모로아-"극히 훌륭한 사랑은 격렬한 욕망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의 완전하고도 영속적인 조화에 의하여서만 인정된다."
슈와프-"사랑의 마음이 없이는 어떠한 본질도 진리도 파악하지 못한다. 사람은 오직 사랑의 따뜻한 점으로서만 우주의 전지전능에 접근하게 된다. 사랑으 마음에는 모든 것이 포근히 안길 수 있는 힘이 있다. 사랑은 인간생활의 최후의 진리이며 최후의 본질이다."
▣ 내가 너 대신 죽었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한 꼬마가 동화 테이프를 즐겨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그가 내 대신 매를 맞았다"라는 제목이 붙은 테이프를 가장 즐겨 들었습니다. "그가 내 대신 매를 맞았다"라는 이야기의 줄거리를 잠깐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교실이 하나뿐인 어느 시골 학교에 나쁜 짓만 골라서 하는 어린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어린 학생은 어느 날 자기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학생의 도시락을 훔쳐 먹다가 선생님께 들켜 매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때 점심을 도둑질 당한 큰 학생이 점심을 훔친 나이 어린 학생을 대신해서
매를 맞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대신해서 매를 맞았습니다. 그 일 이후로 어린 학생은 아주 모범적인 학생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예수님도 우리를 대신해서 매를 맞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와 허물로 죽을 수밖에 없는 당신을 대신해 죽으셨습니다. 당신은 이 사실에 대해 얼마나 감격하고 계십니까 ?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사랑을 보여주신 주님, 저희를 향한 주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 당신은 요즘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
손의 못 자국, 허리의 창 자국, 머리의 가시관 자국, 모두 당신을 향한 거룩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이다.
▣ 십자가를 진 사람들
주님께서 두 제자를 데리고 어떤 길로 들어서셨다. 거기서 주님은 각자에게 무게가 똑같은 십자가 하나씩을 건네주시며, 당신은 이 길이 끝나는 곳에 가 있을 테니 그곳까지 십자가를 지고 오라고 지시한 다음 자취를 감추셨다.
첫 번째 제자는 가볍게 십자가를 매고 가는데 반해, 두 번째 제자는 지독히 힘들어하면서 뒤쳐져 따라왔다. 십자가를 걸머진 지 하루만에 첫 번째 제자는 길 끝에 당도하여 십자가를 스승에게 넘겨드렸다. 주님은 첫 번째 제자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시며 말씀하셨다. "아들아, 아주 잘 했다."
두 번째 제자는 이튿날 저녁이 되어서야 길 끝에 도착했다. 도착한 제자는 십자가를 주님의 발 밑에 내동댕이치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저한테는 다른 제자보다 훨씬 더 무거운 십자가를 내주시다니요! 제가 이제사 온 것도 그 때문이라구요!" 주님은 마음이 상한 채 슬픈 얼굴로 두 번째 제자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십자가는 둘 다 똑같은 무게였느니라." "그런데도 앞사람은 아주 쉽게 십자가를 옮겼는데, 유독 저만 십자가를 옮기느라 쩔쩔 맸다 이 말씀입니까?"
주님이 그에게 타이르셨다. "십자가를 탓하지 말아라. 그 까닭은 십자가를 지고 오는 동안 줄곧 불평을 늘어놓은 너에게 있느니라. 네가 불평할 때마다 십자가의 무게는 늘어났던 거야. 앞에 온 제자는 십자가를 지고 있는 동안 사랑을 실천했기 때문에 그 사랑이 십자가의 무게를 덜어준 거야. 그래서 힘들이지 않고 옮길 수 있었던 거지."
▣ 선교는 그리스도의 부르심/ (사랑의 강권)
어떤사람이 한 선교사에게 아프리카 선교사업을 좋아하느냐고 물었을때 그는 대답하기를 “아닙니다. 내 아내와 아이들은 어러운 곳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련되고 깨끗한 감각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무식하고 더러우며, 잔인한 사람들과 상종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고 싶지 않다 해서 그리스도를 위해 못할 일이 있겠습니까? 싫던 좋던 선교일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는 아프리카에 선교해야 한다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갑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출처: http://lectio.tistory.com/557 [Lectio Divina]
첫댓글 감사합니다